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Note 미리 쓰는 엔딩
좋은생각 편집부 지음 / 좋은생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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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끈질기지 못하다. 이따금씩 특정 분야에 집요하긴 한데 내가 원할 때에만 협소한 집착을 발휘한다. 애석하게도 일상에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 자랑은 아니지만 아마 내키는 대로 살아서인 것 같다. 너무 힘들 때 시작했던 감정 일기도 한 사흘 쓰고 상황이 나아지자 바로 때려치웠을 정도였으니, 아주 단순한 데에서부터 인생을 차차 바꿔 나갈 수 있다는 세 줄 일기, 오늘의 계획, 1일 1질문 등등... 나와는 전혀 연줄이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조금 다르게 살아 보기로 했다. 2020년의 시작 말고 중반쯤 와서 다짐한 내용이다. 대표적인 게 사둔 것은 아끼지 말고 쓰기와 패턴 만들기였다. 사실 요즘 참여하고 있는 챌린지 프로그램도 비슷한 줄기의 활동이다.

  아무튼 얼마 전 쓰겠다고 했던 빨강머리 앤 다이어리와 함께 이번에 시작한 <IF Note>는 “미리 쓰는 엔딩”이라는 제목을 부제로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유사한 책들과 가장 큰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만약” 나의 인생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끝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 남겨 줄 수 있는 나의 흔적 같은 의미를 띠는 것도 같다. 그래서 내용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예를 들면 나의 가족 관계도나 가까운 지인 정보, 자산까지.... 사실 자산 관리에 부동산과 자동 이체 정보를 적는 란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노트의 취지를 생각해보면 필수 구성 요소이다.

  가장 아쉬우면서도 좋은 점은 책이 두껍지 않다는 점이다. 정말 필요한 내용만 담겨 있어 쓰는 데에 부담이 없다. 사실 일 년 정도 기간이 길게 정해져 있는 것은 매일 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시작하는 일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맨 첫 장부터 채우는 게 아니라 아무 데나 펼쳐서 적으라는 설명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위에 날짜는 적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중반 이후에는 자산 관리나 유언, 보다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례와 상속 등의 내용이라 매일 하루에 한 장씩 쓰기보다는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꺼내서 한번에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구체적으로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괜스레 우울해지는 것도 같은데, 애써 한번 생각해두면 삶에 더 충실해지고 일단 ‘준비는 되었다’라는 안도감이 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내 노트는 지금 가장 첫머리만 완성되었다. 마지막 장의 질문에 답한 뒤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또 글을 써야겠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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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결정적 리더십의 교과서, 책 읽어드립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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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때는 대학 신입생 시절이다. 두 번째 세미나에서 지정 도서로 정해 준 탓에 허겁지겁 읽었던 기억이 있다. 당연하게도 강의 내용이나 당시의 감상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군주론』은 꽤 단호한 어조로 적혀 있다. 마키아벨리가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각 나라의 예시를 들어 진언하는 것이다. 덕분에 대표적인 지도자의 정치 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외전과 내전 중 어떤 쪽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부터 동맹을 대하는 법 등 장마다의 길이가 짤막하면서도 폭넓다.

  이건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지배층의 시선에서 쓰인 글이다. 스무 장쯤 넘겼을 때 든 생각이다. 그만큼 군주론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자는 몽글몽글한 몽상이 아니라, 왕좌의 게임만큼이나 치열한 정치 세계에서 실제로 적용 가능한 ‘전술’이라는 의미이다. 특히 식민지 국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을 서술한 대목에서는 일본이 실제로 사용했던 내선일체가 떠올라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는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불편하면서도 도덕을 이야기해 그보다 선한 인상을 주고,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해 복잡미묘한 감정을 선사한다.

