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그다지 즐겨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행위는 퍽 신선하고 즐거웠다. 잘 알지 못하지만 아는 영화가 나오면 반갑고 모르는 영화가 나오면 새로웠다. 이 책은 영화를 보는 기쁨을, 그리고 그 기쁨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특정 장르보다는 영화 그 자체를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나면서도 영화를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메모하고 살을 붙이며 본 영화를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과정이 담긴 77개의 토막은 영화를 따라보고 싶게 만들고 영화를 보고 메모하는 일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영화 속 인물의 그 표정은 뭐였을까, 그 숨소리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었을까, 이런 사소한 질문을 메모했다가 다시 꺼내 상상해본다면 감정의 폭은 더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확장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메모란 그런 것이다. 단순히 글자를 기록할 뿐인 것 같지만 그런 작은 행위가 모여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 이 책에 나오는 영화를 어딘가에 메모해두었다가 그 영화들을 하나씩 보고 또 메모하고, 다시 또 이 책을 펼쳐보며 김중혁 작가와 생각을 공유하게 될 것 같다.
‘남편이 목욕을 하지 않는다.’ 소설의 첫 문장은 강렬하다. 노래에서 도입부가 중요하듯 소설도 첫 문장이 중요하다. 이 문장은 순식간에 읽는 이를 책속으로 이끌어 목욕하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로 만든다. 생생한 표현력 덕에 장면이 영화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것은 물론, 씻지 않는 남편의 악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이쓰미가 어린 시절 키우던 물고기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부터, 아니 처음부터 이야기의 결말은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그럼에도 뒷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어떻게 이 이야기가 맺어질지 마음 졸이며 읽어나가게 된다. 이쓰미는 씻지 않는 남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바꾸려 하지 않고 남편 겐시가 원하는대로 하게 둔다. 하지만 그가 진정 원했던 게 그를 내버려두는 일이었을까. 이쓰미의 미온적 태도가 둘 사이의 좁은 균열을 더 깊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이쓰미는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을 ’이웃‘이라 칭하지 않으며 주변 사람들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도쿄 사람들을 삭막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본인이 정작 가장 가까이 사는 남편을 방관하고 있었다. 이쓰미가 어린 시절 키우던 물고기 다이후짱을 방관한 것처럼. 이 소설의 원제는 <水たまりで息をする>, 물 웅덩이에서 숨을 쉰다는 뜻이다. 소독약 냄새가 나지 않는 물 웅덩이가 겐시가 진정 숨을 쉴 수 있는 곳이었을지, 소설의 끝부분을 곱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