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 라만차 돈 키호테의 길
서영은 지음 / 비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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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

 

 

어려운 건 질색하는 요즘의 세상 흐름에

고전이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한방 제대로 먹이는 책을 만났다.

허구 속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를 시공간을 초월해 만나고 그들이 떠난 길의 행적을 뒤따르는

세 여자의 비장하고도 무모한 문학 여행기, 이게 사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돈키호테가 쓰인 400여 년 전의 공간과 허구적 인물의 뒤를 캐다니 말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도 전 시대에 쓰인 고전 따라잡기가 된 것이다.

작가 서영은은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돈키호테를 통해 무엇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일까?

 

 

 

소설에서 돈 키호테와 산초가 떠난 길에서 풍차를 거인으로 간주하고

기사도 정신을 다해 돌격하는 장면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돈 키호테는 단지 미치광이인가.

이 책의 저자 서영은이 생각하는 돈키호테를 만나보자.

 

그 미침은 정신병리학적 광기가 아니라 '의지적 열정'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불의를 없애고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가 그로 하여금

기사보다 더 기사도 정신에 투철한 '기사'로 만들었던 거지요.

돈 키호테는 기사인 척하는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까지 이미 기사인 사람이에요.    <P52>

 

요샛말로 하면 상식과의 전쟁을 선포한 셈이지요.

돈 키호테가 첫 번째 싸움을 벌인 대상이 '세상의 상식'이라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상징이에요.

앞에서 보았듯이, 그는 창녀를 천대하는 세상의 상식을 뒤집고 그녀들을 귀부인처럼 대접합니다.

<중략>

자기 마음에 기사로서의 할례를 충분히 치른 셈이지요.    <P90>

 

 

 

작가의 문학 여행기에 동참한 한 여인은 출판사 편집장이고,

또 다른 한 여인은 스페인에서 30년 이상을 거주한 문학박사였다.

서영은을 포함 모두 세명으로 이뤄진 이 기행팀은 돈 키호테적 발상으로,

아니 마치 돈 키호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여정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란 인물을 통해 구현한 기사도 정신을

내 신앙의 실천적 바탕으로 삼고, 그 정신을 내 안에서 불타오르게 하고 싶다.   <P17>

 

그녀들의 길에는 뜻밖의 행운이 많이 따랐다.

돈 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출생의 흔적을 찾고,

여정에 끼워진 장소들에는 '돈 키호테'를 상호로 쓰는 레스토랑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비화를 만나기도 한다.

 

나는 어느새 책으로 몰입되어 세 여자의 꽁무니를 쫓는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이미 이 팀의 일원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본 문학 기행의 묘미가 강한 끌림으로 자리한다.

스페인에 갈 계획이 생긴다면 이 책을 꼭 챙겨가리라 생각해 본다.

이 책을 보는 동안에 스페인은 전 지역이 돈키호테에 열광하는 듯 보였다.

세 여인이 가는 지역마다 돈 키호테와 산초의 동상을 만나고, 세르반테스의 조각도 만나게 된다.

마치 작가 세르반테스보다 돈 키호테가 실존적 인물은 아닐까 의문이 생길 정도라고 했다.

 

작가 서영은은 종교적으로도 안정된 정서를 가진 듯하다.

자신을 동굴에 무모하게 혼자 가두고는 시간을 초월한 초자아를 만나는 신비로움 경험을 용감하게 이뤄낸다.

소설 돈 키호테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굴에서 무려 30분을 혼자 견디는 실험을 한다는 게 상식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서영은은 더 대단한 사람이다.

이 책 전반은 삶을 깨우치는 눈물 어린 과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행 중간 중간 전혀 모르고 살던 깨우침으로 울컥이는 심정을 대면하게 된다.

작가의 많은 느낌들 중 가장 의미롭게 다가온 문장이 있어 소개해 본다.

 

길 위에 있어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동시에 지나온 시간은 등 뒤에서 곧바로 지워진다.

기억이 없다면 시간도 인생도 없다.   <P338>

 

만약, 스페인으로 떠난다면 세르반테스가 그려낸 진실은 이상적인 돈 키호테를 느낀다면,

나는 작가의 마음처럼 멋진 인생의 한 줄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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