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신세용 - 인터넷 문화비평

* "마뉴엘 카스텔"에 대해 좀더 알아보려고 정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글인데 읽어볼만한 글인듯 싶어 퍼온다. 밑줄 강조는 내가 공감하는 부분이거나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물론 이견이 있다고 해서 별도의 반론을 제기할 형편은 못 된다. 

인터넷 문화 비평 (上)

바야흐로 컨텐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원래 ''컨텐츠(contents)''라는 것은 형식에 대응하는 내용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즘은 흔히 인터넷 상에서 주고 받는 정보의 묶음을 뜻한다. 단순히 글자만 나열하던 텍스트 위주의 컨텐츠조차 ''만들어 본 사람이나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이 엇그제같은데,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컨텐츠들이 예쁜 배경에 다양한 글씨, 삽입된 그림과 음악, 혹은 동영상까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작업들이 가능해진 요즈음, 세계 최고의 인터넷 보급율과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환경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 각종 정보 포탈들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랍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처음에야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조금만 돌아다녀 보면 무언가 지루하고 따분해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항상 새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마치 중독 증세처럼 접속하는 횟수가 늘어나긴 했어도 감흥은 갈수록 줄어들기 일쑤이다. 아주 특별히 가치있는 내용이라고 생각되지 않으면 구태여 잊거나 잃어 버릴까봐 애태우지도 않는다. 쉽게 접하기 힘든 컨텐츠들을 언제 어디서든 누구라도 편리하게 구할 수 있으리라던 처음의 취지와는 다르게,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은 그냥 어디엔가 있을 포탈 서비스 서버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버려 두고 정말 대단히 중요한 것들은 다시 종이 매체로 옮겨 모아 두거나 아니면 대개 그냥 잊어 버린다. 한 마디로 ''중요하지 않은 컨텐츠만 모여 있는 인터넷''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컨텐츠의 시대''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는 컨텐츠가 넘쳐나는 것 말고도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실제로 무가치한 컨텐츠''가 너무나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제의 무가치함''이란 금전적인 가치, 혹은 구하는 사람이 댓가를 지불할 만한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돈을 내고 구해 볼만한'' 컨텐츠의 양은 ''공짜로 볼 수 있는'' 양에 비해 대단히 적다는 뜻이다. 앞서 설명한 내용이 이용자들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특징은 컨텐츠 그 자체의 특징에 해당된다. 그만큼 ''공짜''가 많아서, 혹은 인터넷의 본래 속성이 그래서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러한 설명은 우리 자신의 어떤 면과 그것이 야기하는 인터넷 문화의 어떤 특성을 너무 쉽게 감추는 것일수도 있다.


잘못된 출발

우리가 만들어내는 ''컨텐츠''들이 대부분 공짜이기 쉽다는 사실은, 우리가 쉽게 말하지 않는 중요한 현실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인터넷 이용 행위 대부분이 일방적인 소비 행위라는 점이다. 모두가 어떤 ''컨텐츠''의 생산을 하는 듯 하지만 기실 그것은 소비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 형성의 첫 걸음이 아니라 그 자체가 그냥 일방적인 소비 행위라는 점이다. 보다 쉽게 말한다면, 컨텐츠를 올리는 행위들 중 그 행위로 ''돈을 벌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것은 바로 우리는 인터넷을 우리의 잉여 시간에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혹은 우리가 인터넷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잉여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시간이 인터넷의 이용과 직결되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건설 현장의 노동자, 소매점의 관리 직원, 공장의 기술자, 혹은 들판의 농부들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남는 시간''을 인터넷 이용에 할애하는 것이다. 만약 그 시간이 충분히 많지 않다면 우리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인터넷의 어떤 곳에서 제법 자주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인터넷에서의 컨텐츠 생산으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잉여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이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생산''한 ''컨텐츠''를 통해 만난다면, 그리고 그 컨텐츠를 ''공짜로'' 접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돈이 되지 않는 컨텐츠를 만들 만한 시간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터넷에는 학생과 주부들이 넘쳐 난다. 그리고 컴퓨터와 밀접한 직종의 사람들,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혹은 사무실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지급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사무직 인력들이 인터넷 컨텐츠를 공급하는 주축이 된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도 자신의 일이 너무나 바쁜 나머지 컨텐츠를 자주 가공해서 올리기 어려운 사람들은 애시당초 우리의 눈에 보이기도 어렵다. 어떤 정보 포탈에서든 그곳에서 보는 정보들은 대체로 ''댓가를 요구하기 어려운'' 정보들이며, 그런 정보들을 제공하는 데 들인 시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이들의 의견, 그러니까 이들이 만든 컨텐츠들의 내용이 서로 공감을 이루면 ''인터넷 문화'', ''인터넷 여론''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끼리 인터넷의 컨텐츠들을 서로 서로 평가하며 좋고 나쁨을 가려낸다. 일례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특정한 법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그는 어떤 곳을 찾아보게 될까. 법률 자체가 있는 사이트, 혹은 그 법률을 쉽게 설명해 놓은 사람들의 사이트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인터넷의 효용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특정한 법률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것이 적용되는 다양한 사례들을 검토하여 보다 나은 법률로 개정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인터넷에서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고자 한다면 어떨까.

언뜻 생각해 보면 멀리 있고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하나의 주제에 관해 손쉽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을 테니 시간적, 공간적인 거리감을 해소해 주는 도구로서의 인터넷은 이미 충분한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이 과연 그럴까. 그 사람이 만나는 대부분의 컨텐츠들은 학생이나 주부들, 혹은 생계와 무관하게 그런 주제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의 작품들이기 쉽다. 이렇게 해서 어떤 법률이 검토되고 재구성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법률들은 첨예한 이해 당사자들 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자들 중 ''인터넷 소비 행위''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여론만을 모으게 되어 버린다. 이렇게 모인 의견이 갖는 실효성은 또 얼마나 될까.


증폭되는 연쇄 반응 - 더욱, 더더욱 무가치하게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지속될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더 많은 곳을 돌아 다니고 더 많은 정보들을 흡수하여 그 중에 비교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컨텐츠의 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획득하려고 할까. 물론 그런 경우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정보 포탈이 비슷하다는 인식을 하고 특별히 여러 곳을 돌아다니지 않은 채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한 몇 곳 만을 주로 이용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정보는 오프라인에서 얻거나 최소한 확인만이라도 바깥 세상에서 하려는 관성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터넷 상에서 개별적으로 생산된 컨텐츠들의 생명력은 그만큼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이미 바깥 세상의 어떤 자료로부터 기인한 것이기 쉬우며 다시 한 번 바깥 세상에서 검증받지 않는 이상은 ''미확인 정보''에 지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보 포탈들의 경우, 컨텐츠 조회수의 평균치는 대략 100 에서 1000 사이를 오가게 되며 일만 단위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인기도의 기준이 된다. 비록 포탈 자체, 사이트 자체의 방문수는 몇십만이나 몇백만이 되기도 하지만, 컨텐츠의 확산을 생각해 볼 때 포탈이나 사이트의 방문 횟수 누적치는 별 의미가 없다. 정작 그러한 방문 각각의 경우에 대해서 전달된 컨텐츠의 양을 평가한다면 대동소이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포탈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모든 서비스를 매일 골고루 빠짐없이 한 번씩 이용하며 모든 분야의 모든 정보들을 일일이 둘러 보는가.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가. 잉여 시간이 무척 많지 않고서는 실제로 불가능한 이런 이용 활동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어떤 정보 포탈을 방문하더라도 눌러 본 링크를 다시 눌러 보며, 보았던 컨텐츠를 다시 보게 된다. 그 이상의 노력을 투자하여 다양한 정보를 소화할 필요를 느끼기에 컨텐츠는 이미 너무 ''무용''한 것이기 쉽기 때문이다.

컨텐츠를 생산하는 행위가 재화의 생산과 이어지지 않으며 이런 환경 안에서 컨텐츠를 소비하는 행위, 즉 그 컨텐츠를 조회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행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금 재화의 생산과 무관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행위와 연결되어 버린다. 이런 환경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첫째, 컨텐츠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무성의하고 다듬지 않은 컨텐츠를 무턱대고 생산하는 행위와 다른 사람의 컨텐츠를 옮기는 행위이다. 여기에서 컨텐츠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컨텐츠를 옮기는 행위는 다시금 보다 적극적인 반응으로 쉽게 연결되는데, 이것이 바로 두번째 반응이다. 컨텐츠들의 허브, 즉 교차로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느 정보 포탈에서든 보게 되는 컨텐츠들의 거의 대부분은 바로 이 두 가지 반응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속한다. 짧게 쓰고, 쉽게 쓰고, 간단하게 쓴다. 많은 그림들, 예쁜 글씨들, 컨텐츠 본래의 의미인 ''형식에 대응하는 내용''이 아니라 ''내용이 사소하더라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형식''에 치중하게 된다. 그리고 약간의 기술을 습득한 이후에는 자신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매우 많은 양의 컨텐츠들을 ''매우 효율적으로'' 퍼 옮긴다.

이러한 행위 각각에 대해 무슨 문제가 있다느니 시비를 가린다는 것은 불필요하다. 이것은 모두 우리가 즐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하나의 지적 유희에 속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들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 컨텐츠 문화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에 있다. 이제는 이러한 컨텐츠들이 하나의 주된 흐름이자 문화 코드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컨텐츠의 생산 행위를 급기야 ''주류와 다른'',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움직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컨텐츠의 생산은 더욱 무가치하고 힘들어지며 우리가 보는 컨텐츠들은 점점 자기 만족을 위한 소도구들로 가득차게 된다. 이제 누구도 인터넷을 통한 생산 행위에 기대를 걸지 않는다. 인터넷은 놀이 기구이며 여가 선용의 장이다. 그리하여 인터넷은 ''생산하지 않는'', ''쉽고 간편한 것을 즐기는'', ''잉여 시간이 많은'' 소비자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다. 이제 누가 눈독을 들일 것인가.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을 향해 달려드는 상인들에게 인터넷은 엄청난 홍보의 장으로 기능한다. 그럼 인터넷은 과연 홍보의 장, 마케팅의 도구일 뿐인가.


왕성한 지적 활동을 위해 창조된 세계 - 그러나.

본래의 인터넷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정보원들로부터 수집된 국가의 기밀을 한 곳에서 집중 관리하기 위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원격지에 위치한 동료 학자들과 연구 결과를 주고 받기 위해 무엇보다 유용한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국가의 정보 관리를 위해 만들어진 부분들은 일반에 공개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학자들의 왕성한 지식 창조 활동을 위해 성장해 온 인터넷이 기실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한 최초의 인터넷이었던 셈이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종류의 지식을 더욱 유용하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더 많은 기술이 개발되었고 도구들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 등 초기의 인터넷을 충분히 경험해 온 사회일수록 유용한 자료들이 풍부하고 실제로 그런 자료, 컨텐츠들을 인터넷에 제공하는 행위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인터넷 이용 기술이 달라서가 아니라 인터넷 이용 계층이 다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학자와 연구자들, 지식인들이 인터넷의 주 이용 계층이다. 기업체에서도 물론 사무 직원의 잉여 시간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 효과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고부가가치의 컨텐츠를 창출하는 집단, 경영 컨설턴트들과 회계 전문가들, 시장 분석가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그런 인터넷 공간에서라면 법률에 대해 토론하려고 할 때 다양한 대학의 법학 교수들,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20 쪽 분량의 시장 분석 자료가 몇천 달러에 판매될 수도 있고, 하다 못해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어느 지역에서 제빵업에 수십년간 종사해 온 전문 요리사가 자신의 비법을 알려 주기도 한다.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그는 이미 자신의 제과점을 경영하는 경영자이면서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온라인으로 주문 배달을 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비법 모두를 가르쳐주지 않으며 그 귀중한 정보를 더 많이 알기 원할 때 비용의 지불이나 자신이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를 제안할 수도 있다. 그는 그런 목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제공하고 댓가를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에게도 그런 행위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껏 그러한 현실을 충분히 만나고 있지 못할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은 우리의 환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미 인터넷이 가득차 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 이제는 그런 단계를 훌쩍 넘어서서 인터넷 자체가 재화와 시간과 사람들의 의지를 끊임없이 일방적으로 소모할 뿐인 거대한 소각장이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정보 포탈의 주 수입원은 광고, 쇼핑몰, 그리고 아바타와 같은 단순 구매 행위의 소산이며 이것에 성공하지 못하는 곳은 무작정 자본을 쏟아 붓다가 문을 닫게 된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수백만이더라도 그들 스스로 사회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인간 본래의 특성은 전혀 공유하지 않는 놀라운 세계로 변질된 셈이다. 그들이 밤이 새도록 열띠게 참여하는 행위들, 컨텐츠의 생산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엄청난 규모의 소비 행각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우리의 현 주소

당신은 이런 세계에 만족하는가. 이른바 ''네티즌''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며 마치 하나의 세력이 형성된 것인양 여론을 호도하는 오늘날 정치의 한 켠을 주시할 수 있다면 이 세계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모였다면 자신들의 생존을 영위하기 위해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인간 사회의 본래적 의무에 귀속하는 과제이며,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애초부터 모이지 말았어야 한다는 점마저 내포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가치있는 것, 그것을 제공하는 행위로부터 자신의 생존이 보장될 수 있는, 우리의 ''생존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생산되지 못한 채 막대한 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저 웅성거리는 마당이 있다는 것은 이들이 어느 때건 보여주게 될 엄청난 규모의 움직임과 그 결과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의미한다. 심지어 이 사회를 지탱하는 어떠한 지식 체계도 우리의 인터넷에 충분히 접목되지 못한 채 그러한 움직임과 결과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어떤 방법론도 찾기 어려울 것임을 암시한다.

