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매염방의 '석양지가'를 들으며

아침신문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기사는 홍콩의 영화감독 관금붕(관진펑)의 <연지구>(1987)를 다룬 경향신문의 '일시정지' 코너였다. <인지구>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이 영화의 주연이 매염방(메이엔팡)과 장국영(장궈룽)이다. 관금붕의 데뷔작으로 기억되는데, 아주 오래전에 본 이 영화가 장만옥 주연의 <완령옥>과 함께 내게는 관금붕의 대표작으로 남아 있다(물론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 이후의 영화들은 거의 본 기억이 없지만).

예전에 '매염방의 죽음을 애도함'이란 글을 올린 적도 있는데, 어제 예술의전당에서 감상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 매염방은 내게서 동일한 의미연관을 갖는다. 쇼스타코비치와 매염방? 둘을 묶어주는 건 한 친구에 대한 기억이다. 그 친구가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했고 매염방을 좋아했다. 기억에는 지난 93년쯤인가 러시아에서 구입한 EMI음반으로 쇼스타코비치의 5번 '혁명'을 자기방에서 들려주며 의기양양해 하던 모습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영웅본색3>에 처음 본색을 드러낸 매염방의 도톰한 입술이 이후에 주의를 끈 건 순전히 그의 '주목' 덕분이다. 이후에 내가 더 좋아하게 된 건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노래였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염방의 노래는 <영웅본색3>의 주제가인 '석양지가'이다. 들을 때마다 '장쾌한'이란 형용사를 떠올려주는 이 노래를 나는 지금도 듣고 있다. 이제 어느덧 세월에 묻히고 있지만, 지난 2003년 봄, 만우절에 장국영이 자살했다. 그리고 그해 12월말에 매염방에 자궁암으로 투병중이던 요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이번에 다시 찾아보니 자살했다는 설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은 그 두 죽음 사이에 끼어 있다.   

인생의 '화양연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유금세월'도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나도 이제 그 정도는 알 만한 나이가 되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웃음도 되찾을 길 만무하다. 내가 반복해서 듣는 건 그저 '석양지가' 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저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자의 의연한 자세뿐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연지구>와 관금붕에 관한 자료 몇 가지를 모아놓는다.

경향신문(06. 11. 09) 관진펑의 ‘연지구’

서양에 오랫동안 전해오는 얘기가 있다. 신혼부부가 알프스로 신혼여행을 갔는데 남편이 조난 사고를 당했다. 살아남은 아내는 시신을 찾지 못한 채 슬픔을 안고 돌아왔다. 수십년이 흘러 아내는 할머니가 됐고, 어느날 얼음 속에 굳어있던 남편의 시신이 하천에 떠내려 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달음에 달려간 아내는 수십년 전 청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사연이 오랫동안 회자되는 이유는 가장 사랑했던 순간 이별해야 했던 연인에 대한 안타까움뿐만 아니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잔인함을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관진펑(關錦鵬)의 ‘연지구’(1987)는 장궈룽(張國榮), 메이옌팡(梅艶芳) 주연의 영화다. 1930년대 기녀 여화와 부잣집 진도령은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진도령 집안의 반대로 둘은 결혼하지 못하고, 좌절한 연인들은 함께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다. 시대는 흘러 80년대 홍콩, 한 신문사에 구식 치파오(원피스 형태의 여성용 중국 전통의상)를 입은 여화가 나타나 진도령을 찾는다는 광고를 내고자 한다. 함께 저승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진도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도령과 여화에겐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장면1). 둘은 기생집에 마련된 고급스러운 방에서 아편을 나눠피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배우보다 더 아름다운 장궈룽의 전성기 얼굴과 전통적 미인은 아니지만 묘한 매력을 내뿜는 만능 엔터테이너 메이옌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귀신이 돼 돌아온 여화는 저승에서 진도령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된다. 함께 독극물을 마셨지만 진도령은 깨어난 뒤 치료를 받고 부모님이 추천한 여성과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불행했다. 가산을 탕진한 진도령은 영화판 엑스트라를 전전한다. 혼령으로 돌아온 여화는 영화 세트장 한 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진도령을 발견한다(장면2). 거기엔 기억 속의 아름다운 청년은 간 데 없고, 추한 늙은이만 남아 있다.

여화는 진도령이 선물했던 화장 도구를 돌려준 뒤 미련없이 돌아서고, 여화를 부르던 진도령은 울먹인다. 망쳐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 연인을 따라 죽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화가 세월의 무상함을 깨우쳐 줬기 때문일 것이다. 진도령의 고운 얼굴선은 세월과 함께 무너졌고, 팽팽하던 피부엔 고랑이 패었다. 시간은 피도 눈물도 없이 공평하다. 절세의 미남, 미녀에게도 똑같은 무게의 짐을 지운다.



