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도시에서 장사를 배우다
김영호 지음 / 부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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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그렇지 않겠느냐 만은 나도 은퇴를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은퇴를 하면 무엇을 할까 하고 늘 생각해 오긴 했어도 막상 코앞에 닥치니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은퇴를 하고 장사를 꿈꾸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비관적인 것들이 대다수다. 누구는 겁 없이 장사 시작했다가 퇴직금을 몇 달만에 다 까먹었다더라 하는 말이 수시로 들린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천오백팔십만 원” 이 책의 저자가 ‘자율적 후불제’를 소개하면서 자신도 자기 강의료에 자율적 후불제 방식을 도입했다고 말하기에 나 나름대로 이 책의 가격을 매겨본 것이다. 물론 이런 책이 출간됐으니 그런 돈을 지불할 기회는 다행히 없다. 그러나 만약 이런 책이 출간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장사를 하기 전에 이런 노하우를 얻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금액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지불한 비행기 삯만 해도 상당한 액수가 될 것이며, 이 책에 소개된 노하우를 수집하는 데 바친 시간도 엄청날 터이다. 만오천팔백 원에 이런 노하우를 얻는다는 것은 나 같이 은퇴를 앞두고 장사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저자는 이 책의 두 번째 장을 일본에 할애하고 있는 데, 이는 단순히 일본이 이웃나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본 사회의 인구 변화가 한국에 20~30년 앞서서 진행되고 있기에 일본을 보면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대처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일본의 편의점을 소개한다. 일본의 편의점은 증가한 고령층 수요에 부응하여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중대형 주택 수요는 감소하고 소용 주택 수요가 늘어나면서 변화될 시장에 전망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미니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고 소형 주택 수요 증가에 따라 주택 관리 업종의 성장이 기대된다는 전망에는 고개가 끄덕여 진다.

 

원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다이소의 판매 전략은 파격적이다. ‘원가 절감’이라는 구호에 익숙해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이야기다. 이 전략은 매장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 주문량이 늘어나고, 주문량이 늘어나면 매입 원가를 낮출 수 있다는 다이소 창업주 야노 히로다케의 단순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일단 다이소 매장을 찾았다면 자신이 원하는 제품이 없어 발길을 돌리는 일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153쪽)을 지킨다고 한다.

 

이 책이 여러 기막힌 사례들을 잘 전달해주고 있지만, 해외 현장에 대해 무조건적 찬사를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모조품으로 가득한 중국 베이징 류리창 거리를 보며 저자는 인사동을 떠올린다. 인사동에서 파는 한국 전통 공예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을 외국 사람들이 볼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그나마 류리창 거리는 청나라의 분위기를 간직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사동은 그마저도 없다는 것이다.

 

책 전체가 알짜배기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백화점에서 다 둘러볼 시간이 없을 때는 주방용품 코너를 가보라는 팁도 메모해 두었다. 소비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 바로 주방용품 코너라는 것이다. 관련 법규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정비되어 있는지를 소개해 두고 있기 때문에 바로 사업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향후 시장 전망도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전해주고 있다. 중간중간 ‘비즈니스 방랑객의 시선’이란 코너에서는 해외여행 중 유익한 팁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친절하게 모디슈머(midisumer), 몰링(malling) 등 최근 떠오르는 키워드들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통계청 자료를 먼저 체크하라는 조언도 굉장히 유용하다. 부록에는 ‘세계의 도시에서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8가지 준비’라고 해서, 직접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지침을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어떤 장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준비자금이나 건물보다 중요한 건 시장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관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관점을 바꿔 한국에서 잘 나가는 아이템을 해외에서 팔수는 없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큰 공감이 갔다. 작년 학부모들 사이에 불었던 ‘스칸디맘’ 열풍의 경우 평소 소비자들을 잘 관찰만 했어도 미리 조짐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은퇴하기 전 남은 시간을 알차게 활용해서 내가 지금 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또 살펴야겠다. 그 과정에서 이 책이 교과서 역할을 할 것임은 당연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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