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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말 대사전
가켄 편집부 지음, 장혜영 옮김 / 니들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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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본 고양이 책 중 가장 도움이 되고 마음에 드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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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 - 히틀러의 손에서 인류의 걸작을 구해낸 영웅들
로버트 M. 에드셀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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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모뉴먼츠맨들의 활약상을 다룬적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미국은 덕수궁에 북한군들이 모일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포격을 결정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모뉴먼츠맨'들의 활약에 큰 감명을 받았던 해밀턴 중위가 덕수궁 포격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덕수궁은 '파괴와 소실'이라는 최악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얼핏 그런 문화 특수부대같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귀로 들은적이 있었지만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는데 서프라이즈 덕분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한번쯤 제대로된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만성 고질병인 귀찮음증 때문에 마음속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리다가 며칠전에 '모뉴먼츠맨'의 번역서가 우연치않게 서점의 새책 코너에 진열되어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모뉴먼츠맨 (Monuments Men)은 1943년 부터 1951년까지 활동한 소규모 연합군 부대로 교회나 박물관 등 중요한 기념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중에 강탈 당하거나 실종된 예술품의 행방을 찾는 등 세계적 문화재를 수호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책에서는 '기념물 전담반'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MFAA(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section)라고 명칭되는데 13개국에서 모인 350여명의 남녀 요원들이 MFAA의 모뉴먼츠맨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피 비린내가 진동하던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승리와 파괴만이 미덕이었던 전장에서 결국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걸작 미술품들과 건축물들은 거침없이 파괴되거나 함부로 다루어지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품들이 소실되었다. 건축물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조각들은 돌맹이 가루가 되어 버렸으며, 회화 작품들의 훼손 상태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더이상의 파괴를 막아야만 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수 천년 역사의 보물들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서 물려줄수 없다. 그러한 논의에서 연합군측은 MFAA를 신설하고 그들에게 아군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적군들의 문화재까지도 최대한 전장의 파멸의 소용돌이에서 보호하고 수호할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모뉴먼츠맨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며 세계적 유물들을 찾아내고, 탐색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며 활약을 했지만,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적군들과 싸우는 연합군들 중 일부는 그들의 활동을 '인명이 죽어나가는 판국에서 쓸데없는 짓거리'라며 폄하했고 MFAA를 유명무실한 부대로 의도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모뉴먼츠맨들은 멈추지 않고 문화재 수호 활동을 해 나갔다. 그들은 나치의 부질없는 욕망과 싸우고 때로는 군대의 관료주의와 싸웠으며, 때로는 독일에 대한 증오와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의보다 안락함에 안주하고 싶은 자신과 대립했다고 책은 적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인명과 문화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당장 파괴되고 있는 예술품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곁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의 절반은 이미 사라져서 존재 여부의 진위조차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쟁통에 걸작 미술품들은 독일의 지하로 잠적하여 일종의 세탁 과정을 거쳐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 

 

히틀러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럽 최고의 미술품들을 모아 자기만의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책에 실려 있는 히틀러의 사진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가 자살하기 몇주 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가망없는 군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린츠에 건립할 예정이었던 '총통 미술관' 등 대규모 재건축 계획 모형을 바라보면서 종종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정말로 히틀러는 사진 속에서 '총통 미술관'을 꿈꾸듯이 응시하고 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퇴폐미술의 싹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유럽 최고 정수의 미술품들과 위대한 아리아인이 구현한 인류 최상의 예술품들을 자신의 '총통 미술관'에 전시해두고 독일인의 훌륭한 기상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고 싶은 의지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의 군대는 미켈란젤로, 얀 반 에이크, 베르메르 등 거장들의 작품을 약탈하고 압수하였으며 함부로 은닉했다. 그들은 거장들의 최고의 걸작품들을 으리으리한 성에 수만점씩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성이 바로,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독일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는 나치가 프랑스에서 마구 약탈해 온 가장 훌륭한 미술품들의 핵심 보관소였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루트비히'가 지은 이 성에는 약탈한 미술품들이 워낙 많이 보관되어 있어서 MFAA의 지휘아래 그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는 데에만 6주가 걸렸다. 더구나 건물이 매우 가파른데다 엘리베이터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반 작업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전경)

