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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그레이슨, 윌 그레이슨
존 그린.데이비드 리바이선 지음, 김미나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형용사는 ‘유쾌한’일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결코 유쾌하다고는 결코 보아줄 수 없는데도, 이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게 흘러가지요. 일단 이 소설의 챕터를 번갈아 맡은 두 작가의 문체가 그렇습니다. 두 아저씨 작가가 어쩌면 1인칭 시점으로 십대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십대의 표정을 저 멀리서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직접 그들의 분신이 되어 그들의 생각과 언어를 재현해 보려는 두 작가의 시도는 꽤 성공한 듯 보입니다. 가끔 어떤 소설에서는 상황과 문체가 따로 노는데, 이 소설은 그런 불일치의 흔적이 없으니까요. 십대들에 관한 소설은 많지만 저 같은 성인도 즐겁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소설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표면적 주인공은 두 윌 그레이슨이지만, 저는 타이니의 이야기에 더 끌렸습니다. 타이니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게이 캐릭터이지요.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무려 열여덟 명의 게이들과 데이트를 하지만 아직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친구 윌 그레이슨과는 또 다른 윌 그레이슨을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파국을 맞게 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타이니는 시무룩해져서 별다른 기대도 없이 그간 준비해왔던 뮤지컬을 진행합니다. 그가 진행하는 뮤지컬은 타이니가 살아왔던 내력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뮤지컬이 끝나갈 무렵 무대 위의 모든 사람들이 타이니에게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관객들도 여기에 참여하고요. 이 퍼포먼스에 거창한 이유 같은 것 없습니다. 계속 차이기만 하는 게이일지라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고, 고맙고 고맙다는 이야기일 테지요.
이 책에 나오는 십대들은 시종일관 머뭇대고 주춤거립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격려하는 캐릭터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내는 풍경도 정답고 애틋합니다. 내가 십대 시절을 돌아보며 진저리를 치면서도 이따금 그리워하는 것은 그 정답고 애틋함을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의 십대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원래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실은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도 머뭇대고 주춤거리고 있다고. 그런 머뭇대고 주춤거리는 시간이 없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지루하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