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퍼온글] 아내와 화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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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헨리 조지와 토지공개념

한국일보의 '이재현의 가상인터뷰' 코너에서 '헨리 조지'편을 읽었다. 미국의 저명한 이 사회사상가가 인터뷰에 등장하게 된 건 최근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실패) 때문이겠다. 필자의 순발력을 높이 살 수밖에 없는데, 비록 대담이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깝지만(헨리 조지가 '우리'라고 말할 때 '우리'는 누구인지?) 일독할 만하다. 더불어,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도입'이라는 '제3의 길'(?)에 대해서 한번 검토해봄 직하다(개헌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상당한 '견적'의 일이긴 하지만).

한국일보(06. 11. 14)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도입이 해결책"

이재현(이하 현) 노무현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는 꼭 잡겠다고 여러 번 단언했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돼버렸습니다. 저는, 낙향하면 고향 시골집에 가서 살겠노라는 대통령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편이라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참으로 안타깝게 보고 있습니다.

헨리 조지(이하 조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우왕좌왕해서 그런 거야. 8.31 대책 수립시 보유세 실효세율을 선진국형 구조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목표를 도중에 스스로 포기했지, 또 보유세 강화와 함께 패키지로 추진해야 할 거래세 부담 인하를 적절한 시기에 시행하지 못했지, 그래서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취득세 및 등록세에 관한 애초의 정책 목표를 찔끔찔끔 수정玖?상황 악화 때마다 땜질 식으로 처방하다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렸으니까 말이야. 대통령의 호언장담만 믿고 있던 실수요자들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해.

결국 노무현 정권의 책임인 거죠?

조지 그야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의 책임을 신나게 질타하고 있는 보수언론도 책임이 상당해. 보수언론은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세금 폭탄’ 운운하며 참주선동했지. 열린우리당도 여기에 부화뇌동해서 정책을 거꾸로 후퇴시켰고 말야. 10억원짜리 아파트가 14억원으로 올랐다면 양도차익이 4억원이니까 연 1,000만원 종부세를 40년이나 납부할 수 있는 거야. 게다가 6억원 이하 주택에 거주하는 서민이 98.8%야.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완전히 ‘생까는’ 얘기지.

노무현 정권 자체의 문제점은 뭔가요?

조지 투기적 가수요 세력을 우습게 본 것과, 투기의 광풍이 불어대면 결국 돈이 없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간과한 거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투기로 인한 당장의 상황 말고도, 일부 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 가격의 3분의 1이 거품이고, 이 거품 요인의 70% 가량이 저금리 때문이고 나머지는 부통산 투기 등 기대심리 때문이라는 데요. 잘못하면 거품이 꺼지면서 한국 경제가 다시 크게 망가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되면 결국 다시 그 피해는 서민들에게만 닥치는 것 아닙니까? 일부에서는 정부는 공급확대만 하고 나머지는 시장원리에 맡기라는 주장이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마는….

조지 여기서 주의할 것은 땜질식 처방으로는 안 된다는 거야. 노무현 대통령이 당황해서는 안돼. 정책 실패에 분명한 책임이 있는 관료들을 데리고 회의를 해서 조잡한 대책을 내놓아 봐야 별 수가 없어. 현재까지의 실패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봐야지. 내 대안은 ‘시장친화적인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자는 거야. 토지보유세는 강화하고 다른 세금은 감면하는 패키지형 세제개혁을 하자는 거지.

130여년 전에 주장하신 바로 그 내용이로군요. 그런데 그것을 하려면….

조지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규정해야지. 부동산 문제는 당리당략이나 정략을 벗어난 문제이고 또 단기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없으니까 토지보유세 강화는 10년에서 2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해. 집권 정당이 바뀌더라도 토지공개념에서는 전혀 후퇴가 있을 수 없도록 말이야. 정책의 장기적 목표와 소위 로드맵을 미리 밝히고 국민들의 동의와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야지.

당장 현재의 투기 광풍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과제인데요.

조지 그건 어렵지 않아. 버블 세븐 지역 등을 포함해서 투기 수요나 초과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소유 제한 제도를 과감히 도입하고, 현재의 청약제도를 확 바꿔서 무주택 실수요자가 집을 갖게 하고, 후분양제 및 원가 공개 등을 통해 분양가격을 낮추되 당첨자의 경우 매각을 할 때 국가나 주택공사에게 반드시 팔게 하면 되는 거야. 보유세는 현재의 계획대로 틀림없이 과세를 해야지. 그리고 임대소득은 과세를 강화하고 임대소득의 세원은 국세청이 철저히 추적, 관리해야지. 그러면서 임대주택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서서히 확대해나가면 투기 광풍은 잡히게 돼 있어. 이미 싱가포르 등에서 하고 있는 건데 왜 우리라고 못하겠나? 부동산 문제는 전 국민적 의지가 있으니까 이를 바탕으로 해서 장기적으로 ‘시장친화적인 토지공개념’을 헌법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합의해나가면 되는 거야.