 

 

 

각국의 문화재가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따라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적국으로 이양되는 것은 모뉴먼츠맨들이 활약했던 2차 세계대전의 경우가 전부는 아니다. <모뉴먼츠맨>의 역자로 '식량의 세계사'와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여러권 번역한 박중서씨는 이점을 꼬집는다. 그의 말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몸살을 앓았던 루브르 박물관만 해도 히틀러가 무척 탐냈던 주요 컬렉션 가운데 상당수는 그 보다 한세기쯤 전에 나폴레옹이 비슷한 방식으로 막강한 힘을 앞세워 다른 여러 나라에서 탈취한 문화재였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나치의 문화재 약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괴링의 딸 '에다'는 한때 부친이 소장했던 크라나흐의 그림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훗날 국가에 제기했다. 이 그림은 1938년에 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괴링이 쾰른 시립 미술관에서 압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헤르만 괴링은 그 작품을 정당하게 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나치의 후손이 당당하게 미술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반면, 원 소유주의 후손들은 도리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원 소유주가 권리를 주장하려면 지리한 법정 공방을 피할 수 없고 소송을 거친다고 해도 이해 관계에 따른 산적한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루브르역시 약탈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루브르는 한때 나폴레옹이 약탈한 미술품들로 넘쳐나 '나폴레옹 박물관(Musee Napole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워털루 전쟁 패배 이후 나폴레옹이 약탈한 루브르의 소장품들 중 일부는 원 주인을 찾아 돌아갔지만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루브르에 그대로 소장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역자 박중서씨는 이어서 말한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라든지, 일본에 있는 의궤며 실록이 정식 '반환' 대신, 일종의 편법인 '영구 대여'나 '기증'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이런 어려움의 반영이다. 이에 대해서는 온당치않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지만,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라면 상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뿐이다. 마치 상대방의 약탈을 용인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양보를 이끌어내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것뿐인 듯하다. 불과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나치의 소행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드니, 몇 세기가 지난 사건을 뒤늦게 바로잡기는 더욱 힘들다." 

 

 

