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날 나의 육아에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꿀짱아에게 함께 사는 할머니가 없다는 것, 그것이 의 미하는 거대한 빈 구멍을 내가 인식한 날이었다. 아이 들에게는 무턱대고 믿어주고 기특하게 여겨주는 누군 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전에는 그런 존재들이 함 께 살았는데 이제는 함께 살지 않는다. 내 딸에게 꼭 필 요한 어떤 것이 없다면, 내가 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는 꿀짱아의 엄마지만, 절반은 할머니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 P162
지금은 할머니의 그 허술한 ‘장혀‘가 바로 ‘과정을 칭찬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뭘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괴로운 시간들을 견뎌낸 것이 장하다는 소중한 인정이었다. 부모님이 보기엔 겨우 빈둥거리고 신경질 부리면서 하루를 보냈을 뿐이지만 할머니가 보기엔 해 야 할 많은 일들과 뜻대로 되지 않는 나 자신 사이에서 부대끼며 보낸 힘든 시간이었다. 나 자신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울퉁불퉁한 시간을 보낸 뒤에 할머니가 ‘장하 다‘고 하시면 까칠했던 마음의 결이 나도모르게 부드 럽게 가라앉았다. - P164
할머니의 ‘장하다‘는 어른이 되어가는 사춘기 청소년기의 부대낌 이나 입시 같은 특정한 일들을 넘어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달픔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었나 보다. 할머니가 특별 히 눈이 밝아서 나의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낱낱이 목격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긴 인생을 먼저 살아가신 현명한 한 어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통째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니 내 눈앞의 너 또한 힘든 순간이 있 었을 것을 미루어 아셨을 것이고 각자의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을 건너뛰기 위해 발버둥친 너의 보이지 않는 노 력들이 장하다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 P165
좋은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 겠지만 그중 가장 차원 높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편안 함‘이라고 생각한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여 러 가지 두려움을 떨치게 해주는 것. 부담 없는 편안함.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 좋은 것, 훌륭하고 귀한 것 을 해주는 것이 물질적 응원이라면 부담 없는 편안함은 아이가 받은 것들을 가지고 마음껏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면적 지원이다. 친구는 대학원 진 학이라는 부담스러운 과업을 눈앞에 두었을 때 아버지 에게서 "거 뭐 될 필요없다"라는 말씀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용기를 얻었다. 많은 부모가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아이의 성공과 성취를 빌겠지만,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져서 제기량을 마음껀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진짜 좋 은 부모‘들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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