지금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 각각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친근하고 호감이 가는 사람들일 수 있다. 때로 유용한 소식을 전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집단 전체를 하나로 보는 시각으로라면 이들은 사회의 정말 특별한 일부분, ''시간이 많고 막연한 소비 행위를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설령 자기 자신은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이곳을 찾았더라도 그 자신의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부분만이 이곳에 스며들게 되어 결국 집단 전체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만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여론''이나 ''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이 실제의 사회에서는 매우 소수의 감흥에 지나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그런 의견에 동참한 자신조차도 생활 대부분에서 전혀 별개의 의사 판단을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곳에 들어오면 어떤 흐름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일종의 소외감마저 느끼게 된다.

인터넷 문화 비평 (下)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광장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쉽게, 혹은 자주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좀더 수월하고 편리한 만남을 영위하려고 한다. 때문에 (上)편에서 바라 보았던 ''컨텐츠 교류''의 관점과는 달리 ''사람들의 만남''이라는 관점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인터넷의 문화적인 특성을 잘 대변해 주는 듯 하고, 이러한 관점에서라면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매우 융성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까지 써 놓은 윗 문장들은 모두 착각에 불과하다.


익명성의 문제

익명성(匿名性, Anonymity, 혹은 Pseudonymity와도 동일한 의미로 함께 쓰임)은 흔히 ''이름을 감추는 행위'' 정도로 인식된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실명제(實名制)''라는 말을 쓰는 것에서 그 인식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번역이 어찌 되었든,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익명성'', 즉 ''어나니머티''란 그보다 좀 더 넓은 뜻의 낱글이다. 이 낱글의 의미 안에는 사회 집단의 거대화, 매스미디어의 발달, 분업의 세분화, 그리고 도시 사회의 거대한 권력 구조를 암시하는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담겨 있다.

미국 죠지타운 법대의 데이빗 포스트(David G. Post) 교수가 1996년에 발표한 ''모여드는 지적 자산 (원제는 ''Pooling Intellectual Capital: Thoughts on Anonymity, Pseudonymity, and Limited Liability in Cyberspace'')''에서는 이러한 ''익명성(Anonymity)''의 문제를 포함한 인터넷의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잘 다뤄주고 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익명성에 대하여 법적으로 어떠한 접근이 이루어져 왔으며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면밀하면서도 과감한 결론을 유추해 내고 있다.

인터넷에서 익명성의 문제가 대두된 것은 이것이 거대 집단, 특히 정부의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곧바로 체제의 보안(security)과 사생활 보호(privacy)의 영역에서 첨예하게 다루어졌으며 막대한 비용을 들여 이를 관리하는 중앙 집중식 감시 모델의 성립이 요구되게 했다. 반면, 벤덤의 원형 감옥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인터넷의 변화와 관련하여 1988년 미 연방 법원이 맥클린타이어 여사의 유인물 배포와 관련한 판결(윗 문서 참조)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그것의 잘못된 적용보다 더 값진 것이다''라고 공표한 판결문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같은 해 미 연방 대법원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제리 폴웰 목사에 대한 래리 플린트의 명예 훼손 취하 상고심에 대해 원고 승소, 즉 래리 플린트에게 죄가 없음을 선고한 바 있다) 이처럼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논쟁은 표현의 자유와 체제 보안, 혹은 사생활 보호라는 양자의 필요성에 의해 매우 첨예하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익명성의 문제가 단순히 법적 책임 소지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 다시 말해서 특정 사건에 대한 유무죄 판결 정도에 머무른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법 제도는 나라와 문화마다 다르고, 또 다르게 적용되는 것인데 반하여 인터넷 상에서 드러나는 인간 사회 집단의 행태는 매우 유사하고 동질적인, 인간 본래의 속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수년 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익명성 논쟁의 얼개를 파악하는 것은 곧 우리의 인터넷 문화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구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익명성 논쟁의 본질은 ''어째서 익명성을 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근본적으로 거대 사회 집단에서 드러나게 되는 ''공공성(publicity)''은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특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공공(public)'' 스스로가 자신에게 순응하는 개인성은 보호하되 반대하는 개인성은 제거하려는 속성을 어느 정도 가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거대화한 사회 집단에서 전체가 추구하는, 특별히 배타적인 어떤 논리에 맞서고자 하는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이 제거될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반체제 운동가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활동 영역이 세분화되고, 발달된 매스 미디어를 통해 이런 영역들이 쉽게 합종 연횡하여 거대 집단을 구성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사회는 여러 구획, 여러 계층의 다분화된 권력 구조를 갖게 되었다. 어떤 구획의 어느 계층에서라도 특정한 개인이 다수의 논리에 맞서고자 하는 경우 그 개인은 다수로 대변되는 ''권력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 곧 해당 사회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여러 가지 생존 활동의 요건들을 일부분, 혹은 모두 말소할 수 있다는 위험을 끌어 안아야 하는 것이다. 익명성은 이러한 필요로부터 개인이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추구된다.

이처럼 익명성의 필요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집단으로부터 발복한 자연 발생적인 것''이라면 이것의 상대어를 ''인터넷 실명제''라고 할 수 있을까. 익명성의 상대 개념은 오히려 ''체제의 보안(system security)''이나 ''사생활의 보호(privacy protection)''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체제의 보안이나 사생활의 보호에 반하는 그 무엇, 혹은 ''표현의 자유(right of free speech)'', ''중앙 권력의 견제(restraint on central power)''가 익명성(anonymity or pseudonymity)의 본래 의미가 된다.


새로운 개념의 대두 : 사이버 인간(e-person)

앞서 소개한 데이빗 포스트 교수의 글은 ''가상 공간(Cyberspace)''에서 드러나는 익명성의 문제는 인간 사회에 잠재되어 있는 고유한 욕구와 필요들, 나아가서는 법적인 규약의 필요 문제 등에 적절히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또한 그는 이 글에서 기업 이론 분야에서 대두되었던 개념을 제시하면서, 적어도 가상 공간에서라면, 익명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법적 대상의 개념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커티스 카르노(Curtis Karnow)가 제안한 바 있는 ''사이버 인간(e-person, electronic persona)''의 개념이다.

사이버 인간의 개념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와 유사한 ''변종 인간''의 개념을 익숙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법인(corporation)''이라는 것은 경제 활동을 하는 법적 개인을 규정해 놓은 것으로 일반적인 회사를 뜻하지만 법적으로는 한 사람의 개인에 준하는 권리와 의무를 별도로 부여받는다. 사이버 인간은, 마치 경제 활동이 규격화, 거대화되고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발휘하게 된 ''기업''이라는 객체를 인간 사회의 구성원으로 흡수했던 것과 같이 사이버 공간이 인간 사회 전반에 걸쳐 연동하는 환경을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법인(法人)''과 같이 표현한다면 ''전인(電人)''이라는 다소 낯설은 이름이 되어 봄직한 이 사이버 인간은 가상 공간에서 존재하는 모든 인격체를 대변하는 하나의 규격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이버 인간은 현실 세계의 사람이 바로 드러나지 않으려는 익명성의 욕구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체제의 보안이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부과되는 의무를 짊어지게 할 법적 대상이기도 하다. 현실 사회에서는 반체제 게릴라로나 전락할 개인들도 사이버 공간에서라면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확보하고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물론 ''법인''과 같이, ''사이버 인간''도 권리와 책임의 어느 정도는 실제의 사람과 연결되어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법인''이라는 법적 대상이 규정되기 전에 이미 기업 활동이 있었던 것처럼, ''사이버 인간''이 어떠한 법적 개체로 규정되기 전인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 우리는 그러한 속성의 ''그 무엇인가''를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법인''처럼 ''전인(電人)''이 규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서 말한 ''사이버 공간에서의 자유도''를 누리지 못하는가? 우리는 이미 스스로 사이버 인간화된 자신의 복제물을 인터넷 상에서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훗날 어느 순간에 ''사이버 인간'', ''e-person'', ''electronic persona'' 등으로 불리게 될 미래형 객체의 원시 모델인 셈이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는 것은 사람의 활동에서 야기된 또 하나의 어떤 ''상(象, image)''에 불과하다.


눈속임

우리가 인터넷에서 만나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활동에서 비롯된 복제물들이다. 문자를 통해, 영상이나 음향, 혹은 좀 더 기호화된 음향 신호로서의 음성 정보들을 통해 우리는 그 대상이 말하고자 하는 ''사람''을 유추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누구도 완전히 성공할 수 없고 또한 누구라도 대강은 접근할 수 있는 이러한 눈속임의 규칙이 우리의 인터넷을 떠 받치고 있다. 그리고 그 규칙을 지탱하는 거대한 체제는 바로 ''언어''이다.

근대 언어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는 ''언어란 기호의 부분 집합으로서 기표와 기의에 의해 설명되는 명명(naming)의 구조체''라고 말했다. 즉, 언어란 그 언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기의)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기표)으로 나뉘어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가상 공간에서의 인식 대상이 ''사이버 인간''이라는 새로운 개체이며 이 사이버 인간들이 서로 의사를 소통하는 방식은, 영상과 음향 메시지를 넓은 범주의 ''기호성 언어''에 포함시킨다고 했을 때 ''언어''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공간(real world)''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답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관조적으로 고찰해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드러난다. 우리는 실제의 사람들을 만날 때 어느 정도의 ''언어적 거리감''과 이를 해소하는 여러 행위들, 표정, 손짓, 혹은 의복이나 심지어 몸의 냄새나 뇌파의 간섭을 통해서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런 것들이 가능할까.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금씩 나아질런지는 몰라도 출발선 상에서 바라볼 때 이것은 철저히 가려진 가면의 축제와도 같다. 더욱이 그 가면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한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취사 선택되는 특수한 경우에나 도움을 줄 뿐이다. 우리는 우리를 속이려는 우리 자신에게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언어에 익숙하고 인터넷에 익숙한 많은 이들은 실제 사회에서도 능숙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한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본래의 자신과 다르더라도 인터넷에서 보여져 온 모습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익명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이름을 밝힌다고 해소될까. 우리는 그 이름이 사실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성별, 혹은 생일과 나이는 어떨까. 살고 있는 지역,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 하는 일이나 직업을 밝힌다고 그를 실제의 사람으로 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거짓일 수 있으며 또 모든 것이 진실일 수 있으되 그 진실들조차 그 사람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사회 속의 개인을 명확히 ''지명''할 수 있는 정보들은 대체로 개인의 생존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기 때문에 감추어지고 삭제된다. 주민등록번호나 사회보장번호와 같은 사회 체제의 인식자들은 역으로 무수한 가짜 정보들이 난무하여 실제 가치의 고유성을 훼손시킴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 군중들을 향해 직장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하거나 사는 집의 위치를 알리는 일은 거의 없다. 자신의 정보를 보호하는 요령들은 가족이나 친지, 동료들의 정보 보호에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이것이 때로는 그들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인터넷 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때로 여럿일 수도, 때로 하나일 수도 있는 가상의 ''사이버 인간''들이다. 그리고 그 ''사이버 인간''들이 대화하는 대상 역시 내가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내고 있는 ''사이버 인간''이다.


사이버 인간들의 문화

이러한 현실의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 인터넷을 바라 본다면 그 문화의 특이성과 특수성에 대해 감탄할 수도 있고 때로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얼개가 나 자신, 또는 우리 각자에게 호의적이냐 위협적이냐가 아니라 그러한 사회가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의 속성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어떠한 사이버 인간들을 ''본능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에 대해 관여할 수 있다. 우리의 숨겨진 욕구일 수도 있고, 우리의 열렬한 이상향일 수도 있는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인터넷을 메우고 있다.

그것이 욕구에 의해서든, 바램에 의해서든 사이버 인간들은 그래서 항상 우리의 목적과 연관을 갖는다. 큰 범주에서 볼 때 내면적인 욕구 충족의 목적과 공공이나 특정 집단을 향한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 이것은 ''사이버 인간''들의 ''존재 가치'', 그들의 생존을 담보하는 ''동인(動因)''이며 ''모티브(motive)''이다. 우리의 인터넷 문화는 거대한 가면 축제의 문화인 셈이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저마다 말할 수는 있으되 그조차 가면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곳은 ''가상 공간(Cyberspace)''이다.

이제 생각해 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아니, 당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글쓴이 : 신세용 ( jewshin ) 
출처 :
http://assembly.joins.com/content.asp?board_idx=760&page=9&tb_name=d_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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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박홍규 - 폭력론: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폭력론: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논의를 중심으로

- 박홍규



1. 폭력의 뜻

국어사전에서 폭력이란 ‘함부로 난폭한 행동을 하는 힘’으로 풀이되고, ‘폭력을 써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단체’가 폭력단이라고 설명된다. 그리고 폭력주의자는 테러리스트, 폭력주의는 테러리즘이라고 한다. 즉 폭력은 테러라는 것이 국어사전의 이해이다. 그러나 국어사전에서는 폭력의 영어를 force라고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영어에서 폭력은 테러(terror)도 힘(force)도 아닌 violence를 말한다. 영어사전에서 violence란 ‘비공인의 완력이나 물리적 힘에 의한 강습’을 뜻하고, 공인된 군대나 경찰의 경우에는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이나 경찰력의 행사는 폭력이 아니게 된다. 이는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정의하는 입장과 같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폭력이 그런 것이다. 이러한 폭력 개념은 윤리나 정치 또는 법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관념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폭력을 힘의 비합법적인 행사인 악으로 보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이런 입장은 ‘구체적인 행동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라고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조희연·조현연, 「국가폭력·민주주의 투쟁·희생에 대한 총론적 이해」, 조희연 편, ꡔ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ꡕ, 함께읽는책, 2002, 26쪽.

