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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로쟈와의 인터뷰

북매거진 <텍스트>로부터 이메일 인터뷰 요청을 받고서 답한 초안의 내용을 옮겨놓는다. 분량상 책에는 얼마간 걸러진 다음에 게재될 것이다. (-)가 질문이고 (=)가 그에 대한 답변이다.

-‘로쟈’라는 이름에 관해서 직접 말해달라. 그 이름은 자신을 얼마만큼 반영하고 있는지도 더불어...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어서 감사하다. 어떤 용도가 될는지는 의문이지만 이 또한 자기 존재감의 과시이면서 자기 존재의 '확장'일 테니까. 물론 이건 모두 '로쟈'가 열심히 끄적거려준 덕분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밝혔는데, '로쟈'는 <죄와 벌>의 주인공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이다(즉, 로지온의 애칭이다). 교양있는 분들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대개 연상하고서 '여자' 이름이 아닌가로 판단하는데, 로쟈는 '혁명가'가 아니라 '살인자'의 이름이다(혹 '박노자'의 닉네임이 아닌가란 의견도 예전엔 있었다.^^).

인터넷에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게 지난 99년부터인데, 초기엔 '이가두' '이가휘' 같은 중국풍의 닉네임을 한동안 쓰기도 했다. 그러다 '로쟈'로 정착된 건 기억에 <죄와 벌>을 다시 읽을 필요가 생기면서부터였다. 보르헤스가 언젠가 '보르헤스와 나'란 글을 쓴 적이 있는데, '나와 로쟈'도 비슷하다. 많이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다. 그는 나의 페르소나(가면)이면서 대변인이고 때론 주인이면서 동시에 하인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장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의 '책읽기 주체'라고 해야 맞을 듯하다.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bibliological subject' 정도라고 해두자. '나는 책을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란 명제로부터 탄생하는 어떤 주체.

-당신의 알라딘 활동(?)이나 비평고원 활동(?)은 이른바 ‘업계(책을 읽고 쓰길 좋아하는 사람들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에서는 꽤 유명한 편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당신의 독서편력에 혀를 내두른다. 당신의 그런 현재를 있게 한 책읽기의 시작점이 궁금하다.

=내가 글을 쓰는 공간은 그 딱 두 군데인데, 해놓은 일에 비해서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오역에 관한 지적들을 자주 하면서 출판 동네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해서, '내성적인' 성격과는 좀 다르게 많이 나서는/나대는 인물이란 인상도 주는 듯하다(나는 책 얘기가 나오지 않는 대부분의 자리에서 '조용한' 편이다!).

'비평고원' 같은 카페는 내가 선택한 것이지만(나는 초창기 멤버인데,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보다도 더 열심히 '활동'했다), 알라딘의 서재 같은 경우는 어느날 뚝 떨어진 것이다. 알라딘은 책값 좀 벌어보려고 마이 리뷰를 몇 개 쓰다가 (지금은 없어졌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해서 나름대로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고 리뷰를 많이 쓴 건 아니고 아마도 유명세의 8할은 '페이퍼' 때문인 듯하다. 책에 대한 잡담들.  

'독서편력'이라고 하면 좀 부끄럽다. 생각만큼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건 독서의 성격과도 좀 관계가 있는데, 문학 전공자라서 자연스레 갖게 된 태도이기도 하지만, 나는 '자세히 읽기'가 필요한 책이 아니면 손에 잘 들게 되지 않는다(더불어 책을 빨리 읽는 편도 아니다). 그럼에도 많이 읽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아는 체'를 많이 해서인 듯한데(보수만 두둑이 준다면 앉은 자리에서 하루 종일 책 이름들을 적어나갈 수 있다), 사실 책들을 둘러보고 찾아보고 하는 일들을 즐기는 편이긴 하다(주변에선 내 전공이 '서지학'이라고 말하곤 한다).

한데, 그건 '독서편력'이 아니라 '도서편력'이라고 해야 맞겠다. 어쩌면 '편력'도 정확하지는 않다. <어린왕자>에 보면 지리학자가 사는 별이 나오는데, 그는 여행자들이 보고 온 내용을 책에 기록하기만 한다. 즉, 그가 하는 건 편력이 아니라 기록이다. 나는 책들의 성좌, 문학과 사상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 취미가 있다.      

책읽기의 시작점? 어머니 말씀으론 내 당사주에 그렇게 나와 있다고 한다. 백발 도사가 책을 읽는 모습이 나의 당사주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여하튼 8살 때쯤 동네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책꽂이에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이 좍 꽂혀 있는 걸 보고 경이감을 느낀 적이 있다(우리 집에는 낱권으로도 책이 별로 없을 때였다). 어쩌자고 세상엔 도대체가 아무것도 없지 않고 책이란 게 있는 것일까?! 그러한 책의 존재 자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경이롭다(여성들 또한 경이롭지만, 그들은 책만큼 친절하지 않다!).  

-당신의 글쓰기는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인터넷’이 글쓰기와 관련하여 갖는 어떤 의미가 있나? 지면을 허락받는 게 아니라, 지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인가?

=사이버 공간이란 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원래 독서일기 같은 걸 PC에다 쳐넣곤 했으니까. 다만, 공개된다는 게 다를 뿐인데, 사실 그게 ‘특별한’ 의미를 갖긴 한다. 좀더 친절하게 좀더 풀어써야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유로움과는 별개로(그건 별로 의식해보지 못했다) 오프라인에서라면 가능하지 않은 글쓰기라는 걸 얼마간 의식하고는 있다. 그건 자유로움이면서 동시에 어떤 막연한 슬픔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곁다리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에 나는 애정을 갖고 있는데, 가끔씩 들어오는 청탁을 받고 쓰는 게 아닌, 온라인에 직접 쓰는 글들의 대부분은 ‘곁다리 텍스트’들이다. 번듯하지도 않아서 내세우기에는 멋쩍은. 그래서 ‘책’으로 묶이지 않을 텍스트들. 그런 텍스트들을 모아놓을 수 있다는 점이 인터넷 공간의 특장이고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외국문학, 특히 러시아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당신의 학과 진학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치더라도(아니라면, 그 이유도 물론 궁금하거니와), 그것을 당신의 업으로 삼은 것은 엄연히 당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문학을 한다는 것, 러시아 문학을 한다는 것이 당신을 위태롭거나 공허하게 한 적은 없는가(여기서의 위태로움은 경제적인 위태로움에 관한 것은 아니다).

