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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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내내 봄답지 않은 강추위가 몰려왔다. 눈발이 날린 곳도 있다고 한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살풍경을 바라보며 밖에 나가지 않기로 마음먹고 책을 손에 들었다. 사실 날씨는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냥 책이 읽고 싶었던 것일지도.

 

주말 내내 소설 '집행관들'을 읽으며 묘한 짜릿함과 쾌감을 느꼈다. 420여 페이지의 장편소설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펼쳐졌다. 한국형 하드보일드 소설 탄생을 예고한 조완선의 '집행관들'에 당신도 주목해보시길.

     

 

 

법은 정의로워야 한다. 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그가 저지른 죄의 대가를 충분히 치르게 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실상 우리나라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는 듯하다. 심심찮게 보도되는 언론에 깊은 탄식을 내뱉어보고 야유를 해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여기 우리들의 감춰진 욕망을 대리 실현해 줄 10여 명의 집행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단단한 조직을 갖췄고, 이 사회에 잔존하는 악을 제거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지녔다. 그들은 권력형 부패 사건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 부패 정치인과 비리 공직자를 공격하는 역사학 교수, 항명 사건으로 옷을 벗은 전직 특수부 검사 출신의 변호사, 국방부 비리 사건을 폭로한 퇴역군인 등으로 구성된 거대한 전문가 집단인 셈이다. 하나같이 부패와 비리에 맞서는 인물들이다.

 

힘이 센 권력자에게 법은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이제는 법이 아닌 집행관들이 나설 차례다. 이대로 법의 테두리 안에 그들이 안착할 수 없도록 숨통을 조여줄 차례이다.

 

그들의 첫 번째 타깃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민족반역자 중에 유일한 생존자, 해방 후 서울시경 보안과장을 지낸 아흔넷의 노창룡이라는 자다.

 

해방 전에서 4.19직후, 유신 초기까지가 노창룡의 주요 활동 시기였다. 그의 친일 행각은 A4용지 열 장에 이르렀다. 친일 경력이 불과 4년인데 비하면 엄청난 분량이다. 특히 고등계 형사 재직 중에는 혹독한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다. (p.32)

 

다큐멘터리 감독인 허동식을 주축에 두고 이뤄진 집행관들은 노창룡이 입국한 날을 손꼽아 기다려오며 그를 처단할 시뮬레이션도 끝난 상태이다.

 

친일파 노창룡의 입국 사유는 자신의 명의로 된 땅을 찾고, 개인적으로는 고국에 묻힐 묘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끝까지 자기밖에 모르는 족속들이다. 집행관들은 어떻게 해야 잘 죽일지를 고심한 끝에 그가 했던 그대로, 일제 고등계 형사들이 자행한 고문 수법으로 그의 숨통을 조였다. 그리고 그의 사체 양쪽 어깻죽지에 의문의 숫자를 새겨놓았다.

 

194809

196011

 

노창룡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부 검사인 우경준이 맡게 되었고, 그는 숫자의 의미를 파헤치고자 한다. 피해자가 사체에 표식을 남기는 것은 가해자가 자신의 뜻을 외부에 전하고자 할 때 자주 쓰이는 방식임을 알고 있던 그였다. 그것이 곧 살인의 명분일 테니.

 

그리고 곧 등짝에 새겨 넣은 숫자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 숫자는 반민족행위처벌법과 공민권제한법이 제정된 시기와 일치하다. 노창룡을 살해한 자들은 법률을 소급 적용해서 살해 명분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한 명 한 명 집행관들에 의해 생과 사를 달리하는 그들을 보며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이 대리만족일 터였다.

 

집행관들은 막무가내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친일파, 부패 정치인, 악덕 기업인...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 될 종자들만을 골랐다. 법망을 빠져나가며 법을 농락한 자들은 단죄하였다.

 

하나같이 악질들만 골라 저세상에 보냈다. 온갖 악행을 저질러도 법은 그들에게 관대했다. 면죄부를 주면서까지 그들을 비교했다. 법이 공정했다면...... 타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죄의 대가를 온전히 받아들였다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p.369)

 

그들은 수사관들의 눈을 피해 온전할 수 있을 것인가. 국민들의 바람을 실은 그들의 법 집행이 착착 진행될 것인가. 궁금함에 책을 덮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한 편의 영화 같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이 소설의 재미 속에 당신도 합류하시길 바라는 바이다. 오랜만에 만족할만한 소설이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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