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쓰는 법

알아두면 편리한 자판 사용법 입니다.

1. 인터넷을 검색하다 앞화면으로 가고 싶다면, 마우스 대신 ◀━를 사용(back키).
-마우스로 뒤로가기... 이제 그만...

2. F1 = 인터넷 도움말.

3. F3 = 파일찾기.
찾고 싶은 파일...이제 쉽게 찾을 수 있음.

4. F4 = 주소창.
주소를 고를 때도 자판의 화살표를 이용하면 무척 편함.
아래로 위로 잘 골라서 엔터키를 치고, 이동하고 싶은 주소로 이동.

5. F5 = 새로고침.
검색하다 빨리 새로 고치고 싶을 때 마우스 필요 없음.

6. F6 = 주소창 블럭 설정.
이 기능은 주소창에 저장되어 있지 않는 새로운 주소로 이동 할때 사용하는데, F6키를 누르면 블럭이 설정되고 이때 Delete키를 치면 주소창이 지워짐.

7. F11 = 화면을 넓게 보고 싶을때 사용.
위, 아래에 메뉴창이 사라지면서 화면이 아주 넓어짐.

8. Ctrl + N = 현재 페이지가 하나 더 생김.
로그인까지 되어서....

9. Ctrl + W = 화면 순간 삭제.
야한거 보고 있을 때 갑자기 누가 오더라도 보던 페이지가 사라지니까 뭐했는지 절대 알 수 없음.

**Alt 키와 Ctrl키의 사용**

1. Alt 키 + 왼쪽/오른쪽 화살표 키.
웹 페이지의 앞,뒤 전환.
-바로 앞에 보았던 페이지나 다음 페이지로 쉽게 전환이 가능.

2. Ctrl'키 + R키.
지금보고 있는 페이지의 내용을 다시 읽어 줌.

3. Ctrl + D.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가 있으면 북마크 (Book-mark) 기능을 사용하지만, 'Ctrl + D'키를 누르면 더욱 쉽게 해결됨.

4. Ctrl 키 + B 키
북마크를(즐겨찾기 편집창) 편집하거나 정리할 때 사용.
바로 북마크 폴더로 이동.

5. Ctrl 키 + N 키.
현재의 창을 그대로 나두고 또 하나의 새로운 창을 만들 때 사용.
- 파일을 다운 받거나 서버로 부터 응답이 늦어질 때, 이 단축키를 열어 다른 링크 사이트로 접근이 가능.

6. Alt 키 + F4 키.
현재 열려있는 창을 닫을 때 사용.

7. Ctrl 키 + O 키.
웹 사이트의 주소창만 띄워 새로운 사이트를 열려고 할때 사용.

위에서 설명한 것 중 많이 사용하는 것.
Alt + <- (왼쪽 화살표) ▶ 이전 페이지로
Alt + -> (오른쪽 화살표) ▶ 다음 페이지로
Alt + F4 ▶ 열려있는 창 닫기(Ctrl + W 와 비슷)
Ctrl + R ▶ 문서 다시 읽어 들임
Ctrl + B ▶ 북마크(즐겨기 편집창) 폴더로 이동
Ctrl + D ▶ 북마크에 추가
Ctrl + N ▶ 새로운 창 생김
Ctrl + O ▶ 새로운 주소 입력창 열기

▷마우스 볼과 같은 기능◁
↑ ↓ 키는 볼을 굴리지 않아도 현재창을 위, 아래로 쉽게 움직일 수 있음.

 

 

마우스 고장시 키보드를 마우스처럼 사용하는 방법

 

키보드를 이용해서도 마우스 포인터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평상시 마우스와 동시에 쓸 수도 있지만, 마우스가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을 때는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겠죠? 윈도우의 마우스키 기능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 마우스키 설정 방법 ★

평상시 마우스를 이용해 설정해 두면 쉽게 되지만, 미리 설정해두지 않고 마우스가 작동 불능 상태가 된 경우 키보드를 이용해 설정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Tip]아래 각 항목의 이동요령은 방향키와 엔터로 창을 열고, 열려진 윈도우창 내에서 필요한 아이콘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Tab키를 몇 번 눌러 어느 아이콘 이름에 점선이 생기면 방향키로 해당아이콘으로 이동하고 엔터를 하면 열립니다.