=러시아문학을 전공으로 고른 것은 운명이다.^^ 나는 예정조화설 같은 걸 믿기도 하고(‘예정파국설’이어도 무방하다). 애초에는 그냥 ‘문학’을 전공한다는 생각이었고, 러시아문학에 큰 작가들이 많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경제로운 위태로움’을 논외로 하면, 문학이나 러시아문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낀 적은 거의 없다. 동료들끼리는 상투적인 푸념들을 늘어놓지만 그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주변 사람들의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성채는 인간들이 써놓은 최우량의 텍스트들로 구성된다. 이 텍스트들을 읽고 음미하는 일을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고답적인 어투의 육법전서 따위를 읽는 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오만의 대가는 현실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한편으로, 질문은 ‘외국문학도’로서의 한계 같은 걸 느낀 적은 없는가, 라고도 읽히는데, 전공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내가 목표로 하는 건 ‘러시아문학에 대한 이해’라기보다는 ‘러시아문학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 혹은 ‘러시아문학에 대한 나의 이해’이다. 충분히 행복하고 보람된 일이다. 그저 인생이 짧다는 게 한스러울 뿐(이미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을 다 읽기 전에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   

 

-당신은 이전에 <텍스트>에 출판번역의 오류에 관해서 글을 쓴 적도 있다. 번역 문제에 관하여 글을 쓸 때, 당신은 더욱 집요하고 철저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비단 당신의 전공인 ‘노어->한국어’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외국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특별히 이런 작업에 대해서 더욱 날카로워진 것인가?

=나는 한국어를 사랑하지만, 한국인이 한글로 쓴 책만 읽고서 무얼 좀 알게 되고 또 똑똑해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유감스럽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본다. 때문에 필요한 것이 좋은 번역이다. 특히나 고전들의 번역(‘우리시대의 고전’들을 포함해서). 기본적으로 좀더 많은 책들이 좀더 정확하게 번역되어야 한다. 그게 총론이다. 번역상의 오류 등에 대한 지적은 각론에 해당한다. 읽을 만한 책을 읽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거기엔 겹쳐 있다. 더구나 내 돈 주고 산 책 아닌가?

그러한 작업과 관련하여 외국문학 전공자라는 정체성을 크게 의식한 적은 없다. 사실, 내가 문제삼았던 책들은 대부분 문학서들이 아니라 철학서나 이론서들이었다. 나는 그 책들이 교양서라면 일반 대학생들이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적어도 한국어로 된 책 아닌가?).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

한 지방대학에서 문화기호학 같은 과목의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시키지 않았는데도 어려운 이론서들을 읽다가 나가떨어지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나쁜 듯하다면서. 그런데, 그들이 읽은 책들 가운데도 주어 술어도 못 맞추는 오역서들이 적지 않았다. 이런 게 ‘학문’이고 ‘관행’이라면 어처구니없을 뿐더러 비참한 일이다.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책들과 함께 우리가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당신은 교육 잘 받은 세대로서 풍요로움과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직업을 유전 받지 못한 세대로서의 곤궁함과 난처함 또한 당신의 몫이다. 당신의 풍요로움과 곤궁함에 관해 듣고 싶다.

=교육 잘 받은 ‘세대’라는 건 무슨 뜻인가?(어느 세대와 비교해야 하는 것인가? 아버지 세대?) 교육 ‘잘 받은’은 대학원졸을 의미하는 건가? 그런데 백수인? 나의 ‘실상’을 까발려놓으라는 얘기 같다.^^ 나의 풍요로움은 물론 책이다. 책밖에 없기도 하다. 가진 재산이라고는(지방 도시의 아파트 한 채 값 정도는 책값으로 들어갔으니까). 그러니까 나의 곤궁함은 정확히 그 풍요로움이 낳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곤궁은 확산력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곤궁에 시달린다(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시달린다!). 이런 문제를 자세히 늘어놓는다는 건 궁상맞은 일이다.^^  

-사람들은 늘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서 말한다. 어느 때도 인문학이 위기에 놓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인문학의 위기’란 인문학적 역사가 된 듯싶다. 이것이 비록 상투적인 얘기가 되어버렸다고 한들, 당신 나름대로의 대답을 갖고 있을 텐데 (그것이 비록 상투적이라고 하더라도) 들려달라.

 

 

 

 

=사안은 좀 다르지만 문학이고 인문학이고 늘 위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회고적으로라도 ‘그때가 좋았지!’ 할 만한 시절은 있는 법이니까. 더불어, 나는 (인)문학 자체의 위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느낌을 갖고 있지 않다. 사회 속에서의 위상이 저하되고 있다든가 필요가 절하되고 있다는 식의 평가는 가능하겠지만 (인)문학 혼자 억울할 일은 아닐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 인문학자의 위기, 내지는 인문학 후속 세대의 위기이다. 물론 이 위기의 빌미는 태생적인데, 그것은 (인)문학이 기생적이라는 데 있는 듯싶다. 자기 스스로 밥벌이하는 게 아니라는 것. 보다 실감나게 말하자면, (인)문학 ‘공부’가 기생적이다. 이 공부는 있는 집 거덜내고 없는 집 주저앉게 한다. 한마디로 멜랑콜리한 공부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굳이 있다면 생태학적이고 진화론적인 것이다. 학문 후속 세대를 배려하고 격려하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가 있을 법하다. 그들은 각자의 풍토에 맞는 인문학의 부피와 깊이를 갖게 될 것이다.  

-인문학적 공간(혹은 장) 안에서 자신을 바라봤을 때, 현재의 당신의 자리는 어떠하며, 미래에는 어떨 것 같은가?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내게 주어진 자리가 있고 찾아가야 할 자리가 있다. 즉, 해야 할 몫이 있고 나잇값이 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 해야 할일은 많다. 물론 일차적인 관심은 그것들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리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이다. 인문학도로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의 지분을 넓히면서 인문학이 더 많은 책임을 떠안도록 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란 뜻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인문학의 책임은 우리가 ‘무늬만 사람’인 이들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나 할 것 없이 기본적으로 많이 읽어야 하며,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은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쓸 때, 시와 시인을 인용하곤 한다. 그리고 어느 글에서인가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날카로운 태도를 취한 바 있다. 시(인)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시를 읽지 않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었나?^^ 20대 초반에 많은 시들을 읽었고 몇 권 분량의 시도 썼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말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고 사랑이다. 시라는 건 그러한 관심/사랑의 최적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프랑스의 시인 르네 샤르는 시를 ‘영혼의 끼니’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러한 끼니로 ‘비만한’ 영혼들을 좋아한다. 한편으론 ‘찌라시’ 수준의 강파른 언어를 혐오하고. 물론 시인들은 그런 ‘끼니’가 될 만한 시들을 쓸 책임과 의무가 있다. 저급한 시들로 식중독이나 걸리게 하면 안된다.   

