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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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무료한 일상이 따분해서 뭔가 신나는 일은 없을까 하고 고민하곤 한다.

그것이 한 번쯤 잔혹 동화로 이어질지라도, 생각의 끝에는 다시금 돌아올 일상임을 알기에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나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생각으로 그쳤던 나보다 더 용감한 한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불안한 사람들'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책 안에서는 '유쾌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우리에게 웃음을 주러 찾아온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도록 하자.

    

'불안한 사람들'은 은행 강도와 인질들 그리고 그들 맞은편에 선 경찰들의 이야기이다.

은행을 털려면 사전에 정보를 파악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은행강도는 어딘가 모르게 어리숙하다. 모든 게 무계획 상황.

 

그의 계획은 소소하다. 배포가 크지 않은 은행강도는 은행에 들어가서는 65백 크로나를 요구한다. 한화로 87만 원 정도인 돈을 요구하는 강도라니, 어리바리한 건지. 애초에 바보 같은 발상이다. 은행강도가 은행을 털게 된 것도, 은행 터는 것이 허사로 돌아가자 은행 옆 오픈 하우스에 들어가게 된 것도 자신이 크게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러하기에 경험 전무한 자가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세를 하고 있다. 어쩌면 바보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현실을 굳건히 살아나야만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었을까? 의도지 않게 들어선 오픈 하우스에서 인질들을 붙잡아놓게 되었는데, 오픈플랜식(칸막이 없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도록 건물의 평면을 설계하는 방식)이라 은행강도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동시에 총구를 겨눌 수 있었다. 초짜 은행강도에게 안성맞춤인 상황이랄까.

 

은행강도가 항복했을 때 모든 인질들이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동시에 풀려났다.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고 은행강도를 체포하기 위해 오픈 하우스로 들어서게 된 경찰. 그런데 어라? 은행강도가 현장에서 사라졌다? 두문불출한 은행강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은행강도의 사연은 딱하기 그지없다.

 

결혼 후 두 자매를 낳고 기르지만 배우자가 자신의 직장 상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음으로 인해 졸지에 가정도 집도 직장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배우자는 변호사를 통해 단독 양육권을 신청할 거라 하고, 집도 직업도 졸지에 사라져버리자 딸들이 사는 아파트와 가까운 곳의 월세 65백 크로나짜리 매물에 들어가살면서 다른 취직자리를 알아보려 했던 것이다.

 

은행 잔고를 탈탈 털어 월세를 내고 한 달을 버텼는데 그 다음 달은? 어찌어찌 찾은 직장은 임시직이라 은행에선 대출도 꽉 막힌 상황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분명 은행강도는 잘못했다. 그럼에도 왜일까 가엾고 측은하다.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감화되고 범인과 동조하게 되는 심리 현상)은 이래서 생겨난 것인가 보다.

 

오픈 하우스에 있던 여덟 명의 인질들. 그들은 은행강도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목격자들은 하나같이 정상인의 범주에 조금씩 벗어나있는 듯하다. 첫 번째 목격자 진술을 위해 서로 온 스무 살인 은행 직원은 지독한 SNS 중독자였고, 다음에 오게 된 목격자로 오픈 하우스에 있던 50대 여성은 은행 간부로 돈이 많지만 심리 상담을 받고 정신적으로는 빈곤한 상태이다. 그 외에는 은퇴한 노년의 부부, 임신한 레즈비언 커플, 딸 대신 아파트를 보러 온 아흔 살의 노인 등.

 

목격자 진술에서 하나같이 자기 할 말만하고 다소 경찰에 공격적인 태도를 갖춘 자들. 경찰관의 입장에서 천불이 날 듯한 자들이다.

 

"최악의 인질이야. 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 (P. 263)

 

은행강도가 그리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 말하는 은행강도 역시 '역대 최악의 은행강도'라 말하고 싶다. 경찰관의 입장에서.

인질을 풀어주는 요구 조건이 돈이 아닌, 불꽃놀이라니.

'불안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 오픈하우스 베란다 너머에는 다리가 보인다. 강물을 굽어보고 있는 다리에는 마음속 불안함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몸을 던져 생을 달리한 자들이 있다. 이를 목격한 자들은 마음에 무거운 돌을 안고 살아간다. 사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딱하다 말하지만 곧 잊고 자신 앞에 놓인 현실 과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간다.

 

개개인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계절의 변화를 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런 이들이 '불안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읽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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