한국인이라면 '외규장각 도서'를 5년단위 갱신이 가능한 임대방식으로 '빌려준' 것에대해 분노할것이다. 그러나 박중서씨의 말대로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쪽에서 프랑스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외교 문제'로서 섬세하면서도 끈질긴 자세로 접근해야하며, 심지어 프랑스 알스톰사의 테제베를 들여와 ktx를 만들기로 하고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튼것처럼 경제 논리로 풀어 가거나 프랑스 지성의 양심에 호소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우리로서는 매우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니 어쩌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되 지금 가지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서라도 천년을 내다보는 눈으로 올바른 관리와 보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모뉴먼츠맨>을 읽고 자국의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정수인 예술품들의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수많은 모뉴먼츠맨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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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 - 히틀러의 손에서 인류의 걸작을 구해낸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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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모뉴먼츠맨들의 활약상을 다룬적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미국은 덕수궁에 북한군들이 모일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포격을 결정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모뉴먼츠맨'들의 활약에 큰 감명을 받았던 해밀턴 중위가 덕수궁 포격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덕수궁은 '파괴와 소실'이라는 최악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얼핏 그런 문화 특수부대같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귀로 들은적이 있었지만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는데 서프라이즈 덕분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한번쯤 제대로된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만성 고질병인 귀찮음증 때문에 마음속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리다가 며칠전에 '모뉴먼츠맨'의 번역서가 우연치않게 서점의 새책 코너에 진열되어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모뉴먼츠맨 (Monuments Men)은 1943년 부터 1951년까지 활동한 소규모 연합군 부대로 교회나 박물관 등 중요한 기념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중에 강탈 당하거나 실종된 예술품의 행방을 찾는 등 세계적 문화재를 수호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책에서는 '기념물 전담반'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MFAA(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section)라고 명칭되는데 13개국에서 모인 350여명의 남녀 요원들이 MFAA의 모뉴먼츠맨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피 비린내가 진동하던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승리와 파괴만이 미덕이었던 전장에서 결국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걸작 미술품들과 건축물들은 거침없이 파괴되거나 함부로 다루어지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품들이 소실되었다. 건축물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조각들은 돌맹이 가루가 되어 버렸으며, 회화 작품들의 훼손 상태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더이상의 파괴를 막아야만 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수 천년 역사의 보물들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서 물려줄수 없다. 그러한 논의에서 연합군측은 MFAA를 신설하고 그들에게 아군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적군들의 문화재까지도 최대한 전장의 파멸의 소용돌이에서 보호하고 수호할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모뉴먼츠맨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며 세계적 유물들을 찾아내고, 탐색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며 활약을 했지만,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적군들과 싸우는 연합군들 중 일부는 그들의 활동을 '인명이 죽어나가는 판국에서 쓸데없는 짓거리'라며 폄하했고 MFAA를 유명무실한 부대로 의도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모뉴먼츠맨들은 멈추지 않고 문화재 수호 활동을 해 나갔다. 그들은 나치의 부질없는 욕망과 싸우고 때로는 군대의 관료주의와 싸웠으며, 때로는 독일에 대한 증오와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의보다 안락함에 안주하고 싶은 자신과 대립했다고 책은 적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인명과 문화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당장 파괴되고 있는 예술품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곁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의 절반은 이미 사라져서 존재 여부의 진위조차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쟁통에 걸작 미술품들은 독일의 지하로 잠적하여 일종의 세탁 과정을 거쳐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 

 

히틀러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럽 최고의 미술품들을 모아 자기만의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책에 실려 있는 히틀러의 사진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가 자살하기 몇주 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가망없는 군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린츠에 건립할 예정이었던 '총통 미술관' 등 대규모 재건축 계획 모형을 바라보면서 종종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정말로 히틀러는 사진 속에서 '총통 미술관'을 꿈꾸듯이 응시하고 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퇴폐미술의 싹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유럽 최고 정수의 미술품들과 위대한 아리아인이 구현한 인류 최상의 예술품들을 자신의 '총통 미술관'에 전시해두고 독일인의 훌륭한 기상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고 싶은 의지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의 군대는 미켈란젤로, 얀 반 에이크, 베르메르 등 거장들의 작품을 약탈하고 압수하였으며 함부로 은닉했다. 그들은 거장들의 최고의 걸작품들을 으리으리한 성에 수만점씩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성이 바로,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독일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는 나치가 프랑스에서 마구 약탈해 온 가장 훌륭한 미술품들의 핵심 보관소였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루트비히'가 지은 이 성에는 약탈한 미술품들이 워낙 많이 보관되어 있어서 MFAA의 지휘아래 그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는 데에만 6주가 걸렸다. 더구나 건물이 매우 가파른데다 엘리베이터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반 작업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전경)

 

 

 

