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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평점 :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동화로 나에게는 친숙한 이금이 작가님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고교 단짝 친구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기.
예순이 되기 전에 떠났던, 지금 같은 시국에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을 이탈리아 한 달 살기.
그녀에게 혜안이 있었던 것일까.
그때의 그녀에게 얼른 떠나라 종용했던 건 그녀의 의지도 있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먹구름(코로나)을 보았던 게 아닐까?
'페르마타'는 '정류장', '잠시 멈춤'이란 뜻이기도 하지만 악보의 늘임표를 부르는 단어이기도 하다. 음표나 쉼표에 늘임표 기호가 있으면 본래 박자보다 두세 배 길게 늘여 연주해야 한다. 페르마타라는 단어에 여행의 본질이 담겨있는 것 같다. 잠시 멈추어 평소엔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것들을 여유 있게 생각하는 것. 실은 평소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p. 143)
페르마타. 잠시 멈춤
요즘은 반강제적으로 일상의 멈춰졌다. 그 시간으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가 가진 것들 중에서 좋은 점을 억지스레 고르자면 이것이 아닐까. 여유로운 시간 안에서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페르마타, 이탈리아'는 40년 지기 단짝 친구와 한 달여간 이탈리아 여행길에 오른 작가 이금이의 여행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와 함께 이탈리아 곳곳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었다.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등 누구나 아는 명소뿐만이 아니라 포지타니, 카타니아 등 잘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어느 지역은, 각각 나름의 생명력을 품은 채 나에게 다가왔다.
여행 중에서 우리는 뭔가를 얻어 가려는 마음이 있다. 별것 아닌 것에도 뭔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픈 그런 마음. 이 책 역시 작가의 그런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비록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일지라도 그랬기에 더 좋았다고 의미를 부여해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친구와 좋을 거라 기대하고 떠난 여행지에서의 새롭게 드러나는 서로에 대한 실망스러운 모습. 그것은 서로의 마음 안에 골이 만들었다. 각자의 가족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의 오랜 친구 사이, 내가 감히 40년간의 세월의 정을 가늠할 수나 있을까 싶지만 더 잘 안다고 믿어왔기에 더한 실망감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이해가 되었다.
당신은 여행지에서 이름난 명소 곳곳을 둘러보는 타입인가?
아니면 여유롭게 그들 안에 스며들기를 원하는 타입인가?
작가는 전자를 택했고, 친구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그것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졌다. 여행 취향이 다른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아무리 함께한 시간이 길더라도 각자의 생활방식의 차이는 존재하는 법이니. 그랬기에 여행에서 서로 보지 못했던 모습이 드러나 곤혹스러웠던 점에 수긍이 되었다. 말을 하면 감정의 골이 깊어지지 않았을 텐데 성향상 그게 쉽지 않을 수 있으니. 나중에 터진 대화의 물꼬는 더욱더 두 사람을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주었다. 이 또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일지도_
이탈리아 여행지에서 작가는 현재에 감사함을 느끼고 과거를 그리워했다. 책을 읽고 더없이 좋았던 점은 작가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연극에 꿈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학창 시절 연극에 품었던 호기심을 주부 연극반에 들어가 풀었다는 점 또한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동양인인 내가 서양에 가면 모든 것이 다 새롭듯이.
한 번도 내세워본 적은 없지만 '배우'의 꿈은 작가의 삶이라는 마라톤에 기꺼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지금껏 함께 달려주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 않는 길'을 품은 채 살아간다.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p. 132)
요즘 나는 멈춰버린 나의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놓고 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이따금씩 나의 이야기를 써서 컴퓨터 안에 간직했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그 글들은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 글들은 성인이라는 나이를 넘어서부터는 묻혔다.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내 뇌는 더 이상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그런데 멈춰버린 나의 이야기들이 가만히 나에게 속삭여왔다. 어서 그 글을 끝을 맺어보라고.
시작은 있고 끝은 엉성했던 나의 글이 언젠가 빛을 볼 수 있을까. '기억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길은 실패한 길이 아니다'라는 이금이 작가의 말에 다시금 전의를 붙태워봐야겠다.(이러다 사그라들지도 모르지만)
방구석 여행지를 꿈꾸는 당신에게 이금이 작가의 여행 에세이 '페르마타, 이탈리아'를 권하고 싶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