저야 선생님 주장에 찬성이지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런 프로젝트를 현재의 정치 국면에서 어떻게 실현시키는가가 문제겠군요.

조지 바로 그걸 하라고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정무직 공무원에게 각종 특권과 월급을 국민이 주고 있는 거야. 정책으로 승부하려 하지 않고 정계개편 따위의 조잡한 정치공학적 수작으로 집권 연장을 꾀하고 있는 정당이 있다면 국민들이 선거에서 혼내면 돼.

네,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 혹시 환생하셔서, 토지공개념을 중심으로 한 개헌을 공약으로 걸고 내년 대선에 출마하실 수는 없나요?

조지 허허…, 그건 정치인들이 할 일이지. 난 미국 사람이니까 북미간 직접 대화에만 신경 쓸 거라네. 그럼 또 보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

미국의 경제학자, 사회사상가, 사회운동가. 1879년에 출간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은 처음에는 출판사의 거부로 자비 출판했으나 그 후 폭발적인 주목을 받으며 수백만 권이 팔려 19세기 말까지는 영어로 쓰인 논픽션 분야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보급됐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영세 출판업자인 아버지와 전직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열두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3세 때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가세가 기울어 중퇴하고 갖가지 직업에 종사하다 16세 때 선원이 되기도 했고 그 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사금을 캐기도 했다. 인쇄공으로 일하다 성년이 되자 즉시 인쇄노동조합에 가입했고 일간지 인쇄부서에서 일하며 간간히 글을 쓰기도 했다. 1865년 링컨 대통령 피살 소식에 격분해 기고한 글이 신문 편집인의 주목을 받아 보수를 받는 기자가 됐으며 그 뒤로 신문사 특파원, 편집인 등을 지냈다. <진보와 빈곤>의 성공 후에 그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강연을 했고, 1886년에는 뉴욕시장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1897년에 재출마했으나 투표일을 4일 남기고 사망했다. <진보와 빈곤>의 한국어 완역본은 1997년에 출간됐다(김윤상 역, 비봉출판사).



헨리 조지의 사상 중 오늘날 받아들여지는 합리적 핵심은 “노동 생산물의 경우 개인에게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옳지만 토지는 사유화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게 옳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번영하는 뉴욕에서 극도의 사치와 지독한 빈곤이 공존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진보 속에서 빈곤이 존재하는 원인을 경제학적으로 찾아내려 애썼다. 그래서 그는, 지대의 폭등이 노동자 빈곤을 낳으므로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지대 전체를 사회화하는 토지가치세 도입이 필수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헨리 조지는 토지를 소수의 사람들이 배타적이고 독점적으로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는 소득세, 소비세, 각종 기업 관련 조세 등 경제적 노력에 의해 얻는 소득에 대한 과세야말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다른 세금들을 없애고 단일한 토지가치세를 징수하는 것만이 불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것은 개인에게, 사회의 것은 사회로’ 돌리는 정의의 도덕법칙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그는 토지 문제를 분배적 정의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의 차원에서도 깊이 있게 논의했던 것이다. 정부의 간섭과 과세를 혐오하면서 시장 만능주의를 설파하는 우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조차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에 대해서는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 나아가 헨리 조지는 토지 가치에 대한 기대가 소득 분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 바로 그 기대를 불황의 원인으로 설명했는데 이는 케인즈 경제학이 나오기 한참 전에 이뤄진 아주 획기적인 이론적 설명이었다. 형평과 효율을 함께 충족시키려는 헨리 조지의 토지가치세 정신을 오늘날 이어받고 있는 사람들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정통파 조지주의자(Georgist)들인데 이들은 헨리 조지의 이론이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대체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적 패러다임이라고 보고 있으며, 자신들의 경제학을 Geonomics로 부른다. 여기서 'Geo'란 바로 지구란 말에서의 ‘지(地)’를 뜻하는 것이기도 해서 헨리 조지의 이론이 갖는 생태학적 함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온건파 조지주의자들은 단일한 토지가치세만을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보고 토지가치세를 우선적으로 징수하되 다른 조세도 복수적으로 징수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한국의 경제학자들 중에서 헨리 조지의 이론을 선구적으로 받아들여 연구한 그룹은 김윤상, 이재율, 전강수, 이정우 교수 등과 같은 대구 지역 경제학자들이다.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면서 개혁적 경제정책을 수립ㆍ추진하다가 안팎의 압력으로 인해 중도하차한 것으로 보도됐다.