-당신에게 있어서, 혹은 당신의 글쓰기에 지식이란 어떤 쓸모를 갖는가? 당신은 주로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편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보내온 ‘편지’들을 돌이켜보면, 시적인 감수성으로 씌어진 글을 쓰고 싶어하는 욕망도 엿보인다. 현재 당신의 글쓰기는 당신을 얼마만큼 드러내고 있는가.

=<텍스트>는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글들이 원래 체질에 잘 맞는 건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도 주정적인 면이 강하다. 한데, 그러한 면이 걸러지지 않은 채로 드러나는 걸 혐오하는 편이다. ‘시적인 감수성’이 ‘너절한 감상’을 의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시는 그냥 언어만이 아니다. 시는 삶이고 삶의 파토스이다. 나는 니진스키의 일기를 시로 읽는다. “나는 울고 싶은데 신은 내게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아내는 울고 또 운다. 나 역시 운다...”라는 걸 읽으며 나는 울고 싶지만, 대신에 쓴다. 이러한 울음이 감상으로 함부로 절하되는 걸 혐오하고 경계하기 때문에 이론적이고 논리적으로 쓴다.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가?   

-지금 당신은 진정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의외이다. 보통은 “당신이 진정 쓰고 싶은 글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게 예의 아닌가?^^ 아무래도 쓰고 싶은 것보다는 써야겠다는 걸 더 많이 쓰게 된다. 만약에 직업이 ‘공부’가 아니라 전업 작가라면 한두 달에 한권씩 책을 낼 만큼 쓸 생각도 있다. 어쩌면 그게 더 ‘자아실현’에는 도움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문제는 내가 쾌락적이면서 또한 너무 금욕적이기도 하다는 데 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만 한다. 나는 진정 쓰고 싶은 걸 내내 아주 조금씩만 쓰게 될 듯하다...

06.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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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퍼온글] 대한민국, 이마트에서 길을 잃다


대한민국, 이마트에서 길을 잃다

이마트 해고노동자이면서도 카트를 끌고 매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최옥화씨… 인구 15만명당 1개의 대형 할인점 시대, 지역 커뮤니티와 사회적 연대를 파괴

▣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최옥화(42)씨는 노동자다. 그는 또 소비자다.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최씨는 이마트에서 노동하고, 이마트에서 소비한다. 노동자 최씨는 매일 이마트 용인시 수지점 계산대 앞에 하루 7시간씩 서서 일하고, 소비자 최씨는 주말마다 중학교 2학년짜리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이마트 진열대를 돌아다닌다.

노조 결성하게 만든 ‘하얀 장갑 사건’

2004년 12월21일 오전 이마트 수지점에서는 신세계 이마트 노조 창립식이 열렸다. 40대 주부 노동자들은 노조 깃발을 들었다. 그 중심에는 분회장인 최씨가 있었다. 그는 동료 캐셔(계산원) 노동자 23명을 이끌고 민주노총 경기일반노조 수지 이마트 분회를 조직했다.


평범한 주부 최옥화씨가 이마트 노동자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4남매 학원비만 각각 한 달에 35만원씩이에요. 학원비라도 벌려고 나갔지요.”

그가 보여준 2003년 8월 첫 월급 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80만원(시간당 3850원)이 좀 넘었다. 하루 7시간 일하는 계약직 파트타임 노동자로 일한 대가다. 최씨는 재빨리 캐셔 일에 적응해갔다. ‘어서 오세요’ ‘봉투 필요하십니까’ ‘상품 다 올리셨습니까’ ‘얼마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로 이어지는 6대 용어를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안면 근육도 키웠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스피드 채점도 좋은 성적으로 통과했다.

“근무시간 중에 슈퍼바이저(SV)가 갑자기 빈 카운터로 불러요. 그 다음 초시계를 들고 속도 측정을 하지요. 20개의 물건을 갖다놓고 얼마나 빨리 바코드 센싱을 하는지 시험을 보는 겁니다.”

손이 빨라야 한다. 성적은 A·B·C등급으로 나눠 매겨지고, 각각 3만·2만·1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한다. 20대의 젊은 슈퍼바이저가 갑자기 불러 치르는 시험은 40대 아주머니에게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래도 “007 작전처럼 손님으로 위장해 계산대에 들어와 검사하는 것”보다 낫다.

그의 계산은 정확한 편이다. 그의 손에 하루 1500만원이 오가지만, 과부족되는 날보다 ‘빵내는’ 날이 훨씬 많다. 계산기에 찍힌 금액과 입금액이 다른 과부족 금액이 5천원 이상이면 사유서를 써야 한다. 1만원 이상이면 점장 결재를 받아야 한다. 캐셔들의 과부족 통계는 게시판에 붙여 공개된다.

최씨가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하얀 장갑 사건’이었다. 캐셔 노동자는 장갑을 껴서는 안 되고 맨손으로만 일해야 한다. 장갑을 끼면 소비자가 보기에 좋지 않고 때가 타 더러워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씨의 손은 상품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태그를 떼느라 갈라지고, 잔돈을 내주느라 돈독이 올랐다. 회사 쪽은 장갑을 끼고 근무하는 최씨를 나무랐다. 이 문제를 가지고 최씨가 민주노총을 찾아갔고, 결국 노조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의 한 달 동안 일하지 못하고 점장과 서울에서 내려온 본사 간부들과 면담만 했어요. 간혹 일할 때는 가장 힘든 소량 계산대에만 보냈고요.”

2004년 12월21일 노조 창립 뒤, 무노조 경영을 굳건히 지켜온 ‘범삼성가’의 대응은 집요하고 공격적이었다. 노조원 23명 가운데 19명이 떨어져나갔고, 1명은 해고됐고, 3명이 남았다. 노조원과 갈등을 빚던 이마트 수지점장은 ‘대기발령’을 받았다. 인사위원회는 최씨 등 3명에게 세 달 정직을 통보했다. 이후 회사 복귀 명령과 근무, 다시 해고와 복직 투쟁이 이어졌다. 이마트 수지점은 지난해 7월5일 이들을 복직시켰다. 그리고 놀랍게도 복직 닷새 만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장을 보러 가도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녀

이마트 최초의 노조 설립 사건은 2000년 미국 월마트 노조 사건과 닮아 있다. 그때 월마트는 잭슨빌 점포 정육부 노동자 10명이 노조를 설립하자, 아예 부서를 해체하고 노조원들을 타 근무지로 전보 발령했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노동자의 희생을 대가로 한 소비자 지상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좀더 싼 가격과 티끌조차 없는 제왕적 편의를 위해서 비정규직은 ‘무결점 서비스’ 노동을 한다.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화내면 안 된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불려가 이유를 막론하고 잔소리를 듣거나 사유서를 써야 한다.