그러한 견해는 이러한 비판을 하면서도 달리 폭력을 정의하지 않고서, 억압의 폭력(기성 지배체제가 휘두르는 제도적 폭력, 공격적 폭력)과 해방의 폭력(필연적으로 불법적인 저항적 폭력, 생존의 방어를 위한 폭력)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제도나 저항까지 폭력에 포함한다. 그러나 그런 개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폭력 개념을 구체적인 행동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견해에서 사용되는 폭력이란 개념은 매우 특수하기 때문이다. 즉 종래의 일반적인 폭력 개념은 억압의 폭력이나 해방의 폭력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고, 폭력이란 개념은 억압과 해방이라고 하는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서 특수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위 견해는 억압의 폭력을 전쟁, 고문, 살인, 학살 등으로 상징되는 ‘국가폭력’이란 말로 이해한다. 위의 책.

그러나 그러한 국가폭력도 구체적인 행동을 뜻하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위 견해는 그런 국가폭력을 낳는 근거인 유신체제와 같은 악법을 ‘제도적 폭력’이라고 보고 있으나, 법제도까지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 폭력에 대한 더욱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

폭력에 대한 구조적인 정의는 빈곤을 비롯한 사회적 부정의를 말하는 더욱 광범한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예컨대 Johan Galtung, “Violence, Peace and Peace Research," The Journal of Peace Research6(2), 1969, pp. 167-91. 특히 p. 168과 p. 173. 또한 N. Garver, “What Violence Is," in J. Rachels and F. A. Tilman (eds), Philosophical Issues: A Contemporary Introduction, New York: Harper &Row, 1972, pp. 223-8. 또한 빈곤과 관련해서는 S. Lee, 'Poverty and Violence', Social Theory and Practice 22 (1) 1996, pp. 67-82.

그것은 개인이나 제도에 의해 또는 사회 자체에 의해 가해지는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 심리적인 피해까지 낳는 것을 포함한다고 주장된다. 주로 평화 연구의 영역에서 평화를 저해하는 모든 반평화적 행태나 제도를 폭력으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것이 너무나도 광범하고 모호하다는 비판도 있다. C. A. J. Coady, “The Idea of Violence," Journal of Applied Philosophy 3 (1) 1986, pp 3-19.

이와 달리 폭력=테러라는 말은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정부가 이슬람 또는 그 일부 세력 그리고 북한 등을 비난하며 지칭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행사하는 힘은 ‘폭력’이 아니라 ‘정의’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슬람 등은 미국 등이 정의라고 주장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사용되는 폭력 논의는 그 판단이 쉽지 않으나, 어느 측이든 자신을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개념으로 사용함은 확실하다.

이처럼 폭력이란 말의 사용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적어도 법적으로 폭력은 불법이므로 그 합법성이 논의될 수 없다. 물론 법적인 차원에서도 가령 범죄의 피침해자가 자력구제를 가하는 경우라든가 또는 노동자나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와 같이 그 폭력에 대한 법적 판단이 반드시 구체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예외적이다. 그러나 그런 법적 평가와 무관하게 억압적 국가 권력 자체를 ‘합법적 폭력’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국가 권력 자체를 폭력이 아니라 합법적인 ‘권력’이라고 보는 것을 전제로 하여, 권력의 부당한 폭력적 행사에 대해서만 법은 적어도 원칙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여하튼 그런 부당한 권력의 폭력적 행사에 대해 비폭력을 주장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예컨대 인도의 간디처럼) 유효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대부분의 경우 더욱 큰 권력의 폭력적 행사를 초래할 수도 있고, 그런 경우에는 도리어 폭력적 저항(예컨대 알제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식민지 해방 투쟁)이 유효할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해방 전략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인 비폭력 주장은 반드시 유효한 것이 아니고, 폭력이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갖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여하튼 이 글은 폭력에 대한 엄밀한 정의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정의에 대해서는 각종 사회과학 사전이나 문헌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는다. 대신 이 글에서는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 아렌트의 폭력 논의를 중심으로 폭력에 대한 사상을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논의의 핵심은 국가폭력과 그것에 대항하는 저항폭력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개념에서 사용되는 폭력은 위에서 본 일반적인 폭력의 개념과는 다른 차원에 있다. 즉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의 행사와 그것에 저항하는 정당한 폭력의 행사를 대립시켜 그 범주에서만 폭력을 검토하는 것이다.


2. 국가폭력과 저항폭력

사회과학에서는 흔히 근대 국가를 일정한 영토적 공간에서의 힘(force)의 합법적 독점체로 규정한다. 예컨대 앤터니 기든스, ꡔ현대사회학ꡕ, 김미숙 외 역, 을유문화사, 1992, 276쪽.

여기서 힘이라고 한 force를 우리말 번역에서는 ‘폭력’이라고 하나, 그 폭력은 당연히 위에서 말한 법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학적, 사회학적 개념으로써 힘을 말하는 것이므로 위에서 말한 법적 폭력과는 구별해야 한다. 여기서 국가의 폭력이라 함은 법적 차원에서 권력이라고 불리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적어도 합법적 폭력인 권력인 한 그것을 불법적인 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 자체를 폭력 조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이는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리라.

문제는 근대 국가가 합법적인 힘(폭력)의 독점인 권력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경우에 따라 권력의 이름으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이고,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시민에 의한 저항의 폭력이 당연히 발생한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국가 기관이나 국가 관련 요원이 그 부당한 폭력에 의한 직간접의 희생자인 시민들에게 공포감과 복종심을 가질 수 있도록 폭력이나 위협행동을 의도적으로 행하는 것을 ‘국가폭력’(State Terror)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정당하게 저항하는 ‘저항폭력’을 대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항폭력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것이고 정당성을 갖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두 폭력의 대치는 흔히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다. 그 하나가 1920대의 독일에서였다. 즉 1917년 러시아에서 2월혁명(부르주아 혁명)과 10월혁명(프롤레타리아 혁명)을 거쳐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고, 이어 1918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11월 혁명이 터져 제국이 무너져 각지에서 혁명적 폭력 기관으로서 병사·노동자평의회가 수립되었다. 그 후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걸쳐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그에 의한 스팔타카스단의 폭력 봉기가 일어났으나 실패했다. 그런 가운데 프롤레타리아의 비권력적인 폭력에의 기대가 지식인들과 민중 사이에서 높아졌다.

이 시기에 와서, 시민적 권리=시민법의 주체로서 각 시민이, 자연상태에서 행사하는 ‘폭력’을 ‘법’의 경계선 안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독점시킨다는 전제에 선 근대 시민사회는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즉 국가는 그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권력의 본질인 ‘폭력’을 계속 추구하여 가장 야만적인 폭력인 제국주의 전쟁과 계급 갈등의 유지에로 나아갔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그것을 억제하기는커녕 도리어 국가가 주장하는 ‘이성’이나 ‘도덕’ 및 ‘법’이라는 것에 순응했다. 근대 국가의 시민법 질서 틀 안에서 ‘주체’로 자기를 형성한 ‘시민’에게는 법의 목표인 실질적인 ‘정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혁명적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즉 부르주아 국가 틀이 온존되고 시민이 그 속에 존재하는 한 법과 정의의 괴리는 극복될 수 없었다.

이 시기에 브로흐, 루카치, 그람시 같은 지식인들이 급속하게 공산당에 접근하고, 프랑크푸르트대학 사회연구소에 모인 폴록이나 호르크하이머 같은 젊은 학자들이 네오 맑스주의적인 관점에서 계몽된 시민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게 된 배경에는, 폭력적인 국가 권력 앞에 무력한 부르주아 시민문화에 대한 절망이 있었다. 따라서 부르주아적인 권력 쟁탈과는 무관한 ‘정의’를 목표로 한 프롤레타리아 ‘폭력’의 가능성을 논의하여 ‘근대’라는 감옥을 탈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대 지식인의 급선무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서 벤야민의 폭력론이 나왔다.

3. 소렐과 벤야민의 폭력론

벤야민의 폭력론은 조르주 소렐의 ꡔ폭력론ꡕ(1908)에 근거한다. 소렐은 공포 정치로 변질된 프랑스 대혁명(1789)의 담당자인 부르주아에 의한 국가 권력의 남용과,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해 ‘법’의 지배를 타파하고자 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을 명확히 구별한다. 즉 부르주아가 혁명적 정치 행동을 야기해도 그것은 ‘법’에 의해 기존의 국가 형태를 온존시키면서 권력을 특권자의 것으로 유지하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나, 프롤레타리아의 폭력은 ‘법’을 떠나 어떤 종류의 국가 권력 형태도 용인하지 않고 순수한 아나키를 지향한다고 소렐은 주장했다.

이러한 소렐의 주장 역시 20세기 초엽 프랑스의 위기 상황을 의식한 것이나, 소렐의 폭력론이 나온 지 13년 뒤에 쓰여진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은 위에서 설명한 1920년대 독일의 현실적 위기에서 소렐의 논의를 발전시킨 것이다. 소렐의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법’에 의하느냐 아니냐 하는 점이다. 이를 벤야민은 Rechtssetzung이라는 개념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를 법차정(法借定)이라고 번역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따르는 견해가 있으나, 차정이란 우리말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니 우리말로 삼기에는 어색하다. 여기서는 반드시 정확한 번역이라고 볼 수 없으나, 편의상 ‘법준거’라는 말로 옮기도록 하자. 벤야민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법준거에서 폭력의 기능은 아래와 같은 의미에서 이중적이다. 즉 법준거는 폭력을 수단으로 하여 법으로 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추구하나, 목적이 된 것이 법으로 제정된 순간 폭 력을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엄밀한 의미에서 게다가 직접적으로 폭력을―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리고 은밀하게 폭력과 결부되어 있는 목적을 권력의 이름으로 법으로 제정함에 따라―법준거적인 폭력으로 만들게 된다. 법 준거는 권력준거이고, 그 점에서 폭력을 직접 선언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정의가 온전 히 신적인 목적준거의 원리임에 대해 권력은 온전히 신화적인 법준거의 원리이다. Walter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Angelus Novus=Ausgewälte Schriften 2, 1966 Frankfurte a. M. (Shurkamp), S. 61.


벤야민은 자기 목적화 되지 않는 폭력의 최종 도달 목표인 ‘정의’와, 일단 준거되어 폭력적인 ‘권력’ 행사의 근거로 변한 ‘법’을 구별한다. 이는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justice가 라틴어의 ius에서 파생된 말인 것과 달리 독일어에서는 각각 Gerechtigkeit와 Recht가 구별되는 점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법은 권력자의 ‘법 이전 특권’(Vor-recht)을 유지하기 위해 그 권력이 미치는 경계선을 정하고 고정화한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침범하는 자를 범죄자로 보고 속죄를 요구한다. 이를 벤야민은 신화적인 법이 지배하는 세계로 본다. 그 세계에서 법=권리의 주체인 각자는 시원적인 폭력을 통해 준거된 법의 경계선 안에 머물도록 강요된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벤야민은 이러한 법적 폭력을 법 수호적 폭력(기존의 법을 유지하기 위한 폭력)과 법 형성적 폭력(새로운 법을 제기하는 폭력)으로 구분하면서도 그 둘 모두 법에 의한 지배를 전제함으로써 지배 권력관계를 재생산하는 신화적 폭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신화적이란 법을 변화시킴에 의해 지배 권력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법에서 흔히 실정법과 자연법으로 구분하는 것에 각각 대응된다. 즉 벤야민은 실정법과 자연법에서 폭력의 개념이 모두 정당한 목적과 수단의 관계라는 도그마를 공유한다고 비판하고, 시인된 합법적 폭력과 시인되지 않은 불법적 폭력의 구별이 법과 관련된 폭력성을 간과한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반면 벤야민이 신적 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법과의 연관을 부정하는 혁명적 폭력으로서, 법적 폭력-신화적 폭력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다. 즉 법의 경계선을 파괴하고 ‘법권력’ 하에서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폭력이다. 파괴적인 작용을 결과한다는 점에서 신적 폭력도 신화적 폭력과 유사하나, 전자가 파괴적인 것은 오직 재화, 법=권리, 생활과 같은 외적 사항과 관련되고, 생명 있는 것의 영혼을 파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즉 신적인 폭력은 희생의 피를 흐르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대립을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영역에서 신화에 신이 대립하듯이, 신화적 폭력에는 신적인 폭력이 대립한다. 게다가 모든 점에서 대립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에 준거하는 것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을 파괴한다. 전자가 경계를 설정한다면 후자는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를 만들고 속죄하게 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죄를 제거한다. 전자가 협박적이라면 후자는 충격적이고, 전자가 피의 냄새를 풍긴다면 후자는 피의 냄새가 없고 치명적이다. 위의 글, S. 63.


이러한 신적인 폭력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신화적 폭력과 달리 명확하지 않다. 벤야민 자신은 그런 신적인 폭력의 보기로서 「폭력비판론」의 마지막에 구약성경의 예를 들고 있다. 즉 민수기(民數記)의 전설에 나오는 신의 심판이다. 그것은 예고도 협박도 없이 특권자인 제사장(레비) 무리에게 퍼부어져 그들을 섬멸시키는 심판이다.

