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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길어 올리기 - 그 설핏한 기억들을 위하여
이경재 지음 / 샘터사 / 2021년 11월
평점 :
책의 재미 중 하나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간접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연륜의 진한 향이 책에 중간중간 베여있다. 그 향을 맡으며 세월의 흐름이 가득 담긴 주름진 얼굴이 생각나고 풍부한 내용으로 가득 찬 주름진 뇌가 떠오르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나는 지금, 내가 가보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으로 발 한 발자국 건너가 보려 한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
나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에는 지금처럼 교실에서 영상으로 조회하는 경우가 어디 있으랴.
넓디넓은 그 운동장을 가득 메운 초등학생들, 그중에 나란 아이.
허리를 곧추세운 채 뜨거운 태영을 감내하는 것도 힘이 들고 죽을 맛인데 교장 선생님 훈화가 시작되는 순간에는 머리가 띵해지기까지 했었다.
그때는 너무나 어려서, 생각의 길이가 넓어지지 않아서, 공감대가 제로인 상태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커서도 듣기 싫고 관심사에 벗어나는 주제에 관한 건 늘 마음속으로는 얼른 끝나길 고대했던 것 같다.)
이 책을 그때의 철없는 내가 보았다면 어떨까? 온갖 지식이 총망라된 방대한 책 분량에 일단 압도되어 말문이 턱 막혀올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는 다르듯이.
이번에 읽은 책 '시간 길어 올리기'는 기자 출신이자 한화 이글스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경재 작가의 산문집이다. 음악, 미술, 문학, 정치, 시사, 여행지에서의 감흥 등 책은 그가 걸어온 삶을 묵직하게 담고 있다. 지혜를 온전히 머금고 있는 연륜의 향이 진하게 베어져 나온다. 더불어 그가 만나고 정을 나눈 이들과의 일화 또한 재미있다. 그들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돌을 갈아온 자들이라 그런지 배우고 싶은 것도 많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연륜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 내가 꿈꿔웠던 연륜 있는 삶을 담대하게 살아온 자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닮고 싶고 배우고픈 마음이 들게 되었다. 그가 전하는 삶의 언어를 통해서 나는 그렇게 시간의 지혜를 조금씩 체화해나가는지 싶다.
눈으로 찍듯 직접 찍어낸 사진과 이야기와 걸맞은 음악 선곡은 책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 책 하단에 올려진 QR코드를 찍으면 관련 음악을 바로바로 들어볼 수 있다는 점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음악은 담긴 서사를 알고 들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법이지 않던가. '시간 길어 올리기' 덕분에 나는 음악의 또 다른 맛에 취해본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