△ 최옥화씨는 이마트의 노동자이자 소비자이다. 그는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았다”고 말한다.

6월7일 해고노동자 최씨는 기자와 함께 롯데마트 수지점에 쇼핑을 하러 갔다. 그는 “지난해 롯데마트가 생겨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전까지는 정직을 당했던 직장인 이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때마다 장을 보는 최씨 뒤로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들이 따라다녔다. “이마트에서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마트를 다녔다.

최씨는 신도시에 사는 전형적인 ‘마트형 인간’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형 할인점에 가서 15만원어치 장을 봐온다. 여느 신도시의 주부처럼 식품에서부터 옷, 생활용품까지 모두 할인점에서 해결한다. 할인점에 갈 때는 자가용을 이용한다. 롯데마트는 집에서 2.5km 떨어져 있다. 한 번 갈 때마다 0.5ℓ의 휘발유를 소비한다. 그가 사는 아파트 앞 2층짜리 상가는 부동산 가게로 가득 차 있다. 근처엔 재래시장은 물론 변변한 슈퍼조차 없다. 할인점이 지구환경에도 안 좋고 과잉 소비를 유도하는 걸 알지만, 일상의 쳇바퀴를 바지런히 굴려야 하는 그로선 할인점 외의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롯데마트에 들어서자 ‘매일매일 최저가’라는 광고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대형 할인점의 최저가 신기원은 노동비용을 통제한 데 힘입었다. 롯데쇼핑(롯데마트·백화점)에 고용돼 일하는 노동자는 1만6246명. 신세계는 1만1782명(이마트·백화점)이고, 홈플러스는 1만800명이다. 매장에 입점한 업체가 고용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수는 더욱 많아진다. 대형 할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70~80%가 비정규직이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몬이 3~5월 대형 할인점 일자리 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각 업체에서 제시한 한 달 임금은 대부분 60만~100만원 수준으로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 240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최씨는 롯데마트 2층에 전시된 분홍색 꽃무늬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다. “4만5천원”이라는 말에 넥타이를 놓고 몇 번 뒤돌아보더니 1층으로 내려갔다. 최씨는 “보이지 않으면 안 사도 되는 건데…” 하면서 물건을 쉴 새 없이 집어들었다. 진라면 5입, 삼양라면 5입, CJ 물만두, 핫도그, 흙대파… 15분 만에 23개 품목으로 쇼핑카트가 메워졌다. 롯데카드로 10만1294원을 결제하니 505포인트가 적립됐다. 집에 오자마자 중학교 2학년인 막내아들은 비닐봉투 속에 묻혀 있는 요구르트를 꺼내 먹었다.

그는 지난 5·31 지방선거 때 민주노동당 용인시의원 후보로 나갔다. ‘이마트 아줌마’가 큼지막하게 박힌 선거 홍보물에는 “아파트 건설로 재미를 본 업자들이 난개발로 만들어놓은 수지를 바꾸겠다”는 공약이 쓰여 있다. 최씨는 “시의원에 당선됐다면, 대형 할인점 규제 조례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마트 아줌마를 지지해준 표는 1882표. 6.2%의 지지율이었다. 여태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가 없는 곳에서 혼자 선거운동을 벌인 것치곤 의미 있는 성과였다.

이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때

“묶음 단위로 구매해 남은 양은 쓰레기로 발생합니다. 일시 다량 구매로 그만큼 경제적 지출이 많습니다. 할인점으로 가는 길은 교통 혼잡, 대기오염, 에너지 낭비를 발생시킵니다.”


△ 경기 시회물류센터에서 상품 적재를 기다리는 차량들. 전국에서 구입된 상품은 물류센터에 모였다가 다시 전국으로 흩어진다.

친환경소비자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가 1990년대 후반에 펴낸 캠페인 구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단체는 할인점 출입을 줄이자는 운동을 폈다. 그러나 운동은 지속되지 못했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며 할인점으로 향하는 소비자들을 설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젠 한국을 점령한 대형 할인점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할 단계”라고 주장했다.

대형 할인점이 이 땅에 처음 들어온 지 13년, 경북 경산에는 6월15일 317번째 마트가 문을 열었다. 어느새 한국은 이마트의 나라가 됐다. 이마트 체제가 확산시킨 소비자 지상주의의 화살은 언젠가 소비자 자신을 겨냥할지도 모른다. 윤리적 소비는 과연 달성 불가능한 습관일까. 대형마트 해고노동자이자 대형마트 소비자인 최옥화씨는 그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트를 다닌다.


“신세계가 2억1천만원 준다고 했다”

금품 제공 폭로한 이마트 노조간부, 삼성가의 전통인가

대형 할인점에 노조는 적이다. 노조가 결성되면 최저 판매가를 지탱해주는 저임금을 잡아둘 수 없고, 노동쟁의로 매장 이미지가 타격받는다고 생각한다. 할인점 운영의 전형을 보여준 월마트가 1962년 설립 뒤 40년 이상 노조 설립을 막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옥화 경기일반노조 신세계 이마트 분회장은 6월7일 인터뷰에서 “신세계 쪽이 지난해 1월 노조를 탈퇴하고 사표를 쓰는 대가로 2억1천만원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해 1월11일 삼성전자 직원 홍두하(43)씨가 폭로한 이래 두 번째 나온 범삼성가의 ‘금품 제공’ 주장이다.

당시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삼성전자 수원공장 세탁기 개발실에서 근무하던 홍씨에게 노조 탈퇴와 사직을 조건으로 2억5천만원을 건넨 지급 확인서와 홍씨의 통장 사본을 공개했다. 홍씨는 이 자리에서 “2004년 9월 삼성전자의 한 차장이 노조를 탈퇴하면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최옥화씨 등 3명이 금품 제안을 받은 것도 이즈음이다. 그는 “밤 9시쯤 수지점 남자 탈의실에서 신세계 본사의 한 과장이 내려와 ‘월급이라 생각하고 1~10월까지 1천만원씩 1억원을 주고, 이와 함께 2억원도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신세계 과장은 “일단 부산비치호텔로 가자” “좋은 일자리를 알아봐줄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고 최씨는 증언했다. 이 제안을 듣고 최씨는 황당해하며 “그럼 50억원을 주라. 어려운 사람이라도 도와주게”라고 맞받아쳤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열린 인사위원회에서 최씨가 되레 금품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와 항의했다고 최씨는 말했다.