따라서 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법과 결별한 정의를 긍정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요청되는 어떤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문제는 신적 폭력이 목적과 수단이라는 관계를 면제받는 순수 폭력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다. 이를 데리다도 ꡔꡔ법의 힘ꡕ에서 비판한다. 즉 그에 의하면 벤야민은 법을 창설하는 ‘힘의 일격’이라는 것의 근거 없음을 폭로하여 법을 탈구축하면서도 다시 탈구축할 수 없는 정의를 내세워 법과의 구분을 시도했으나, 그 정의란 것이 다른 법으로 타락하지 않을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신적 폭력이라고 하는 것도 언제나 신화적 폭력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그가 말한 신화적 폭력에 의해 근대 초월을 목표로 한 나치스가 집권하여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서도 프롤레타리아를 주체로 하는 비권력적인 신적 폭력에 의한 폭력혁명의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복제기술시대의 예술작품」(1936)의 마지막에서 나치즘에 의한 정치의 ‘미학-감성화’에 대해 프롤레타리아는 그와 반대로 미학의 정치화에 의해 응하리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현실의 역사는 반대였고, 결국 벤야민은 현실에 대한 비관 끝에 자살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벤야민이 그 의도와는 전혀 거꾸로 그가 반대한 나치스의 이데올로기에 접근했다고 하는 아이러니한 점이다. 즉 나치스에 의해 폭력에 의해 계몽화된 시민사회의 법질서를 근본으로부터 파괴하고자 하는 혁명적-메시아적 근본주의가 점증하는 가운데 벤야민의 주장은 나치스의 주장, 특히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결과적으로는 일치되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가 주장한 신적 폭력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폭력 혁명도 이미 1930년대에 스탈린주의에 의해 그 허구성 역시 명백히 드러났다고 하는 사실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4. 데리다의 폭력론

1989년은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맞은 해였다. 그 해 데리다가 미국에서 행한 「법에서 정의로」라는 강연과, 이듬해 발표한 「벤야민의 이름」이라는 논문을 합쳐 발표된 책이 데리다의 ꡔ법의 힘ꡕ(1994)이었다. 1989년 프랑스는 1921년 독일의 벤야민처럼 권력으로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폭력을 논의하기에는 그 역사적 상황이 너무 달랐다. 당시 2세기에 걸친 프랑스 혁명의 성과가 요란하게 축하되었으나, 혁명이 초래한 두 가지 정치 형태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특히 사회주의가 패배한 시점이었다. 즉 벤야민이 주장한 프롤레타리아의 순수한 폭력에 의해 비권력적인 최종의 해방을 목표로 삼았어야 할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 이상으로 자신에게 권력을 집중시킨 결과, 당시 폴란드에서 보듯이 노동조합 총파업 등을 통한 프롤레타리아 법질서가 붕괴되었다. 게다가 데리다의 첫 강연이 있고 난 직후 베를린장벽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데리다는 벤야민을 비판한다. 우선 그는 벤야민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을 구별함은 그리스적인 것과 유태적인 것의 이분법에 대응하고, 벤야민의 관점은 유태적인 것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그런 유태적 관점에 입각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이 그렇듯이 벤야민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했으나, 그 파괴 이후 다시금 법준거의 권력으로 타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데리다는 비판한다.

데리다는 벤야민이 말하는 폭력(Gewalt)이 독일에서는 입법권(gesetzgebende Gewalt), 영적 권위(geistische Gewalt), 국가권력(Staatsgewalt) 등과 같이 권력이나 권위를 뜻함을 지적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기성 법질서에 근거한 권력이 폐기하는 ‘신적 폭력’은 그 폐기를 선언한 그 순간부터 그것을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변모한다. 즉 폭력의 선언은 동시에 법준거의 선언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적 법권력으로 변한 폭력은 역사 과정 속에서 부패하고 신적인 순수함으로부터 먼 것임을 폭로한다고 데리다는 본다. 벤야민은 법권력으로 준거된 그러한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신적 폭력을 요구하지만, ‘신적’인 것은 기성의 신화적 폭력의 폐기를 선언하는 순간 스스로 신화적인 성격을 갖게 된다고 데리다는 비판한 것이다.

여기서 데리다는 폭력이 나타나는 순간만은 순수하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기한다. 즉 벤야민이 순수한 신적 폭력에 역사적인 희망을 거는 것과 달리, 데리다는 그 순간을 특권화하지 않고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하는 법 앞에서의 ‘결단’ 속에서 폭력에 의한 단절의 순간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데리다는 그 순간에 정의를 향한 일보를 딛게 되나, 동시에 그 순간은 광기를 가져 폭력을 증폭시킬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그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데리다는 정의를 향한 발걸음에서 시간적으로는 물론 공간적으로도 무한한 타인에 대한 책임이 수반된다고 주장한다. 법을 개혁하고 혁명을 반복해도 법 자체의 근원적인 부정적 성격은 근절되지 않고 정의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가 되기 마련이라고 보면서도, 데리다는 타인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갖는 결단을 통해 다시금 정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리다가 말하는 정의란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데리다의 주장은 그의 탈구축 또는 해체와 정치, 윤리, 법의 관계를 논의한 것으로 주목된다. 그러나 ‘탈구축이 정의이다’라는 그의 결론은 대단히 난해하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경험’은 어떻게 가능하고, 그것을 정의로 삼는 순수한 결단의 폭력이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의 논의가 모두 그렇듯이 논리적으로 그 내용을 확정하기란 어렵다. 이상의 주장에서도 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분명한 점은 그가 벤야민의 메시아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벤야민식의 메시아주의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논리 이전의 심정적 또는 상황적 동감을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사실이다. 특히 벤야민의 「폭력비판론」이 1968년 범세계적인 학생운동에서 경전처럼 읽힌 점, 또한 데리다의 폭력론 역시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그 전후의 모든 사회적 저항에서 그들의 주장이 정당화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광주민중저항을 비롯한 저항운동에서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원용될 수 있다.

특히 데리다의 논의 중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서구 근대의 이성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비이성적인 폭력에 의해 행사되었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데리다는 이를 ‘국내 식민지주의’라고 한다. 데리다에 의하면 그것은 언어에 의해 강요된 폭력이다.

주지하듯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법이나 국가법을 수립하는 폭력은, 국가에 의해 재편성된 소수 민족 또는 소수 종족에 하나의 언어를 강제하는 것에 있다. 프랑스에서 이 사태는 적어도 두 가지 경우에 생겼다. 그 최초의 것은 1539년의 왕령이 사법과 행정 용어로 불어를 강제하고 라틴어를 금지함에 의해 군주제 국가를 통합한 것이 었다.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프랑스혁명이었다. 당시 언어의 통일은 가장 억압적인 교육상의 전환을 초래했다. Jacques Derrida, “Force of Law: The "Mystical Foundation of Authority," in Drucilla Cornell, Michael Rosenfeld, David Gray Carlson eds., Deconstruction and the Possibility of Justice, New York, 1992, p. 21.


데리다는 ‘법에 있어서, 그리고 법에 관한 두 종류의 폭력’을 구별한다. 즉 ‘법을 수립하는 폭력, 곧 법을 제정하고 배치하는 폭력과, 법을 유지하는 폭력, 곧 법의 영속력과 강제력을 유지하고 확정하며 보증하는 폭력’이다. 위의 책, p. 31.

이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근대성 역사의 특징이다. 제3 세계에서도 제1 유형의 폭력―수립하는 폭력―이 제2 유형의 폭력에 대한 제3 세계 민중의 관계에 의해 대부분 결정되고 있는 것은 쉽게 발견된다. 문제는 그러한 폭력이 식민 종주국에서는 ‘국내 식민지주의’로 나타나도 근대화를 뜻했으나 식민지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 점이다. 예컨대 제3세계에서는 여전히 국가 기구의 법적 강제인 경찰에 의해 고문이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근대적 역사관은 실패한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은 피억압자로부터 배우는 것이 된다. 물론 근대적 역사관이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분배에 관한 정의의 관념 그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은 시민, 민주주의, 복지를 둘러싼 근대적 개념이 모든 계급―특히 피억압 계급―에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관이 진정으로 피억압자의 대화에서 생겨난 것인지는 의문이다. 대화는 목적론적이어서는 안 된다. 즉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선험적으로 옳다는 것을 전제해서는 안 된다.

극단적으로 피억압자가 혁명에 이르게 되는 경우라도 그들이 그 혁명에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람시는 그 점을 인정하고서 피억압자는 혁명적 지식인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피억압 계급은 스스로가 <국가>로 되기까지 통일되어 있지 않고 통일될 수도 없다. 그 역사는 필연적으로 단편화되고 있는 삽화풍이다. 이러한 집단의 역사적 활동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잠정적 단계의) 통일에의 경향이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경향은 지배자 집단의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중단된다. 실제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피억압집단은 자신들을 방위하고자 급급하는 것에 불과하다. Antonio Gramsci,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trans. and ed. Qui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New York, 1971, pp. 52, 54-55.

우리는 국가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에 살고 있고 피억압자는 그 현실과 결부된 지식 형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지식 형태는 국가나 정부, 전체와 결부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계몽적 합리주의의 유산과는 결별하는 것이어야 한다. 결국 데리다의 논의는 지식인 논의로 나아간다.


5. 파농의 폭력론

이상은 서구에서의 폭력론에 대한 검토이다. 우리는 식민지 차원의 폭력론으로 파농의 그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파농은 식민지화란 어떤 땅에 대포와 기계의 힘으로 침략해온 타종족이 그 원주민을 지배하여 토지와 인간을 사유화하는 폭력이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식민지 사회란 포식과 기아로 분할된 사회, 곧 그 경계가 경찰과 군대에 의해 직접 유지되는 인종차별적인 폭력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곳에서 원주민은 절대악이고, 반가치이며, 동물이나 물건에 가까운 수동적인 존재, 요컨대 비인간적인 것으로 식민자에 의해 조작된 대상이다. 이러한 식민지화 역사의 배후에, 식민지 사회 구조의 근본에는 식민자=타자의 폭력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해방하고 그 주체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식민지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고 파농은 주장한다. 즉 비식민지화란 폭력 현상이고 인간 종족의 교대를 뜻한다. 즉 식민지화 역사를 통하여 심신이 모두 억제되고 고통당하며 동물화 되고 사물화된 원주민이 자신의 비인간성에 눈을 떠서, 내면에 저장된 폭력(내면화된 타자의 폭력)을 공격성(반대 폭력)으로 반전시키는 운동이 비식민지화 운동이라고 파농은 주장한다.

요컨대 폭력이 폭력을 낳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비식민지화 과정은 식민지화 과정 속에 이미 잠재적으로 존재하며, 그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과정이 된다고 파농은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식민지주의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이성을 부여받은 육체도 아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의 폭력으로서, 그것 이상으로 ‘더욱 큰 폭력’에 의해서만 굴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더욱 큰 폭력’을 구현하고 인수하며 담당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파농은 먼저 식민지 시대에는 정당, 지식인, 상인 등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나, 참으로 혁명적인 폭력을 구현하는 자는 농민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음의 해방 투쟁기에는 도시에서 산골로 도망간 지식인과 소수의 활동가가 농민을 만남에 의해 인민의 의식이 전진한다고 본다. 이어 봉기가 폭발하면 도시 주변부에 집결하는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통하여 그것은 확대된다고 주장한다.

파농은 식민지 사회에서 도시 프롤레타리아, 기술자, 관리 등은 특권층으로서, 식민지주의와 타협하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농민대중, 그리고 토지를 수탈당하여 도시주변을 방황하는 부랑자, 범죄자, 실업자들이 식민지주의의 이익으로부터 제외되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존재라고 본다. 그들만이 비타협적이고, 오직 폭력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농은 비식민지화 운동을 단순히 인간 종족의 교대로만 본 것은 아니다. 이 운동이 동시에 ‘새로운 인간의 창조’라는 것, 존재의 ‘근본적인 변경’이라는 것, 곧 가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이념이나 추상의 차원이 아니라 ‘대지에 저주받은 자들’이 비식민지화 운동을 통하여 형성하는 역사적인 존재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비식민화 운동이 폭력현상인 바 그 존재는 또한 폭력적 존재이기도 하다.

파농에 의하면 실제로 ‘새로운 인간’은 먼저 ‘식민지화된 신체’로 제출된다. 바로 굶주리고 억눌린 존재로서이다. 그러한 존재는 하루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에 대한 최초의 반응은 싸움과 범죄 및 부족 항쟁으로, 또한 원시적 종교와 마술에 대한 신앙 및 집단무용으로 나타난다. 억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억압에 대한 눈뜸은 늦어지고 장기화된다.

파농과 달리 혁명 이론가들은 그러한 타락과 일탈 및 후퇴를 직시하지 않고 자각은 직선적으로 달성된다고들 했다. 그러나 파농은 종교도 주술도 ‘아편’으로 보지 않고 몽상도 광기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이 모든 것을 폭력의 과정으로, 반대 폭력에 대한 성숙으로 ‘새로운 인간의 창조’를 향한 최초의 단계, 곧 ‘폭력의 분위기’로 보았다. 파농에 의하면 이러한 ‘폭력의 분위기’는 차차 ‘행동화한 폭력’으로 나아간다. 그 계기는 식민지의 탄압이다. 여기서 폭력은 신체의 긴장과 이완, 집단 무용이나 축제로는 처리될 수 없다. 먹느냐 먹히느냐가 지배하는 반란의 초기 단계에 신체상 중요한 것은 노동이다. 그러나 여기서 노동이란 생산 노동을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식민지체제에 협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어 태만이야말로 비협력이자, 저항으로 평가된다. 반대로 원주민에게 가치 있는 노동이란 식민주의를 타도하는 노동이다.