06. 11. 14.

 

 

 

 

P.S. 헨리 조지의 주저인 <진보와 빈곤>(비봉출판사, 1998)은 뒤늦게/진작에 번역돼 있다(알라딘에 이미지는 뜨지 않지만). 개인적으론 이 책을 부분적으로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건 '토지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부활>을 읽기 위해서였다. 흔히 쳥년시절 카츄사의 정절을 유린한 귀족 네흘류도프가 중년의 배심원으로 나선 법정에서 살인혐의까지 뒤집쓴 창녀 카추샤를 다시 만나면서 참회와 부활의 길을 걷게 된다는 줄거리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의 상당 부분은 토지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애쓰는 '지주' 네흘류도프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다(비록 지주계급에 대한 의심 때문에 농민들은 그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지만). 이때 톨스토이가 크게 감화를 받아서 참조한 것이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이었던 것. 그러니, (비단 현재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아니라)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진보와 빈곤>은 참조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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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저지 코진스키와 '페인트로 얼룩진 새'

지난주에 소개된 신간 소설들 가운데 눈길을 끈 건 폴란드 출신의 유태계 미국작가 저지 코진스키(1933-1991)의 문제작(이라는) <페인트로 얼룩진 새>(문예출판사, 2006)이다. 이미 번역된 <편력>(웅진출판, 1995)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미국문학 개론서나 일부 소설들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가령, 구효서의 <카프카를 읽는 밤>).

 

 

 

 

소개에 따르면,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자전적 소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 고통스럽고 잔인한 이야기이다. 1965년 처음 출간되어,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2차 세계대전이 낳은 가장 뛰어난 문학 작품'으로 꼽혀왔다."고 한다. 보다 자세한 건 아래의 리뷰 기사를 참조할 수 있다. 참고로 번역자는 안정효 선생이다.   

한국일보(06. 11. 11) '페인트로 얼룩진 새' 동족에게 온정을 기대하지 마!

동유럽의 어느 시골에는 마을 사람들이 새를 잡아다 깃털에 색칠을 한 다음 같은 새의 무리로 되돌려보내는 풍습이 있다. 알록달록하게 색칠된 새는 인간의 마수에서 벗어나 동료들의 애정과 보호를 기대하며 무리로 돌아가지만, 무리는 그 새를 낯선 적으로 착각해 집단공격을 가한다. 동족을 마구 공격해 찢어죽이는 새들. 이 잔혹한 장면을 즐기는 인간들의 놀이가 폴란드 출신 유태인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1965년 소설 <페인트로 얼룩진 새(The Painted Bird)>의 모티프다.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은 유태인 학살로 고아가 된 여섯 살 소년을 동물로 키운다. 소설은 이 소년이 나치가 점령한 동유럽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며 겪은 고통스런 성장의 기록이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목숨을 이어가는 소년은 가학적인 농민들에게 온갖 괴로움을 당하며 쫓기고, 갖은 노동에 착취당하며, 성적으로도 학대받는다.

살아남기 위해 기지와 재치, 거짓말과 술수를 익힐 수밖에 없다. “당하고만 살던 때는 지났다. 선의 신봉과, 기도와, 제단과, 성직자들과, 하느님의 힘은 나에게서 언어를 박탈했다.…이제 나는 악령의 도움을 받는 자들과 어울리기로 했다.”(236쪽) 동족으로부터 아무런 온정도 기대할 수 없는 이 가련한 ‘페인트 새’는 그렇게 삶의 본질을 터득해간다. 고작 열두 살 나이에.

이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작가에 대해 미리 알아두는 것이 요긴하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여섯 살에 고아가 된 그는 아홉 살 때 가혹한 농민 패거리에게 심한 벌을 받다가 충격으로 말하는 능력을 잃었다가, 종전 후 폴란드 고아원에서 병든 부모와 재회한 후에야 목소리를 되찾았다. 1957년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망명해 콜럼비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철강 재벌의 미망인과 결혼해 자가용 비행기와 승무원만 17명인 개인 배를 소유하게 되는 등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꿈꾸다 끝내 누리지 못한 삶을 현실에서 살았다.