얼마 뒤 삼성전자 홍두하씨 폭로사건이 언론에 터졌다. 신세계 쪽에서는 더 이상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린 최씨는 추석 즈음 신세계 과장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고 털어놨다. “돈을 받고 나가겠다고 했어요. 다른 할인점에서도 취직이 안 될 테고…. 내가 사람들을 끌고 여기까지 왔으니 총대를 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다행히 그는 다음날 바로 전화를 걸어 이 말을 취소했다. 민주노총에서 희생자구제기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취재진은 신세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홍보실을 통해 이야기하라”며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다. 신세계 홍보실 관계자는 “최씨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일개 과장이 그런 제안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현재 최씨 등 3명은 신세계를 상대로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최씨 등에 대한 계약 해지는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신세계 관계자는 “이미 정직 3달을 받아 취업 규칙상 해직 사유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현재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린필드 캠페인을 아는가

25년 동안 경제적·환경적 이유로 대형마트와 싸워온 시민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그를 “월마트 제1의 적”이라고 일컬었다. 알 노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그린필드에서 월마트를 막아낸 전설적 인물로 통한다. 대형 할인점에 대항하는 지역사회 운동에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 그와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어떻게 월마트 반대운동에 뛰어들게 됐나.

=올해 14년째다. 내 고향인 매사추세츠주의 그린필드에 월마트가 지점을 내려 했던 1993년이다. 월마트는 공장용지를 상업용지로 바꿔 건설 공사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월마트가 창출한 일자리만큼 고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결국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주민 투표가 이뤄졌다. 주민들은 용도 변경에 반대하는 쪽을 선택했고, 월마트는 물러났다. 그린필드 캠페인은 세계적인 이야기가 됐다. 나는 그 캠페인을 주도한 사람이다.

미국에서 월마트 반대운동의 역사는 얼마나 됐나.

=지난 25년 동안 시민들은 대형마트에 싸워왔다. 경제적·환경적 이유가 있었다. 대형 할인점은 소도시와 마을의 고유한 지역색을 사라지게 했다. 더욱이 경제적인 혁신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단지 수십만 에이커의 땅을 비생산적인 땅으로 바꿔놨을 뿐이다. 월마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움직임도 있다. 월마트 노동자들은 대부분 학생이거나 노인들이어서 조직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물밑에서 월마트 노동자들을 ‘월마트노동자협회’로 조직화하는 움직임이 있다. 월마트는 노조 조직을 위한 어떤 활동도 금지하고, 적발되면 바로 해고한다. 캐나다에서는 노조 조직화를 허락하느니 점포를 폐쇄하기까지 한다.

월마트 반대운동의 성공 가능성은.

=그동안 300곳에서 할인점을 저지시켰다. 월마트는 최근 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철수했다. 독일에서 점포를 줄이고 있다. 이것은 월마트가 모든 곳에서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월마트와치(http://walmartwatch.com)에 가면 월마트와 싸우고 있는 ‘배틀 마트’들이 소개돼 있다. ‘월마트 배틀 플랜(투쟁 계획)’을 보면 월마트와 싸우는 우리의 전략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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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퍼온글] 노마트족, 가난해 보실래요?


노마트족, 가난해 보실래요?

‘마트형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삶의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 …동네 슈퍼 활용하거나 협동조합에 가입해 과잉소비 대신 공동체적 삶 누려

▣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6월2일 서울 용산구 녹색소비자연대의 상담실. 초여름 날씨 속에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주부 상담원들이 전국에서 걸려온 소비자 피해 상담 전화를 받고 있었다. “혹시 대형 할인점 안 가는 사람 없어요?” 물었더니 주위가 잠잠해졌다. 대신 주말이면 온 가족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대형마트를 가지 않은 김미란씨.그는 대형마트를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니까 아빠와 함께 가요. 아빠가 쇼핑카트를 끌고, 쇼핑 도중에 푸드코트에서 밥도 먹고….” 대형마트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사로 통했던 쇼핑에 남성을 끌어들여 좋다는 것 같았다. 한 대형 할인점의 임원은 신문 기고에서 “대형마트의 출현이 가족 간의 화목을 증진시켰다”고 주장한 일도 있으니.

여지없이 깨진 ‘쇼핑의 로망’

나도 그런 ‘쇼핑의 로망’을 꿈꿨다. 쇼핑카트를 앞세우고 단란히 걸어가는 가족의 모습. 감격스럽게도 지난해 결혼에 성공해 쇼핑의 로망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제적 현실은 로망을 산산이 깨뜨렸다. 한번 마트에 갈 때마다 10만~15만원은 기본이었던 것이다. 일주일치 식품을 쇼핑카트에 가득 채우고 자동차용품이나 가구 코너를 기웃거린 게 화근이었다. 그러곤 석 달 전 마트 출입을 끊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노마트족’이라고 해도 될까. 생각보다 ‘노마트족’을 찾긴 어렵지 않았다. 대형 할인점 중심의 과잉소비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분자’에서부터 결심은 했으나 순간순간 기회를 엿보는 ‘회색분자’까지 할인점을 지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부천에서 만난 김미란(37)씨 가족은 ‘노마트족’의 혁명분자들처럼 보였다. 김씨가 말하는 ‘마트의 횡포’란 이런 것이었다.

“큰아이 입학 전에 마트에서 스케치북 10권을 묶어 팔았어요. 3천~4천원쯤 됐나? 싸다 싶어서 냉큼 담았지요. 그런데 10권이 필요하겠어요? 지금 아이가 3학년인데, 아직도 다 못 썼을걸요.”

노마트족으로 전향한 김씨는 현재 부천 두레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다. 김씨는 매주 금요일에 다음주 먹고 쓸 물건을 주문한다. 친환경 비누와 같은 생활용품에서 야채·과일 등 식품까지 망라한다. 주문한 물건은 화요일 오전에 배달된다.