파농은 말한다. ‘새로운 인간’, 곧 ‘완전한 인간’은 근육과 두뇌를 분리시키지 않고 노동 속에서 양자를 통일하는 인간이고, 능률과 효율이 아니라 자기 신체와 두뇌의 리듬에 따라 노동하는 인간이다. 그리고 도구나 기술에 지배당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받아들이는 목적에 따라서만 도구나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다. 또한 일-행동의 계획으로부터 실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타인과 함께 의식적으로 참가하고 그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인간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의 자율적인 구성원으로서 타인에 대한 겸양, 배려,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동료와의 협력이나 의사소통에 가치를 두는 인간이다. 나아가 타자-타민족의 착취와 지배를 거부하고 타자-타민족과의 공생을 원리로 삼는 인간이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상이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서도 불가능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율적인 공동체와 완전한 인간의 미래는 그 어느 것도 아닌 제3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파농은 믿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파농의 희망 역시 제3 세계에서 과연 현실적으로 구현되었는지 의심할 수 있다.

6. 아렌트의 폭력론

아렌트는 유럽과 달리 정당한 법의 근거를 폭력을 비롯한 다른 것에서 구하려는 전통이 없는 미국을 통해 위에서 지적한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을 비판하면서 나름의 해결을 강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언뜻 보면 아렌트는 소렐 등이 말한 저항폭력을 부정하고, 그들이 국가폭력이라고 한 권력을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그녀의 ꡔ폭력론ꡕ(1970)에서 중점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ꡔ인간의 조건ꡕ(1958)을 비롯한 그녀의 정치사상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먼저 ꡔ폭력론ꡕ에서 그녀는 폭력은 권력과 대립한다는 전통적인 주장을 전제한다. 그녀에 의하면 폭력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나,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고 행동하여 생기는 것으로 그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권력이 폭력을 사용하면 이미 권력이 아니고 정당성도 없다. 그녀에 의하면 소렐 이후 폭력론이 등장한 것은 근대 사회의 이성이나 진보라는 획일화에 의해 토론과 행동을 통한 공공권이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국을 그러한 근대적 전통에서 해방된 개인, 그 개인이 자유로운 의사를 서로 표명할 수 있는 공적 생활에 기초를 둔 공화제의 원리로 체현한 나라로 본다. 물론 그녀는 미국에도 많은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을 당연히 인정하나, 이는 자유의 영역인 정치=공공권과는 무관한 사회의 영역으로 본다.

아렌트는 ꡔ인간의 조건ꡕ에서 그런 정치의 이상을 고대 그리스에서 생긴 공공권에서 발견한다. 그녀가 말하는 공공권이란 생물적 욕구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언론과 설득에 의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공간을 뜻한다. 반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서 가계가 추구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근대 국가에 와서 가계가 가정을 뛰어넘어 국가의 관심사가 되어 사회적 영역이 나타났고, 인종차별과 같은 폭력은 그런 영역에서 문제된다고 아렌트는 본다.

아렌트는 근대 시민혁명의 두 가지인 1776년의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본다. 그녀는 우리가 말하는 자유를 Liberation, 즉 물질적으로 결핍된 상태나 물리적으로 억압된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소극적 개념과, Freedom, 즉 자신의 정신적 활동의 단서를 스스로 만들고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스스로 형성해 가는 능동적인 개념으로 구별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Freedom이 중심이었으나, 근대 국가에서는 Liberation이 중심이 되었고, 이는 맑스를 거쳐 사회주의 혁명에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는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19-20세기 질서를 묘사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그녀가 말하는 19세기 서구형 국민 국가는 자본주의를 강력히 추진하여 제국주의적 팽창을 결과했다. 그것은 또한 인종주의와 결탁하여 ‘피와 땅의 공동체’로 변질되어 반유태주의를 격화시켰고, 마찬가지로 제국 사이의 대립도 격화시켜 제1차대전을 낳았다. 그 후 20세기는 경찰 조직과 강제수용소를 통해, ‘국민’의 인종화와 전쟁에 의해 대량 생산된 무국적자=무권리자를 국민에서 배제했다.

아렌트에 의하면 프랑스 대혁명 시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는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 사이를 무시하고 개인의 마음 속 문제인 동정을 통일적 원리로 삼아 인간을 일반의지를 갖는 공동체로 조직하려고 한 시도였다. 그녀는 이러한 ‘동정에의 열광’에 근거한 정치가 폭력적 충동을 인간의 자연적 본능으로 보아 인민을 하나의 육체처럼 움직이고 하나의 의지를 갖는 것처럼 행위하는 영혼으로 변모시켰다고 본다. 어떤 이성적 제약도 받지 않는 이 육체는 스스로에게 동화할 수 없는 것을 폭력에 의해 파괴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폴리스적인 자유와는 상용될 수 없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킨 프랑스 혁명에 반해 미국 혁명은 ‘자유의 창설’이라는 본래 목적을 잃지 않고 계속 추구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그녀에 의하면 미국에도 빈민은 존재했으나 프랑스나 독일처럼 비참하지는 않았고, 경제적 격차는 정치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여겨져 빈곤으로부터의 해방 요구에 의해 혁명의 방향이 결정되거나 변질되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관심도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자유의 창설에 대한 참여였다는 것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미국에서도 인민(people)은 존재했으나, 그것은 프랑스처럼 자연적 충동에 의해 하나의 의지를 갖는 육체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성을 보증하는 자유로운 결합체를 의미했다. 이는 제퍼슨이나 매디슨 같은 초기 대통령들이 정치적 자유의 본질을 복수성에서 구한 것에 알 수 있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즉 그들은 상이한 의견을 갖는 사람들 사이의 교환이 있음으로 비로소 상대를 변론에 의해 설득하고자 하는 활동의 계기가 생긴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와 같이 일반의지가 지배하는 여론에는 다양성이 포함될 여지가 없으나, 미국 공화제에서는 처음부터 전원일치의 허구가 거부되고 서로의 논의를 통해 개인적인 이성의 잘못을 교정하면서 공공생활권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즉 상이한 의견의 당파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미국 통치형태의 특징이라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아렌트는 자신의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존재에 의해 형이상학적으로 근거되는 삶의 방식을 인간성에 반하는 것으로 거부한다. 그녀에 의하면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해 일원적으로 지배되는 세계에는 복수성에 근거한 인간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따라서 종교적, 초월적 권위에 의해 외부로부터 정당화된 중세 기독교 세계의 통치체제는 인간성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아렌트는 근대 혁명 속에서 탈형이상학적, 세속적인 정치권력 창설의 계기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러나 현실 혁명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기 통치의 근거를 자신이 창설한 자유가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적인 원리에서 구한 혁명 전권은 형이상학에 빠져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공간을 스스로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반의지’의 표현이라는 여론에 의해 자기 통치를 신성화하고자 한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가는 좌절했다고 아렌트는 분석한다. 즉 앙시앙 레짐의 절대군주제로부터 자기를 해방하고자 한 그들은 절대군주를 대신하는 새로운 절대자를 실체적으로 창출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에 의하면 식민지 미국에서는 그 지배자인 영국에서 절대군주제가 없어졌고 ‘법에 의해 제한된’ 군주제가 있었던 탓으로 미국인들은 ‘법을 초월한 절대적 지배자’라는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 반면 더욱 강력한 권위를 갖는 절대자를 인민에게 구한 프랑스에서는 자신의 절대성과 동화될 수 없는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정치 이전의 자연적 폭력’으로 변질되었다.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절대화된 군중의 폭력은 절대군주제를 붕괴시켰으나, 동시에 같은 폭력에 의해 혁명 정부 자체가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정치에서 절대자가 담당하는 기능을 다음 둘로 본다. 하나는 인간에 의한 법제정을 둘러싼 악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는 악순환이다. 첫째는 입법의 타당성과 합법성을 외부, 즉 ‘더욱 고차원의 법’에서 구하는 것으로서 인위적인 법을 언제나 다른 권위에서 구하는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불완전하므로 결국은 자신의 이름으로 둘째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게 된다. 즉 인민의 이름으로이다. 이는 바로 앞에서 본 소렐이나 벤야민 또는 데리다까지의 ‘신화적 폭력’이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아렌트는 혁명에서 절대자는, 이러한 두 가지 악순환을 회피하여 합법적인 통치체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경우 논리적으로 요구된다고 본다. 즉 근대초의 절대군주제는 중세 기독교 세계의 신적인 합법성을 차단하고 세속 권력을 수립하고자 하여 생긴 것으로 중세적 권위의 잔재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 혁명에서는 절대군주제 대신 군중=인민이 절대자로 나타났다. 이는 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연적 폭력을 해방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인민이 권력의 담당자로 여겨졌으나 법의 원천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고 아렌트는 주장한다. 대신 법은 풀뿌리 차원의 인민의 의지를 넘는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졌고, 그 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혁명 과정과 함께 갱신되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즉 Freedom의 영역을 새로이 창설하고자 하는 혁명운동의 과정이 법의 원천이고 ‘보다 높은 법’은 언제나 생성되는 것이었다. 아렌트에 의하면 실체화되지 않고 언제나 자기생산을 계속하는 법이 ‘인민에 의한 통치’를 구속하고, ‘정치 이전의 폭력’을 봉쇄하는 메커니즘이 생김에 의해 미국 혁명은 절대자를 둘러싼 세속화된 형이상학에 빠지지 않았다. 즉 절대자가 실체적으로 표상화되지 않았기에 권력이 폭력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렌트가 말하는 역사의 새로운 시작은 역사를 초월한 절대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창설’하는 ‘행위’ 그 자체 속에 있다. 즉 행위가 절대이지 주체가 절대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서 본 소렐-벤야민-데리다의 문제는 아렌트에 와서 자신의 창설 행위 자체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미국 혁명에서 해답을 보이게 된다. 아렌트는 ꡔ공화국의 위기ꡕ(1972)에서 미국 헌법의 기본으로 시민적 불복종을 다루었다. 즉 그것은 위법적 폭력행위가 아니라 헌법 옹호의 행위로서 합법화된 것이었다. 여기서 폭력론은 시민적 불복종의 논의로 나아간다.


7. 맺음말

지금까지 소렐, 벤야민, 데리다, 파농의 저항적 폭력론과 그것에 비판적인 아렌트의 폭력론을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나름대로의 현실 상황에서 생겨난 논의들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 어떤 주장이 반드시 옳고 그르다고 재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나, 필자의 입장은 아렌트의 주장에 가깝다. 여하튼 위에서 언급하지 않은 한 두 가지를 더하면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국민형성의 폭력적 구조 문제이다. 근대사에서 국민형성의 폭력이란 ‘국민’이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전쟁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쟁이 비상사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생활과 관련된다고 하는 점이다. ‘전시동원’이란 신체의 동원으로서 생활의 규율화를 통해 가능하고, 생활 규율로부터 군사 규율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군사 규율은 생활 규율로 다시 내면화된다. 우리는 그러한 폭력적 구조를 식민지 시대와 군사독재 시대에 경험했고, 그러한 구조는 분단에 의한 냉전 의식이 여전히 팽배한 지금도 상당 부분 온존되고 있다.

이러한 생활 구조적인 폭력성은 특히 성의 측면에서 나타난다. 근대 국가가 성을 제도로써 통제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전시성 성폭력인 ‘종군위안부’ 문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 이전부터 소위 ‘훌륭한 국민’을 재생산하기 위한 성과 생식의 통제를 가한 것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현모양처’와 ‘종군위안부’라는 여성에 대한 이중 기준이 남성에 의해 이용되어 성폭력은 모든 국민에게 작용했다. 이러한 이중 기준은 식민지 전쟁과 6.25 전쟁이 끝난 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식민지의 경우 가해자 일본만이 아니라 피해자 조선-한국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그것은 서양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를 모방하여 발전시킨 것으로서, 서양에서도 식민지에서 더욱 가혹한 형태를 취했다. 그 근본인 경제의 논리와 민족 차별의 논리는 성 차별에도 그대로 관철되었으며, 일본의 그것은 서양식 성 관리 정책에 다름이 아니었고, 그 유습이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러한 성에 대한 폭력적 구조는 노동, 사상, 교육 등등 국민형성의 모든 요소 속에 동일하게 유지되어 이미 기성의 신화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신화적 폭력에 대항하는 저항적 폭력, 벤야민이나 데리다 또는 파농이 말하는 신적 폭력 또는 결단적 폭력 등은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그것도 다시금 신화적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고 그 순수성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그 대안으로 아렌트가 말하는 폭력과 대치되는, 토론과 행동의 권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 출처: 진보평론 제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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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아파트값 거품빼기와 진보

오전에 '벼랑끝 인문학'에 대한 기사들을 모아두었는데, 사실 내가 더 공감하는 것은, 그리고 보다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위기'이다. 소득 양극화는 OECD국가 중에서 미국, 멕시코와 함께 가장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고 하고 어제 보도로는 자살율도 2년 연속 세계 1위라고 한다. 각종 통계수치에 대한 신뢰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살맛나는 사회'의 그림과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정치권 안팎으로 갈수록 사회적 갈등과 분쟁의 골은 깊어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게 '길잃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짚어본 지난주 경향신문의 창간 60주년 특집기사를 버리지 못하고 책상 한쪽에 모셔두고 있는 이유이다(지금 보니까 가방에 있다). 기사는 주로 '진보개혁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 중에서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 아니 보다 실감나게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장'의 비판은 여러 모로 정곡을 찌르고 있다(사실 '아파트값 안정'과 '사교육비 경감', 이 두 가지가 대내적으론 가장 핵심적인 국정과제 아닌가? 정부나 정치권에도 난다긴다하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왜 해결이 안되는 것일까? 거꾸로 사정은 왜 더 악화되기만 하는 것일까?). 진단에 걸맞는 해법이 현실화될 수 있는 방도는 과연 없는 것일까, 의문을 던지면서 한번 더 읽어보고자 한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경향신문(06. 09. 14) “현실 모르는 ‘반쪽 진보’ 권력 맛본뒤 퇴화”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사람들 정치는 잘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독재냐 반독재냐, 직선제냐 간선제냐 같은 선악이 뚜렷한 이분법적 정치 문제에는 상당한 능력이 있다. 독재자를 타도하고, 부패한 정치 세력을 교체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렇지만 ‘경제는 바보’다. ‘실물’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 문제는 정치 문제처럼 이분법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다. 복잡하다. 또 정치 문제와 달리 바로 느끼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야 느낀다. 그걸 교묘하게 이용하는 세력이 관료다.

