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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쌍곡선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순간부터 일본 밀실 살인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비슷한 패턴을 반복해 읽다 보면 제아무리 참신한 것조차 진부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내게는 그 공백이 조금 길어서 성인이 되어서는 거의 전혀 읽지 않았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동안 나는 잊고 있었던 잔잔한 감정의 물결에 몸을 내맡겼다. 『살인의 쌍곡선』은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추리 소설이다. 본격 미스터리의 고전이라는 카피 문구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코멘트에 호기심이 돌았다.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한다. 고시바 가쓰오와 고시바 도시오라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큰 충격을 받고, 세간에서 악이라고 불릴 만한 계획을 감행한다. 심증만으로는 검거하거나 조사할 수 없는 법의 맹점을 이용한 연쇄 은행 강도이다. 이들의 예상대로 경찰은 계속 의심하지만 손도 쓸 수 없다. 한편 여섯 사람이 관설장의 주인 하야카와에게 초대를 받는다. 와서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은 뒤 후기를 올려 홍보를 도와달라는 뜻이다. 주인공 도베 교코 역시 결혼 자금을 아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던 찰나, 이런 초대장이 오자 기뻐하며 약혼자 모리구치 가쓰로와 함께 관설장을 찾는다. 그러나 첫날부터 야베라는 회사원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죽은 듯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이튿날 정말 시체로 발견된다. 남겨진 단서는 카드 하나뿐이다. “이렇게 첫 번째 복수가 이뤄졌다.”
이 소설은 일반적인 일본 밀실 살인 소설과는 달랐다. 방이면 방, 건물이면 건물이라는 공간을 정해 두고 등장인물들은 물론 독자조차 나가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봉쇄해 서서히 조여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게 통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의 쌍곡선』은 호텔이라는 갇힌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바깥에서 일어나는 강도 사건을 함께 보도해 갑갑함을 줄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두 가지 이야기를 한번에 전개하면서도 말끔하고 흥미롭게 표현해낸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히 느껴졌다. 늘어진다거나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는 느낌 없이 균형을 유지해 나간다. 무능한 경찰과 대중의 흥밋거리를 놓치지 않는 언론, 법의 맹점을 은근히 꼬집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초장부터 도베 교코가 다지 아야코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어 두 사람이 대립 관계에 서는 부분이나 “음습한 범죄 수법을 보니 여자가 맞는 것 같습니다”라는 기자의 대사는 불편했다. 전개에 필수적이지도 않고, 유머라기에는 재미도 없는 데다가 공감도 가지 않으며 딱히 소설의 풍미를 돋우는 것도 아니라 그냥 작가의 생각을 슬쩍 끼워넣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예전부터 쭉 이런 데엔 감이 무뎠다. 이번에도 집중해 읽었지만 범인뿐만 아니라 전개에서도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랬었지” 하는 향수와 안도감이 느껴졌다. 살인 하나하나마다 기가 막힌 트릭을 숨겨 둔 게 아니라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일란성 쌍둥이’를 이용한 경찰 교란 작전은 아쉬움을 보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즐거운 아이디어였다. 큰 사건 두 개를 교차하는 쪽을 택했으니 오히려 수법을 일일이 설명했다면 조야한 인상을 남겼을 텐데, 『살인의 쌍곡선』은 시종일관 시원한 소설이었다. 최근에는 더위로 책을 읽기도 싫다는 일종의 반항감이 든다. 이렇게 독서가 지겹고 끈적하게 느껴질 때, 더위와 여름을 통쾌하게 날려 버릴 수 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하고 싶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