그러나 허풍과 과장, 거짓말과 포즈로 점철된 그의 생은 자살로 끝나고 만다. 인간관계의 유효기간은 2년을 넘지 못했고, 자전소설로 알려진 <페인트로 칠한 새>가 가져다 준 세계적 명성은 1982년 “코진스키의 작품 대부분이 영어권 독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폴란드 원전의 표절”이라는 문화예술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의 폭로로 무너져 내렸다. 작가는 “한 번도 자전적 소설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알록달록 때 묻은 언어(The Painted Words)>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코진스키의 삶 전체를 거짓말로 만들며 그에게 문학적 금치산 선고를 내렸다.

이제 이 소설은 불우했던 작가의 일대기가 아닌, 동유럽 민속설화를 차용해 사악하고 가혹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의 존재조건을 상징한 비유로 읽힌다. 궁지에 몰려서야 더 넓은 독해의 자장을 갖게 된 작가는 불행한 걸까, 행복한 걸까.

1980년 국내에 소개된 적이 있는 이 책은 내용이 잔인한 데다 레닌을 찬양한 대목이 있다는 이유로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삭제 및 배포 금지됐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완역됐다.(박선영 기자)

06. 11. 15.

P.S. 아래는 러시아어본의 표지이다. '페인트로 얼룩진 새'를 의역하자면 '동정 없는 세상'쯤이 될 거 같다...

Painted Bird, by Jerzy Kosin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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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밀린 원고 때문에 대학원 MT도 따라나서지 못하고 집안에 죽치고 있다. 이런 날은 적당한 긴장상태에 있게 되는데, 그러한 긴장에 맞멎는 '배짱' 때문에 한편으론 여유롭기까지 하다(그 배짱의 유일한 근거는 원고를 쓰지 못한다고 바로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며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뒷북성' 기사를 읽게 됐는데,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란 학술쟁점 기사가 그것이고, 작년말 교수신문 기사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교수신문에 자주 들락거리진 않았나 보다). '자료'의 가치가 있어서 보관해놓도록 한다.

교수신문(05. 12. 20) "대한제국의 모델은 러시아였다?"

대한제국의 개혁 모델이 '러시아'라는 특이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허동현 경희대 교수(한국근대사)는 최근 출판된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선인 刊)란 책에 실린 한 논문에서 "대한제국의 국제는 그 전제성으로 볼 때 러시아 차르 체제를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라는 논문에서 "대한제국이 추진한 황제권 강화는 민국이념을 계승한 것이라거나 중국의 천자나 일본의 천황제를 본떴다기보다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통계승설과 일본모방설에 강한 의구심을 표출했다.허 교수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할 위기에서 러시아에 기대어 등장한 황제국 대한제국의 모델이 제정 러시아였음은 자명하지 않을까?"라는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장으로라면 황제권이 강하다는 형태적 유사성, 정치활동을 억압했다는 식의 전권적 지배, 급할 때 도와준 강국의 국가지배체제를 당연히 본받지 않았겠느냐는 식의 추론에 근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허 교수가 동원하는 것은 주한 러시아 공사 스파에르의 보고서가 전부다. 스파에르가 "고종의 충신인 척하면서 실제로는 여지없이 미국화 되어버린 서재필의 산물인 독립협회는 반러 활동을 전개하는 일본과 영국 공사관의 괴뢰"라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이를 근거로 "고종의 독립협회 해산에는 러시아 측의 암묵적 지지도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펼친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이 러시아의 힘을 빌어 일본 세력을 견제하고 대한제국으로 무사히 돌입할 수 있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가 방패막이 이상의 존재였다는 점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사료나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허 교수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빠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빈약한 근거로 왜 허 교수는 이런 무리한 주장을 펼치는 것일까. 그것은 교수신문에서 지난해 벌어졌던 '고종시대 논쟁'에서 '광무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대한제국'을 이끈 고종은 영정조의 민국이념을 계승한 개명군주라는 이태진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이다. 고종이 밀려오는 외세에 대응해 동도서기론을 취했던 이유에 대해 이태진 교수는 "고종은 서양의 입헌군주제나 입헌공화제에 대해 소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섣불리 이를 모방하기보다 선왕들이 추구한 민국정치 이념을 계승해 실현하는 것이 훨씬 더 내실있는 왕정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허 교수는 "과연 군주 중심의 동도서기론적 대응이 민국이념이라는 자기역사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었을까"라는 회의를 표한다. 그는 "민국이념을 계승하였다는 사진속의 고종황제는 어째서 차르의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일까"라고 계속 따진다.

이 질문은 그럴싸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공식복장이 그랬다면 그것은 은연중 고종의 지향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적 차원의 겉치레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또한 그간 대한제국의 성립에 영향을 준 국가모델을 명치유신을 거친 일본에 국한해서 논의해온 측면을 지적한 부분은 새로운 역사적 변수를 도입해 좀더 꼼꼼하고 종합적인 시야를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의미가 있다.