  이 글을 읽고 똑같이 행동한다면 좋은 군주가 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인간을 향한 근본적 인식이 부정적이다 보니, 책에는 군주에게 잔인함을 권장하는 부분도 여럿 등장한다. 그는 인간이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지” 애정을 끊어 버리는 반면 두려움에는 굴복하고, “아버지의 죽음은 곧 잊어버리지만 빼앗긴 제물에 대해서는 좀처럼 잊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미움을 사지 않도록 하되 잔인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반복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악의 편을 드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도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이야기는 분명 효과적이고 옳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라는 헌법을 달달 익히며 살아 왔던 이십 년 넘는 세월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옳은 이야기가 태반이어도 이제야 읽는 『군주론』은 “충성”을 얻고 “지배”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적용될 시기를 지났다는 인상을 남길 뿐이다. “군주”라는 명칭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쓰이지 않기에 영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읽기 전 기대했던 『군주론』은 시대를 불문하고 동일하게 지도자를 위한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르다. 여전히 요구되는 이런 처세술은 부디 국내가 아닌 국외에 발현되었으면 한다. 처음에는 나 역시 기업 CEO부터 일반인들까지 모두 필요로 할 것 같고 익혀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너무 순진한 소리인 줄은 몰라도 여전히 나는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솔직한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 바탕에는 지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마키아벨리가 이야기하는 식으로 살아간다면 더 이상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것만 같다. 골치 아프고 우울한 세상이 도래하는 것도 금방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책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던 처음과 달리 나는 오히려 소신대로 살아가고 싶어졌다. 『군주론』은 필독서나 실용서가 아니라 영원히 역사서로 남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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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어웨이 앨리스 먼로 컬렉션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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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한 배우에게 빠져들 때에는 늘 확실한 기점이 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남긴 깊은 인상이나 역량이고, 나아가 외모이고, 우연히 읽은 인터뷰에서 엿본 가치관이다. 물론 배역이 잘 어울려 눈여겨 보는 경우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사람 자체에 대한 나 자신의 감정은 누구보다 멋진 배역으로 달구거나, 아주 형편없는 배역으로 식힐 수 없을 정도로 꽤 확고한 편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입문작에는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한 저자나 감독의 작품을 시작할 때에 나는 늘 고민한다. 초기 작품부터 맛볼지, 최신 작품부터 맛볼지에 관한 고민이다. 저자나 감독은 말 그대로 플롯이나 표현 방법 자체가 그 자신의 역량이기에 입문작이 아주 중요하다. 앨리스 먼로 삼부작을 처음 보았을 때도 어떤 책을 가장 먼저 읽으면 좋을지 한참이나 고민했다. 성미가 급한 나는 『런어웨이』를 입문작으로 결정했다. 이번 탐독은 차근차근 밟아 올라오기보다 정점을 먼저 둘러본 뒤 천천히 내려가 보는 쪽이다.

  「런어웨이」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칼라와 클라크, 그리고 실비아이다. 칼라와 클라크는 부부 사이이며 실비아는 칼라에게 남 몰래 호감을 품고 있다. 클라크를 벗어나고 싶다는 칼라의 심정 토로에 실비아가 도피를 돕는다. 「우연」에서는 줄리엣이 기차 안에서 만난 에릭과 사랑에 빠진다. 「머지 않아」에서는 줄리엣이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간다. 부모님의 집에는 일을 돕는 아이린이라는 사람이 있다. 「침묵」에서 줄리엣은 딸 퍼넬로피의 연락을 기다리지만, 연락은 오지 않는다. 「허물」에서는 델핀이라는 여자가 에일린과 해리의 딸 로렌에게 접근한다. 델핀은 로렌에게 자신이 친모라고 말한다.  「반전」의 시작부에 로빈은 갑자기 “그 드레스 내일까지 준비되지 않으면 죽어 버릴 거야”라고 말한다. 이후 극장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날로 돌아간다. 그녀는 가방을 찾으러 돌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나오면서 다닐로라는 남자를 만난다.  「힘」에서는 낸시가 윌프에게 만우절 거짓말을 한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며 장난을 했다가 윌프가 정색하자 머쓱해진 채로 귀가한다. 이후 부제로 나뉜 이야기들은 연작 소설처럼 낸시를 중심으로 하되,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킨다.

