교코
무라카미 류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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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니라 잘된 로드 무비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니.
어린 시절 자신에게 잊지 못할 춤을 가르친 호세, 그가 있는 뉴욕으로 교코는 무작정 떠난다. 어렵게 어렵게 호세를 찾지만 그는 에이즈 말기. 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향, 마이애미로 3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내 주변에 교코 같은 사람이 있나 살펴봐야 겠다. 자체 발광. 교코를 만나는 순간, 삶이 정화되고 긍정적 에너지로 물들어간다.
교코를 지나친 사람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따뜻하다. 파블로 삼촌과 자원봉사자 세르지오의 마음이 전해지고 마지막 호세의 비상이 눈물겹다. 조지아 주 농장 부인들에게 맘보를 가르치는 교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라카미 류는 이야기를 참 거침없이 써 나간다. 이런 게 얘기가 될까 싶은 것도, 약간은 무모해 보이는 것까지도, 그의 손을 거쳐 대충 슥슥 하면 바로 작품이 된다. 부럽고 감히 넘볼 수 없는 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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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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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의 입이 더 얄미워지고 고집과 논리가 더 업그레이드됐지만, 나이 때문인지 몰라도 지친 느낌이다.
테리나 웨이드, 바니 올즈(빅 슬립에 등장했던 바로 그 경찰이다) 등을 대하는 말로가 왠지 그래, 넌 너대로 살아라 포기하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테리가 살아있는 반전은 놀랍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어설픈 일이 가능할까 싶다.
두 개의 큰 줄기(테리 레녹스와 로저 웨이드)가 사실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내용이 비대해질 필요가 있었을까 의심이 든다. 기대와 달리 <빅 슬립>에 못미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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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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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추리 소설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첫 손가락에 꼽은 작품, 무엇보다 이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 감탄한 만큼 한껏 기대하고 읽었다.
기대가 너무 커서였을까? 애크로이드 사건 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었다.
외부와 단절된 환경, 전래 동요(열 개의 검은 인디언 인형)의 내용에 맞춘 살인, 서로 의심하는 극한 상황 등이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한 수법이지만 당시로서는 센세이션한 일이었을 것이다. 가히 추리소설의 전범이었을 터.
아쉬운 건 묘사와 서술이 착착 감기지 않고 누구의 말인지 불분명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번역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결말을 읽기 전, 범인이, 죽은 사람 중 뭔가 트릭으로 실제는 죽지 않은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예상했는데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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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이정호, 정재영 외 /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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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소설들 처럼 흥미진진하고 속도감 있고 흡인력 있는 문장은 여전하다. 이번엔 묵직한 사회적 문제를 다뤘다. 미성년자의 갱생이라는 미명 아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피해자와 가족들에 남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는? 법이 추구하는 정의의 칼날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누구든 한 번쯤 생각해 봤을 문제에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린다.
사실 읽는 내내 가슴이 불편했다. 내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침울해질 수 밖에 없다.
이야기는 종반으로 치다를수록 힘이 부치고 서둘러 수습하는 느낌이다. 방황하는 칼날이 결말에 이르러 자리잡지 못한 듯.
또다른 피해자의 아버지(아유무라)가 가이지에게 복수하고 나가미네는 자수하는 것으로 끝맺었으면 어땠을까? 가장 악질이 죽지않는다는 사실이 언짢다. 마지막 은퇴한 형사가 의외의 정보제공자였다는 반전이 기발했다.
지금까지 히가시노의 소설을 읽고 느낀 점은, 이게 무슨 이야기꺼리가 되겠어? 하고 놓칠 것들을 작가는 끈질기게 파고들어 모두들 감탄할만할 이야기로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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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 개정판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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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피로연장에서」,「노래방에서」,「공항에서」작가는 특정 장소를 제목으로 상정하고 이야기를 써내려간 듯하다.암울한 처지의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미뤄왔던 새로운 출발의 설램을 갖거나 누군가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지지부진한 현실 속 우리가 사는 일상적인 모습이다.「공항에서」가 가장 좋았다. 키다리 아저씨 같은 사이토와 조심스러운 유이, 그리고 탑승 게이트에 모인 사람들. 서로 말 한마디 없지만 유이의 심경이 읽힌다. 면밀한 묘사와 이야기가 적절하게 얽힌다. 부디 아프가니스탄에 유이가 만든 의족이 잘 전달되기 바란다. 오랜만에 무라카미 류가 어깨 힘빼고 편히 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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