공교롭게도 장궈룽, 메이옌팡은 같은 해 사망했다. 2003년 만우절 장궈룽은 거짓말같이 고층 빌딩에서 몸을 던졌고, 12월30일 메이옌팡은 자궁암에 따른 투병생활 끝에 요양원에서 숨을 거뒀다. 구천을 떠도는 두 배우의 혼령이 나타난다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 그대로일 거다.(백승찬 기자)

씨네21(05. 08. 24) <연지구> vs <완령옥>: 홍콩 포스트 뉴웨이브, 관금붕

홍콩영화의 포스트 뉴웨이브 세대로 등장한 관금붕은 유례없는 예술영화 몇 편을 내놓는다. 관금붕 자신이 말한 바 홍콩 영화산업이 활황을 구가하던 시기였기에 <연지구> 같은 영화의 제작이 가능했듯이, 당시 홍콩 대중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국내에 소개됐던 그의 영화들은 낯선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인지구>로 잘못 소개된 <연지구>는 요괴영화와 모던 멜로드라마를 혼용한 작품이다. 영화는 과거의 연인을 찾아 현대로 찾아온 귀신을 통해 지키지 못한 사랑의 약속, 사라지는 홍콩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변화에 대한 낭만적 거부를 이야기하는데,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한 화면구도 속에 죽어가는 듯 대사를 읊는 배우의 모습이 탐미적 시선의 극치를 보여준다. 1920, 1930년대 중국의 대표적 배우인 완령옥을 그린 <완령옥>은 관금붕과 배우들의 토론, 완령옥의 기록영상, 그리고 영화 속 영화가 컬러와 흑백영상으로 교차되어 나오는 작품이다. 연기자는 미쳐야 한다고 말했으며, 연기에 빠져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던 완령옥은 사회의 편견에 맞선 여자이자 25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한 여배우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관금붕은 왜 완령옥이 자살한 1935년 3월8일보다 꼭 1년 전에 <연지구>의 기생 여화가 자살하는 것으로 설정해놓았을까. 1935년이라면 중국영화가 상하이를 중심으로 자국영화의 기치를 드높일 때다. 활기찬 1980년대와 이후 힘을 잃어간 1990년대에 홍콩영화의 현장을 지킨 관금붕은 비문을 반복해서 써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빌려 중국영화의 화려한 시기를 애써 기리는 홍콩 영화감독을 구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관금붕이 완령옥을 불러와 과거를 더듬었던 것처럼 우리는 <연지구>에서 우리의 곁을 떠난 두 배우의 기억을 접하게 된다. 인생과 사랑이 헛되기에 <연지구>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자는 이젠 장국영과 매염방 때문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기 힘들지 모른다. 관금붕의 영화가 영화 안팎으로 누군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면, 그중 <연지구>와 <완령옥>은 <레드 로즈, 화이트 로즈>로 이어지는, 아름다움에 취한 세계의 정점일 것이다(그러나 관금붕은 이후 <쾌락과 타락>과 <란유>를 만들면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며 좀더 현실적인 주제로 넘어간다).

새로 출시된 <완령옥> DVD는 기존 출시본보다 30여분 긴 판본을 수록했다는 점을 먼저 주목할 만하다. 두 DVD엔 예고편 모음과 포토 갤러리 외에 관금붕과 영화평론가 폴 포노로프와의 인터뷰를 수록하고 있다. 길지 않은 인터뷰지만 제작 배경과 배우, 스탭, 영화의 주제 등에 대한 설명이 알차다.

06. 11. 09.

P.S. 많이 미뤄진 것이지만, 친구가 유고로 남겨놓은 번역서가 내년쯤에 나올 예정이다. 오늘 그 결정사항을 통보받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고의 교정/교열을 맡기로 했는데, 물론 나도 그 일원이다. 내년에는 친구에게 면목이 설지도 모르겠다...  

P.S.2. 본문에서 깜빡 빼놓은 자료는 신작 <장한가>를 들고서 작년에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관금붕의 인터뷰이다. 오마이뉴스(05. 10. 12)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옮겨놓는다. 그의 차기작이 매염방에 관한 영화가 될 거라는 얘기가 눈길을 끈다.

"정기요는 사랑을 갈구하는 캐릭터"

11일 오후 4시 20분경 메가박스에서 열린 <장한가>의 공식 상영이 끝난 다음, 관금붕 감독과 주연배우 정수문이 함께 한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홍콩을 대표하는 가수 겸 영화배우이자 뛰어난 패션리더이기도 한 정수문은 영화 속에서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와는 대조적으로, 아담하고 작은 체구에 3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귀여운 미소가 돋보이는 스타였다.