1. 키보드의 윈도우키를 눌러 [시작] -> [설정] -> [제어판] -> '내게 필요한 옵션' 열기
2. '내게 필요한 옵션' 창에서 Tab키를 몇 번 눌러 위의 '키보드'탶에 점선이 생기도록 한 후 오른쪽 방향키로 마우스탶으로 이동 -> 다시 Tab키를 눌러 '마우스키 사용'이라는 아래 체크옵션 글씨항목에 점선이 생기도록함 ->여기서 '스페이스바키'를 한 번 눌러 '마우스키 사용'옆 □에 ∨표시가 되도록 함 ->다시 Tab키를 눌러 '확인'으로 이동 후 엔터하여 설정

이렇게 하면 화면 오른쪽 하단 작업표시줄[트레이]부분에 마우스 모양이 생기고 지금부터 키보드
오른쪽 숫자패드를 눌러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포인터의 상하좌우 대각선 이동은 1,2,3,4,6,7,8,9키
클릭하려면 숫자키 5
더블클릭은 +키
드래그는 0키를 한 번 누른 후 숫자패드 방향키로 이동
(드래그를 끝내려면 Del키를 누름)


만약, 마우스키가 작동하지 않으면 키보드 오른쪽 위에 있는 NumLock키를 눌러 램프에 불이 들어온 상태에서 작동해 보세요.

 

원문보기 : http://blog.daum.net/oldkp/9444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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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짙은 선홍색'의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

제6회 멕시코영화제,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 9편 상영 (2004.07.14 20:04)

멕시코에서 온 ‘극단적 멜로드라마’

1950년대 말, 유명한 프로듀서였던
아버지 덕분에 극장과 촬영장을 밥먹듯
드나들 수 있었던 소년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나자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는 한 종류의 영화,
즉 아버지가 주로 만들던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자린>은 그가 본 어떤 영화와도
달랐다. 모든 영화가 똑같은 해피엔딩
내러티브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다른 대안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한
소년에게 그것은 완벽하게 매혹적이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곧장 브뉘엘의 집으로 갔다.
“당신의 영화를 봤어요. 난 당신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브뉘엘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몇 분 뒤
다시 문을 연 브뉘엘이 입을 열었다.
“들어와라.”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멕시코영화의 놀라운 혁신과 부흥을 이끌어왔으며, 루이스 브뉘엘과 가브리엘 마르케스,
후안 룰포,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됨으로써
완전히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르투로 립스테인은 1962년 19살의 나이에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 조감독을 거치면서
브뉘엘의 적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립스테인이 브뉘엘로부터 배운 것은
테크닉이 아니었다.
브뉘엘은 자신이 그다지 능숙한 감독이 아니라며 어린 립스테인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으나, 립스테인은 대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자세’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해라. 그리하여 너 자신을 배반하지 말아라….” 그리고 립스테인은 그 원칙에 따라 승리자가 되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내게 있어 영화는 숨쉬고,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재다.
나는 기꺼이 고집불통의 성가신 존재로 남길 택했고,
그리하여 영화 안에서 아직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까발리는 극단적 멜로드라마

립스테인은 1966년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함께 쓴 시나리오 <죽음의 시간>으로 데뷔했다.
원치 않은 결투에 휘말렸다가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중년 남자의
돌이킬 수 없는 행로를 다루는 기이하고 쓸쓸한 웨스턴 <죽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에 대한 립스테인의 매혹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였다.
이제는 모든 원한의 고리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살고 싶은 중년 남자는,
그러나 죽음과 복수를 피할 수 없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결투에 앞서 침침한 눈 위에 안경을 걸치고 재킷에 입을 맞춘 뒤
단정하게 몸치장을 끝낸다.
립스테인 스스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중년의 심리를 묘사하려다보니
무리수를 두었다며 자신의 데뷔작을 폄하하지만,
이 영화에서부터 이미 립스테인이 평생 추구하게 될 영화적 테마들은
온전히 드러난다고 보여진다.