하지만 허 교수는 대한제국의 러시아 모방설을 대한제국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삼고 있어 아쉽다. 즉, 러시아는 모델로 삼을 만한 게 못된다는 것. 그는 이승만의 저서인 '독립졍신'에 러시아가 아주 저급한 국가로 취급되고 있는 걸 예로 들며 "당시 서구중심주의자들이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었음에 비해, 고종은 그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고종의 대한제국이 "비밀경찰이 사회 구석구석을 감시하는 보수적 반동 전제정치가 강화된 알렉산드리(*알렉산드르) 3세의 시대"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식의 부조적 방식에 대해서는 '고종시대 논쟁' 중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전제군주 등 유사성을 부각시켜서 무언가를 주장하는 방식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허 교수의 논문은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방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상황이나 내적 동기 등을 밝혀내지 못한채 단지 '왜 러시아는 논하지 않나'라는 착상에 의존하면서 유사성을 지나치게 발견하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을 많이 보여준다.

결국 허 교수가 골인하는 것은 대한제국이 근대국민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이다. "고종과 그 측근세력이 차르체제를 '잠재모델'로 만든 대한제국은 국민을 국가를 담당하는 주체가 아니라, 백성을 신민으로 잠자게 하려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20년 가까이 대한제국 정치구조를 연구해온 서영희 한국산업대 교수(한국사)는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독특한 주장인데 나는 대한제국이 러시아를 모델로 삼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한국사) 또한 "읽지 않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만약 사료나 논리적 근거가 없다면 고려해볼 가치가 없는 주장"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이 국민국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허 교수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허 교수는 대한제국이 서구 근대국가의 일반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국가가 아니라고 본다. 문명화의 정도, 통합기제의 유무, 국가간의 대등관계 등에서 볼 때 '택'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 명치 이래 일본의 문명개화는 "서구 근대와 일본 고대의 유착"이며 "서구근대가 오역, 날조된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이 헌법과 의회, 삼권분립 등의 정체를 갖추고 있었기게 일본적 국민국가 정도는 된다는 주장을 한다.

비서구권의 역사진행을 서구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전근대와 근대의 틀 속에서 살펴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이제 '선택'과 '관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허 교수뿐 아니라 이 결여태를 상정하는 학자들은 비서구권 국가들이 '번역'이라는 방식을 통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캐치 업' 근대화를 걸어갔다고 보고 있다.

이 때 '번역'이라는 어휘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권에서 비문명권으로 지식이 흘러들어간 방식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번역'이라는 수사는 매우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번역=이식'이고, 더 세분화시켜봤자 번역->번안->통언어적 실천(토착화)인 셈이다. 하지만 서구와 비서구의 관계를 '미메시스'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는 없을까. 미메시스는 상호적인 것, 즉 상호모방이다. 번역에서는 원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최고이지만, 미메시스는 그와 달리 원래의 대상에는 없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 최종적인 과정으로 포함된다. 

물론 예술에서 주로 쓰이는 이 미메시스의 개념을 역사과정에 확장시켜 대입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으나, 서구의 결여태로서 비서구사를 규명하려는 논의구조가 왜 아포리아인지를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기자의 아이디어는 책 한 권을 쓸 만한 주장이다. '무리'가 아닌 걸 보여준다면 주목할 만한 업적이 되지 않을까?).

대한제국이 '진정한' 근대국민국가가 아니었다고 결론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건 대한제국이 진정한 국민국가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룰 때 그 반박으로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서구와 역사과정이 다르고, 국가 구성원들의 사회화과정, 교육정도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 조선이라는 특수한 왕조가 어찌어찌 당시의 대세를 따라 국체를 바꿔보려 했었던들 어찌 '진정한' 서구를 이루었을 것인가가 진정한 의문이다.

차라리 "외세가 없었다면 대한제국은 어떤 제3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게 그나마 과거사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서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따라서 대한제국이 일본, 러시아와 청국, 미국 등 어느 한 나라를 모델로 삼았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조선이라는 그릇에 이들을 해체재구성하는 혼성모방을 선택했다고 보는 게 손쉬우면서도 역사적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강성민 기자)

06. 11. 10.

 

 

 

 

P.S. 허동현 교수는 박노자 교수와의 역사 대담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역사학자이다. 그 대담에서는 '건강한 보수주의자'의 역할을 맡았었다. 이 '쟁점'에서도 시사받을 수 있지만, 한국근현대사 연구에 있어서 러시아는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러시아쪽 사료들을 검토/분석할 수 있는 연구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안다. 국문학도/국사학도들이 일본과 중국쪽 사료 못지 않게 러시아쪽 사료들도 참조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특히나 해방공간에 관한 사료들이 그러한데) 우리가 몰랐던 우리 자신의 모습이 거기에 있는 건 아닌가...

