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전사록
리델 하트 엮음, 황규만 옮김 / 일조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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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월 전, 롬멜 전사록을 읽었어. 롬멜은 사막의 여우야, 아니 사막의 여우로 알려져 있지. 롬멜의 혁혁한 전공의 대부분은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루어졌어. 그래서 전사록을 史가 아닌 沙로 적었나봐. 암튼,

사막의 여우라는 표현이 과연 롬멜에 어울릴까를 해. 쬐끔 그렇고 많이 아니야. 여우 보다 독수리 같아 시야가 넓고 행동이 빠르거든. 롬멜은 참 매력적인 남자야. 장군이지만 하급 병사들과 뒹굴며 그들을 아꼈어. 공격은 과감 신속 정확했고. 정치적으론 우직했지. 우직이라는 표현은 군인다웠다는 뜻이야. 별 달았으면서도 이리저리 아첨하고 눈치 살피는 조무래기들 똥 별들이 좀 많아? 난 2차 대전 중 독일이 낳은 명장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롬멜을 꼽아.

롬멜은, 기습을 감행한 후 우물쭈물하는 적군의 종심을 빠르고 깊숙이 찌르는 작전을 쓰곤 했어. 프랑스 점령은 전광석화 같았지. 전차의 굉음에 잠을 깬 주민들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롬멜 탱크부대를 환영했어. 롬멜의 진격속도가 너무나 빠른 탓에 모두들 영국군으로 오인했던 거지. 적의 고사포부대를 통과하자 위병소 초병까지 아군으로 알고 경례를 올려붙였다니까 더 뭘 말해.

롬멜은 '롬멜 보병전술' 이라는 책을 낼 정도로 학구적인 면이 있어. 언제 어디서나 기록을 꼼꼼히 하는 치밀한 성격이지. 롬멜은 적과 조우했을 때, 엎드려 상황을 파악하려 들지 말고 즉각 사격해야 한다는 점을 부하들에게 강조하곤 했어.

모든 정황을 꼼꼼히 살피고 계산한 다음, 준비가 완료됐을 때 비로소 행동을 개시하는 영국군이나 기타 연합군과는 전혀 다른 패턴이었어. 그래서 다들 롬멜에게 당했어. 자신들의 틀을 벗어 던지지 못했으니까.

명성이 자자했지만 롬멜은 늘 보급품 부족에 시달렸어. 풍부한 물자와 신형무기를 충분히 공급 받던 연합군과는 달리 롬멜은 필요한 군수품의 반 정도나 보급 받았을까? 내 짐작으론,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초기 아프리카 전장에서조차 롬멜이 운용한 병력이나 장비의 규모는 적의 70%수준이었을 거야.

독일의 패색이 짙을 즈음은 더욱 심했지. 탱크를 움직일 기름조차 제대로 보급이 안 됐어. 예비 연료가 겨우 3일치정도였으니까. 포탄 부족으로 적을 만나도 맘대로 실탄을 쏠 수 없는 형편이었고 트럭의 대부분은 영국군으로부터 노획한 거였어. 때론 별 다섯의 장군이 병사들과 끼니걱정을 할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지. 롬멜은 늘 아내에게 편지를 썼어.

그의 편지는 언제나 -사랑하는 루에게- 라고 시작 되었지.

적 탱크와 모래 바람, 히틀러의 무모한 명령서, 군 수뇌부의 냉대,

오지 않는 보급품, 사막의 전갈과 모기에 둘러싸인 채

머나먼 독일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는 한 남자를 생각해.

롬멜은 초라한 천막에 웅크리고 앉아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사흘이 멀게 일기를 쓰듯 편지를 써 우편으로 보냈지.

달콤하다든가 애틋한 사연은 한 줄도 없어.

무사하다. 진격중이다. 전투가 벌어졌다. 현재 휴식중이다.

뭐 그런 덤덤한 이야기들 끝에 당신과 아들 만프레드만을 생각한다고 적곤 했어.

읽으면서, 부러웠던 부분이야. 조금 신비하기도 했고.

독일 패망 직전, 롬멜의 삶은 히틀러와 그 추종세력들에게 갑작스레 단절돼. 롬멜이 히틀러 제거 계획에 가담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내가 읽은 책에 그 부분은 상술되지 않았거든. 그가 남긴 전투일지와 일기 등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롬멜은 그러한 거사에 적극 가담했기 보다는 동조 내지 묵인하지 않았나 싶어. 가증스러운 건, 히틀러와 그 추종세력이 롬멜을 죽인 후, 가족에게 보낸 조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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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君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에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하는 바입니다. 롬멜원수의 명성은 북아프리카에서 이룩한 영웅적 전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아돌프 히틀러

우리가 항상 독일 국민과 함께 있기를 열망했던 롬멜원수께서 부상으로 인해 영웅으로서의 최후를 마친 데 대해 본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본인과 전 독일 공군은 영부인께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대독일제국 제국원수 괴링

夫君의 서거로 인한 婦人의 불행에 접하여 진정어린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롬멜원수의 서거로 독일 육군은 가장 위대한 지휘관을 잃게 되었습니다마는 원수의 이름은 2년간에 걸친 아프리카군단의 영웅적 전투와 함께 영원할 것입니다. 영부인의 슬픔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국무대신 괴벨스

20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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