김씨의 식구 4명이 이레를 날 물건들이 6월13일 오전 배달됐다. 마른 멸치, 애호박, 오이 2개, 곶감, 새송이버섯, 완숙 토마토, 산양유, 찌개용 두부… 6만6726원이 영수증에 찍혔다. 일주일에 보통 5만원을 쓰는데, 이번에는 곶감 때문에 1만6천원이 초과됐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할인점에 가지 않는 대신 생산지를 찾아간다. 지난해 봄에는 모내기가 끝난 용인 원삼농협 경작지에 찾아가 오리를 논에 풀어줬다. “우리가 오리농법을 하는 쌀을 받아먹거든요. 모내기가 끝난 논에 오리를 풀어주는 거죠.”

그렇게 일을 거둬 만든 쌀이 가을이 되어 가족 밥상에 오른다. 1년에 몇 차례 있는 생산지 방문 행사를 통해 소비자는 생산자의 힘겨운 노동을 몸소 체험하고, 소비자를 만난 생산자는 더욱 정성을 기울인다. 생산과 소비라는 행위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파주에 사는 김영희(39)씨는 김미란씨보다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김씨가 사는 곳은 이마트, 하나로마트 등 마트에 둘러싸여 있는 곳. 김영희씨도 한때 ‘마트의존형 인간’이었다.“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이프스타일처럼 마트에 갔죠. 그런데 씀씀이가 너무 커지는 거예요. 사온 먹을거리 중 상당수가 버려지고….”

김씨 가족은 2년 전부터 동네 슈퍼와 야채·채소 전문점을 다니는 버릇을 들였다. 처음엔 신선채소류부터 동네에서 해결했고, 나중에는 공산품 구입 때도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를 밟아갔다. 일주일 지출액이 10만~15만원에서 10만원 이하로 줄었다.

“동네 슈퍼도 나름대로 훌륭해요. 채소도 덤으로 얹어주고 단골을 만들 수도 있고….” 대형 할인점을 멀리하고 나선, 그는 동네 상인들과 인사를 할 정도로 잘 알고 지낸다. 그리고 자동차로 지나쳤던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소비와 판매를 매개로 움직이는 동네 커뮤니티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도시의 30~40대가 마트의 주 고객층

지난해 브랜드 가치평가 기관인 브랜드스톡이 리서치 패널 2451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 대형 할인점의 주 고객층은 30~40대로 나타났다. 이들이 할인점을 가장 자주 이용하고 지출액도 가장 컸다. 30~40대의 1회 평균 지출 비용이 12만7천원이나 됐다. ‘쇼핑 때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30대의 81%가, 40대의 92.8%가 할인점을 꼽았다. 전체 조사 대상자로 보면, 한번 방문할 때마다 5만~10만원을 쓴다고 대답한 사람이 40.2%로 가장 많았고, 10만~20만원은 25%로 나타났다. 대형 할인점이 소비상권을 장악한 도시의 30~40대는 마트에 의존해 일상을 영위하는 ‘마트형 인간’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 대형마트가 커뮤니치를 해체하는 소비라면, 동네슈퍼나 생협은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소비다.

혁명분자이건 회색분자이건 대형마트를 지양하는 사람들은 “마트를 줄이기 시작했더니, 소비가 줄어들었고, 씀씀이도 적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난 라이프스타일이 주는 괴로움도 있다. 풍족한 소비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때론 불편한 삶도 감수해야 한다.

김미란씨 가족이 지향하는 생활은 가난한 삶이었다. 대형마트에서뿐만 아니라 공산품이나 의류도 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랫집 언니의 옷을 물려 입고, 구멍난 옷은 꿰매 입는다. 한국소비자본주의가 이마트 체제가 되기 이전,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렵지 않은 풍경이었다. 대형 할인점이 유도하는 과잉소비는 제3세계의 빈민들에게도,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구에게도 죄악이다. 김씨는 “대형마트는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마트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삶의 철학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형마트는 환경의 적

물류센터를 활용하는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유독 한국에서만 대형 할인점 대 재래시장의 밥그릇 다툼으로만 비쳐져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형 할인점의 반환경성을 견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윤리적 소비’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은 지역경제에 관한 이슈이기도 하면서 환경에 관한 이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공공연히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 벗은 “대형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소매 체계가 지역의 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시스템이라면, 대형마트 체계는 지역의 산물을 중앙의 물류센터에 보냈다가 다시 각 지역으로 분배하는 체계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이를테면 일산에서 많이 나는 엽채류가 일단 타 지역의 중앙 물류센터로 갔다가 다시 일산의 할인점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불필요한 이동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의 유통 거리는 어마어마하다. 영국의 할인점 테스코의 주요 매장 9곳의 화물차는 한 해에 6억7천만 마일을 달린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24만 마일이니, 9개 매장의 화물차가 지구와 달 사이를 한 해 140번 왕복하는 셈이다.

지구적 규모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할인점은 좀더 싼값으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산을 쓰지 않고 중국이나 타이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에 갈 때도 개인 자동차를 몰고 간다. 이에 따라 화물선과 자동차가 내뿜는 온실가스는 극대화된다.

영국 테스코는 4월25일 1억파운드를 환경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지구의 벗은 “사회적 환원은 환영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유통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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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노아 > [퍼온글] 다르지만 닮은 이마트와 월마트


다르지만 닮은 이마트와 월마트

잡화·의류 위주의 월마트에 비해 식품 등 다양성 갖춘 ‘하이퍼 마켓’… 재래시장 죽이기나 남품업체 압박, 저임금 구조 등 그림자는 닮은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다. 이름부터 비슷하다. 브랜드명의 뿌리가 창업자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은꼴이다. ‘월’마트는 창업자 샘 ‘월’턴에서 따왔고, ‘이’마트에는 (주)신세계 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의 이름이 녹아 있다. 이마트 사업 초기 신세계 쪽의 공식 설명은 ‘이코노믹’(economic)에서 따왔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신규사업팀을 이끌었던 정오묵 신세계 부사장(이마트부문 판매본부장)은 대주주의 이름을 반영했다고 밝힌다.

