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시간 - 제2차 세계대전 패망 후 10년, 망각의 독일인과 부도덕의 나날들
하랄트 얘너 지음, 박종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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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후 혼란기의 독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치 하의 엄숙주의와 위계주의가 무너진 후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Homo homini lupus라는 말처럼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이다. 하지만 인간도 늑대도 결국에는 군집을 이루는 동물이다. 이 책은 그렇듯 서로 으르렁거리는 늑대들이 다시 군집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민함과 교활함에도 품위는 있었다. 이 반 무법자의 삶에는 오늘날 많은 정직한 사람의 무쇠같은 양심보다 더 도덕적인 도둑의 명예가 있었다.-쿠르트 쿠젠베르크'

여기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훔치면서도 자신들의 것을 더 힘든 사람과 나눈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부족경제 속에서 배급표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사람들은 약탈하고 그러면서도 어려운 사람을 돕는 모습들을 보인다. 지독한 개인주의 속에서 드러나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나치적 엄숙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댄스 열풍과 애욕이 달아오르는 모습들도 그시절 사람들의 발언을 통해 보여준다.

전쟁을 겪은 후 무기력해진 남편과 아내의 갈등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약탈과 암시장 거래를 분업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의 끈끈함을 주도하여 가족애는 다시 살아난다.

사람들은 나치 부역자들을 처벌하고 동쪽에서 온 '전입자'라 불리는 피난민들에게 나치의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며 차별하면서 제3제국과 그들을 분리한다.

이 책은 오래된 수용소 생활로 인해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들어오는 수감자나 독일이 패망한 뒤에도 그 수용소에 남아 비참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과 동유럽사람들의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제3제국과 독일인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여실히 보여주며 자신들이 지금 힘드니 이미 제3제국시절의 죗값을 받고 있다고 하는 주장에 경종을 울리는 듯 하다.

세계사에는 별로 묘사되지 않은 제3제국 멸망 후 동,서독이 생기기 전까지 교과서나 그동안에 봤던 책들에서는 나오지 않던 이야기들이 묘사된다. 그동안은 서독의 경제성장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교과서에 나왔을 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의 모습을 통해 충분히 서독의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 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그시절 독일의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사는 모습을 통해 나름대로 죗값을 치뤘고 유럽의 모든 문제는 나치 부역자들과 '전입자'들이 지은 것으로 밀어버리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독일인들 스스로가 자신들도 나치의 피해자였다는 이론을 통해 '새출발'을 정당화했다.

제3제국 멸망 후 혼란기와 현대 독일의 태동기 독일인들의 생각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마치 르포기자가 그 시대에 찾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서술방식으로 읽는 내내 전후 독일의 여러 곳을 작가와 함께 돌아다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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