각국의 문화재가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따라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적국으로 이양되는 것은 모뉴먼츠맨들이 활약했던 2차 세계대전의 경우가 전부는 아니다. <모뉴먼츠맨>의 역자로 '식량의 세계사'와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여러권 번역한 박중서씨는 이점을 꼬집는다. 그의 말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몸살을 앓았던 루브르 박물관만 해도 히틀러가 무척 탐냈던 주요 컬렉션 가운데 상당수는 그 보다 한세기쯤 전에 나폴레옹이 비슷한 방식으로 막강한 힘을 앞세워 다른 여러 나라에서 탈취한 문화재였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나치의 문화재 약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괴링의 딸 '에다'는 한때 부친이 소장했던 크라나흐의 그림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훗날 국가에 제기했다. 이 그림은 1938년에 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괴링이 쾰른 시립 미술관에서 압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헤르만 괴링은 그 작품을 정당하게 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나치의 후손이 당당하게 미술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반면, 원 소유주의 후손들은 도리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원 소유주가 권리를 주장하려면 지리한 법정 공방을 피할 수 없고 소송을 거친다고 해도 이해 관계에 따른 산적한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루브르역시 약탈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루브르는 한때 나폴레옹이 약탈한 미술품들로 넘쳐나 '나폴레옹 박물관(Musee Napole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워털루 전쟁 패배 이후 나폴레옹이 약탈한 루브르의 소장품들 중 일부는 원 주인을 찾아 돌아갔지만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루브르에 그대로 소장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역자 박중서씨는 이어서 말한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라든지, 일본에 있는 의궤며 실록이 정식 '반환' 대신, 일종의 편법인 '영구 대여'나 '기증'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이런 어려움의 반영이다. 이에 대해서는 온당치않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지만,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라면 상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뿐이다. 마치 상대방의 약탈을 용인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양보를 이끌어내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것뿐인 듯하다. 불과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나치의 소행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드니, 몇 세기가 지난 사건을 뒤늦게 바로잡기는 더욱 힘들다." 

 

 

한국인이라면 '외규장각 도서'를 5년단위 갱신이 가능한 임대방식으로 '빌려준' 것에대해 분노할것이다. 그러나 박중서씨의 말대로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쪽에서 프랑스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외교 문제'로서 섬세하면서도 끈질긴 자세로 접근해야하며, 심지어 프랑스 알스톰사의 테제베를 들여와 ktx를 만들기로 하고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튼것처럼 경제 논리로 풀어 가거나 프랑스 지성의 양심에 호소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우리로서는 매우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니 어쩌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되 지금 가지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서라도 천년을 내다보는 눈으로 올바른 관리와 보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모뉴먼츠맨>을 읽고 자국의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정수인 예술품들의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수많은 모뉴먼츠맨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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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먼츠 맨 - 히틀러의 손에서 인류의 걸작을 구해낸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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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때 미국은 덕수궁에 북한군들이 모일거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포격을 결정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평소 '모뉴먼츠맨'들의 활약에 큰 감명을 받았던 해밀턴 중위가 덕수궁 포격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결국 덕수궁은 '파괴와 소실'이라는 최악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전에는 얼핏 그런 문화 특수부대같은 존재가 있었다고 한귀로 들은적이 있었지만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는데 서프라이즈 덕분에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한번쯤 제대로된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만성 고질병인 귀찮음증 때문에 마음속에서 계속 뒷전으로 밀리다가 며칠전에 '모뉴먼츠맨'의 번역서가 우연치않게 서점의 새책 코너에 진열되어 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구입했다. 

 

 