미국과 한국에서 절대강자 군림

월마트는 미국을 터전 삼아 세계 1위의 유통기업을 일궜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10여 개국에 5천 개 안팎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한 해 매출 규모는 300조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퀸타시의 월마트(위)와 한국 동해시의 이마트(오른쪽). 이마트는 한국형으로 진화했지만 상권파괴·저임노동 문제 등은 그대로 가져왓다. (사진/ 좌- REUTERS/ NEWSIS/ REPORT GALBRATH/ 우- 윤운식 기자)

월마트의 힘에 눌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납품 가격을 내리거나 최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월마트의 저가 납품 요구에 맞추기 위한 비용 절감 노력은 미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경영대의 제임스 스미스 교수는 이를 두고 ‘월마티제이션’(미국 경제의 월마트화)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마트의 기세도 월마트 못지않다. 적어도 국내에선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이마트의 매출은 8조1천억원에 이른다. 할인점 업계 2위인 삼성테스코(홈플러스) 4조6천억원, 3위인 롯데마트 3조3천억원을 합해도 이마트에 못 미친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지난해 매출 8천억원) 인수를 앞두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이마트의 존재는 더 도드라진다. 월마트코리아와 이마트 부문, 광주신세계를 포함한 신세계의 총매출은 10조1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유통 강자 롯데의 유통 3사(롯데쇼핑·롯데미도파·롯데역사) 매출 9조9천억원을 웃돈다. 이마트의 활기에 힘입어 신세계가 숙적 롯데를 추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유통업의 중심축이 백화점에서 할인점으로 바뀌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가히 ‘이마티제이션’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월마트, 이마트 모두 핵심 구호는 ‘Every Day Low Price’다. ‘매일매일 항상 싸게 판다’는 뜻으로, 대량 구매를 통해 최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 고객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월마트의 EDLP 슬로건은 초창기 이마트 사업에서 그대로 차용됐다. ‘이’마트 브랜드명에도 이 구호는 일부 담겨 있다고 신세계 쪽은 설명한다.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으되 다르다. 전면에 내세운 구호나 한 나라 유통업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겉모양을 벗겨내고 나면 질적인 몇몇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인데 월마트에는 식품 코너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의미 없는 비중이다. 이마트 매장에선 채소를 비롯해 식품 비중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과 큰 차이를 띠는 대목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마트는 월마트 같은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아니라 ‘하이퍼마켓’에 가까운 한국형 할인점”이라고 말한다. 하이퍼마켓은 슈퍼마켓보다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저렴하게 파는 ‘더 높은 단계’(하이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형 할인점인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잡화·의류를 중심으로 한다면, 하이퍼마켓은 거꾸로 1차 식품류 위주에 잡화·의류로 상품 구색을 맞춘 업태다. 하이퍼마켓의 대표 격은 프랑스계 다국적 할인점인 까르푸다. 서 교수 진단에 따르면 이마트는 초창기 상품 구색에서부터 월마트와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

최저가 탈피한 백화점 이미지

월마트와 다른 이마트의 상품 구색은 우리의 생활 문화를 반영했다는 게 신세계 쪽의 설명이다. “외국계(월마트)는 소싱(제품 조달)을 외국에서 하다 보니 장기 보관할 수 있는 냉동식품을 주로 취급한다. 이마트는 야채나 과일, 수산물 같은 신선식품에 비중을 많이 두는 차별화를 꾀했다.”(김대식 신세계 홍보실 과장) 김 과장은 “한국의 주부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좋은 식료품을 갖춘 데를 먼저 찾고, 그날그날 장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주말에 한두 번 할인점에 들르는 외국의 구매 패턴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오묵 부사장은 “할인점에서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건 어렵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주요 구매층인) 주부들을 오게 하려면 야채나 채소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마트를 본보기로 삼되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 ‘한국형 전략’을 추구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인의 기호, 체형, 눈높이에 맞게 판매대를 짜고 구성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취급 물품의 가격대에서도 이마트는 월마트와 차이를 보인다. 월마트는 ‘everyday low price’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미국 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시어스 등 백화점은 물론 K마트 같은 다른 할인점들보다 낮은 가격대로 자리매김돼 있다. 이마트는 최저 가격대로 여겨지기보다는 중저가 백화점 수준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백화점과 큰 차이 없는 매장 인테리어는 외국계의 창고형 할인매장과 뚜렷이 대비된다. 월마트와 달리 이마트의 영업점들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나 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는 것도 최저가 이미지를 떨쳐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그래도 닮았다. ‘소비자 지상주의’라는 명제 아래 극도의 가격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산물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전통적인 유통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그 하나다. 또 고용을 창출한다는 자랑은 비정규직 양산이란 비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월마트는 미국 내에서만 1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자랑스레 밝혔지만, 대부분 유색인종·여성·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월마트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9달러 수준으로 조사돼 있다. 미국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전체 산업 평균 임금(시간당 22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월마티제이션’이라는 말에는 이런 어두운 면이 내재돼 있다. 이마트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도 비정규직이다.

‘화해 프로그램’으로 화해되나

월마트와 이마트는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두고 납품업체들에 가혹한 수준으로 납품가를 낮추도록 압박한다는 비난을 피해가지 못한다. 납품업체들에 대한 압박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사이판 소재 의류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미국 유명 업체 18개사의 하청업체들로부터 구타, 감금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다며 10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을 때 월마트 이름을 앞자리에 올린 건 이런 연쇄고리에서 비롯됐다. 이마트를 둘러싼 납품가 구설도 잦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 점포 16개를 인수함에 따라 납품업체에 대한 구매교섭력이 더욱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경제적 효율성이란 밝은 앞면이, 어두운 뒷면과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까. 이마트는 나름대로 지역 사회와 ‘화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점포별로 지역의 하천이나 산, 강을 한 군데씩 지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환경친화적 경영을 도입하고 있으며, 판매액의 0.5%를 지역단체에 환원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화해 프로그램이 밝은 면에 가려진 뒷면의 암도를 얼마나 묽게 할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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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마르크스와 공자, 중국의 '두 얼굴'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은 문화일보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기사는 "中 한손엔 '마르크스' 한손엔 '공자' "였다. 중국의 현재를 말해주는 상징적인 두 인물이 마르크스와 공자라는 건 흥미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하다(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한 출판사 사장은 원고료를 독촉하러 간 소설가에서 '마르크스와 장자'에 관한 썰을 한참 풀어대는데, 그게 우스개가 아니라 '현실'인 것! 비록 '장자'가 '공자'로 대체됐지만). 두 사람이 현재의 중국 이해의 키워드인 것. 이 키워드들과 관련한 허민 베이징 특파원의 두 기사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6. 06. 23) 중국의 '두 얼굴' 통치 이데올로기

-한쪽에서는 마르크스연구원이 문을 열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자(孔子)학원이 세워진다. 한 손엔 마르크스의 어록, 다른 한 손엔 공자의 말씀이 쥐어져 있다. 최근 마르크스주의와 유교이념을 양대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는 중국의 두 얼굴이다. 마르크스 살리기가 도농차별과 빈부격차 해소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처방이라면, 공자 부활은 화해 분위기 정착과 평화 이념 전파를 위한 문화적 통치도구다.

