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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프리카 1
박희정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5년 11월
평점 :
품절
사막을 걸었다. 모래바람이 눈앞에서 일렁이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탈듯이 따끔거렸다. 그 따끔거림이 계속되자 앞으로 한발자국 내딛기도 두려워졌고 그 아픔이 가시밭길을 걷는것과 같았다.마치 누군가가 지구라는 찜통에 나를 넣고 내가 맛있게 익기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그러다 '왜 내가 사막을 걷고 있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 이젠 이 여행의 종착지 까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실해 버렸다. 이 지겨운 여행은 언제쯤 끝이 날것인가...
문득 이대로 그냥 주저앉아 버릴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고 난 정말 그럴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래바닥에 누어있다가 잠이 스르르 들면 웅크린 내몸이 엄마의 자궁속으로 빨려들어가 탯줄을 달고 편히 누워서 생의 아픔도, 그렇다고 죽음의 고통도 아닌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고 싶었다. 그때였다. 내 시야에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야자수나무...심하게 일렁이던 모래바람이 수그러들자 나타난 신기루와 같은 오아시스. 그 오아시스를 보자 이 여행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오아시스의 등장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생각이 났다.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그곳... 호텔 아프리카
만화 대여점에 들어올 때마다 순간적으로 왠지 난 자꾸만 한쪽 구석에 위치한 '호텔 아프리카'란 책을 보게 된다. 약간 기분나쁜 인상을 풍기는 무뚝뚝한 만화 대여점 주인 아저씨의 왠지 '넌 건방져' 하는 듯한 눈길을 피하느라 눈을 구석자리로 돌리다 보면 그것에 '호텔 아프리카'가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왠지 눈에 띄면서도 한번도 뽑아들지는 않았던 책.그러다 그냥 한번 펼쳐 보았었다.독특한 그림체... 첫장부터 약간 서정적이게 시작되는 시와 같은 구절들. 뭔가 있을것 같았으므로 한번에 5권을 모두 빌렸다.지요, 아델라이드, 주인공 엘비스, 그리고 그의 친구들...
성장한 엘비스의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헤프닝들은 그로 하여금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고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어린시절 에피소드들을 생각나게 해 준다.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들여다 보듯, 엘비스는 자신의 어린시절을담담하게 펼쳐보여 준다.이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들 중의 하나가 현재와 과거가 한데 섞여 있는데도 그 흐름이 어색하지 않고 매우 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또 각 인물들마다의 강한 개성이 빚는 갈등만이 불거지기 보다는 잔잔한 물결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들었다.
이책을 읽는 내내 계속해서 나는 나의 삶속 기쁨과 슬픔들을 실로 하여 양탄자를 짜고있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형상화되어가고완성되어 가는 양탄자, 삶이 지치고 힘겨울때 동화책속의 환상의나라로 떠날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양탄자...모두에게 있어서 읽지 않으면 결핍증이 되어버릴것 같은 비타민같은 책... 호텔아프리카.나는 사막을 걷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알고보니 나는 사막과 같은 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무미건조함 혹은 역경... 그런 내삶속에서 하나의 작은 오아시스와 같은존재인 이책...오아시스를 발견했으니 오아시스의 물을 힘껏 들이켜야 겠다.내영혼까지도 적실수 있도록... 오아시스의 물을 충분히 들이킨 후에는 또다시 걸어야 한다. 사막 어딘가에 있을 호텔 아프리카를 찾아서... 삶을 사랑하는 그들을 찾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