진지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관금붕 감독은 한국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시종일관 적극적이고 겸손한 대답으로 눈길을 끌었다. 중화권의 거장들인 허우 샤오시엔과 왕가위와의 비교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서부터,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도 '질문을 더 받겠다'며 관객들을 먼저 배려하는 성실한 자세로 호평을 받았다.

- <장한가>는 엄청나게 1940년대에서 80년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긴 시대를 아우르는 이야기이다

관금붕(이하 관): "전작인 <완령옥>이 1920~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시대가 좀더 넓어졌다. 당시 상하이는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하여 상류사회의 문화가 발달하고 정치적-사회적으로 굉장히 혼란한 시대였다. 영화의 디테일한 측면은 100퍼센트 실화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속에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영화 속에서 역사는 배경으로 작용하지만 이야기의 전면에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방대한 시대를 제한된 시간 안에 영화 속에 녹여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래서 보다 개인의 삶을 그려내는 데 집중하여 역사적인 배경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했다."

-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의 큰 흐름은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영화의 복고적 스타일은 왕가위의 <화영연화>를 연상시킨다.

: "두 분 모두 개인적으로 내가 굉장히 존경하는 감독들이다. 개인적으로 인물이 시대의 격동 속에 놓여 있음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허우샤오시엔은 대만의 역사를 주로 다루는 감독이고, 왕가위는 <화양연화>가 60년대 홍콩을 무대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형식이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다소 유사하게 느낄 수는 있어도 본질은 각자 상이한 이야기로 생각한다."



- 정수문 씨는 주로 상업적인 색깔이 짙은 영화에 자주 출연해왔는데,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정수문(이하 정): "개인적으로 그동안 제가 코미디 영화같은 상업 영화가 자주 출연해왔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지만 배우는 어떤 배역이든 역할에 따라 변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정기요는 대단히 복합적인 면을 갖춘 캐릭터로 10대에서 50대까지 방대한 시절을 넘나드는지라 그때그때 몰입하는 데 어려움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정기요의 성향 중에서 나와 비슷한 부분도 있었고, 감독님의 조언도 있어서 전반적인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 주인공의 애정관이 다소 모호한 것 같다. 극중에서 만난 4명의 남자를 과연 진정 사랑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자들을 속이고 이용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 "정기요는 영화에 나온 모든 남자들을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각 남자들과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그 남자들을 사랑한 마음이 진심이었다고 본다."

: "정기요는 여러 가지 다층적인 면을 갖춘 캐릭터다. 당시에 그녀가 처한 입장은 현실적인 고민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물론 남자를 만날 때에도 과연 이 남자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려를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남자들을 이용만 하거나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감독이 주연배우에게 어떤 식의 연기주문을 했는지

: "매번 영화마다 감독님의 기대치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많은 시대를 넘나드는 만큼 감정의 세밀한 부분을 표현해달라고 주문하셨다. 다행히 감독님은 감정이 풍부한 분이라서 저에게 많은 조언을 주셨고,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와 몰입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 "최근 사망한 배우 매염방과 관련된 전기 영화가 될 것같다. 현재 시나리오 완성 단계에 있는데 일정이 확실히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 <장한가>도 굉장히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서 힘든 부분이 많았는데 이 작품을 끝내자마자 또 더 규모가 큰 영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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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스타브로긴의 마지막 편지

가끔은 내가 써놓고도 까맣고 잊고 있었던 글들을 만나게 된다. 수년 전에 씌어진 걸로 보이는 아래의 글도 마찬가지인데, 말투로 보아 무슨 '댓글'로 씌어진 게 아닌가 싶다. 니콜라이 스타브로긴은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1872)의 주인공이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 대해서 몇 마디 주석을 붙이고 있는데, '창고'에 넣어두도록 한다.

 

 

 

 

<악령>은 무엇보다도 주인공 스타브로긴에 대한 연구입니다. 젊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인간은 수수께끼라고 했을 때, 그 수수께끼성을 가장 매력적으로(악마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스타브로긴이죠. <악령> 속에서 그가 자신에 대해서 직접 털어놓고 있는 부분들은 그래서 그 수수께끼를 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요긴합니다. 원래는 삭제됐었지만, 작가의 사후에 포함된 '스타브로긴의 고백'(<찌혼의 암자에서>)을 제외하면 <악령>을 마감하는 그의 편지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참조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편지는 다리야 파블로브나를 수신자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위스의 '우리'란 곳에 도피처 겸 거처를 마련해 두고 그리로 갈까 합니다(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자살입니다). 하지만, 무슨 대단한 걸 기대해서는 아니죠.

