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

언제나 그렇지만 매주 책들은 쏟아지고 그 중 주목할 만한 책들이 10여 권 정도 언론의 리뷰를 탄다(단평까지 포함하면 20-30권쯤 되겠다). 그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갖는 책들은 물론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여러 가지 여건이 관심을 제약하기 때문이다(그러고도 '책벌레'란 소리를 듣는다!). 금요일자 한겨레의 북리뷰들을 대충 훑어보다가(읽을 시간도 없다!) 이 주의 책으로 혼자서 꼽은 건 앨런 그로스의 <과학의 수사학>(궁리, 2007)이다. 기념비적인 책이 아닐 경우에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은 '의외성'이다. 즉, '예기치 않은 책'에 아무래도 눈길을 주게 되고 <과학의 수사학>은 그런 책이다. 이때 수사학은 물론 '과학 수사'와는 전혀 무관한 '레토릭'을 말한다. 부제대로 하자면, '과학은 어떻게 말하는가'를 다룬 (아마도 드문) 책이다. 원저는 지난 1990년에 출간됐다고 하니까(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왔다) 나이 좀 먹은 책이다. 관련리뷰를 먼저 읽어두고 언제쯤 구매할/읽어볼 것인지 가늠해본다.  

한겨레(07. 03. 09) 과학도 철학처럼 ‘설득의 산물’

백과사전은 ‘과학’을 “이제까지 아무도 반증을 하지 못한 확고한 경험적 사실을 근거로 한 보편성과 객관성이 인정되는 지식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이런 규정은 “사상이나 감정 따위를 효과적˙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문장과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인 ‘수사학’으로 분석 가능한 정치적인 것, 사법적인 것, 나아가 철학, 문학비평, 역사 등과는 달리 과학에 절대적 신화나 특권을 부여한다.

<과학의 수사학>(궁리 펴냄)은 과학이 아리스토텔레스 유래의 고전적 정의와 달리 수사학적 분석 대상이 가능하다는 걸 ‘설득’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앨런 그로스는 과학적 주장들도 단지 ‘설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과학이 ‘자연의 원초적 사실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지식이 아니며, 문제가 선택되고 결과가 해석되는 과정은, 설득을 통해서만 중요성과 의미가 구축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수사학적이라는 것이다. 수사학적 관점으로는 과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뉴턴은 1672년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 서설>의 부록에서 ‘백색광이 기본이며 색은 백색광의 변형으로 이차적인 것’이라고 정의한 것을 ‘백색광은 이차적인 것으로, 가시 스펙트럼의 모든 빛들이 합성된 결과’임을 밝힌 논문이다. 그러나 뉴턴은 전통적 관점·방법들과 대립함으로써 ‘설득’에 실패했다. 결정적 실험의 설득 능력은 실험을 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에도 , 뉴턴의 논문은 결정적 실험에 대한 어떤 그림도, 분명한 실험방법들도 결여돼 있었다. 30여년 지나 1704년 뉴턴은 <광학>을 출간해 2차 시도를 한다. 뉴턴은 “데카르트가 한 일은…훌륭한 발걸음이었다.…만일 내가 더 멀리 내려본다면, 그것은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라며 <광학>에 역사적 연속과 논리적 불가피성이라는 인상을 부여했다. 또 세밀한 실험을 거듭해 ‘압도적 현존감’을 창조했다. 그는 <광학>의 말미에 수사학적 질문을 쏟아내 실험에 의해 확실해진 것과 불확실한 채로 남은 것을 구분함으로써 질문 이전에 제시된 결론들의 ‘과학적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로스에게 뉴턴의 <광학>은 ‘수사적 개종’을 통해 성취된 ‘수사학의 걸작’이다.

저자는 과학에는 종종 잘 숨겨져 있지만 수사학이 내포돼 있으며, 정치연설과 학술논쟁, 과학논증의 영역에는 서로 닮은 꼴(유비)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새로운 ‘종’의 발견은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구분과 분류에 대한 설득을 통해 ‘창조’됨을 보여주고 있다. 또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왓슨의 회고담 <이중나선>이 담고 있는 설화 서사구조와 왓슨과 크릭의 논문의 문체를 분석하면서 “DNA 구조의 실재는 설득을 위해 사려분별 있게 사용된 말과 수사, 그리고 그림의 결과들”이라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는다.