  다 읽고 나서 사실상 시간의 역순으로 정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제작이자 이 소설 모음집의 첫 시작인 「런어웨이」에서는 결혼 생활에 염증을 느끼지만, 그 관계를 위해 포기한 것들을 되돌리기에는 이미 먼 길을 온 상태이다. 「우연」에서 「침묵」까지는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어슴푸레 느끼는 단계, 초보 어머니인 줄리엣의 이야기가 연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허물」로 오면서 비로소 어머니나 아내의 입장이 아닌 딸의 입장으로 옮겨 온다.  대부분이 바라는 모습과 사뭇 다른 결혼 생활을 폭로하다가 다시금 이면을 모르던 때로 돌아가고, 사랑을 꿈꾸는 식이다. “앞으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상한 예견과 함께. 특히 표제작에서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장치를 설치해 두고, 조심조심 피해 가는 대신 실비아의 감정을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허물」과 「반전」이 장면장면 영화처럼 머릿속에 쏙쏙 박혀 들어왔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도전적이지 않다. 관습을 벗어나나 싶으면 애써 날갯짓을 하다가 떨어진다. 그녀의 소설 속에서 도전 의식이나 탈출 욕구는 ‘일시적인 욕망’이기에 인물들은 시달리는 삶 한 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탈출구를 애써 외면한다. 도피할 경우 잃게 될 것들을 지키러 그 목구멍으로 자진해 들어간다. 더군다나 작가 본인도 책의 구성처럼 결혼이 상상 같지 않다며 보여 주고서 원점으로 돌아가 사랑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책을 읽으며 그 답습이 갑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실체를 결코 외면하지 않아서일까, 자간마다 연륜이 흥건히 묻어나서일까. 어쩌면 내가 요즘 부드러워져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결혼에 대한 부정적 생각이 이 글을 쓰면서 살짝 돌아서고 ‘그래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랑’을 향한 희망으로 점차 바뀐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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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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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부터 일본 밀실 살인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비슷한 패턴을 반복해 읽다 보면 제아무리 참신한 것조차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내게는 그 공백이 조금 길어서 성인이 되어서는 거의 전혀 읽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동안 나는 잊고 있었던 잔잔한 감정의 물결에 몸을 내맡겼다. 『살인의 쌍곡선』은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추리 소설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라는 카피 문구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코멘트에 호기심이 돌았다.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고시바 가쓰오와 고시바 도시오라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을 받고, 세간에서 악이라고 불릴 만한 계획을 감행한다. 심증만으로는 검거하거나 조사할 수 없는 법의 맹점을 이용한 연쇄 은행 강도이다. 이들의 예상대로 경찰은 계속 의심하지만 손도 쓸 수 없다. 한편 여섯 사람이 관설장의 주인 하야카와에게 초대를 받는다. 와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뒤 후기를 올려 홍보를 도와달라는 뜻이다. 주인공 도베 교코 역시 결혼 자금을 아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던 찰나, 이런 초대장이 오자 기뻐하며 약혼자 모리구치 가쓰로와 함께 관설장을 찾는다. 그러나 첫날부터 야베라는 회사원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죽은 듯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이튿날 정말 시체로 발견된다. 남겨진 단서는 카드 하나뿐이다. “이렇게 첫 번째 복수가 이뤄졌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일본 밀실 살인 소설과는 달랐다. 방이면 방, 건물이면 건물이라는 공간을 정해 두고 등장인물들은 물론 독자조차 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봉쇄해 서서히 조여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게 통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의 쌍곡선』은 호텔이라는 갇힌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강도 사건을 함께 보도해 갑갑함을 줄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한번에 전개하면서도 말끔하고 흥미롭게 표현해낸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히 느껴졌다. 늘어진다거나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 없이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 무능한 경찰과 대중의 흥밋거리를 놓치지 않는 언론, 법의 맹점을 은근히 꼬집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초장부터 도베 교코가 다지 아야코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 두 사람이 대립 관계에 서는 부분이나 “음습한 범죄 수법을 보니 여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라는 기자의 대사는 불편했다. 전개에 필수적이지도 않고, 유머라기에는 재미도 없는 데다가 공감도 가지 않으며 딱히 소설의 풍미를 돋우는 것도 아니라 그냥 작가의 생각을 슬쩍 끼워넣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예전부터 쭉 이런 데엔 감이 무뎠다. 이번에도 집중해 읽었지만 범인뿐만 아니라 전개에서도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랬었지” 하는 향수와 안도감이 느껴졌다. 살인 하나하나마다 기가 막힌 트릭을 숨겨 둔 게 아니라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일란성 쌍둥이’를 이용한 경찰 교란 작전은 아쉬움을 보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아이디어였다. 큰 사건 두 개를 교차하는 쪽을 택했으니 오히려 수법을 일일이 설명했다면 조야한 인상을 남겼을 텐데, 『살인의 쌍곡선』은 시종일관 시원한 소설이었다. 최근에는 더위로 책을 읽기도 싫다는 일종의 반항감이 든다. 이렇게 독서가 지겹고 끈적하게 느껴질 때, 더위와 여름을 통쾌하게 날려 버릴 수 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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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 내세에서 현세로, 궁극의 구원을 향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19
박상진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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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테에서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열아홉 번째 주인공은 단테와 박상진이다. 나에게 단테는 『신곡』이라는 어마어마한 대작의 저자라서, 심적 거리가 굉장한 옛날 사람이다. 말하자면 어렵지만 알아야만 하는 사람.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뜨렸다는 일화가 이름과 작품을 제하고 그에 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정보였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왠지 모를 친근감에 조금 웃었던 것 같다.

