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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싶어'
어린시절의 나는 이 노래의 의미를 알고나 불렀을까?
불쑥 커버린 지금도 '님과 함께'라는 노랫말은 잊히지 않고 있다.
우리들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사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생산 능력이 있는 젊은 시절이 흘러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노후에는 '꼭 그러기를', '부디 그럴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숲 속의 자본주의자' 책 속 한 가정이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시골이라는 대자연속에 가족이 숨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놓은 점이,
원하는 바를 나중으로 미뤄두지 않고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점이 그러하다.
숲 내음 가득함으로 우리를 유혹할 것만 같은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 속으로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그들 가족의 시골생활은 마치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영화 미나리 속 한인가족과 닮았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이름의 책을 받아들고 미국 시골생활이라는 키워드만을 두고보니 가장 먼저 들게된 생각이다. 그렇지만 두 가정은 닮은 듯 하지만 자세히들여다보면 다르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에 자연스럽게 물들고자하는 점이 닮았다면, 다른점은 책의 저자는 부를 늘리는 것에는 크게 뜻을 두고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생산능력이 왕성해 배운바를 사회에 환원해야한다는 거에 반기를 들고, 큰 돈을 버는 일체의 생산 능력을 멈추었다. 오로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일만을 하는 셈이다. 정기적인 임금노동을 하지않고 만들수 있을 만큼의 빵을 구워팔고, 자신의 이야기를 내킬때 쓰고 이를 원하는 이에게 이메일 구독서비스로 투자한만큼의 돈을 벌면서 산다.
고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두 자녀를 두고있지만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거나 질책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그녀에게 쏟아지는 비난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본래 사람들은 남의 말을 하는 것을 즐겨한다. 자신의 앞가림도 잘 못해나가는 사람이 남에게 선생 노릇을 하려하는 것을 나 역시도 보았으니.
아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일은 언제나 귀찮은 일이지만, 이 순간의 아이도 나도 다시는 똑같을 수 없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듣는 일을 시작한다. 그러면 아이의 세계 속으로 푹 빠지는 일은 쉬운 일이 된다. (p. 223)
그녀는 아이의 이야기에 늘 듣는 준비가 되어있는 엄마이다. 조잘대는 말소리가 때로는 귀찮을 수 있을 테지만 언제고 내 옆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되진 않을 것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리라. 아이 앞에서 말보다는 귀가 먼저 열리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본다.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미국 워싱턴대 교육심리학 박사학위라는 저자의 이력만을두고보면 그녀의 학식이 아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간 누리지 못했던 자기 자신 그대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다움'을 찾는 여정중이다. 그 과정은 7년째에 접어들었고 그녀는 꽤나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
나 자신의 나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꽤나 공이 드는 작업이다. 섬세하고 주의깊게 들여다봐야만 보인다. 내게 시골은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만한 넉넉한 공간과 시간, 그리고 적은 생활비를 의미했다. (p. 5)
*책을 읽고나서
남편은 직장으로 아이들은 학교로, 제각각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간다.
오로지 홀로남은 이 시간에 '아이들 다 가고 편안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구나'라는 말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때로는 나를 짓누르는 말이 되곤 한다.
주부라는 타이틀 앞에 때로는 내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타인의 가벼운 말을 휘둘러지는 나라는 사람.
그렇지만 이제 나도 '나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방향으로 살고자한다'
주어진 환경안에서 '나다움'을 찾을 수 있는 나와 당신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