그로스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성의 개종’을 요구한 수사학적 혁명으로 해석한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이 이성의 혁명이기 위해서는 정밀관측과 틀림없이 일치하고 정확한 물리학에 부합하는, 수학적으로 깐깐한 체계가 돼야 했지만, 이런 이상적 설명은 그가 죽고나서 1세기 이상이 지난 뒤에야 가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가 증거와 논증이 아니라 ‘선전, 감정, 임시방편의 가설, 선입견에 대한 호소’ 등 비이성적 수단들에 의해 지지됐음을 저자는 당시 텍스트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과학과 수사학을 각각 다른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의 융합을 들고 있음은 과학저술의 전범인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뉴턴의 <프린키피아> <광학>, 왓슨의 <이중나선>,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을 수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저자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이근영 기자)

07. 03. 09.

P.S. 최근 '수사학' 붐이 얼마간 조성되고 있지만, <과학의 수사학>은 그러한 붐에도 한몫 낄만 하겠다. 책은 궁리출판사에서 내는 '궁리하는 과학'의 두번째 책인데, 왓슨의 <이중나선>(궁리, 2006)이 첫번째 책이었고 이번에 같이 나온 듯한 로저 트리그의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궁리, 2007)이 세번째 책이다. 트리그의 책에 대한 리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트리그의 책들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다), 내게 더 친숙한 책은 <과학의 수사학>이 아니라 <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이다. 그건 예전에 사회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책의 원서를 모셔둔 지가 벌써 오래됐기 때문이다. 'The Shaping of Man'(1982)이 그 원서이고 부제는 '사회생물학의 철학적 측면'이다(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생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이다). 186쪽의 얇은 책인데, 국역본은 333쪽. 책이 폼나게 나오긴 했으나 이런 식의 분량 '인플레'는 슬슬 염증이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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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앨러리 퀸과 고스트 라이터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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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앨러리 퀸과 고스트 라이터

장르소설을 잘 읽지 않는지라 '앨러리 퀸(Ellery Queen)'이란 작가가 "사촌형제간인 맨프리드 리와 프레데릭 더네이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필명"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우리라면 '듀나' 같은 경우일 텐데, 그래도 필명/가명이란 티가 나는 '듀나'에 비하면 '앨러리 퀸'은 감쪽같다!). 지난달 컬처뉴스에 실렸던 한 '만담'기사를 읽으면서인데, 지난 연말에 터졌던 대필 사건들과 관련해서 읽어볼 만한 만담이기에 옮겨놓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이지만 '내부자'의 진술이기에 흥미롭다. 

컬처뉴스(07. 01. 26) 무림 출도를 고민하다: 출판시장과 유령작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다. 『Y의 비극』, 『Z의 비극』 등으로 유명한 미스테리 작가의 엘러리 퀸이 사망한 해가 1971년일까 1982년일까? 성급하게 답하자면 이 퀴즈에는 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둘다 정답이며 둘다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엘러리 퀸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엘러리 퀸은 사촌형제간인 프레드릭 더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들이 공동으로 집필한 작품의 필명으로 사용했으며 주인공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후 버나비 로스라는 또다른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공식석상에서 한 명은 엘러리 퀸을, 한 명은 버나비 로스의 행세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는 서로의 작품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모든게 독자들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전략이며 일종의 ‘장난기’였다고 한다. 여하간 엘러리 퀸과 버나비 로스 뒤에 숨었있던 ‘실존인물’ 더네이와 리는 각각 1982년과 1971년에 사망했다. (이 두 사촌 형제는 공교롭게도 둘다 1905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엘러리 퀸의 사망년도는 모호한 노릇이다

제법 길게 예전에 죽은 미스테리 작가에 관한 사설을 늘어놓은 까닭은 최근에 책, 혹은 글과 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아닌 정지영 아나운서가 번역했다고 알려졌던 『마시멜로이야기』와 화가이자 방송인인 한젬마가 썼다고 알려졌던 일련의 미술관련 책이 불러일으킨 논란이다. 이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소식들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라도 이 소식을 못 접하신 분들이 있다면 주요 포탈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검색창에 ‘표절’이라고 쳐보시라. 뉴스란에 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각종 게시판을 떠도는 말들이 더 재미있다.)