  박상진은 단테를 느끼기 위해 직접 떠난다. 시작부터 그는 이 책이 단테의 흔적을 따르는 자기 자신의 기행문과 단테의 평전이 적절히 혼합된 형태라고 소개한다. 이후의 장은 처음의 예고를 충실히 따르며 채워나간다. 평전이라고는 하지만, 세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대신 의문을 제기하는 식이다. 단테가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 정치가로 활동 중 빚은 충돌 때문에 고향에서 추방당하고 망명해야 했던 후기의 삶, 그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시에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사진과 도움이 되는 그림 등 시각적 자료를 첨부해 안내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지옥, 연옥, 천국의 모든 배경이 현실이라는 사실, 게다가 천국보다 지옥이 더 묘사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사실은 기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특히 지옥편을 쓸 때 자신이 군인으로 참전했던 경험과 철옹성 같은 요새를 떠올렸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모국어 외에도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들었다. 더불어 박상진의 문장이 참 좋았다.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낸 일도 대단했지만, 단단하면서도 섬세한 문체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아쉬웠던 부분은 나의 좁은 견문이었다. 단테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이탈리아에 가 본 적도 없어 어느 부분에서도 깊이 공감하거나 비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지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 읽는 듯, 혹은 잔잔한 바람을 맞으며 도슨트를 듣는 듯 잠시 학구열을 식혀 둔 채 오롯이 심취하고 여행할 수 있었던 까닭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오히려 『신곡』을 비롯한 단테의 작품들을 경원하지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섰다는 점이다. 그에 어떤 걸작이라도 결국 작가의 편견이나 가치관을 벗어날 수는 없는 소유물이자 작품이라는 생각도 더해졌다. 여기에서의 경원은 드높은 명성에 지레 겁먹고 그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 신성시하기까지 했던 과거의 태도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한 인물의 삶을 알고 나서 존경하거나 실망하는 극단적인 경우가 예사였을 텐데, 이번에는 그저 조금 베일이 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 뿐이다. 이런 나의 변화에는 단테처럼 그의 작품들도 신비롭기보다는 현실에 가까울 것만 같다는 예감도 일조한 듯하다. 곱씹어 보면 글도 글이지만 군데군데 실려 있는 피렌체의 아름다운 정경에 마음이 탁 트이는 독서였다. 나도 어서 그곳에 가 온몸으로 흥취를 느끼고, 상쾌한 공기를 직접 들이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나에게 아직 미지의 나라인 이탈리아를, 미지의 인물인 단테를 알아가는 여행이 마냥 즐거웠다. 클래식 클라우드가 앞으로 들려 줄 이야기와 내가 놓친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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