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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평점 :
♡2024년 열네번째 책♡
✒큰 울림과 여운을 주는 소설 #이처럼사소한것들
배려해 주고 배려를 받았던 좋은 기억이 배려의 확장성을 가져온다는 나딩스 주장처럼 펄롱의 결심과 선택에 미시즈 윌슨과 네드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물론 펄롱의 경험에는 이런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차별, 이웃들의 위선을 함께 경험하기도 했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자신의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 구두를 들고 가면서 맨발의 세라에게 줄 생각은 왜 하지 못했는지. 어쩌면 펄롱의 행동은 진짜 선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모함이나 위선의 행동은 아닐지.
다만 미시즈 윌슨과 네드에서 이어져 이번엔 펄롱에서 다시 시작한 관심과 용기, 배려가 세라와 그 이웃, 더 나아가 공동체에 확장되길 바랄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고통이 오래가질 않길, 많이 힘들지 않기를, 그들이 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P56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 P99
사람한테서 최선을 끌어내려면 그 사람한테 잘 해야 한다고, 미시즈 윌슨이 말하곤 했다. - P100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 P102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P119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억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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