모뉴먼츠맨 (Monuments Men)은 1943년 부터 1951년까지 활동한 소규모 연합군 부대로 교회나 박물관 등 중요한 기념물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쟁중에 강탈 당하거나 실종된 예술품의 행방을 찾는 등 세계적 문화재를 수호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책에서는 '기념물 전담반'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MFAA(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section)라고 명칭되는데 13개국에서 모인 350여명의 남녀 요원들이 MFAA의 모뉴먼츠맨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피 비린내가 진동하던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승리와 파괴만이 미덕이었던 전장에서 결국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걸작 미술품들과 건축물들은 거침없이 파괴되거나 함부로 다루어지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예술품들이 소실되었다. 건축물들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고, 조각들은 돌맹이 가루가 되어 버렸으며, 회화 작품들의 훼손 상태는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누군가는 더이상의 파괴를 막아야만 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수 천년 역사의 보물들을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어서 물려줄수 없다. 그러한 논의에서 연합군측은 MFAA를 신설하고 그들에게 아군은 물론이고 필요하다면 적군들의 문화재까지도 최대한 전장의 파멸의 소용돌이에서 보호하고 수호할수 있도록 권한을 주었다. 모뉴먼츠맨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장을 누비며 세계적 유물들을 찾아내고, 탐색하고,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며 활약을 했지만, 역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적군들과 싸우는 연합군들 중 일부는 그들의 활동을 '인명이 죽어나가는 판국에서 쓸데없는 짓거리'라며 폄하했고 MFAA를 유명무실한 부대로 의도적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모뉴먼츠맨들은 멈추지 않고 문화재 수호 활동을 해 나갔다. 그들은 나치의 부질없는 욕망과 싸우고 때로는 군대의 관료주의와 싸웠으며, 때로는 독일에 대한 증오와 인간에 대한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의보다 안락함에 안주하고 싶은 자신과 대립했다고 책은 적고 있다. 만약 그들이 인명과 문화재 사이에서 갈등하며 당장 파괴되고 있는 예술품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우리곁에 존재하는 문화재들의 절반은 이미 사라져서 존재 여부의 진위조차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전쟁통에 걸작 미술품들은 독일의 지하로 잠적하여 일종의 세탁 과정을 거쳐 히틀러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리라. 

 

히틀러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유럽 최고의 미술품들을 모아 자기만의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책에 실려 있는 히틀러의 사진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가 자살하기 몇주 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가망없는 군사적 상황에서 비롯된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자신의 고향 린츠에 건립할 예정이었던 '총통 미술관' 등 대규모 재건축 계획 모형을 바라보면서 종종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한다. 정말로 히틀러는 사진 속에서 '총통 미술관'을 꿈꾸듯이 응시하고 있다. 그의 머리속에서는 퇴폐미술의 싹을 모조리 잘라버리고 유럽 최고 정수의 미술품들과 위대한 아리아인이 구현한 인류 최상의 예술품들을 자신의 '총통 미술관'에 전시해두고 독일인의 훌륭한 기상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고 싶은 의지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의 군대는 미켈란젤로, 얀 반 에이크, 베르메르 등 거장들의 작품을 약탈하고 압수하였으며 함부로 은닉했다. 그들은 거장들의 최고의 걸작품들을 으리으리한 성에 수만점씩 보관하였다고 한다.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성이 바로, 디즈니랜드의 모델이 된 독일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이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에는 나치가 프랑스에서 마구 약탈해 온 가장 훌륭한 미술품들의 핵심 보관소였다. 책에 따르면, 19세기 바이에른의 '미치광이 루트비히'가 지은 이 성에는 약탈한 미술품들이 워낙 많이 보관되어 있어서 MFAA의 지휘아래 그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는 데에만 6주가 걸렸다. 더구나 건물이 매우 가파른데다 엘리베이터도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운반 작업은 수없이 많은 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전경)

 

 

 

각국의 문화재가 정치적 논리와 힘의 논리에 따라 약탈당하고 파괴되고 적국으로 이양되는 것은 모뉴먼츠맨들이 활약했던 2차 세계대전의 경우가 전부는 아니다. <모뉴먼츠맨>의 역자로 '식량의 세계사'와 알랭 드 보통의 작품을 여러권 번역한 박중서씨는 이점을 꼬집는다. 그의 말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몸살을 앓았던 루브르 박물관만 해도 히틀러가 무척 탐냈던 주요 컬렉션 가운데 상당수는 그 보다 한세기쯤 전에 나폴레옹이 비슷한 방식으로 막강한 힘을 앞세워 다른 여러 나라에서 탈취한 문화재였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나치의 문화재 약탈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괴링의 딸 '에다'는 한때 부친이 소장했던 크라나흐의 그림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훗날 국가에 제기했다. 이 그림은 1938년에 딸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괴링이 쾰른 시립 미술관에서 압수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헤르만 괴링은 그 작품을 정당하게 구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했다.