"나는 우리의 생활에서 무엇 하나 기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가볼 뿐이죠. 내가 일부러 음울한 장소를 택한 건 아닙니다. 러시아에서 내가 구속받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는 다른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낯설 뿐이지요. 사실 러시아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어느 장소에서 산다는 일보다 제일 싫은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낯설음"이라는 것은 스타브로긴을 대표해줄 수 있는 정서입니다. 그에게 세계(특히 러시아)는 낯섭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지주의자인 샤토프(그리고 작가)의 대척점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는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관념에 들려 있는 인물이죠. 다만, 어느 한 가지 관념(=사상)도 그를 만족시키질 못합니다. 그의 내면은 너무 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넓이는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드미트리가 말하는 "미학적'의 넓이가 아니라, 인식론적인 것입니다(*아래는 카뮈 각본, 안제이 바이다 연출의 연극 <악령>에 등장하는 스타브로긴. 모스크바의 '동시대인' 극장의 레퍼토리이다).

"나는 가는 곳마다 내 힘을 시험적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권했던 일입니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해, 또 남한테 보여 주기 위해 실험하면서도, 내 힘이 한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그는 선행과 악행을 구별없이 행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데(그 자신에게도 그는 수수께끼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추악하고 엽기적인 행동도 그의 한계를 드러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의 힘과 내면은 무한하거나 무한에 가깝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인식론적 자아의 무한성'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라스콜니코프의 경우는 소박하기 짝이 없죠. 도끼로 한 노파를 살해하자 마자 자신의 한계가 막바로 드러난 경우니까(앓아눕지 않습니까?).

하지만 스타브로긴의 경우는 12살 소녀 마트료샤가 자살하는 걸 지켜보면서도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잃지 않습니다. 샤토프가 따귀를 때렸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겐 반응(reaction)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무관심한 존재인 것이죠. 그는 타자의 어떤 목소리에도 응답할 줄 모르는 윤리적 백치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인식론적 무한은 윤리학적 무한의 결핍을 전제로 합니다. 그에겐 윤리학적 자아가 부재합니다. 무관심이 그 증표입니다. 윤리학적 자아란, 레비나스의 말을 빌면, 타자의 무한성과 대면하는 자아입니다. 인식론적 자아가 오딧세이의 귀향처럼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자아라면,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자아라면, 윤리학적 자아는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결코 고향으로, 자기 자신에게로 귀환하지 않는 자아입니다. 즉 타자의 무한 속에서 실종되거나 몸둘 바를 모르는 자아인 것이죠. 제 생각에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대지는 그러한 무한성의 표상입니다. 스타브로긴의 경우는 자신의 인식론적 무한에 포박당한 채, 윤리학적 무한에는 끝내 눈뜨지 못하는 불행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불행은 사소한 것이지만, 삶을 더이상 지탱하기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죠.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 같은 놈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말입니다. 더러운 곤충처럼 지구의 표면에서 근절해 버려야 함을... 그러나 나는 자살을 두려워 합니다. 그것은 아량을 보이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나는 잘 알고 있소, 그것이 허위임을. 무한한 허위의 연속 속에 있는 최후의 허위임을..."

인식론적 무한은 동시에 허위의 무한(=무한한 가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차연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인식론적 의미나 진실에 대면하려고 할 때마다 그것은 한 걸음씩 물러나지요. 왜냐하면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은 체계이며, 타자와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차이적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악무한인 것이죠. 그러한 사정에 눈뜨기 위해서는 타자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식론적 무한의 맹목성과 비참(=가난)에 눈을 떠야 합니다. 그것은 분노와 수치와 절망을 동반하겠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스타브로긴에겐 결여되어 있으며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자살은 구원없는 필연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나는 이곳을 떠난 다음부터 여섯번째 역의 역장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사나이의 앞으로 회답을 써 주십시오. 주소는 따로 동봉합니다."

그에게 이 편지를 보내고 싶지만, 불행히도 우린 그의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군요!...

06. 11. 03.

 

 

 

 

P.S. 참고로, 최근에 권철근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소설 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6)가 출간됐다.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단행본 연구서로는 (놀랍지만) 국내 최초의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 연구자들이 펴낸 관련서로는 포괄적인 해설서와 사전, 그리고 논문모음집 등이 있었다. 새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간행된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번역이 무엇보다도 일차적인,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각과 축적된 연구역량을 과시할 만한 업적들이 나올 때도 되었다. 그러는 너는? 자고로 '주마가편'이라고 했다. 이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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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죽음은 삶이 아닌 것, 곧 삶의 부재 상태이며 미래완료형으로 인간이 일용할 필수 관용구이다. 삶의 의지로 가장 충만할 때 종종 죽음의 수사가 동원되는데 가령 ‘죽고 못 살고’, ‘죽기보다 싫거나 죽자 사자’ 하고, ‘죽기 살기로 기를 쓰는’ 식이다. 먹을거리들의 죽음은 날마다 사람의 삶을 살찌운다. 소의 죽음, 배추의 죽음으로 인간은 먹고살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으로 날마다 죽어나는 존재가 또한 인간이다. 날아다니는 새가 하늘을 사유하지 않듯, 자신의 죽음은 사유하지 않는 게 사람이지만, 죽음이 과연 삶과 따로 생각할 수 있는 주제이겠는가.