P.S.2. 동향기사에 대한 허동현 교수의 반론도 게재되었던 걸 뒤늦게 발견했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마저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6. 01. 06) ‘강한 주장 약한 사료’(교수신문 제384호)에 답한다

제정 러시아의 차르체제가 대한제국 광무황제가 꿈꾼 개혁모델이었다는 필자의 견해(「대한제국의 모델로서의 러시아」, 『러일전쟁과 동북아의 변화』, 선인, 2005)에 대해 “강한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사료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강성민 기자의 논평은 정당하다. 허나 대한제국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기존 연구 모두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가설의 등장은 역사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켜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존의 연구는 개화파, 농민(민중), 국왕, 그리고 일본 중 누구를 근대 개혁의 주체로 보느냐에 따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를 달리한다. “광무개혁”의 실재를 부정하는 신용하 교수는 개화파를, “광무개혁”은 호평하면서도 대한제국은 “의사절대왕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김용섭 교수는 농민을, 대한제국이 주체적 근대 국민국가였다고 본 이태진 교수는 국왕을,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입장에서 “광무개혁”의 근대성을 부정한 이영훈 교수는 일본을 근대화의 주체로 본다. 강 기자의 논평에 힘을 실어 준 서영희 ․ 주진오 교수는 어떤 입장일까? 서 교수는 국왕을, 주 교수는 농민을 개혁의 주체로 보는 쪽에 서있는 것 같다.

시민사회와 산업화를 이룬 오늘 그 “발전”의 뿌리를 놓고 한국사학계의 내재적 발전론과 경제사학계의 식민지근대화론이 평행선을 달린다. 외세를 배격한 민족의 자주를 강조하는 대한제국 높이기는 과거사에 대한 성찰일까? 망국의 책임을 일본에 떠넘기는 과오 감추기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렇다고 개화기의 근대화 노력을 외면하며 오늘 우리가 이룬 경제성장의 뿌리를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대한제국 때리기도 정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종래 연구 동향을 일별할 때, 필자가 품은 의문은 다음과 같다. “급진” 개화파는 일본을, “온건” 개화파는 중국을, 친미 개화파는 미국을 근대화의 모델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 힘을 빌리려 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 고종과 주변세력은 갑신정변 실패이후 청국을, 그리고 아관파천 이후 러일전쟁 전까지 일본을 막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왜 그들은 러시아에 의지하려고만 하고 러시아를 개혁모델로 삼지 않았을까? 일본이 자국의 제도를 모델로 한 갑오경장을 유도했듯이, 러시아도 삼국간섭 이후 자국을 모델로 한 조선의 개혁을 이끌어 내려하지는 않았을까? 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민족”과 “자주”를 오용하는 국수적 성격의 대한제국과 고종황제 띠우기에 보이는 맹점을 지적하려는 데 그 주목적이 있었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잠정적 결론 하나는 대한제국은 그 개혁모델로 러시아의 차르체제를 참용하였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엄밀히 말하자면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힘의 균형 위에서 연명하던 허울만 남은 제국인 대한제국은 국민국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생각은 추후 실증적 작업이 뒷받침될 때 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 필자는 웨베르 주한 러시아공사가 아관파천 때 의정부를 다시 설치한 것에 대해 "고종이 러시아의 국무회의(Gosudarstvennyi Sovet) 절목을 참고하여 부활시켰다"고 보고한 러시아 문서를 찾았다. “강한 주장”을 입증하는 충실한 사료가 앞으로 속속 발견될 전망이다.

허나 필자는 비서구권의 역사를 “근대의 결여태”로 보았다는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차라리 졸고가 개화기 한국이 근대화에 실패한 원인을 찾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미 시효가 끝난 "근대화 예정론"에 불과하다고 평한다면 수긍이 간다. 물론 근대화란 역사적 필수가 아닌 하나의 가능성 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근대 기획의 문제는 근대 자체를 비판하여 넘어서려는 탈근대의 문제와 구별되어야 할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근대 기획―식민지 근대 극복과 하나 되는 국민국가 수립―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傳言만으로 一針을 주신 주진오, 서영희 교수께 감히 졸고 일독 후 가편을 청한다.(허동현 / 경희대·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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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나는 과시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 '사이버과시족'에 관한 기사가 어제 경향신문의 기획기사였는데(요즘 가장 다이내믹한 신문이다), 생각을 더 보태서 옮겨놓을까 하다가 일단은 자료로서 스크랩해놓는다. 그냥은 멋쩍으니까 나대로의 '과시'를 덧붙이자면 '인정과 '인정투쟁'에 관한 책들을 이 참에 읽어보시라는 것. 그게 <정신현상학>에서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까지 이어지면 과시란 것도 전혀 만만하지 않은 것이 되겠지만.