<죽음의 시간>

<순수의 성>

<종교재판소>

<한계가 없는 곳>

흔히 립스테인의 영화를 일컬어 ‘극단적 멜로드라마’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붙이곤 한다.
그는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차용하지만,
그 안에서 부르주아의 안온한 이데올로기를 불손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부숴버리고
그것의 허위에 찬 이면을 낱낱이 까발리고 만다.
그것은 영화의 핵심에 ‘가족’을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있음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족은 내게 있어 파괴와 공포의 원천이다”).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만이 지켜나가야 할 유일한 가치이며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어떤 타자도 끼어들 수 없게끔 하는 닫힌 구조 속에서
그는 어떤 광기와 지독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다양한 형상으로 출몰한다.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섹슈얼리티에 심각한 도전을 가하는 드랙퀸과 여성들,
혹은 빈곤과 타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변부 인생들, 불구자들, 노인들….
타자에 대한 불관용은 립스테인의 영화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지며, 그에 따른 희생과 저항의 이야기가 립스테인 특유의
멜로드라마 구조를 완성해 간다.

<순수의 성>(1973)에서는 세상의 폭력과 타락으로부터 지킨다는 구실로
18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감금한 채 온갖 금욕을 강요했던 ‘쥐덫 제작자’
아버지의 실화를 다루고 있고,

<종교재판소>(1974) 역시 16세기 멕시코를 휩쓸었던 종교재판의 광풍에 휩싸인
유대인 가족 내부의 갈등을 그림으로써 사회 최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한계가 없는 곳>(1977)은 유령이 곧 출몰할 것 같은 텅 빈 마을에서
사창가를 운영하는 드랙퀸과 그의 딸을 내세워, ‘남자다움’이라는 특성이 지배적인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드랙퀸의 ‘뒤바뀐’ 섹슈얼리티를 견디지 못하고
제거해버리고 마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놀라운 복음>(1998)은 외딴 시골 마을에 모여든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섹스 제의에 관한 조롱 섞인 풍자극이다.

40년대 멕시코에서 벌어졌던 유명한 ‘론리 하트 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짙은 선홍색>(1996) 역시 ‘미친 사랑’에 함몰되어 어린 자식들까지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연쇄살인 행각에 빠지는 고독한 여인의 광기를 그린다
(“미친 사랑처럼 산산이 파괴하고 부패시키고 변형시키는 힘을 가진 현상도 없다.
그토록 경솔하고 신성모독적이고 이교도적인 것 또한 없다.
결국 인간 같은 존재는 다시 없다…”).

<그것은 인생>(2000)은 고대 그리스의 메데아 신화를 가족 멜로드라마의
틀거리로 변주하며 절망의 가장 막다른 극한에까지 몰렸을 때
아예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고 마는 여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야만 하는
운명의 행로에 관한 립스테인의 집착이 드러난다.
립스테인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가망없음’의 상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좀더 개선시켜보려 발버둥치거나 도피를 시도한다.
총구 앞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중년 남자(<죽음의 시간>),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딸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건달 앞에서
기꺼이 춤을 추는 드랙퀸의 필사적인 몸짓(<한계가 없는 곳>),
오지 않을 연금을 기다리며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가는 늙은 부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는 굴레에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혀버린
중년 남자가 부패한 경찰과 법률 구조 앞에서 벌이는 무시무시한 사투(<종신형>),
뜻하지 않은 행운 앞에서 놀라운 성공에 도취된 채 예정된 파멸을 보지 못했던
남자의 우화(<부의 제국>)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을 가로막는 운명 앞에서조차 버릴 수 없는 가냘픈 희망의 힘을 믿지만,
결국 언제나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구원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파스칼의 선택’을 내려다보는 립스테인-신의 거대한 시선은
또한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감싸고 도는 유행가의 선율과 겹쳐진다.
주인공들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유행가들,
이 세속적인 싸구려 예언의 선율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의 역할을 담당하며
소름끼치는 초현실주의의 기운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잔재와 더러운 유산을 끌어안고
앞으로 전진해야만 하는 이 패배자들의 초상은 어찌보면 돈키호테의 그것을 닮았다.
그들은 립스테인에게 있어 그 어떤 노멀한 사람들보다도 위대한 삶의 주인공이다.