나는 그걸 DJ 때부터 봐 왔다. DJ는, 태생적으로 DJP연합이다. 정치는 진보, 경제는 보수를 택했다. DJ때 경제 정책은 모두 개발 관료에 의존해 나온 것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 건설 경기 부양, 신용카드, 외자 유치 등이다. 그러다 말미에 아들과 측근이 개발 세력들에게 뇌물을 받거나 부패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YS, DJ보다 나은 진보 정부라 여겼기에 서민·중산층을 위한 진보적 경제 정책을 내놓을 줄 알았다. 또 재벌·기업의 특혜를 파헤치는 경제 과거사의 진상 규명을 통해 경제 민주화를 이룰 줄 알았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정치만 유능, 경제는 바보
참여정부는 집권 1년간 법안을 통과시킬 의석이 적다고 변명했다. 2004년 4월 ‘탄핵풍’으로 진보개혁적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대거 입성했다. 민노당도 거저 들어갔다. 여대야소 정국 의미도 있지만 더 큰 의미가 있다. 총선 승리로 진보개혁 세력이 청와대뿐만 아니라 여의도까지 점령한 것이다. 그리고는 그게 다였다. 의미있는 입법 하나 못했다.

경제에 대한 인식도 문제다. 단적인 예를 들면, 아파트 선분양은 그것 자체가 특혜다. 진보라는 사람들이 아파트는 분양받는 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돈주고 사는데 ‘구입’이고 ‘매입’이지, 왜 분양이냐. 분양이라는 말에 나눠 준다는 뜻이 있다. 강아지 분양하듯 이해하는데, 누가 주체인지 잊고 산다. 신도시 개발 방식도 들여다보자. 정부가 농민들의 농지, 임야를 30년간 헐값으로 뺏어서 건설업자에게 팔아넘겼다. 택지 조성도 하기 전에 말이다. 농민은 도시민에게 당연히 빼앗겨야 하고, 국가는 농민의 땅을 뺏어도 된다는 인식이었다. 빼앗은 농지를 건설업자에게 30년간 판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값싸게. 그리고 소비자는 분양받는다. 분양이란 말이 ‘값싸게’를 뜻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아니다. 시세보다도 높다. 그 자초지종을 알아야 한다.

◇기득권층 얘기만 들어
청와대에 들어간 진보개혁 세력 이야기도 해보자. 학자 출신이 많은데, 이들의 공통점도 현장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두번째 공통점이 통계와 자료를 관료에게 의존한다는 것이다. 실제 상황, 현실을 잘 모르는 학자 출신들이 청와대 들어가서 외국에서 배운 이론만 접속시키려다가 항상 관료와 재벌 민간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역이용’ 당한다.

집권 이후에 청와대나 열린우리당 내 진보개혁 세력들이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관료, 재벌, 재벌 이익단체, 재벌 민간연구소 연구원, 국책연구기관 연구원들이다. 시민단체 사람도 만나지만 열에 한두번 정도일 뿐이다. 경제부문의 무능함을 외부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관료, 이익단체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진보’가 어느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보수’가 된다. 권력의 맛도 느낀다. 그런데 정치권내 진보개혁 세력들은 어떻게 접대와 로비를 피해야 하는지 모른다. 결국 즐기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진보한 사람들? 경제 관료나 재벌에게 팽팽당한다. 재벌들이 다 공부시켜 준다.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 예전에 경제 공부한다고 했지만, 요즘은 제대로 스터디하나. 관료나 재벌, 이익집단의 연구소 연구원들이 다 공부시켜 준다. 자료에 데이터에 논리까지 만들어주니까 편하다. 가만 있어도 가져다 준다. 그러다 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런 사람들만 만나고, 또 그런 세상이니까.

각종 국가정책 용역 생산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관료를 통해 나오면 관료를 위한 용역 보고서만 생산된다. 국회나 정당에서 현장 중심의 연구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국책 연구소도 100%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미국처럼 관료나 행정부는 법안을 발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관료는 국민을 위한 머슴이다. 머슴한테 의존하는 법안은 안된다. 대의 기구인 국회의원과 정당이 정책·제도를 파고들고 연구해 내놓아야 한다.

보수적 관료들이 진보개혁 세력에게 지시받는다고 갑자기 진보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안 바뀌는 데 무엇을 바꾸겠는가. 미국의 연방 공무원은 정권이 교체되면 고위 공무원 절반이 바뀐다. 우리도 헌법이나 공무원법을 싹 바꿔야 한다. 한국처럼 ‘고시’로 평생을 보장받는 나라는 없다.

개발독재 때도 대다수 국민은 희망과 꿈을 가졌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 현재보다 나을 수 있다는 거였다. 자신감과 희망 있었다. 지금은 우선 열심히 일할 곳조차 없다. 일해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미래가 안 보인다. 항상 위기 의식에 사로잡힌다. 결국 부동산 문제다. 개인 자산의 80%가 부동산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고민 80%가 부동산이라고 보면된다. 집값 폭등하니까, 5년 10년 일하면 집 사고, 평수 늘리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잘 안 된다. 투기 잘 하는 사람이 선망받는 시대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 기를 죽여놓는다.

서민, 중산층의 삶의 질은 계속 떨어진다. 선진국 돼간다지만 재벌만 선진국이고 ‘그들만의 천국’이다. 집권 세력이 95%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 5%의 기득권 세력에게 점점 살기 좋은 환경, 시스템을 만들어주고 있다. 95%는 박탈감에 점점 힘들어지는데 5%는 불로소득으로 자산 늘리면서 잘 산다. 이런 게 위기의 본질이다.

대통령, 정부, 여당은 ‘성장률’에 집착한다.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성적표를 잘 받으려면, 계속 성장해야 하고, 그러려면 거품을 조장해야 한다. 국민들은 자기 주머니, 집 마련, 저축, 일자리 이런 것 고민한다. 그렇지만 대통령, 정치인, 관료들은 ‘자기만의 성장률, 성적표’에 집착하고 결국 거품 유혹에 빠지게 된다. 거품 조장하면 결국 투기라는 병이 생긴다.

참여정부가 재벌에게 특혜를 늘려줬다.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기업도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각종 개발 계획을 남발하고, 거품 조장을 해왔다. 주택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2백만~2백50만명이다. 그중 15% 정도만 정규직이고 지식 노동자다. 나머지는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다. 참여정부 들어 50만~1백만명 고용이 창출됐다. 그중 30%는 외국인 노동자다. 건설경기 부양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게 우리 지식을 배운 청년,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만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계 투기 자본이 ‘부동산 투기장’에 투입됐고, 지금도 투입되고 있다. 자꾸 돈이 모이니까 개발과 부동산에 집중되고, 지식 산업과 거리가 멀어지고, 일자리는 점점 감소하고 병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일자리 없는 청년들은 결혼이 늦어지거나 못한다. 주택값은 폭등한다. 미래에 대한 위기, 불안 때문에 결혼 못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저출산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빈부격차 심화,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산 양극화를 심화시킨 자들이 세금 더 내라고 하니까, ‘미친 놈’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반대만 말고 대안 내놔야
진보는 그게 지식이든, 돈이든 자기 것을 남과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보는 진보는 그런 것이다. 그런데 민노당이나 민노총을 보자. 대한민국 1천5백만 노동자의 10%도 안 되는 귀족형이다. 그 10%도 다 재벌 기업, 보수 기업, 공기업, 언론, 교사, 병원 등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종사자들이다. 1천만 자영업자를 대변하는 단체가 없다. 1천만명에 육박한 비정규직을 위한 조직도 사실상 없다. 민노당, 민노총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주장하지만, 자기 것을 내놓으려고는 안 한다. 내건 빼앗지 말고 소수에게, 권력자에게, 자본가에게 저들(비정규직)을 위해 더 내놓으라는 식이다. 유럽을 봐라. 자기 근무 시간 줄이고 하면서 같이 하지 않는가.

한·미 FTA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고 진보인가. 반독재하고 길거리 행동했다고 진보인가. 지금 진보개혁세력은 ‘머리만 진보’거나 ‘행동만 진보’가 많다. 머리와 행동이 다 진보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참진보’가 없다. 이것이 또 위기의 요인이기도 하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요즘 시민단체에는 ‘시민’이 없다.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정치, 관료 사회 진입하기 위한 시민단체인가 싶을 정도다. 진보는 인재양성소가 없다. 그래서 인재도 탄생하기 힘들다. 학생운동하다 노동계로 가고, 정보도 자료도 차단된 상황에서 행동하고 일했다고 해서 본인이 인재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속한 경실련도 마찬가지다. 무슨 정부나 지자체 위원회에 왜 그리들 많이 가는지, 시민단체가 무슨 이력 관리하는 곳인가.

우리 사회가 왜 위기가 왔고, 중병이 걸렸느냐. 황우석 거품, 부동산 거품 이런 것이 대한민국에서 선진국 진입단계에 왜 발생했나? 브로커 천국이 된 근본 원인은 뭔가. 엉터리 진단에 엉터리 처방만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예견해야 하는데 중병이 들어야 치료법을 생각한다. 그나마 병치료 늦어지고 치료하다 마는 게 반복된다. 어쩌다 먼저 떠들면 미친놈 되기 일쑤다. 지금 권력에 반대하는 자들은 많은데 견제하고 감시하고 대안을 내놓는 자들이 없다. 그것이 위기의 실체다.(정리 김종목·사진 권호욱기자)


-김헌동 단장은?-

경실련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81년부터 19년 동안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일했다. 97년 시민운동에 뛰어들었다. 2000년에는 사표를 내고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2004년 2월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 출범과 함께 본부장을 맡아 분양원가 공개운동을 벌여왔다.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씨가 친형이다.(*다른 건 몰라도 '아파트값 거품빼기' 같은 게 한국사회의 진보이다. 어려운 이슈들을 제기할 것도 없다. 이게 정치적 진보를 표나게 내세우는 것보다는 좀 복잡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일까? 김헌동 본부장은 아파트 반값 공급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시민단체쪽의 탁상공론이 아니다. 지난 92년 대선에서 정주영의 대선공약이 아파트 반값 공급이었다. 문제는 혹 '의지'가 아닐까?)

06.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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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짙은 선홍색'의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

제6회 멕시코영화제,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 9편 상영 (2004.07.14 20:04)

멕시코에서 온 ‘극단적 멜로드라마’

1950년대 말, 유명한 프로듀서였던
아버지 덕분에 극장과 촬영장을 밥먹듯
드나들 수 있었던 소년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나자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는 한 종류의 영화,
즉 아버지가 주로 만들던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자린>은 그가 본 어떤 영화와도
달랐다. 모든 영화가 똑같은 해피엔딩
내러티브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다른 대안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한
소년에게 그것은 완벽하게 매혹적이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곧장 브뉘엘의 집으로 갔다.
“당신의 영화를 봤어요. 난 당신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브뉘엘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몇 분 뒤
다시 문을 연 브뉘엘이 입을 열었다.
“들어와라.”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멕시코영화의 놀라운 혁신과 부흥을 이끌어왔으며, 루이스 브뉘엘과 가브리엘 마르케스,
후안 룰포,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됨으로써
완전히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르투로 립스테인은 1962년 19살의 나이에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 조감독을 거치면서
브뉘엘의 적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립스테인이 브뉘엘로부터 배운 것은
테크닉이 아니었다.
브뉘엘은 자신이 그다지 능숙한 감독이 아니라며 어린 립스테인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으나, 립스테인은 대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자세’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해라. 그리하여 너 자신을 배반하지 말아라….” 그리고 립스테인은 그 원칙에 따라 승리자가 되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내게 있어 영화는 숨쉬고,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재다.
나는 기꺼이 고집불통의 성가신 존재로 남길 택했고,
그리하여 영화 안에서 아직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까발리는 극단적 멜로드라마

립스테인은 1966년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함께 쓴 시나리오 <죽음의 시간>으로 데뷔했다.
원치 않은 결투에 휘말렸다가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중년 남자의
돌이킬 수 없는 행로를 다루는 기이하고 쓸쓸한 웨스턴 <죽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에 대한 립스테인의 매혹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였다.
이제는 모든 원한의 고리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살고 싶은 중년 남자는,
그러나 죽음과 복수를 피할 수 없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결투에 앞서 침침한 눈 위에 안경을 걸치고 재킷에 입을 맞춘 뒤
단정하게 몸치장을 끝낸다.
립스테인 스스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중년의 심리를 묘사하려다보니
무리수를 두었다며 자신의 데뷔작을 폄하하지만,
이 영화에서부터 이미 립스테인이 평생 추구하게 될 영화적 테마들은
온전히 드러난다고 보여진다.