 

 

 

 

경향신문(06. 11. 09) 나는 과시한다, 고로 존재한다 ‘사이버 과시족’

직장인 김모씨(26)는 외식할 때 카메라가 없으면 안절부절못한다. 멋진 분위기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게 생활화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흔히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나 체인점 음식은 사진을 찍어 올리지 않는다. 조금은 특별하고, 남들과 다른 자신의 선택을 과시할 수 있는 음식만 찍는다. 주말에 좋은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고 일요일 저녁이면 간단한 작업을 거쳐 블로그에 올린다.

월요일이면 친구들은 김씨의 블로그를 찾아 “맛있겠다” “어디냐? 가격대를 가르쳐달라”고 리플을 단다. 김씨는 “음식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을 때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지만, 리플을 통해 나만의 가치있는 선택을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신(神)에 의한 인정을 중시하던 중세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인간 스스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다는 근대 철학의 자신감 넘치는 출발점이었다. 이어 프랑스 철학자 메느 드 비랑은 데카르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의욕적이다, 고로 존재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데카르트나 비랑의 선언을 패러디해 21세기 한국의 인터넷 세상을 묘사해보면 어떨까. “나는 과시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사이버 스페이스의 유목민들은 이 광대한 공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부모, 형제,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채 꺼내지 못한 얘기를 얼굴도 모르는 인터넷 저편의 네티즌에게 건넨다. 그러나 단순히 자신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드러내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현대인들은 타인의 비루한 일상을 꼼꼼히 챙길 만큼 한가하지 않다. 남들과 똑같아서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남들과 조금은 다른 자신의 특별한 취향을 드러내기. 드러내는 사람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독특한 것이 결국은 사람의 이목을 끈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공유 커뮤니티 유튜브는 1억건, 한국 최대인 판도라TV에는 85만건의 동영상이 하루에 올라온다. 그 중 네티즌의 이목을 끄는 건 극소수다. 오프라인에서 마주쳤다면 ‘미친놈’ 소릴 듣기 딱 좋은 황당한 퍼포먼스 정도가 돼야 네티즌들은 환호한다. 전세계를 돌며 우스꽝스러운 막춤을 춰서 인기를 얻은 미국 청년도 있고, 인기 가요에 맞춘 어설픈 립싱크로 인기인이 된 한국 청년도 있다.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프로페셔널을 뺨치는 아마추어들이 예민하게 갈고 닦은 취향의 집적물을 전시한다. 방대한 DVD나 CD컬렉터들이 남들에게는 없는 리스트를 자부하면서 내밀고, 대중 앞에 내놓기 쑥스러워 골방에서 그려냈던 그림을 광활한 네트 갤러리에 전시한다.

유치하다고 해도 좋고, 어설프다고 해도 좋다. 다만 이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그 취향을 인정받아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고픈 당연한 욕망의 발로다. 공자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닌가”하고 말했다지만, 이는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점을 돌려서 말한 데 불과하다. 새로운 세대의 족속들의 손에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쥐여졌다.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빠른 통신망을 탄 채, 우리는 우리를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갈망한다. 외로우니까, 나 하나만으로는 외로우니까.(백승찬 기자)

06. 11. 10.

P.S. 마지막에 '외로우니까'란 멘트는 감상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저널리스틱한 것이지만 문제를 축소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인정'은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이면서 존립/존재에 관한 문제이기에 그러하다. 그러한 인정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 '애니멀'이다...

P.S.2. '인터넷 나르시시즘'에 대한 문화학자의 진단을 덧붙인다. 같은 기획기사의 하나이다.

경향신문(06. 11. 09) 소통·공유·행복 ‘인터넷 나르시시즘’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 이야기가 있다. 그는 어느 날 숲으로 사냥을 하러 갔는데 옹달샘에 비친 자신의 몸에 반해 먹지도 않고 자기 얼굴만 보다 말라 죽은 후 한 떨기 수선화가 되었다. 19세기 말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는 나르키소스의 신화를 차용해서 리비도의 대상이 자신이 되는 심리상태를 ‘나르시시즘’으로 명명했다. 한 마디로 자기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말이다.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오늘날 인터넷에서 자기 과시에 몰입하는 네티즌들의 원형 서사 같아 보인다. 나르키소스의 옹달샘이 자기도취의 거울이었다면 네티즌들에게 그것은 바로 ‘블로그’ 혹은 ‘미니홈피’쯤 될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멋진 자신의 얼굴을 옹달샘에 비추듯,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만든 멋진 콘텐츠를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린다.