◆ 되살아난 공자 = 중국에서의 공자 부활은 국내용과 국제용,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먼저 국내적으로는 정부와 학계가 앞장서 공자붐을 일으키고 있다. 공자어록이 출간되고 주요대학에 유교연구원 또는 유학원이란 이름의 공자사상연구소가 세워지고 있다. 정부는 공자 탄생일인 9월 28일 공자의 고향 산둥(山東)성 취 푸(曲阜)에서 정부 고위관리와 외교사절 등이 대거 참석하는 기념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나라 밖에서는 공자학원 설립 운동이 활발하다. 아프리카를 순방 중인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문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르완다에도 공자학원이 세워졌다. 앞서 지난해 말엔 케냐 나 이로비대학에 아프리카 첫 공자학원이 개설됐다. 이들 3개국 이 외에도 아프리카 각국의 5개기관이 공자학원 개설을 신청해 놓고있어서, 아프리카에서의 공자학원은 곧 8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해외의 공자학원은 중국문화 전파의 첨병이다. 공자학원은 2004 년 12월 서울에 1호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 모두 75개가 설립됐다. 중국 정부는 올 연말까지 이를 100개로 확대한 다는 계획이다.



◆돌아온 마르크스 =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권력 장악 이후 눈에 띄는 국가적 차원의 중요 프로젝트를 들라면 그중 하나 가 ‘마르크스주의 공정’이다. 지난해 12월 16일 리창춘(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이데올로기 담당)이 한 공식석상에서 “당은 마르크스주의 연구에 무제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후 ‘마르크스주의 연구 공정’이 정식 출범됐다.



-이후 중국 사회과학원 부설 마르크스레닌주의연구소가 연구원으 로 승격됐고, 최근 국가급 및 성시(省市)급 연구원들이 속속 들 어서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앞으로 10년동안 이 공정을 진행시키면서 3000여명의 학자들을 참여시켜 마르크스주의 철학과 정치학, 경제학 등 제반 분야 연구 성과를 방대한 저작으로 담아낼 예 정이다(*마르크스주의가 한국에서는 '혁명철학'일는지 몰라도 중국에서는 '관변철학' 혹은 '통치이데올로기'이다. 그나저나 3000여명의 학자라... 쪽수가 많긴 많은 나라군!) .

-언론도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의 최대매체인 신화통신과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최근 각각 ‘홍색의 기억(紅色記憶)’이란 고 정란을 두고 사회주의혁명정신을 고취시키고 있다(*'인민일보'란 말 대신에 굳이 '런민르바오'라고 써주어야 할까?). 중공 중앙당 교의 한 정치학 교수는 “중국식 사회주의체제의 이해와 구축을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원리를 중국의 실정에 맞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런민(人民)대학의 한 사회학 교수는 “국내적으로는 충성심을 고취하고 국가권위를 확립시키며 민족적 응집력을 높이고, 국제적 으로는 평화와 조화이념을 강조하는 데 공자말씀보다 좋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06. 06. 09) 공자가 살아야 중국이 산다?

-“한국에서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면서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中央黨校) 모 교수의 느닷없는 질문에 기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의 질문이 몇년전 한국의 베스트셀러를 거론한 것이란 사실을 안 것은 오래지 않았다. “과거 한동안 중국에서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조화사회를 건설하려면 공자가 다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교수는 왜 죽은 공자를 다시 살려내야 하는지 메모지에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지금 전환기의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마오이즘만으로는 되지 않는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를 요구하고 있다. 화해와 평화이념을 갖고 있으면서도 흔들리는 체제를 안정시키며 통치의 권위를 보장해주는 국가경영의 화두가 필요하다. 바로 유교사상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일련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이 왜 어느날 갑자기 “조화가 소중하다”며 ‘공자 왈(曰)’ 했는지, 왜 갑자기 국가를 영광되게 하는 8가지와 욕되게 하는 8가지라는 ‘바룽바치(八榮八恥)’를 설파했는지 알 것 같다. 왜 지도부가 기회만 있으면 ‘허셰(和諧)론’을 강조하고 중국 외교부가 거액을 들여 해외에 중국문화 원이란 이름으로 ‘공자 학원’을 세우고 있는지도 이해가 된다. 모두가 다 유교이념의 전파다.

-그러고 보니 민간이나 학계쪽에서도 이미 공자의 부활을 위한 크고 작은 시도들이 있었다. 지난해 말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스승의날을 현행 9월 11일이 아니라 공자 탄생일인 9월 28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런민(人民)대는 그해 9월 학기부터 ‘국학원(일명 공자연구원)’을 설립했고 사회 과학원은 ‘유교연구중심’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공자 왈 맹자 왈’ 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독경(讀經)운동’이 번진 것도 이때였다.

-중앙당교의 교수는 말했다. “지금은 조반(반란을 꾀함)이 아니 라 조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 시대 홍위병들은 ‘반란에는 이유가 있다’는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강화를 받들어 ‘조반유리(造反有理)’를 부르짖었다. 기존 질서는 붉은깃발 아래 압사했고 모든 혁명적 선동과 가치의 전복이 정당화됐다. 공자가 봉건적 누습(陋習)의 근원이라는 이 논법은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으로 절정에 이르렀다. 조반의 시대는 곧 공자 수난의 시대였다.

Fight the people’s battle of criticizing Lin Biao and Confucius well, 1974Relentlessly criticize China's Confucius of today and Lin Biao, 1974

-그후 40년, 시대가 확 바뀌었다. ‘무한 욕망’과 ‘사적 소유’라는 양대 복음을 추동력으로 진행된 시장경제적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 됐다. 하지만 그 부산물로 빈부격차, 부정부패, 체제불안, 사회저항이 생겼다. 이 같은 모순과 갈등구조를 치유하기 위한 통치 이념이 절실히 요구되면서 체제안정, 권력순응, 질서유지, 권위숭상이 귀하게 여겨지게 됐다. 민족적 응집력을 높이면서도 평화와 조화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결국 공자의 부활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쯤 되면 죽었던 공자가 중국에서 다시 살아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중국 정부는 공자 탄생 2557주년을 맞아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9월28일 공자의 고향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일 계획이다. 지난해의 경우 중앙방송(CCTV)을 통해 기념행사가 생방송된 뒤 국민들의 애국심이 한껏 고취됐다는 보고가 있다. 앞으론 중국의 새 지도부 출범 때마다 공자의 묘에 가서 제례를 지내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교이념이 언제까지 중국사회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지는 미지수다. 공자의 부활 자체가 사회경제적,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깨어난 공자는 자신의 부활을 달가워할까.

06.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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