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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니아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9월
평점 :
판타지, SF 그리고 신화
상당수의 SF/판타지 거장들은 신화와 관련된 작품들을 쓰곤 한다. 러브크래프트의<크툴루 신화>같은 창작 신화는 물론이거니와, 닐 게이먼은 <신들의 전쟁>이라는 작품에서 주인공 캐릭터를 신화에서 따오기도 하였다. 신화를 역사소설로 해석한 버나드 콘웰의 <아서왕 연대기>같은 작품도 존재한다.
건국 신화가 없는 미국에서 <스타워즈>나 '슈퍼 히어로물'이 일종의 대체신화로 기능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는 직간접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대변하는, 그리고 반영하는 신화를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 sf 장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으로 그들의 역사 속에 내재되어있는 '제국주의'를 지적하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이 가지지 못한 신화, 그 중에서도 '미지'의 이야기라는 점을 그들이 필요로 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프 캠벨이 지적한 신화의 구조를 <스타워즈>가 그대로 따랐던 것처럼, 실제로 많은 판타지 소설들은 신화의 구조를 따른다. 이쯤 되면 판타지/SF 작가들에게 신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나아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신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주목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특히나 미국의 경우에서처럼, '신화'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왜 신화를 필요로 하는 것인가?) 무엇이 소설에 신화성을 부여하는가? 그리고 신화의 어떤 점이 소설가로 하여금 보강을 하게 만드는 것인가?
소외된 신화에 권력을 부여하기.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아스>에서 로마의 건국자 아이네아스의 부인으로 등장하는 라비니아는 그 비중이 한없이 작기 그지 없다. 많이 봐준다고 해도 거의 이름만 언급되는 수준에 그치는 라비니아는 서사시 속에서 캐릭터성은 물론이거니와 서사도 획득하지 못한다. 라비니아는 왜 서사에서 소외된 인물인가? 아무래도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아이네아스>를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점때문에 라비니아는 그저 이름만 언급되고 마는 캐릭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르귄은 이렇게 소외된 신화에 권력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할 권력을 준다. 그렇게 르귄은 신화를 완결해 나간다. 신화를 쓰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초창기의 신화는 구전되고, 구전되어 언젠가 기록되었을 것이며, 어느 순간 성장하는 것을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르귄은 이에 저항하여 결국은 자신 만의 방식으로 <아이네아스>의 한 구석을 완결해낸다.
신화를 쓰는 사람들.
신화라는 것은 묘한 구석이 있다. 어느 순간 소설(서사시)이었을 <아이네아스>는 어느 순간 신화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의 <신곡>에서 신화성을 부여받는다. 르귄은 <라비니아>에서 고뇌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전면적으로 내세우며, 그 역시 신화의 일부로서 사용한다. 일종의 메타 텍스트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시인과 시의 관계, 소설과 소설의 관계에 대해서도 탐구하는 것이다. 그녀는 독자에게 도대체 어떤 것이 신화이며, 어떤 것이 신화를 토대로 한 소설인지 그 경계를 묻는 듯 하다. 이제는 자신 역시 신화 속에 포함된 인물이라고 웃고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여러가지로 생각해볼만한 의미들이 맣은 책이다. 서사적인 수준에서도 재밌는 작품이며, 아이네아스를 읽기가 버겁다면 이 작품으로 로마의 건국신화를 습득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르귄의 작품 답게 사색도 많은 작품이니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