죽음은 영원한 익명의 상태이며 죽음의 형식은 권총자살한 소설가 로맹가리의 유언처럼 “나를 마침내 완전히 표현”하는 방식이다. 죽음에도 생명이 있어 시대에 따라 대접이 달랐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우리의 자세는 대부분 비슷하다. 바로 죽음을 맞는 자세는 감연하기 짝이 없고, 나의 죽음, 내 가족, 지인의 죽음만은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며 무덤처럼 고요하기를.(달리 ‘젖무덤’이란 말이 생겼겠는가!)

건강한 사회, 건강한 죽음
일본 만화 『시마 상무』(히로카네 겐시, 2006)를 보면 노인복지로봇이 나온다. 최첨단 기기가 장착된 옷을 노인이 입으면 책 한 권 드는 힘으로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가 복지와 의료, 기계의 힘으로 수명을 억지로 연장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삶, 건강한 사회겠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과학과 의료기술 등 물리적인 부분이 덜 발달한 탓도 있었지만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긍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죽어갔다. 오늘날은 되려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이며 한편으로는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든 시대이기도 하다. 인간의 수명이 정해져 있듯 한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인구의 임계치라는 것이 있고, 그 인구가 자원이 한정된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노인복지로봇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연장시키고 싶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만 안락사 문제에서 짐작되듯 그것의 한계와 기준, 가치가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이렇듯 한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시사하며 그것은 또한 한 사회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미리 엿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죽음은 과거에 없었던 각종 질병과 복잡한 사회구조로 인해 흡사 백수광부처럼 달려드는 경우가 많다. 때로 테러나 건물 붕괴로 어이없이 희생당하기도 한다. 교통사고 사망률과 자살률이 높은 우리나라의 죽음은 그러나 어느 때보다도 삶과 멀어진 느낌이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건물을 지어대고, 지구의 평균온도를 올리고 있는 삶의 양태 때문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죽은 자임을 연습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만큼 철학이 부재한 시대가 요즘이 아닌가 싶다. 죽음에 대한 태도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경건한 죽음
죽음에 관한 방대한 저서 『죽음 앞의 인간』(필립 아리에스, 2004)을 보면 19세기 초에는 임종환자의 최후 성찬식 때 가족은 물론 안면이 없는 사람들도 집안이나 환자의 침실을 방문하여 만인이 참석한 가운데 죽어갔다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죽음이 오히려 아름다운 유혹이었고, 바다나 광야처럼 방대한 자연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기에 들어서면 일반적으로 죽음은 더 이상 아름다운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며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었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광적인 탐구의 시대였던 르네상스와 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 찼던 중세의 시공을 지나 19세기 말 도래한 산업혁명은 죽음에 대한 인식 또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의 죽음은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이 회피하거나 배척하며 외양을 왜곡하고 조작할 정도로 두려운 것으로 바뀌었다. 과거 죽음의 현장은 차가운 의료기기와 수술등, 심폐소생술이 주는 공포감 가득한 병상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속한 혈족과 공동체 구성원들이 죽어가는 침상 주위로 결집했고, 죽음이 공동체를 통과함으로써 빚어진 불안감을 다 함께 애도하면서 표출했다. 죽음으로 인해 허약해진 공동체가 감지된 위험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의식이자 마지막 절차가 바로 장례였고, 그것의 형태는 축제였다.

근사체험을 통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연구하고, 지난해에 〈한국죽음학회〉를 창립하여 국내에 ‘죽음학’의 존재를 알린 최준식 교수는 “지금 한국사회를 휩쓰는 웰빙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며 “주위 사람들과 품위 있게 이별하고, 자신의 생을 차분히 돌아보는 ‘죽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 교수는 또한 영면실에 비해 중요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영안실에 대한 엄청난 관심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영안실은 갈수록 화려하고 고급화되고 정말 필요한 영면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낫다’, ‘죽은 정승이 산 개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죽음에 대한 한국인의 부정적 인식을 반영하는 단적인 사례들이라며 죽음에 대한 강렬한 거부감은 엄청난 의료비와 장례비로 귀결되고, 그 부담은 살아남은 자들이 떠안는 부조리함에 대해 꼬집는다. 오랜 역사 동안 ‘영적(spiritual) 문화’를 간직해온 한국이 산업화란 암초를 만나 물질문명에 더욱 매달리게 됐으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현세만이 가치 있다는 편향된 생각을 갖고 세속적 가치에 천착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놀랍게도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지닌 문제점과 상통한다. 마치 나(우리 세대) 이후에는 세상이 끝날 것처럼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살리는 대안을 외면하는 삶의 태도 말이다.