<죽음의 시간>

<순수의 성>

<종교재판소>

<한계가 없는 곳>

흔히 립스테인의 영화를 일컬어 ‘극단적 멜로드라마’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붙이곤 한다.
그는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차용하지만,
그 안에서 부르주아의 안온한 이데올로기를 불손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부숴버리고
그것의 허위에 찬 이면을 낱낱이 까발리고 만다.
그것은 영화의 핵심에 ‘가족’을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있음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족은 내게 있어 파괴와 공포의 원천이다”).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만이 지켜나가야 할 유일한 가치이며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어떤 타자도 끼어들 수 없게끔 하는 닫힌 구조 속에서
그는 어떤 광기와 지독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다양한 형상으로 출몰한다.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섹슈얼리티에 심각한 도전을 가하는 드랙퀸과 여성들,
혹은 빈곤과 타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변부 인생들, 불구자들, 노인들….
타자에 대한 불관용은 립스테인의 영화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지며, 그에 따른 희생과 저항의 이야기가 립스테인 특유의
멜로드라마 구조를 완성해 간다.

<순수의 성>(1973)에서는 세상의 폭력과 타락으로부터 지킨다는 구실로
18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감금한 채 온갖 금욕을 강요했던 ‘쥐덫 제작자’
아버지의 실화를 다루고 있고,

<종교재판소>(1974) 역시 16세기 멕시코를 휩쓸었던 종교재판의 광풍에 휩싸인
유대인 가족 내부의 갈등을 그림으로써 사회 최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한계가 없는 곳>(1977)은 유령이 곧 출몰할 것 같은 텅 빈 마을에서
사창가를 운영하는 드랙퀸과 그의 딸을 내세워, ‘남자다움’이라는 특성이 지배적인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드랙퀸의 ‘뒤바뀐’ 섹슈얼리티를 견디지 못하고
제거해버리고 마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놀라운 복음>(1998)은 외딴 시골 마을에 모여든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섹스 제의에 관한 조롱 섞인 풍자극이다.

40년대 멕시코에서 벌어졌던 유명한 ‘론리 하트 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짙은 선홍색>(1996) 역시 ‘미친 사랑’에 함몰되어 어린 자식들까지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연쇄살인 행각에 빠지는 고독한 여인의 광기를 그린다
(“미친 사랑처럼 산산이 파괴하고 부패시키고 변형시키는 힘을 가진 현상도 없다.
그토록 경솔하고 신성모독적이고 이교도적인 것 또한 없다.
결국 인간 같은 존재는 다시 없다…”).

<그것은 인생>(2000)은 고대 그리스의 메데아 신화를 가족 멜로드라마의
틀거리로 변주하며 절망의 가장 막다른 극한에까지 몰렸을 때
아예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고 마는 여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야만 하는
운명의 행로에 관한 립스테인의 집착이 드러난다.
립스테인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가망없음’의 상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좀더 개선시켜보려 발버둥치거나 도피를 시도한다.
총구 앞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중년 남자(<죽음의 시간>),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딸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건달 앞에서
기꺼이 춤을 추는 드랙퀸의 필사적인 몸짓(<한계가 없는 곳>),
오지 않을 연금을 기다리며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가는 늙은 부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는 굴레에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혀버린
중년 남자가 부패한 경찰과 법률 구조 앞에서 벌이는 무시무시한 사투(<종신형>),
뜻하지 않은 행운 앞에서 놀라운 성공에 도취된 채 예정된 파멸을 보지 못했던
남자의 우화(<부의 제국>)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을 가로막는 운명 앞에서조차 버릴 수 없는 가냘픈 희망의 힘을 믿지만,
결국 언제나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구원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파스칼의 선택’을 내려다보는 립스테인-신의 거대한 시선은
또한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감싸고 도는 유행가의 선율과 겹쳐진다.
주인공들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유행가들,
이 세속적인 싸구려 예언의 선율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의 역할을 담당하며
소름끼치는 초현실주의의 기운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잔재와 더러운 유산을 끌어안고
앞으로 전진해야만 하는 이 패배자들의 초상은 어찌보면 돈키호테의 그것을 닮았다.
그들은 립스테인에게 있어 그 어떤 노멀한 사람들보다도 위대한 삶의 주인공이다.

닫혀진 공간에서 가장 라틴아메리카적인 영화를 만드는 ‘작가’

한편으로 이 모든 정조를 배태하고 있는 것은
립스테인의 모든 영화 속에서 비슷비슷하게 구축된 공간들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부’에서 이뤄진다.
립스테인은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데 집착한다.
그의 공간은 언제나 닫혀 있고, 방에서 방으로 이어진다.
설령 복도에서 걸어나와 정원으로 들어서더라도
그 정원은 U자 형을 그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방 안은 각자 캐릭터의 성격에 걸맞은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죽음의 방은 사냥당한 짐승들의 털가죽과 총으로 채워져 있으며,
사랑을 믿는 여자의 방은 거울과 호사스런 침대와 등불과
알록달록한 종이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다.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좁디좁은 공간은 캐릭터들의 강력한 정서와
그들의 삶의 편린들로 포화 일보 직전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탈출구를 알지 못한다.
외부조차 앞이 훤히 다 보이는 야트막한 모래 언덕들뿐이다. 그
들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다.
립스테인은 초저예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색의 조명과 사물들의 주의 깊은 배치를 통해 이 밀실의 공간들을
자신이 새롭게 창조해내는 영화적 세계의 주요 무대로 바꾸어버린다.

몇십 년 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논란의 불꽃을
처음 지폈던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우리 대륙은 바로크다. 아메리카는 생소한 것과 경이로운 것의 역사 그 자체다.
우리의 의무가 아메리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것을 보여주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크 세계에 대한 묘사는 필연적으로 바로크적이어야만 한다”
라고 기술한 바 있다.
아마도 오늘날까지 이 정의에 완벽히 부합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유일한 작가일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들 중 9편(그리고 5편의 멕시코 걸작 단편영화들까지)을
근접 조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시라.

김용언/ 영화평론가 mayham@empal.com

감독소개

아르투로 립스테인 Arturo Ripstein (1943 -  ) 현재 멕시코뿐만 아니라 스페인어권을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감독 중 한 사람인 아르투로 립스테인은 1943년 멕시코시티에서 영화제작자인 알프레도 립스테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제작하는 영화 세트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립스테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영화감독이 되려고 결심했고, 1962년 루이스 부뉴엘의 <절멸의 천사>에서 조감독을 맡음으로써 영화경력을 시작했다. 립스테인은 부뉴엘과의 작업에서 사회에 대한 불온한 시선과 초현실주의적인 비전, 그리고 ‘아무르 푸(미친 사랑)’에 대한 매혹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으며, 이때의 우정은 부뉴엘이 죽을 때까지 유지되었다.

립스테인의 데뷔작 <죽음의 시간>은 살인과 복수의 이야기를 담은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로, 운명의 힘과 멜로드라마의 정서, 초현실적인 분위기 등 이후 립스테인의 영화를 특징짓는 요소들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60년대말부터 70년대초까지 단편과 다큐멘터리 작업을 거친 후, 감금과 욕망의 테마를 다룬 섬뜩한 가족드라마 <순수의 성>으로 불온한 세계관을 보여주었고, 16세기의 종교재판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 <종교재판소>가 1974년 칸느영화제에 초청되면서 립스테인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7년 발표한 <한계가 없는 곳>은 마누엘 푸익이 각본에 참여한 작품으로, 립스테인의 멜로드라마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정념과 좌절, 야망과 복수의 테마를 탁월하게 형상화하여 비평가와 관객 모두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몇 편의 TV 시리즈와 상업영화를 만든 후 발표한 <부의 제국>은 립스테인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준 80년대 걸작으로, 이후 립스테인은 <시작과 끝>, <밤의 여왕>, <짙은 선홍색> 등 멜로드라마 걸작들을 연달아 발표했다. 1997년 영화감독으로는 부뉴엘에 이어 두 번째로 ‘멕시코 국민 예술상’을 받은 립스테인은, 종교집단 안의 광기를 다룬 코미디 <놀라운 복음>과 마르케스의 소설을 기초로 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자의 처절한 복수극 <그것은 인생>, 여자와 야구에 관한 초현실주의적인 농담 <남자들의 파멸>,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죽음을 둘러싼 가상 스토리 <욕망의 처녀>를 통해 거장의 영화세계를 확고하게 보여주고 있다.


상영작 안내

죽음의 시간 Tiempo De Morir | Time to Di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65 90min b&w 

출연: 마르가 로페스, 호르헤 마르티네스 데 호요스, 엔리케 로차

립스테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 갔던 후안은 18년 만에 출소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정당방위의 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에는 그가 무자비하게 희생자를 살해한 냉혈한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 후안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려 하지만, 살해당한 남자의 두 아들과 불가피한 결투를 벌여야만 하는 운명적인 상황에 빠져든다. 범죄와 복수를 소재로 한 웨스턴 장르를 빌고 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과 깊은 멜로적 정서가 돋보인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각본을 맡았다. 

 

순수의 성 El Castillo de la pureza | Castle of Purity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73 110min color 

출연: 클라우디오 브룩, 리타 마세도, 아르투로 베리스타인

립스테인이 60년대 말의 실험적인 시기를 거친 후 다시 극영화로 복귀해 만든 전환점의 영화. 쥐약과 살충제 제조업자인 가브리엘은 바깥 세상의 악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아내와 세 아이를 18년 동안 집안에 감금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에게는 못 먹게 한 고기를 자신은 밖에서 먹으면서 사창가에 가거나 젊은 여자와 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근친상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호세 에밀리오 판체쵸의 원작을 기초로 가족 안에서의 억압을 불온하게 그려낸 초현실주의 우화.

 

종교재판소 El Santo Oficio | Holy Offic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74 127min color 

출연: 호르헤 루케, 디아나 브라쵸, 클라우디오 브룩, 아나 메리다

국가보조로 만들어진 립스테인의 대작 시대극. 16세기 말 스페인 통치하의 멕시코. 유태인 출신인 도미니크회 수사 가스파르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자신의 가족이 여전히 유태교의 교리를 몰래 따르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신앙심을 앞세운 그는 이 사실을 종교재판소에 고발하고, 체포된 일가족은 혹독한 고문과 함께 화형의 위협을 받게 된다. 중세의 이단심판을 배경으로 밀실공포와 억눌린 비밀, 가짜 정체성 등의 주제를 탐구하면서, 불관용에 대한 립스테인의 비판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

한계가 없는 곳 El Lugar sin limites | The Place Without Limits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77 110min color 

출연: 로베르토 코보, 아나 마르틴, 곤살로 베가, 루차 비야

‘지옥에는 한계가 없다’는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트>의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립스테인의 70년대 걸작. 게이인 마누엘라는 딸 하포네지타와 함께 외딴 시골마을에서 술집 겸 매음굴을 운영하고 있다. 어느 날 아침 난폭한 트럭운전수 판쵸가 마을에 돌아오자, 두 사람은 두려움과 설레임을 동시에 느낀다. 마을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권력의 횡포와 남성성을 강조하는 마초이즘의 동성애 혐오에서 비롯된 폭력을 섬뜩하게 그려낸 작품. 칠레의 소설가 호세 도노소의 소설을 원작으로, 마누엘 푸익이 각본에 참여했다.

종신형 Cadena Perpetua | Life Sentenc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78 95min color 

출연: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나르시소 부스케츠, 에르네스토 고메스 크루스

루이스 스포타의 소설을 각색한 변종 필름누아르. 하비에르 리라는 한때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유명한 소매치기였지만 지금은 은행수금원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그를 체포했던 부패한 경찰이 무리한 상납을 요구하면서, 리라는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기로에 서게 된다. 필름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을 멕시코 사회의 컨텍스트에서 재구성하여 범죄와 그 처벌의 윤리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작품. 플래시백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부의 제국 El Imperio De La Fortuna | The Realm of Fortun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86 130min color 

출연: 에르네스토 고메스 크루스, 블랑카 겔라, 알베르토 에스트레야

멕시코를 대표하는 작가 후안 룰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부와 행운에 대한 우화. 변변한 직업도 없이 늙은 어머니와 살고 있는 디오니시오는 어느 날 심하게 다친 싸움닭을 얻는다. 혼신을 다해 닭을 치료한 그는 투계에 참가해 연승을 거둔다. 그러던 중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가수 카포네라와 함께 하면서 디오니시오는 큰 부를 누리게 되지만, 그는 점점 탐욕스러워진다. 립스테인의 아내인 파스 알리사아 가르시아디에고가 처음으로 각본에 참여하여 큰 성공을 거둔 작품. 아리엘상 8개 부문을 수상했다.

놀라운 복음 El Evangelio de las Maravillas | Divin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1998 112min color 

출연: 프란시스코 라발, 카티 후라도, 에드와르다 굴롤라

70년대에 멕시코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종교드라마. 영화광인 파파 바실리오와 마마 도리타가 이끄는 작은 종교집단 ‘신 예루살렘’은 그리스토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도리타는 죽음의 순간, 새로운 구세주를 낳아줄 성처녀로 10대 소녀 토마사를 지목한다. 하지만 토마사는 자신을 바빌론의 창녀라고 하며 집단의 남자들에게 섹스를 강요한다. 종교집단 내부의 광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부뉴엘의 <나자린>이나 <사막의 시몬>을 떠올리게 하는 블랙코미디로, 영화매체에 대한 반성적인 시선도 흥미롭다.