나치의 후손이 당당하게 미술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반면, 원 소유주의 후손들은 도리어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맞는 말이다. 원 소유주가 권리를 주장하려면 지리한 법정 공방을 피할 수 없고 소송을 거친다고 해도 이해 관계에 따른 산적한 문제들을 일일이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루브르역시 약탈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다. 루브르는 한때 나폴레옹이 약탈한 미술품들로 넘쳐나 '나폴레옹 박물관(Musee Napoleon)'으로 불리기도 했다. 워털루 전쟁 패배 이후 나폴레옹이 약탈한 루브르의 소장품들 중 일부는 원 주인을 찾아 돌아갔지만 아직도 많은 작품들이 루브르에 그대로 소장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역자 박중서씨는 이어서 말한다.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 도서라든지, 일본에 있는 의궤며 실록이 정식 '반환' 대신, 일종의 편법인 '영구 대여'나 '기증' 방식으로 돌아오게 된 것도 이런 어려움의 반영이다. 이에 대해서는 온당치않다는 여론이 대부분이지만, 약탈 문화재의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라면 상대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 뿐이다. 마치 상대방의 약탈을 용인하는 듯 보일 수도 있지만, 양보를 이끌어내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것뿐인 듯하다. 불과 반세기 밖에 지나지 않은 나치의 소행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드니, 몇 세기가 지난 사건을 뒤늦게 바로잡기는 더욱 힘들다." 

 

 

한국인이라면 '외규장각 도서'를 5년단위 갱신이 가능한 임대방식으로 '빌려준' 것에대해 분노할것이다. 그러나 박중서씨의 말대로 반환을 강제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쪽에서 프랑스를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외교 문제'로서 섬세하면서도 끈질긴 자세로 접근해야하며, 심지어 프랑스 알스톰사의 테제베를 들여와 ktx를 만들기로 하고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대화의 물꼬를 튼것처럼 경제 논리로 풀어 가거나 프랑스 지성의 양심에 호소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우리로서는 매우 억울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니 어쩌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되 지금 가지고 있는 유물들에 대해서라도 천년을 내다보는 눈으로 올바른 관리와 보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모뉴먼츠맨>을 읽고 자국의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인류의 정수인 예술품들의 보호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수많은 모뉴먼츠맨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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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2 Disc) - 아웃케이스 없음
박찬옥 감독, 서우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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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를 보는 동안 몇번이나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했다. 도무지 영화가 끝날것 같지가 않았다. 머리는 천근만근 무겁고 한숨만 계속 내쉬었다. 저 안개때문이다. 마침내 영화의 엔딩이 다가오자 나는 파주의 안개를 손으로 휘휘 저어 없애버리고 은모를 중식과 대면시킨 후 은모가 중식의 뺨을 후려갈기는 것을 보고 싶어져 몸이 근질거렸다. 중식이 은모의 뺨을 후려갈기는 거라도 좋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해소되지 않는 불덩어리를 안고 찬 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고 사정없이 상대의 뺨을 후려쳐서 이 영화를 끝내주길 바랬다. 그러나 결국 영화는 또다시 은모와 중식, 제자리에서 서글픈 맴을 도는 사람들, 한발짝 다가가면 두발짝 뒷걸음치는 그들,의 관성의 법칙에 따라 파주로부터 도망치는 은모와 또다시 혼자 남겨짐을 감당해야하는 중식으로 도돌이표 처럼 되돌아왔다.