닫혀진 공간에서 가장 라틴아메리카적인 영화를 만드는 ‘작가’

한편으로 이 모든 정조를 배태하고 있는 것은
립스테인의 모든 영화 속에서 비슷비슷하게 구축된 공간들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부’에서 이뤄진다.
립스테인은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데 집착한다.
그의 공간은 언제나 닫혀 있고, 방에서 방으로 이어진다.
설령 복도에서 걸어나와 정원으로 들어서더라도
그 정원은 U자 형을 그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방 안은 각자 캐릭터의 성격에 걸맞은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죽음의 방은 사냥당한 짐승들의 털가죽과 총으로 채워져 있으며,
사랑을 믿는 여자의 방은 거울과 호사스런 침대와 등불과
알록달록한 종이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다.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좁디좁은 공간은 캐릭터들의 강력한 정서와
그들의 삶의 편린들로 포화 일보 직전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탈출구를 알지 못한다.
외부조차 앞이 훤히 다 보이는 야트막한 모래 언덕들뿐이다. 그
들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다.
립스테인은 초저예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색의 조명과 사물들의 주의 깊은 배치를 통해 이 밀실의 공간들을
자신이 새롭게 창조해내는 영화적 세계의 주요 무대로 바꾸어버린다.

몇십 년 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논란의 불꽃을
처음 지폈던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우리 대륙은 바로크다. 아메리카는 생소한 것과 경이로운 것의 역사 그 자체다.
우리의 의무가 아메리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것을 보여주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크 세계에 대한 묘사는 필연적으로 바로크적이어야만 한다”
라고 기술한 바 있다.
아마도 오늘날까지 이 정의에 완벽히 부합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유일한 작가일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들 중 9편(그리고 5편의 멕시코 걸작 단편영화들까지)을
근접 조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시라.

김용언/ 영화평론가 may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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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우연히 한  케이블 방송에서 틀어준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영화
<짙은 선홍색>을 보았다.
머리가 벗겨진, 과부들을  등쳐먹고 사는 날건달 남자와,
사랑에 미쳐 자식까지 팽개치고
그를 따라나선 뚱뚱한 시체 담당실 간호사의 엽기적인 애정 행각이
이상하게도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다.

꼴에 "나에겐 자긍심이 있다 말이지!"라고 되뇌던 남자,
"자긍심이 뭐냐고? 그건 아픔이지!"라고 혼자 묻고 대답하던 남자,
처형 당하는 순간, 가발을 쓰고 죽게 해달라고 빌던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걷다가 총을 맞고 웅덩이에 처박히는데
물웅덩이에 각자의 모습이 비쳐 꼭 자기자신을 껴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말 서로의 어디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파괴적인 것도 사랑일까?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짙은 선홍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남자의 손을 잡고 걷던
육중한 체격의 여주인공과 자신의 소원대로 가발을 쓰고 걷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립스테인 감독이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져보다가
2004년에 그의 영화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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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펌] 강풀 - FTA를 말한다.

우와!  이젠 강풀도 FTA를 말하네요! 
원래 하던 연재를 중단하고 FTA 만화를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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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오드리 헵번과 소피아 로렌

휴일인지라 월요일이란 느낌을 가질 수가 없는데, 밀린 일들이야 어찌됐던 그런 휴일을 좀 느끼게 해주는 칼럼이 있어서 옮겨온다. 이미 한국문학사 속에 편입된 소설가 김연수가 오늘자 한겨레에 기고한 것이다. 몇 가지 이미지를 보충해놓는다.    

