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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폴리앵에 지다 ㅣ 매그레 시리즈 3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스포일러 있음)
시작이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첫 챕터의 제목부터 <매그레 반장의 범죄>이다. 제목부터 벌써 흥미를 끈다. 역시나 도입부는 실망시키지 않으면서 시작한다.
매그레는 우연찮게 후줄그레한 차림새의 남자가 3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지니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혹시나 국제 범죄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매그레는 그 남자의 뒤를 쫓는다. 남자는 싸구려 가방을 애지중지 하고 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매그레는 그와 똑같은 가방을 구입해서 바꿔치기한다. 가방 속에 들어있는 것은 낡디낡은 양복 뿐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남자는 자살한다. 정황상으로 볼 때 남자가 자살을 한 이유는 바꿔치기 당한 가방 때문이다...
매그레는 범죄를 밝히기 위해 가방을 바꿔치기 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한 남자를 자살에 몰게된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제시되면서 극은 시작된다. 심농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제일 처음에 배치함으로써, 충격과 호기심을 동시에 환기한다.
심농은 매그레가 자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원인에 불과한 것인지 굉장히 모호한 상황을 제시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매그레가 자살자에게 느끼는 감정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훌륭한 상황을 제시한 것 치고는 꽤 아쉬운 부분이다. 이것은 아마도 매그레 시리즈가 지니고 있는 서술 상의 특징(단순한 묘사와 감정 묘사를 최대한 배제한) 때문일 것이다.
어쨌건, 매그레는 루이 죄네라는 자살한 남자의 뒤를 캔다. 명백한 자살을 조사할 것이 무엇이 있나 싶긴 하지만, 이는 매그레가 느끼는 일말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여기서 심농이 제시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 남자는 왜 자살을 했는가?
2. 남자가 헌 양복 때문에 자살 한 것이라면, 헌 양복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도대체 루이 죄네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리고 매그레는 서서히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앞의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건 전개가 굉장히 훌륭하다. 매그레에게 호의를 배풀던 사람은 갑작스럽게 그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안하무인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매그레는 수사를 계속해서 방해받는다. 루이 죄네의 집에서는 불에 탄 지폐들이 발견되기도 한다.
심농은 플롯이 진행되면서 계속해서 특별한 상황들을 제시한다. 플롯의 최소 단위 속에서도 심농은 계속해서 작은 질문을 던진다. 심농의 작품이 훌륭한 이유는 이런 작은 상황들에서 제시된 최소 단위의 질문들 까지도, 하나의 대답이 모두 포괄한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심농의 장기는 그대로 발휘된다.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내막 또한 매력적이다. 심상치 않을 것 같았던 '자살'에서 시작된 수사는 10년 전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면서 끝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운명적인 플롯이 이 작품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매그레의 '범죄'가 결국에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단초였던 것처럼 극은 마무리 된다. 도저히 30년대 추리 소설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심농이 현대에 와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다른 추리 소설가들이 트릭에 관심을 쏟고 있었을 때, 심농은 드라마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것 말이다.
다소 아쉬운 점이 남지만(죄책감에 관련된 플롯), 그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아마도 도입부가 가장 좋은 매그레 시리즈를 꼽는다면 이 작품이 상위권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