 

 

파주는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그런데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파주'는 사실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파주는 실제하는 도시라기 보다는 공간과 시간의 우연한 교차점에서 태어난, 위태롭게 존재하는 또다른 세계처럼 보인다. 그 세계에서는 21세기에도 공중전화가 요긴하게 사용되고, 젊은이는 허름한 슈퍼 한 구석에 놓여진 식탁에서 술을 시켜 마시며, 아가씨들은 '호박 나이트'로 놀러 간다. 여고생은 트럭에서 브래지어를 고르고, 신혼 부부의 방에는 미등이 아닌 새빨간색의 전등불이 켜진다. 시간이 의도적으로 퇴행한 곳이 파주의 세계다. 그러나 과거만이 그곳 세계의 전부는 아니다. 용역을 빙자한 공권력에 맞선 '재개발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장면들과 그것이 이루어지는 영화의 주요 건물은 오히려 현재의 공간감을 불러일으킨다.   

파주의 세계는 20년도 더 오래 묵어 이미 사라져버린 잔상 같기도 하고 지금 현재를 비추는 거울 같기도 하다.

 

 

중식은 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다니며 운동하다가 경찰에게 쫓기게 되어 고향인 파주로 내려온다. 은모는 언니와 둘이서 살며 중식의 집에서 운영하는 교회에 딸린 조그만 공부방을 다니고, 중식은 공부방 선생님이 되어 은모와 아이들을 가르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모의 언니와 중식은 결혼한다. 그 신혼집에 은모도 함께 산다. 언니와 중식 사이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끼던 은모는 서울로 가출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가출하던날, 은모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가 은모의 언니를 죽인다. 아무것도 모르고 가출했던 은모는 얼마후 돌아왔지만 중식은 은모의 실수를 함구하며 언니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다른 말을 지어낸다. 은모와 중식은 새 집으로 이사하여 둘이서 함께 산다. 어느날, 한 때 중식과 사랑을 나눴던 여인이 중식의 집에 찾아와 머무르고 은모는 파주를 떠나버린다.

몇년 후, 어른이 된 은모가 파주로 되돌아 온다. 은모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철거촌 주민들이 한데 모여 투쟁하고 있는 건물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있는 중식과 마주친다. 또다시 도망치려고 하는 은모에게 중식이 그녀 언니의 사망 보험금 일억원의 수혜자가 은모로 되어있음을 알려준다. 은모는 강렬한 모종의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아내고자 한다. 동시에 그녀는 중식을 경계하면서도 자꾸만 그에게 빠져든다.

 

 

중식은 예수처럼 숭고한 인물이다가도 욕정을 이용한다. 우선 여인들과의 갈등이 고조되면 중식은 그녀들과 잔다(혹은 자고자 한다). 첫번째로는 선배의 여자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욕정이 동해 함께 침실로 들어가고(중식과 여자가 침실에 있는 동안 유모차를 타고 부엌을 돌아다니던 여자의 아기는 끓는 물에 심각한 화상을 입는다), 결혼 후에는 등에 있는 화상자국 때문에 중식의 화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은모의 언니를 거부하다가 그녀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결심했다는 듯이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에서 처음으로 은모가 그녀의 속내를 조금 내보이자 중식은 말을 하다 말고 그녀를 덮치려고 한다. 무언가 다른 해결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그는 육체로 돌아가는것 같다. 그게 중식의 방식일까?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만인의 죄를 짊어지고 파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행동하려고 한다. 투쟁에 참가한 모든 철거민들을 대신하여 자신 혼자 구속되겠다고 선언한다.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저질러 놓고 철거민들에게 와서 죄를 사함 받고자 한다. 은모의 언니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녀와 결혼해 놓고, 그녀가 죽어버리자 은모에게 보험금이 지급되도록 함으로서 죄책감을 견디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하나님은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마리의 양이 더 소중하다고 하셨어."        

