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작품집 - 사라질 소행성 어떠한 결과를 되돌리기 위해 시간을 거스르는 대가는 대개 가혹합니다. 조은오 작가의 <아이엠그라운드> 속 주인공 선우에게 그 대가는 '투명화'로 찾아옵니다. 특정 구간의 시간을 되돌리는 '드래그 딜리트'를 사용할 때마다 선우의 몸은 발끝부터 한 뼘씩 사라집니다. 다시 회복될 때까지 그저 견뎌야 하는 고독한 기다림. 선우는 이를 자신이 감당해야 할 당연한 대가로 여깁니다.작품은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세상을 구하는 기적의 비용을 왜 단 한 사람이 지불해야 하는가?" 이야기 후반부, 친구 녹원은 온몸이 투명해진 선우에게 "왜 네가 다 갚아야 하냐"고 소리칩니다. 초능력과 영웅, 그의 희생과 인류의 구원이라는 당연한 클리셰를 단번에 깨트리는 장면입니다. 선우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름을 말함으로써 모두가 조금씩 투명해지는 길을 택합니다."벌써 네 명이 나누어 가져가 버린 대가는 무겁지 않았다. … 수많은 이름이 불리자 아무도 투명해지지 않았다.(p.111)" 혼자라면 사라져 버렸을 한 뼘의 투명함이 여럿에게 나뉘자, 누구도 존재를 잃지 않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는 단 한 명의 초월적인 영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서사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인간적인 위로를 줍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함께 감당하겠다'는 약속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기획의 말] 속 문장처럼 '때로 인간이 절망이지만 여전히 희망(p.5)'인 이유는 그 모순 속에서도 부단히 사랑하고 연대하기를 선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학소설의 외양을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로 가득찬 이 작품집을 통해 과학과 기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나아갈 방향을 엿볼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