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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평점 :
♡2023년 여든 여섯번째 책♡
✒낭독회에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쓴 소설들을 모은 짧은 소설들 #너무나많은여름이 #김연수
실제 낭독회에서 낭독과 곁들인 음악의 플레이리스트가 책의 맨 뒤에 적혀 있는 것을 책을 다 읽은 뒤에서야 알아 그 점들이 좀 아쉽지만 만약 이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음악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편의 짧은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줄거리를 말하기가 어렵지만 잔잔한 느낌의 소설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몇 작품들은 마음을 울리기도 했고.
"그렇다면 우리의 밤은 두번째 밤도, 세번째 밤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밤 다음의 밤이라는 뜻이군요. 이렇게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류라면 이 밤을 마지막 밤으로 만드는 게 가장 현명하겠군요." - P13
네가 떠나고 시간이 지난 뒤, 스물일곱 살에 죽은 일본 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읽은 적이 있어.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었어. 내가 외로울 때, 상관없는 사람은 몰라. 내가 외로울 때, 친구들은 웃어. 나는 네 생각을 했어. 가끔은 나도 네게 상관없는 사람일 수 있었겠고, 웃는 사람일 수 있었겠어서. 웃는 사람은 상관없는 사람, 내가 외로울 때. 이제야 그걸 잘 알겠네. - P19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은 시절의 엄마지만, 어리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엄마와 나의 삶은 같은 시간으로 묶여 있으므로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의 한 부분은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첫여름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 P47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게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아 계셨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뒤늦게 밀려왔다. - P50
관계라는 건 실로 양쪽을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 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 P119
아이는 경이로웠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이 거기 있었다. 한번 대답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영원히 지켜보고 돌봐야 하는 삶. 선물처럼 받았으니 나 역시 주고 주고 또 주기만 해야 할 삶이 거기 있었다. 엄마에게도 나는 그런 삶이었을까? - P272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엄마가 손을 뻗어 뽑아내면 네잎클로버였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네잎클로버를 뽑을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 물론 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랬겠지만, 엄마가 정말 멋진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네잎클로버를 그렇게 잘 찾아낼까. 내 기억을 통틀어 그날의 엄마가 제일 뽐내는 엄마였다. 미신대로라면 행운으로 가득했어야 할 사람. 하지만 그날 찾은 네잎클로버는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에게 받은 네잎클로버들을 화단에 가지런히 놓고 보니 마치 내가 찾은 것인 양 뿌듯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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