최첨단 시대에 미개한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의 책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2006)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살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조금 과장해서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의 부정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둘로 분열되어 있는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고유하다는 것을 앎으로써 장엄성을 간직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썩어 문드러져서 땅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원적인 딜레마를 숙지하는 게 또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전쟁도 결국은 죽음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동물 가운데 인간은 유독 남을 엄청난 규모로 처참하게 살육하는데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영생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오토 랑크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경감된다. 즉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자신은 죽음이라는 벌, 혹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벌에서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전쟁도 자신의 불멸을 확인하기 위해 일으키는 것이며 전장에서 적을 죽이면서 너는 죽지만 나는 이렇게 살아 있으니 나는 ‘불멸의 존재다.’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을 절대로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은 영웅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부활절 때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다(부활하셨다)!”고 외치는 것이고, 그런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꾀하는 것이다. 인간 이외의 생명들에 대한 무차별 살육과 불로장생을 향한 현대인의 욕망, 종교의 부흥 또한 죽음에 대한 공포로 설명될 수 있을까?

죽음과의 화해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기념일이 있다. 1년에 한 번,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친인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오는 날이다. 그 날이 되면 설탕으로 해골을 만들고(설탕처럼 달콤한 죽음?), 나무나 종이로 만든 해골 가면을 쓴 후 죽은 이의 사진이나 갖가지 꽃과 음식으로 재단을 만들고 밤이 새도록 먹고 마신다. 시인인 옥타비오 파스는 “멕시코는 죽음과 친하고, 죽음을 농담 삼고, 죽음을 애무하고, 죽음과 함께 자고, 죽음을 축하한다.”고 했다. 우리는 주변인, 가족의 갑작스런 죽음을 통해 죽음을 환기하곤 실존의 기저에 깔려 있는 본질적인 허무와 직면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죽음을 둘러싼 창백한 아우라와 허무를 외면함과 동시에 조금 덜 허무하기 위해 무덤 같은 일상에 기꺼이 묻히고 만다.

존중되지 못하는 오늘날의 야만적 죽음 또한 개인에게 주어진 수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나무와 같다. 처연하게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욕망에 끄달리지 않는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연히-또는 필연적으로-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었듯이, 죽음은 어느날 잘못 배달된 소포처럼 무람없는 얼굴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저 오늘의 죽음을 충실히 살자.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에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의)의 경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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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행복의 명언들.....

 [행복의 명언들]

- 명사들이 말한 행복이란?



행복의 원칙은 첫째 어떤 일을 할 것,

둘째 어떤 사람을 사랑할 것,

셋째 어떤 일에 희망을 가질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기쁘게 일하고, 해 놓은 일을 기뻐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괴테


궁핍은 영혼과 정신을 낳고 불행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 - 빅토르 위고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스스로 큰 고민 속에 빠진다.

 - 라로슈프코


행복은 지배하여야 하고, 불행은 극복해야 한다. - 독일속담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다.

- 그레이엄 그린


사람이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결코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 라로시코프


행복의 계단은 미끄러지기 쉽다 - 로마속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불행은 없다.

가만히 견디고 참든지 용기를 내쫓아 버리든지

이 둘 중의 한 가지 방법을 택해야 한다.

- 로망 롤랑


괴로울 때가 있고 즐거울 때가 있다.

고락이 서로 접하고 교대하는 가운데 심신이 연마되어 간다.

아직 깊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인생은 고락이 서로 접해 흐르는 물속에서 떠내려가는 한 조각의 나무는 아니다.

고락이 교대하여 흘러가는 동안에 숭고한 정신을 얻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 채근담


최상의 행복은 1년을 마무리할 때,

연초 때의 자신보다 어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 톨스토이


인간의 행복의 원리는 간단하다.

 불만에 자기가 속지 않으면 된다.

어떤 불만으로 해서 자기를 하대하지 않으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

- 러셀


행운은 마음의 준비가 있는 사람에게만 미소를 짓는다. - 파스퇴르


행복이란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은

다른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데에서 싹트는 것이다.

- 월리엄 조지 조던


행복이란 미래의 여건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임을 터득하고 나면 이 문제를 터득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해 지기 위해서,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 휴. 프라이드


어떤 사람은 자기는 늘 불행하다고 자탄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행복함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세상을 헤매지만

정작 행복은 누구의 손에든지 잡힐 만한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만족을 얻지 못하면 행복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호라티우스


행복해지는 비결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만

노력할 것이 아니라,

노력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데 있다.

- 앙드레지드


행복을 사치한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림에 그려 놓고

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 나풀레옹


미래의 어느 때에 불행해질 것이라고 해서

지금 불행해하는 것은 진실로 어리석은 일이다.