남자들의 파멸 La Perdicion de los hombres | Ruination of Men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2000 106min b&w 

출연: 파트리시아 레예스 스핀돌라, 라파엘 인클란, 루이스 펠리페 토바르

립스테인의 영화세계에서 모종의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 선인장 덤불에 숨어있던 두 남자가 지나가던 농부를 죽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살인자들은 시체를 집으로 데려가더니 몸을 씻긴 뒤 옷을 갈아입힌다. 시체가 발견되자 그와 관계를 맺었던 두 명의 여자는 서로 시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남자들의 파멸은 여자 때문이라는 멕시코 민요에서 제목을 따온 초현실주의적인 블랙코미디. 현실감을 지워버리는 흑백촬영이 인상적이다. 세 남자를 파멸로 이끈 살인극의 진짜 원인은 영화의 끝에 가서야 밝혀진다.

그것은 인생 Asi es la vida | Such Is Life

아르투로 립스테인Arturo Ripstein  2000 98min color 

출연: 아르셀리아 라미레스, 파트리시아 레예스 스핀돌라, 에르네스토 야네스

고대비극 <메데아>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잔혹극. 25살의 주부 훌리아는 숨막힐 듯 거대한 도시에서 남편과 두 아이만을 의지해서 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이 다른 여자와 떠나버리자 이제껏 지탱해오던 그녀의 우주는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살던 집에서마저 쫓겨난 훌리아에게 남은 것은 아이들뿐이다. 이제 그녀는 가장 끔찍한 복수를 준비한다. 복수에 대한 집념으로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려는 여성의 절망이 아프도록 절실하게 그려진 작품. 립스테인 최초의 디지털 작업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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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우연히 한  케이블 방송으로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영화
<짙은 선홍색>을 보았다.
머리가 벗겨진, 과부들을  등쳐먹고 사는 날건달 남자와,
사랑에 미쳐 자식까지 내팽개치고
그를 따라나선 뚱뚱한 시체 담당실 간호사의 엽기적인 애정 행각이
이상하게도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다.

꼴에 "나에겐 자긍심이 있다 말이지!"라고 되뇌던 남자,
"자긍심이 뭐냐고? 그건 아픔이지!"라고 혼자 묻고 대답하던 남자,
처형 당하는 순간, 가발을 쓰고 죽게 해달라고 빌던 남자......

둘이 손을 잡고 걷다가 총을 맞고 웅덩이에 처박히는데
물웅덩이에 각자의 모습이 비쳐 꼭 자기자신을 껴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정말 서로의 어디에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렇게 파괴적인 것도 사랑일까?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짙은 선홍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남자의 손을 잡고 걷던
육중한 체격의 여주인공과 자신의 소원대로 가발을 쓰고 걷던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립스테인 감독이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자료를 뒤져보다가
2004년에 그의 영화제가 우리나라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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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에 대하여

제시카 알바 주연의 영화 <슬리핑 딕셔너리>(2002)의 배경은 1930년대 영국의 식민지 말레이시아의 사라와크 섬이다. 아버지의 유업인 원주민 계몽사업을 위해 영국군 청년장교 존이 섬에 오게 되는데, 총독은 그에게 원주민 최고의 미인인 셀리마(알바)를 ‘슬리핑 딕셔너리’로 붙여준다.

‘슬리핑 딕셔너리’란 주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며 원주민 언어를 가르치는 여자를 가리키는데, 존은 자신의 신념에 어긋난다면 거부하지만 곧 셀리마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며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영국과 원주민 양편에서 환영받지 못하며 법적으로도 금지돼 있다. 이들의 사랑은 과연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번역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폴 리쾨르의 <번역론>(철학과현실사, 2006)과 함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 해설’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더글러스 로빈슨의 <번역과 제국>(동문선, 2002)를 읽다가 문득 떠올리게 된 생각은 텍스트간(더 나아가 ‘문화간’) 번역의 중재자로서의 번역자(혹은 통역자)의 위치와 운명이라는 게 바로 ‘슬리핑 딕셔너리’의 그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비교불가능한 것을 비교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등가성의 창출을 주된 임무로 하면서 동시에 잠자리도 제공해주는 하녀! 

그러한 생각이 연이어 떠올리게 한 건 번역의 ‘일반론’을 제시하고 있는 리쾨르의 <번역론>이 지닌 ‘특수성’이다. 그의 지적대로 ‘이국적인 것의 시련’과 ‘비교불가능한 것의 충격’이 번역의 대전제이지만, 리쾨르는 언어 내적 번역을 외적 번역 못지않은 의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그러한 시련/충격을 흡수해버린다: “(내적 번역에서처럼) 이렇게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외국어를 번역하는 번역자가 하는 일이다.”(121쪽) 이로써 “(언어) 내적 번역과 언어 외적 번역 간의 가교가 이루어진다”고 리쾨르는 주장하지만, 포스트식민주의의 맥락에서도 그러할까?


로빈슨이 간결하게 정의한바 “포스트식민주의는 지리적/언어적 전치와 지배와 복종으로 서로 얽혀 있는 동력에 의해 야기된 심리/사회적 변형들인 통문화적 권력을 바라보는 방식이다.”(29쪽) 하면, 문제는 단순하게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을까? 가령, “어떻게 멕시코의 스페인어로 씌어진 텍스트를 미국 영어로 다시 써서, 가난한 제3세계 국가의 구성원에게 지니는 의미를 지구상의 가장 부유한 나라의 구성원에게 같은 의미로 전달할 수 있는가?”(47쪽)


또한 “우리에게 빵을 달라!”라는 시위대에게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는 마리 앙트와네트의 고전적인 사례는 번역의 문제가 언어 내적 번역에서도 단순하지 않음을 시사해준다. 번역이 다루는 것은 단순히 문화적 관계뿐만이 아니라 지배/복종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국제관계가 국가들간의 (이념적으로)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불평등한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이다(FTA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도 다 그런 이유 때문 아닌가?).

 

세계는 평평한 듯 보이지만, 거기엔 굴곡이 있고 보이지 않는 곡률이 작용한다. 그리고 그걸 평평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힘은 균등하게 분배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텍스트번역에서건 문화번역에서건 번역은 불가능한가? 그건 아니다. 리쾨르에 따르면, “번역은 이론적으로는 설명 불가능하나 실제로는 수행 가능한 작업”(100쪽)이다.


다만, “번역 작업은 이국적인 것에 대한 공포와 증오로 발생하는 내적 저항을 물리치고 이루어진 회상의 작업”이면서도 동시에 “완벽한 번역이라는 이상 자체를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애도의 작업”(118쪽)이라는 것을 승인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때 번역은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며, “이국성을 가진 이방인과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독자”(117쪽)가 그 두 주인이다. 번역학의 용어로 말하자면, 독자를 저자에게 데리고 가는 이국화/외국화(foreignizing)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는 자국화(domesticating)가 번역의 두 가지 양태이다.


포스트식민주의 번역론에 따르면, 이때의 저자와 독자는 추상적인 무국적자가 아니다. “문화의 번역불가(능)성은 가장 첨예한 문제이지만 동시에 경계 지역에서는 실제 해결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즉 그 국경의 양측에 걸쳐 있는 ‘멕시코인들’(그리고 몇몇 ‘북미인들’까지도)은 두 개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고, 그 다양한 구성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들의 경험을 양쪽 언어로 번역한다.”(47쪽) 역설적이지만, 이렇듯 “이론적으로는 어렵고 고된,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쉽고 순조로운”(리쾨르, 100쪽) 것이 번역 작업인 것이다. 더 나아가 번역은 우리의 일상이기까지 하다.

 


번역의 신화적 기원으로서 흔히 ‘바벨 이후’를 거론하지만,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그 역사적 기원으로서의 ‘바빌론 유수 이후’이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다가 하느님께 징벌을 받아서 각기 다른 말들을 하게 됐다는 것이 ‘바벨 이후’가 뜻하는 바라면, 바빌로니아가 유대왕국을 정복한 뒤 유대인들을 강제로 데려가 바빌로니아에 억류시킴으로써 언어가 다른 이민족 사이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른 말들을 배우게 됐다는 것이 ‘바빌론 유수 이후’가 의미하는 바이다. 이것은 곧 ‘디아스포라’(이산)의 기원이기도 하다.

 


번역의 역사적 기원이 암시해주는 것은 최초의 번역적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제국의 정복/점령과 그로 인한 권력의 분화, 그리고 이산의 문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로빈슨이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제국의 정복자들은 새로운 신민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종속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계발하여 순응적이거나 ‘협력하는’ 신민으로 변모시켜야 했다. 제국으로서 번역의 역사에 대한 초기의 관심 영역 중 하나는,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지인 사이를 매개할 수 있는 통역가들의 선발과 훈련이었다.”(22쪽) 이것이 바로 ‘슬리핑 딕셔너리’의 탄생 배경이 아닌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보다 확장해서 말하자면, “전체 포스트식민 세계가 번역의 장으로 계속해서 간주되어야만 한다. 이 맥락에서 번역은 하나 이상의 국가 혹은 지역 문화와 관련된 문화적/언어적 재능을 지닌 소수의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언어 텍스트의 의미상 전달은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일상적 의사소통의 기초이다. 이렇게 번역은 처음으로 번역을 형성해준 식민 권력의 분화에 계속해서 참여하는 것이다.”(49쪽) 물론 이러한 참여가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번역에 대한 포스트식민주의적 관점을 요약하자면, (ⅰ)번역은 식민화의 채널로서 교육에 필적하며, 교육과 연관되고, 제도와 시장의 명백한 혹은 숨어 있는 통제를 받는다, (ⅱ)번역은 식민주의의 붕괴 이후 계속된 문화적 불평등을 위한 피뢰침이다, (ⅲ)번역은 탈식민화의 채널이다(51쪽)가 된다. 여기서 핵심은 번역이 식민화의 채널이면서 동시에 탈식민화의 채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쾨르가 시도하고 있는 ‘번역에 관한 철학적 성찰’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번역과 번역행위에 대한 이러한 인류학적 성찰, 정치적 성찰이다.

 


<슬리핑 딕셔너리>에서 존과 셀리마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며 영국군과 원주민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에서 존은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셀리마와 재회하게 되며 둘은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다. 이 정념론적인 차원의 확인은 번역의 관점에서 윤리적인 차원으로까지 승화된다. 리쾨르가 제안하는바, “두 주인을 섬기려다가 두주인을 모두 배신하는 위험을 무릅쓰고 독자를 저자에게 데려가는 것, 혹은 저자를 독자에게 데려가는 것은 결국 언어적 환대를 실행하는 것”(119쪽)이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속에서 셀리마는 존(영국)과 자기 부족이라는 두 주인을 섬기려다가 두 주인 모두를 배신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 아닌가? 무엇 때문에? ‘(언어적)환대’의 요청 때문에. 그러한 환대의 공간은 지리적으론 접경지대이며, 사회적으론 교통공간이고, 문화적으론 혼합공간이며 인종적으론 혼혈공간이다(셀리마는 혼혈이다). “이국의 언어를 모국어라는 자신의 집에 맞아들임으로써 타자의 언어를 체험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리쾨르, 89쪽)으로서의 번역은 그러한 공간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행복한 도전’이다. 더불어, 그것은 디아스포라의 공간에 처한 이주민들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필사적인 모험이기도 하다.    

 

 

 

 

 

하면, “우리가 읽는 책의 태반은 번역서이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의 번역문화는 척박하기 그지없다. 예나 지금이나 오역과 비문으로 가득한 번역서들은 독자들에게 좌절과 환멸을 수시로 안겨주고 있으며, 동서양의 주요 고전들 중 상당수는 아예 번역․소개조차 안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박상익, <번역은 반역인가>)라는 지적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뼈아프다. 번역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행복을 위해서도, 생존을 위해서도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

 

06. 08. 27.

 

P.S. 이 글은 북매거진 <텍스트>에 기고한 것이다. 본래는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생각의나무, 2006)에 대한 서평을 기획했었지만, 너무 '뻔한' 얘기들만 늘어놓게 되어 8매 정도를 쓰다가 접었다. 그리고는 결들여서 쓰고자 했던 리쾨르의 <번역론>과 로빈슨의 <번역과 제국>을 중심으로 구도를 다시 짰다. 로빈슨의 책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긴 하지만, 정독할 만한 성격의 책은 아니다.

 

리쾨르의 <번역론>은 읽어볼 만하지만,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던져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국역본의 편제는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단순한 본문에 비하면 너무 장황하다싶은 해제 '논문'이 책의 성격을 딱딱하게 만들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사실 본문의 각주들도 미주로 돌리는 게 가독성을 위해서는 더 좋았을 것이다) 교정상의 실수들도 적지 않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85쪽의 역주18)에서 낭시의 책은 <경계의 미학>이 아니라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5)이며, 128쪽 역주23)에서 첼란의 시집 <죽음의 푸가>는 문학과지성사가 아니라 청하출판사에서 나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건 전영애 교수의 첼란 연구서(학위논문)인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이다. 그리고 앙리 메쇼닉에 대한 각주는 같은 내용이 해제(53쪽)와 본문(154쪽)에서 반복되고 있다. 85쪽 역주19)에서 "도야는 독일 신인본주의에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사명으로 주어진 것으로 이해되는데..."라는 건 교정이 안된 문장이다. 117쪽에서 "이국성을 가진 있는 이방인과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독자가..."도 마찬가지이다. 71쪽 역주3)에서는 벤야민의 논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기술시대의 예술작품>으로 오기됐다. 그리고, 62쪽에서 '각주(各主)'의 한자는 엉뚱하다. '각주(脚註)' 아닌가?

 

여하튼 이런 실수들이 공들인 번역에도 불구하고 책이 조급하게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분량에 비하면 저렴한 책도 아닌데, 좀더 세심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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