그런데 출판계에 잠시 몸담았던 박서방의 경험에 비춰보자면 이 사건들은 그리 낯설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들어온 원고를 면밀히 잘 검토해서 책을 만들거나 좋은 원고를 발굴해서 책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잔인한 얘기지만 출판 기획자에게 좋은 책이란 잘 팔리는 책이다. 물론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하기 짝이 없는 출판업계에서 당장 현금이 안 도는 책이란 재앙이다. 책 한두권 대박 치면 1년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책 몇 권 죽 쒀버리면 당장이라도 문을 닫아야 하는 출판사들이 적지않다. 그러니 당장 현금화 할 수 있는 책을 ‘제조’해 내기 위한 경쟁에서 자유로울래야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필자 이름 정도 빌리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되버렸고 글 팔며 먹고사는 ‘고스트 라이터’ (유령필자, 실명을 밝히지 않고 출판물 집필을 대행해주는 이들) 들의 맹활약이 시작되었다. 박서방도 출판계에 있을 때 명색이 초보 기획자였지만 실상 가장 많이 했던 역할은 필자들의 글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있는 원고를 다듬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그 중에는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도 있었다).

여담이지만 선거철 직전은 고스트 라이터들에게 가장 일거리가 많은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금뱃지에 눈이 먼 이들의 선거용 출판물 (자서전, 정치평론 등) 작업에 임할 때는 주의할 사항이 있다. 일단 믿을만한 경로로 들어온 일을 받아야 하며 되도록 돈을 빨리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가 안 좋을 경우에 원고를 의뢰한 자들이 얼렁뚱땅 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실제로 한번 이런 경우를 당한적이 있는데 당시 박서방의 경제상황이 극도로 불량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왔으며 (한동안 박서방을 몹시 괴롭렸던 소위 ‘카드돌려막기’의 원인이 되었다.) 박서방은 그 정객(인지 사기꾼인지)에게 강력한 신체적 보복을 행사하기 위해 한동안 그 인물이 출마했던 지역구 주변을 배회하곤 했었다.

얘기가 옆 길로 샜는데 지금의 고스트 라이터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겠지만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 작가의 존재는 꽤 오래됐다. 소설이 지금의 영화 만큼이나 대중적으로 인기있던 19세기에만 해도 한 명의 작가 이름으로 여러 필자가 협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 대중문학의 전성기였는데 이렇게 대중문학의 인기가 급증했던 원인은 흔히 노동자 계층의 교육 수준이 올라가고 사무직 노동자 계층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문맹률이 낮아졌던 것과 출판 기술 및 통신, 운송 수단이 화끈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80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흥밋거리를 담은 타블로이드판 형태의 ‘소설신문’(?)이 등장하게 되는데 양장본 소설책에 비해서 역시 화끈하게 싼 가격이었다고 한다.

타란티노의 영화 제목이기도 한 ‘펄프픽션’은 바로 이런 매체에 연재되었던 대중소설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로 다루어졌던 내용들은 황당무계한 연애담(아마도 박서방이 불타는 사춘기 시절 즐겨읽었던 ‘하이틴 로맨스’ 류의 원조리라)이나 잔인한 범죄 이야기, 환상담 등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런 소설을 주로 썼던 작가들의 특징은 엄청나게 다작을 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대부분 이런 소설은 한 작가의 이름으로 여러 명이 작업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혐의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본소 만화 전성기 때 유명 작가들이 사실상 만화공장장 노릇을 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렇듯 예전부터 상업 출판물에서 필자의 이름은 상표다. 실제로 그 사람이 그 글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그 필명이 출판시장에서 발휘하는 힘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많은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앨러리 퀸을 탄생시켰던 두 작가가 버나비 로스라는 또 다른 작가를 탄생시켰던 이유는 아마 앨러리 퀸이라는 상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극복하고 작품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문제가 되었던 두 개의 (혹은 서 너개의) 사건은 상표가 너무 강하게 부각되었었으며 그 상표 덕에 상품을 너무 많이 팔았던 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져버린 원인이었다. 한편으로 한젬마 씨의 경우는 대외적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있었기에 당초부터 고스트 라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부담스러운 경우기도 했다. 기획출판물이란게 대개 그렇지만 그 콘텐츠에는 상표 외에는 실상 별 게 없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그런데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했던 상표가 좀 과하게 작용한데다 그 바람에 상품이 너무 팔려버린 것이다. 상표를 보고 샀는데 상품이 짝퉁이라면 소비자들은 열 받는 게 당연하다. 그래봐야 이런 사건이들은 들불처럼 분노를 일으켰다가도 바람처럼 잊혀져 갈 것이 뻔한 노릇이며 이미 발 빠른 기획자들은 또 다른 상표를 찾아내고 있겠지만 말이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출판물들도 있어야 고스트 라이터들도 먹고 살 것이 아닌가라는 한심한 생각도 해 본다. 박서방도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직장생활의 스트레스 수치가 한계 이상으로 치솟을 때면 글 팔며 연명하던 고스트 라이터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하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분방했던 측면도 있긴 했다. 이렇게라도 자위하지 않으면 청춘의 기억이 너무 서글퍼진다.) 그래서 ‘천마신군’이나 ‘초혼객’ 같은 이름으로 무협지나 쓰며 사는게 어떨까 하는 백일몽에도 잠겨본다. 몇 년간 글을 자주 안 썼더니 글이 너무 심하게 구려져서 별로 자신이 없지만.(박서방 _ 인터넷 만담가)