자신이 만든 특이하고 맛깔난 음식 정보를 블로그에 올리는 ‘가정주부들’.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직접 찍어 미니 홈피에 올려놓은 ‘셀카족들’. 취미가 유사한 익명의 네티즌들에게 자신만의 고유한 정보를 제공하며 즐거워하는 네티즌들. 이들이 우리 시대 인터넷 나르시시즘의 주인공들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익명의 네티즌들과 공유하길 원하는 이들은 자생적인 공간에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고 유통, 소비하는 ‘생비자들’(prosumers)이다.

디지털 시대 콘텐츠 생비자들은 근대적, 물리적 공간에서의 자기도취자들과는 다른 욕망을 꿈꾼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한 ‘사모님들’이나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며 주말에 고급 사교파티를 즐기는 ‘문화귀족들’의 자기과시는 오로지 폐쇄적이고 독선적이다. 일반 서민들이 이들을 재수 없게 보는 것도 타인과의 소통과 공유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인터넷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소통과 공유를 원칙으로 한다. 맛있는 해물 떡볶이, 내가 만든 가구, 알콩달콩한 우리가족 이야기, 이 모든 정보는 내가 잘났다는 과시이기에 앞서, 익명의 네티즌들과 소통의 기쁨을 공유하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만족을 위해 만든 콘텐츠라 해도, 타인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댓글의 행복’이 없으면 인터넷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터넷에서 자기과시는 하나의 게임이다. 마치 고대 원시 부족사회에서 행해졌던 ‘포틀래취’(potlatch) 선물 게임처럼,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도전과 응수를 위한 반복적인 게임이다. 내가 맛있는 ‘해물 떡볶이’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 누군가가 더 맛있어 보이는 ‘치즈 떡볶이’로 응수하고, 다시 나는 최고로 맛있어 보이는 ‘카레 떡볶이’로 도전하는 게임 말이다. 게임의 장에 참여한 유저들의 도전과 응수는 배타적, 폐쇄적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개방적, 다방향적 나르시시즘이다.

오로지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다른 유저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통과 헌신을 감내하는 것은 블로그가 주는 일상의 행복과 천상의 기쁨 때문이다. 어느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한 ‘해피해피 라이프’라는 네티즌 참여 코너의 사례처럼, 아기자기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유저들의 나르시시즘은 탈권위적이면서 자기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나 있다.

물론 유저들이 만든 콘텐츠가 모두 사심 없는 것은 아니다. 네티즌들의 시선을 모으기 위해 특정 연예인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한다거나 아니면 스스로 연예인이 되고 싶어 댓글 자작극을 벌이는 현상들도 일어난다. 인터넷 자기과시 행동이 지나칠 경우 오직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려 인터넷 감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어떤 정치인들은 애초부터 진정한 정보 소통에는 관심이 없고, 의정활동을 위한 홍보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적인 정보들이나 미니홈피의 ‘디카놀이’ ‘일촌 놀이’들이 사이버 커뮤니티를 지극히 개인화하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로부터 도피하려는 정치적 불감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자신을 뽐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직하고 열정적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자생적 콘텐츠는 무기력증에 빠진 가정주부들에게 생활의 활력소를 준다. 이제 부엌과 거실은 가사노동의 현장에서 풋풋하고 따근따근한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스튜디오로 전환된다. 인터넷 나르시시즘이 가정주부들에게는 가사의 불평등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자기 최면술일 수도 있지만, 가사의 반란을 꿈꾸는 쾌락의 에너지일 수도 있다.

소비 자본주의 시대 상품화된 나르시시즘은 결핍에 대한 편집 증세를 보인다. ‘명품중독’과 같은 상품 나르시시즘의 욕구는 끝이 없다. 소통과 공유를 위한 인터넷 유저들의 대중 나르시시즘은 비록 폭력과 집착의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타인에 대한 에로스의 열망을 담고 있다. 자신이 만든 정보를 미치도록 소통하고 공유하고 싶은 에로스적 욕망, 물질적 보상은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인터넷 나르시시즘은 행복하다.(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

(*)하지만 이 '행복'은 쾌락원칙의 경제 안에 있을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 아닌가? 그 경제를 넘어선, 주이상스 곧 향략으로서의 나르시시즘은 때로 인생을 망치고 거덜낸다. '자기도취'의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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