- 세네카


행복의 비밀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있다.

- 제임스 M. 배리 경


매일 아침, 매일 밤 태어나 비참하게 되는 자 있고,

매일 아침, 매일 밤 태어나 즐거워지는 이가 있다. - W. 블레이크


불행에 대한 두려움은 불행 그 자체보다 더 나쁘다. - N. S. 코우리


타인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도 평화롭지 못하다.

- 월리안 해즐리트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이다.

행복을 즐겨야 할 장소는 여기다.

- 로버트 인젠솔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마음의 평온함을 뜻한다.

- 시세로


오래가는 행복은 정직한 것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라하텐베르히


행복은 무엇보다 건강 속에 있다.

-G. W. 커티스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려준다.

- 아리스토텔레스


마음이 어진 사람은 조그마한 집에 살아도 행복하다.

- 홍지성


우리와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것은

지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다.

- 칼 스피들러


늘 유쾌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에 신경을 쓸 뿐만 아니라

또한 실제로 미덕을 실행한다.

- 빌헬름 폰 홈볼트


너무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너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 아서 쇼펜하우어


그렇다면 자신이 느끼는 행복은 무엇일까요.

한번 채워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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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먼슬리 리뷰] 미국 여성운동 40년 (4, 끝)

'보살핌 노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먼슬리 리뷰] 미국 여성운동 40년 (4, 끝) 
 
  2006-08-14 오전 9:07:11     
 
여성노동자들의 지위가 여러 측면에서 변화가 없는 주된 이유는 성별 노동분업의 유지에 있다. 이것이 바로 낸시 포브르(Nancy Folbre)가 저서 《마음은 보이지 않는다(The Invisible Heart)》에서 주장한 바다.
 
  늘 저평가되는 보살핌 노동의 가치
 
  포브르에 따르면 성별 노동분업으로 인해 보살핌 노동은 노동시장에서 늘 저평가된다. 유급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보살핌 노동이 점점 더 시장의 손에 맡겨졌지만, 여전히 여성이 계속 맡아 하는 무급노동이 시장의 보살핌 노동의 부족분을 상당부분 보완하고 있다. 포브르의 추정에 따르면 미국의 여성들이 무급으로 수행하는 보살핌 노동은 시장에서 구매되는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에 비교해 30%에서 60% 사이 어딘가에 해당한다.
 
  포브르는 또한 보살핌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노조를 조직하더라도 결국에는 보살핌 부문이 아닌 다른 비슷한 직종에서 받을 수 있는 급여보다 낮은 급여에 머물게 된다고 주장한다. 보살핌 분야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게 되더라도 업무의 특성 자체가 보살핌을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파업을 비롯한 쟁의행위라는 수단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부류의 여성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개인적 역량도 모자라고 노조도 결성하고 있지 않다. 이들은 또 교육수준이 높지 않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종사해 온 직업 이외의 다른 직업을 구할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이 구할 수 있는 직업은 계산원, 할인점 직원, 식당종업원 등이며, 주로 사회적 힘이 따르지 않는 직종들이다.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언제든지 쉽게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취급되며, 이런 분야는 노조조직률도 낮다. 주로 여성이 근무하는 직업들의 노조조직률은 평균적인 노조조직률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개인화된 차원의 해결책도 택할 수 없고, 노조결성 같은 집합적 노력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개인화된 차원의 해결책이 지닌 한계
 
  더 나아가 개인화된 차원의 해결책이란 이 부류의 여성들에게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핵심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월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1950년대에 포드자동차의 생산직으로 일했던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의 급료와 기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월마트 계산원과 같은 직업을 '괜찮은 일자리'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직업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집합적 조직화'가 필요하다. 한때 나쁜 일자리로 통했던 자동차 산업의 생산직이 고임금이며 혜택도 많은 일자리로 바뀐 것도 바로 집합적 조직화를 통해서였다.
 
  우리는 이런 부류의 여성노동자들이 개별화된 전략보다는 집합적 전략을 통해 보다 많은 혜택을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집합적 접근만으로는 여전히 그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단기적으로 볼 때 집합적 전략은 직업의 질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수 있을 뿐 계급상의 위치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다. 심지어 여성이 주로 일하는 직종 전체에 걸쳐 노조조직률이 높아진다고 해도 우리가 계급경제 안에서 살아가는 한 일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고용주로부터 착취를 당할 것이며 자기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아울러 임금과 직업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집합적 접근방법이 일하는 여성들의 실제 삶에 미칠 수 있는 효과 자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런 접근방법은 노동의 사회적 재생산 문제를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는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비시장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서도 집합적 해결의 노력이 요구된다.
 