07.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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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連理枝(연리지) 이야기

 



 

◈連理枝(연리지)◈

이을 연,  이치 리,  가지 지. [출전]白樂天의 <長恨歌>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다정한 연인.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본디 連理枝의 故事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連理枝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본디는「효심(孝心)」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다정한 연인(戀人)의 상징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당(唐)의 詩人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
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
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비명)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




연리지 이야기

연리지(連理枝)...

두 그루의 나무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보통 죽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연리지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연리지 라는 나무들은 처음에는
가지 하나씩이 붙는답니다.

그래서 두가지가 하나되고..
그리고는 또 뿌리가 붙어서 하나가 되고..
마침내 두 나무는  한 나무가 된다는 군요.

참으로 신기한것은.. 
두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되지만..

각각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개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흰꽃을 피웠던 나무는 여전히 흰꽃을 피우고..
노란꽃을 피웠던 나무는 그대로 노오란꽃을 피운다네요.

하나 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 가는 연리지..

더불어 살면서도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간다는것..
생각만해도 .....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 가운데
많은 만남들이 그렇게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만남이
되어지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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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連理枝(연리지) 이야기

 



 

◈連理枝(연리지)◈

이을 연,  이치 리,  가지 지. [출전]白樂天의 <長恨歌>

나란히 붙은 나뭇가지.  다정한 연인. 부부의 애정이 지극히 깊음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동쪽의 바다에 비목어(比目漁)가 살고
남쪽의 땅에 비익조(比翼鳥)가 산다고 한다.
비목어는 눈이 한쪽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좌우로 달라붙어야 비로소 헤엄을 칠 수가 있고,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에만 있어
암수가 좌우 일체가 되어야 비로소 날 수 있다고 한다.

연리지(連理枝)라면「나란히 붙어 있는 나뭇가지」를 뜻한다.
곧 뿌리가 다른 두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합쳐진 가지가 連理枝다.
간혹 거대한 고목에서나 그런 경우를 볼 수 있는데
다정한 느낌이 들어 보기에도 좋다.
이처럼 ″比翼″이나 ″連理″ 모두 그 말이 가져다 주는 이미지와 같이
남녀간의 떨어지기 힘든 결합을 뜻한다.


◈◈본디 連理枝의 故事는
후한말(後漢末)의 대학자 채옹(蔡邕)에서 유래했다.

워낙 효심이 극진해 어머니가 죽고
뜰에 나무가 자랐는데 連理枝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본디는「효심(孝心)」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다정한 연인(戀人)의 상징으로 사용되게 된 것은
당(唐)의 詩人 백락천(白樂天)에 의해서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
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
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  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  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  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  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玄宗은 안녹산의 난으로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非命(비명)에 간 楊貴妃를 잊지 못해
늘 이 말을 되뇌었다고 한다.


......................................




연리지 이야기

연리지(連理枝)...

두 그루의 나무가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보통 죽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연리지는 전혀 그렇지 않답니다.

연리지 라는 나무들은 처음에는
가지 하나씩이 붙는답니다.

그래서 두가지가 하나되고..
그리고는 또 뿌리가 붙어서 하나가 되고..
마침내 두 나무는  한 나무가 된다는 군요.

참으로 신기한것은.. 
두나무가 붙어서 하나가 되지만..

각각 가지고 있던 본래의 개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흰꽃을 피웠던 나무는 여전히 흰꽃을 피우고..
노란꽃을 피웠던 나무는 그대로 노오란꽃을 피운다네요.

하나 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묘한 삶을 살아 가는 연리지..

더불어 살면서도 각자가 자기답게 살아간다는것..
생각만해도 ..... ^^*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남 가운데
많은 만남들이 그렇게 서로를 살리는 행복한 만남이
되어지기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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