한겨레(06. 07. 17) 칠순 소피아 로렌의 누드사진보다 세월 녹아든 오드리 헵번이 아름답다

-거리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24쪽 분량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게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려면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이란 노래를 들어봐야 한다. 그 노래를 지은 밥 딜런이 자기가 쓴 소설에서 가사를 따왔다니까.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이 노래를 들었지만, 가장 인상적으로 들은 것은 1993년 동숭아트홀에서 영화 <백 비트>를 볼 때였다. 비틀스의 초기 역사를 다룬 영화인데, 독일 함부르크를 향해 떠나는 배 안에서 고작 스무 살 안팎이었던 비틀스 멤버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한번 구르는 돌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물씬 들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구르는 돌처럼’이 입구에서 삶을 바라보는 젊은이의 노래라면 비틀스의 ‘나 살아가는 동안’(In My Life)은 뒤돌아보면서 부르는 노래다. 당시 <백 비트>의 영화 팸플릿에는 주인공인 스튜어트 셔트클리프를 추억하기 위해 존 레넌이 만든 노래라고 적혀 있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비틀스의 초기 멤버였던 스튜어트는 함부르크에서 만난 사진작가 아스트리드와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21살의 나이로 숨진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감안해서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았지만, 나 살아가는 동안 그들 모두를 사랑했네”라는 가사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아련해진다.

-그렇긴 해도 존 레넌은 이 노래를 너무 빨리 불렀다. 지금쯤 이 노래를 불렀다면 좋았을 텐데. 이런 나의 아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난해 오지 오스본이 이 노래를 불렀다. 오지 오즈번도 이제 환갑이 2년 앞이다. 한때 자타가 공인한 악마의 목소리로 느릿느릿 ‘나 살아가는 동안’을 부르고 있는 오지 오즈번을 보노라면, 인생이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거지에게 적선하겠지만, 내일은 그 거지가 될 수도 있다던 ‘구르는 돌처럼’의 가사처럼 어제는 악마의 목소리, 오늘은 늙은이의 푸념. 이런 인생이 어찌 멋지지 않을까.

-오드리 헵번(1929-1993)의 탄생 70돌을 기념해서 만든 책 <오드리 헵번>에 실린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으면 살아가는 동안 한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게 변해가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오드리 헵번은 정말 아름답다. 젊은 시절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그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나이가 들면서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그건 보톡스의 힘도, 성형수술의 힘도 아니다. 나이 든 오드리 헵번의 얼굴은 자신을 거쳐 간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사람의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 그런 얼굴로 오드리 헵번은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다.

 

 

 

 

-그에 비하면 72살의 나이로 누드사진을 찍겠다고 나서 전 세계의 할머니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소피아 로렌(1934- )의 얼굴은 좀 징그럽다. 변하지 않는 미모라는 건 정말 끔찍하다. 변하지 않는 인생처럼.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봤다면 생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생각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점이다. ‘구르는 돌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나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도 바로 그 때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순간 발휘된다. 젊은이들 못잖은 탱탱한 피부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때가 아니라.

-늘씬한 몸매가 보고 싶다면 젊음 여자 사진이 있는 달력을 사서 걸어놓으면 될 일이지, 굳이 소피아 로렌의 달력을 살 필요가 있을까. “내가 나이 들어 머리 다 빠지는 먼 훗날에도 밸런타인 카드와 와인 보내줄 거지?”(내가 64살이 되면)라고 폴 매카트니가 노래했다. 소피아 로렌에게도 와인이나 한 병 보내줘야겠다. 밸런타인 카드는 빼고.

06. 07. 17.

 

 

 

 

P.S. '나 살아가는 동안'의 가사를 옮겨놓는다.

 

 

 

 

 

Beatles - In My Life

There are places I'll remember
All my life, though some have changed
Some forever, not for better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All this places have their moments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But of all these friends and lovers
There is no one compares with you
And these memories lose their meaning
When I think of love as something new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Though I know I'll never lose affection
For people and things that went before
I know I'll often stop and think about them
In my life, I love you more
In my life-- I love you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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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백석 시의 원형

최근에 출간된 <원본 백석 시집>(깊은샘, 2006) 관련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온다. 이숭원 교수의 노고가 담겨 있는 책인데, 백석의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애독자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1912년생인 백석은 지난 1963년쯤은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얼마전에 1995년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확인돼 '충격'과 안타까움을 던져준 바 있다(그는 '동시대' 시인이었던 것이다!). 아무려나 그의 시를 읽는 건 그의 생애만큼이나 아련하다.

