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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 형과 오로라 - 제10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이병승 지음, 조태겸 그림 / 샘터사 / 2021년 9월
평점 :
'오세암'을 지은 작가로 친숙한 정채봉 아동문학가.
샘터에 연재되었던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로 유년 시절의 나에겐 더욱더 친근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때는 괜스레 그가 전하는 따스한 메시지들이 좋아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2001년 타계한 후에도 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있는 아동문학가 '정채봉' 작가. 그만큼 내가 애정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침체되었던 아동문학을 부흥시키는데 이바지했다고 평가를 듣는 그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정채봉 문학상'의 수상작을 가린다. 올해 열 번째 수상작에 빛나는 '고릴라 형과 오로라'를 살펴보도록 하자.
요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직업으로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고릴라 형과 오로라' 속 이야기에서도 인기 유튜버를 꿈꾸는 아이가 나온다. '나'는 조회수가 올라감에 따라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것에 매력을 느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찾고 있다. 그러한 '나'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은 벨라 미용실의 사장인 고릴라 형이다. 고릴라 형은 솜씨 좋은 가위질 장인으로 이전에 연예인의 머리까지 손질했다가 일에 치이는 삶이 싫어 작은 동네에 가게를 차렸다 한다.
목적이 있으면 바삐 움직여야 하는 법. '나'는 얼렁뚱땅 넘어가려거나 무데뽀 정신으로 밀고 가지 않는다. 미용실이 바쁠 때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기를 한 달째! 드디어 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내고 말았다. 유튜브 영상 소재로도 나쁘지 않다. 요즘은 어린아이들도, 또 남학생들도 멋부리는데 관심이 많으니. 이름하여 '남자 초등학생 머리 손질법', '드라이부터 왁스, 스프레이 사용법까지."
이 솔깃한 썸네일에 혹하는 친구들이 있지 않을까? 읽는 나는 꽤 아이디어가 좋구나 싶었지만 결과는 대실패. 조회수가 17이었던 것이 77로 올라가나 싶었지만 자라나는 새싹을 밟아버리는 악플이라니. 나뿐만이 아니라 고릴라 형도 악플에서 비켜가지 못한다. 솜씨를 저격하는 것도 문제지만 외모 비평까지 더해지니 기운이 쫙 빠지는 것이다.
오로라라는 이상향을 꿈꾸는 고릴라 형은 실은 솜씨 좋은 미용사는 아니었다. 실로 강남 미용실에서 일하긴 했으나 구박데기에 불과했던 것. 뒷동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고 누워 동영상으로 오로라를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 애정 어린 시선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짠한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여기서 포기할 '나'가 아니었던가. '나'는 기운을 잃은 고릴라 형을 북돋워 주며 말한다. 조그마하다고 생각까지 작지 않다.
"잘린 머리카락은 아프지 않아요. 그러니까 마음도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잘려도 안 아픈 걸로 쳐요. 그리고 잘린 머리카락은 또 자라잖아요. 마음도 그러면 돼요."
'나'가 들려준 이 말이 상처 입고 아픈 나의 마음을, 그리고 이 동화를 읽은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나 덧나지 말라고 메디폼을 붙여주는 것만 같다.
'나쁜 기억 삽니다'라는 제목의 동화에서는 미술시간에 만든 귀 조형물을 벽에 붙이자 발생하는 특이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친구에게 괴롭힘당하고 창피한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나쁜 기억을 삽니다'라고 말하는 귀에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고민이 말끔하게 해결되는 내용이다.
사실 어른인 나도 행했던 행동에 후회를 하고, 이러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나'라는 아이 역시 그러했다. 그래서 귀에 대고 나쁜 기억을 털어놓고 나쁜 기억을 말끔히 지워냈다. 그러면 더 이상 아프지도 슬프지도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 기억으로 성장해나가는 힘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때때로 나쁜 기억은 나쁜 기억으로만 멈추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이상한 친구'라는 제목의 동화에서는 말 그대로 이상한 친구가 나온다. 어딘가 남들과는 다른 박학다식한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자신이 좀비라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친구 '운서'. 운서의 짝꿍인 '나'는 처음엔 재미있는 이 친구가 어느 순간 멀어지고 싶은 친구가 됨을 느낀다. 자신의 돈을 일절 쓰지 않고 얻어먹기만 하는 녀석이, 건물주라는 등 허황한 거짓말만 늘어놓는 녀석이 말이다. 그래서 '영원한 친구'가 되자는 운서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둘 사이는 멀어져 갔다. 그렇지만 마지막에는 운서의 아픈 가정사를 다 알게 되고 보듬어가는 화해와 치유의 과정을 그린 동화이다.
이병승 작가가 지은 이 동화책엔 주인공의 이름이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 작품의 주인공 모두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아이들, 곧 나와 너, 우리라는 느낌으로 읽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뜻은 정확하게 정통했다. 이야기를 읽으면 나는 아이들 속에 살아있는 또 다른 동화 속 아이가 되었으니. 따스하고 동화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고릴라 형과 오로라'가 나에게 깊이 다가온 순간이다.
동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이 동화를 통해 어른에게는 잃어버린 동심을 찾는 순간이, 커가는 아이들에게는 지켜나가고 아껴야 할 감춰둔 동심을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그늘마다 선선함이 가득한 가을날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