  시장화 속에서 더욱 개별화된 여성의 삶
 
  여성의 시장진입 가능성을 개선하고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의 질을 높이는 일이 개별 여성에게 혜택을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여성들 사이에 보살핌 노동을 단순히 재분배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요한나 브레너(Johanna Brenner)와 바버라 라슬렛(Barbara Laslett)이 주장했던 대로, 권력과 각종 자원뿐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의 조직 전체도 여성노동자들의 조직화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성별 노동분업과 같이 사회적 재생산이 구조화된 방식은 여성들이 스스로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수준을 좌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살핌 노동이 시장의 손에 맡겨지게 된다는 것은 가사 일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에 떠넘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별 노동분업은 이런 책임의 대부분을 여성들이 떠맡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런 현상은 사회운동의 상태에 좌우되는 가운데 특히 계급과 인종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진보의 시대'로 불리는 1910~1920년대나 1960년대에서 1970년대 같은 시기에는 강력한 여성운동이 존재했다. 여성운동은 성별 노동분업에 도전했고, 대부분 중산층인 백인여성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화하고 스스로를 동원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 재생산의 대부분이 민영화돼 시장으로 넘어갔고, 부모들은 아이를 돌보는 일을 포함한 보살핌 노동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지게 됐다. 이런 현상은 여성들의 삶을 더욱 개별화했고, 여성들이 어떤 종류로든 스스로 조직화하고 집합적인 해결책을 추구할 여지를 차단해버렸다.
 
  물론 이 글에서 우리가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겪는 경험들을 묘사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물적 조건들을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여성노동자들의 삶에 있어서 사회적 재생산 구조 외에 '생산'도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에 극적인 변화가 찾아온 것은 대부분 고용주 또는 정부가 여성들을 집 밖의 일터로 적극적으로 끌어낼 때였다. 대표적인 예가 1800년대 초 로웰(Lowell) 섬유공장이 농촌 여성을 대규모로 모집했던 것과 2차 세계대전 때 방위산업체들이 여성을 고용한 것을 들 수 있다. 여성들은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을 자신들이 노동시장에서 겪게 되는 경험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한 조건' 아래에서 그런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기존 노동계급 여성운동의 한계
 
  이와 같은 현실은 여성들의 자기 조직화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여성들이 앞으로도 계속 작업장의 차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노동계급 여성운동의 한계가 곧 드러날 것이다. 왜냐하면 작업장의 차별에만 초점을 맞추는 투쟁은 '시장이 모두에게 생계임금을 보장'할 수 있고 '시장이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해법을 보장'할 수 있다는 관념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투쟁은 여성노동자들에게 평등한 시장 접근권에 의존하는 것이다. 여성과 노동 문제에 관련된 사안을 다루는 단체들이 많이 있지만, 그 대부분은 결국 이런 틀을 인정하는 내용의 정책을 촉진할 뿐이다. 이런 단체들은 여성이 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여성을 위한 직업훈련 기회를 늘리는 일과, 더 많은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아동양육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실현하는 일 등을 추진한다. 이보다 의미 있는 일로서는 고용주가 여성의 '인적자본'을 인식하고 그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책들은 여성이 노동계급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늘려주는 것 이상이 될 수 없다. 그 최선의 결과는 개별 여성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을 완전히 등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운동이 놓치고 있는 것은, 핵심적인 요소로서 계급 시스템이라는 것이 노동자와 고용주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의 삶의 조건 향상을 위해 투쟁해야 하고, 또 그런 투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지속가능한 생계임금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는 생계임금을 제공하는 직업을 놓고 노동자들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와 인종별 억압체계는 그런 직업들이 분배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시장 접근권에 근거를 둔 개별화된 해결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성에게는 계급에 기반을 둔 해결책도 필요하다. 사실 개별화된 해결책은 많은 여성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삶의 재구성과 보다 폭넓은 계급적 기반을…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여성들 개개인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성들이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기회를 갖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소수의, 아니 대부분의 여성이 성공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하에서 일부 여성들이 자신의 계급을 등지고 떠나는 데 성공한다는 것은 나머지 여성들이 뒤에 남겨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관리를 받는 사람을 두지 않은 관리자가 있을 수 없고, 패자 없는 승자도 없다. 누가 패자가 되는가? 자본주의 하에서 가장 많은 것을 잃는 이들은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과 유색인종일 것이다. 게다가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음으로써 '승자'가 된 여성들도 대부분은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얻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타인을 보살피거나 스스로 보살핌을 받는다는 측면에서는 그렇게 '승리'한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에도 제약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하에서는 패배한 여성들은 물론이고 승리한 여성들을 위해서도 새로운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재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의 새로운 모형'을 추구하며 모든 계급을 아우르는 여성운동일 것이다.

(번역=추선영 번역가, 이주명 기자) 
   
 
 
  스테파니 루스/매사추세츠 암허스트 대학 강사 외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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