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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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의도하든 의도치않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안타까웠다.
상대방에게 진심을 끝내 말하지 못해 결국 어긋나 버리는 관계들.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돌아보니 남일 같지가 않아서 어쩌면 그들처럼 어긋난 관계는 어긋난 채로 두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일이나 관계에서는 용기를 내어 말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안다. 특히나 가까운 사람에게는.
이야기들은 결핍, 체념과 상실, 외로움, 배신, 분노의 감정을 느꼈지만 마지막에서는 책 제목과 같은 ‘아주 희미한 빛‘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 상처받기도 하고 의존하고, 미워하고 또 사랑하고, 분노하거나 성찰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지.
오히려 상처를 주는 강렬한 빛보다 희미한 빛 속에서 살아갈 이유를 찾게될지도.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이런 일을 몰랐던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이제 세상은 그럭저럭 잘 굴러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고. 당신은 희영처럼 강한 사람이 아니어서, 화가 나서, 그러나 무력해서 속이 부식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P68

그때 할머니 모습이 잊히질 않아요. 말로 일격을 가하고 싶으면서도 겁먹은 게 제 눈에는 보였거든요. 씨발년아, 라고 할 때는 목소리가 작아지면서 꼭 울 것 같았어요. 욕도 못하는 사람이 최대치의 욕을 한 거죠.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 기억이 자주 떠올라요. 저를 지키려는 매 순간순간이 무서웠을 것 같고, 용기를 냈어야 했을 것 같고. 세상 소심한 사람이 막, 씨발년이라는 말도 해야 했고.
선배.
......
말해줘서 고마워요. - P103

방화문을 닫듯이 마음을 닫아버리면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의 불길로부터 안전했다. 하지만 그해 봄에는 그 문이 더는 내 힘으로 닫히지 않았다. 슬프다거나 괴롭다는 감정보다도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먼저 일었다. 처음에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으니까. 책을 읽고 산책하고 샤워하고 음악을 듣고 운전하고 수영하고 일에 몰두하고 심호흡을 하고 일기를 써도, 그렇게 내 마음을 ‘정상화‘할 수 있는 모든 버튼을 누르고 조종간을 건드려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침내 내가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은 한밤중에 전소한 헛간처럼 무너져내렸다. 대가를 치르는 거라고,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나는 그렇게 믿었다. - P258

마이클은 자신을 몰랐고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애가 오히려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건 무슨 이유였을까.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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