교수신문(06. 07. 17) 변형 없이 복원한 원형…“체험의 진실이 주는 감동”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51세, 국문학·사진)가 3년 전 <원본 정지용 시집>에 이어 지난 6월 <원본 백석 시집>을 펴냈다. 이 교수가 원본 시집을 연이어 두 차례 낸 것은 “석·박사 재학생들이 자료를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덜고, 이후 뜻풀이를 하는 데 들이는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기본 텍스트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쉽게 심층 연구로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현대어로 표기할 수 없는 글자들, 행갈이가 애매모호한 부분들을 임의로 바꾸지 않고 백석이 쓴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독자들이 ‘연구자 맘대로’ 재해석되었거나 변형되지 않은 시의 ‘원형’을 즐길 수 있는 것.

 

 

 

 

-그러나 <원본 백석 시집>을 내는 일은 ‘정지용’ 때보다 힘들었다. 시의 대부분이 2권 시집에 수록돼 있는 정지용과는 달리 백석의 경우 그의 시집 <사슴>에 수록된 시는 33편이지만 그 외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시들이 70편을 넘는다. 따라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흩어져 있는 원문들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한 것. 이 작업은 제자인 이지나 박사가 했는데, 이렇게 자료를 모으는 데만 6개월이 넘게 소요됐다.

-원본 인쇄의 경우 편집도 힘들다. 시가 그림과 같이 게재된 경우, 그림이 글자를 잡아 먹어버려 그림을 지우고, 다른 시에 나오는 같은 글자들을 오려서 붙여 넣는 등의 작업을 했다. 매체가 다양해 너무 작거나 크게 인쇄되어 있는 활자의 경우 확대 및 축소를 통해 평균치로 만들어 비슷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겪는 고생이긴 하지만 그만큼 ‘원본 시집 작업’이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 교수는 백석 시의 백미로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을 꼽는다. 이 시에는 “체험의 진실이 주는 감동”이 있다고 한다(*'흰 바람벽이 있어'와 함께 많은 독자들이 백석의 절창으로 꼽는 시이다). 몰락한 외톨이가 된 처지에서 과거를 되돌아보고 현재의 쓸쓸함과 절망적 상황을 반추하면서 힘겨운 세상살이의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담겨있는데 “백석 개인의 경험인 것 같다”며 진실해서 감동을 준다는 것. 이런 시들을 1940년대, 50년년에 찍힌 인쇄자를 통해 옛 냄새를 맡으며 감상할 수 있다.

-원전 백석 시집에는 이 교수만의 해석도 있다. 시 ‘쓸쓸한 길’의 ‘거적장사’는 ‘거적을 팔러 다니는 장사’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거적으로 둘러메고 지내는 장사’로 해석된다. 이렇게 해석하면 시에 나오는 산가마귀의 울음과 서러운 땅버들의 소복 차림이 쉽게 이해가 간다. 이런 식의 다년간의 연구가 바탕이 된 주석들로 인해 백석 시의 원형을 느낌과 동시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마련된 것.

-이 교수는 이번에 <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라는 연구서와 원본 시집을 한꺼번에 냈다. 두 권을 한 번에 냄에 따라 주변에서 “와”하는 탄성을 보내는 반면, 내심 아쉬움도 있다. <정지용 원본 시집>은 그 이전에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를 먼저 내고 이후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해 보다 세밀하게 주석을 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이 생략된 것. 그래도 이 교수는 “1차적인 텍스트의 세밀한 분석과 이해보다는, 라깡이나 데리다 같은 외국 이론부터 끌어와 적용하는 요즘 연구자들이 텍스트의 정치한 해석이 중요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표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정지용과 백석을 졸업한 느낌이다”라고 말한 이 교수는 이제 김소월부터 정지용 백석까지, 정말 좋은 시, 계속해서 읽힐 만한 문학적 감동을 주는 시들을 모아 왜 좋은 지 뭐가 좋은 지를 해설하는 해설서를 내기 위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백석도 정지용도 모든 시가 다 좋지는 않다”며 “건질 것은 7~8편 아니냐”라고 말한 황동규 시인의 말이 발판이 됐다. 이 교수의 작업을 통해 숨겨진 좋은 시를 맛보는 한편, 너무 익숙해 그 맛과 멋을 잊었던 시들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길 기대한다.(박수진 기자)

06.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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