 

 

 

 

 

은모는 죄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의 무의식적인 의지가 언니를 죽였다. 그녀는 또한 자신을 길러주고 보살펴준 중식을 배신하고 그의 통장을 훔쳐서 서울로 상경한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중식을 세 번이나 배신한다. 처음에는 그녀의 언니를 죽게만든 후 처참한 현장만을 남기고 사라지고, 두번째는 중식의 선배의 여자가 중식을 찾아오자 예고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3년후에 나타나서는 감옥에 중식을 남겨두고 파주를 떠난다. 그 때마다 중식은 너무나도 소중했던 존재가 어느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삶을 버텨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두 번이나 그녀에게 물었을 것이다. "왜 그랬니?"

 

 

은모의 감추어진 욕망은 중식의 것처럼 갑작스럽고 절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미묘하고 은밀하게 구현된다. 첫 장면에서 은모는 택시를 합승하고 파주의 밤거리를 지나는데 택시 기사는 앞좌석의 은모와 뒷자석의 중년 남자(이경영)를 빗대어 야한 농담을 던진다. 이경영과 은모는 영화에서 총 세 번 만나는데 그 때마다 이경영은 새까만 수트를 차려입고 말 한마디 하는 법이 없다. 그는 그저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압도하는 느낌을 주며, 마치 '성(性)과 '어둠'을 동시에 구현하는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경영과 함께 파주에 들어선 은모는 다시 이경영과 함께 파주를 떠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모가 오토바이를 타고 파주를 벗어날때, 그도 파주를 떠나 어디론가 간다. 그는 자신이 타고 있던 까만 세단의 창문을 내려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낸다. 이경영은 은모의 감춰둔 욕망의 실체 인지도 모른다. 어떤 절대자로서의 권위를 체화한듯한 그는 영화 <파주>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은모와 중식은 서로를 밀어내지도, 당기지도 못한다. 은모는 중식을 사랑하지만 그를 경계하고, 중식은 은모에게 알 듯 모를듯한 가냘픈 감정의 신호를 보내면서도 그것이 사랑이 아닌척 한다. 둘은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평행선을 걷기 시작한다. 은모에겐 중식밖에 없고, 중식에겐 은모밖에 없다. 그것을 관객이 다 아는데 둘은 끝내 자신이 디디고 선 길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영화는 말한다. 은모는 도망치고 중식은 떠나가는 은모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보면서.

 

 

 

 

 

파주의 하늘은 날마다 어둡고 파주의 대기는 빗발이 아주 가늘어진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안개에 잠식당한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은모와 중식의 심장에도 뿌연 안개가 차있다. 그들은 반투명으로 빛난다. 그래서 그들은 미덥지가 못하고 지금은 존재했다가 다음순간 홀연히 사라질 것만 같다.  

 

카메라는 놀랄만큼 냉정하다가도 슬픔이 닥쳐오면 인물과 함께 흔들린다. 묵묵하고 집요하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할 말을 뭉텅 잘라먹고 다른 장면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3년전, 7년전으로 반복되는 플래시백은 파주라는 소우주의 시간을 혼돈속에 빠뜨리고 인물들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곳에서 떠나가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한다.

 

<파주>라는 영화는 너무나 아름답고 애처로운데, 보는 사람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파주>는 혼잣말같다. 혼잣말 인데다가 소리마저 아주 작아서 영화를 보다가 답답증에 걸렸다. 물론 <파주>가 지나치게 친절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정말이다. 폐쇄적이라 더욱 값져 보이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너무나 적은 실마리들을 준다. 그리고는, 나는 원래 조심스럽고 신중해서 줄 것이 이것 밖에 없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한다. 관객들은 모자이크를 하다가 색종이가 너무 부족해서 여백만 잔뜩 만든다.

꼭 인물이 파토스를 토해내고 (앞서 말한 것처럼 뺨을 때린다던지) 속엣것을 다 드러내며 드라마틱해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켜보는 관객조차 숨을 틔울 데가 한군데도 없다는건 아쉬운 일이다. 완벽하게 밀봉된 세계... <파주>의 세계는 어쩐지 그런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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