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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 악마의 무늬가 자유의 상징이 되기까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 미술문화 / 2022년 10월
평점 :
사선의 줄무늬는 활동적인 느낌을 주고
옅은 파스텔톤의 세로 줄무늬는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옥스퍼드 셔츠에 그려진
세로 줄무늬를 좋아한다.
취향의 변화도 있지만 시대의 유행에 따라
줄무늬의 면적이 줄어들기도 커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스트라이프를 좋아한다.
그러니 책의 제목에 호기심이 생길 수 밖에.
책에서 언급되는 줄무늬의 역사 속에는
계급과 사회적인 분위기가 함께 집약되어 있다.
줄무늬가 부정적으로 쓰이던 중세시대.
이 책은 그 때부터 시작한다.
카르멜수도회가 파리에 입성할 당시
그들이 두르고 있는 망토는 줄무늬였다.
망토가 줄무늬였던 이유를 설명하는
여러가지 기독교적인 설들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것에 상관없이 그들을 조롱하고 압박했다.
그럼에도 30년 가까이 수도회와 교황청 간의
줄다리기는 이어졌고 교황의 특별교서로 인해
마침내 카르멜회는 민무늬 망토로 바꾸게 된다.
이쯤되면
줄무늬가 이토록 천대를 받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속 모든 것이 이유가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문화의 암흑기였던 중세시대의 특성으로 미루어 볼 때
눈에 띄는 형상이나 행동에 대한 반감이 있지 않았을까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고 본다.
'성경해석의 문제가 아닌 시각적 인식의 문제'라고 하며
설명하는 뒤의 문장들은 사실 언뜻 이해가 잘 안되었다.
"단순명료하고 구조적으로 겉과 속을 알수 있어야 하는
당시의 인식체계에 반해서 줄무늬는 바탕과 무늬를
뚜렷하게 알수없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을 야기하므로
줄무늬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대게 색이나 형상에 대해서
직관적으로 이미지를 부여한다.
시작이 부정적이고 파급력이 상당할 때
그 첫 이미지는 꽤 오래가는 것 같다.
줄무늬도 그런 예라고 생각한다.
당시 줄무늬는 하층민에게 입혀졌다.
창녀, 어릿광대, 재단사 같은 이들로 하여금
눈에 띄게 하려는 목적으로 줄이 간 의복을 입도록 했다.
아마도 이들에 대한 경멸의 의미를 담았을 것이다.
(내생각엔 그들 역시 줄무늬가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을거 같다. 사람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직업을 가졌던
그들에게 줄무늬는 더할 나위없는 광고판이 아니었을까?)
유럽의 근대에 들어와서는 하인 또는 흑인 노예에게
줄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혔다.
줄무늬는 점차 흑인노예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이는 줄무늬에 '이국적인 또는 미개한' 이라는
수식어를 추가시켰다.
그러한 이미지가 급반전하는 시기가 온다.
18세기 말 ~ 19세기 초에 1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의 발전은 이국적인 이미지의 줄무늬를
세련되게 탈바꿈시켰고 그 결과 동적이고
시야가 트인듯한 착시현상을 주는 세로줄무늬가
주거형태에 쓰이기도 했다.
이후로 눈에 잘 띄게 할 목적으로 죄수들에게
가로줄무늬 죄수복을 입혔고
이는 가로줄무늬=죄수복이라는
부정적 공식을 만들었다는 면에서
중세시대의 줄무늬를 계승한다.
또한 같은 목적으로 사물에 줄무늬를 그어서
방벽(국경)이나 필터의 역할을 하게끔 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언어의 어원에서도 줄무늬가 갖는 상징이
나타난다고 서술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서 역동적이고 세련된
(내가 좋아하는) 진정한 '스트라이프'가 인기를 얻고
미술. 음악 등의 다방면에서 문화적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또 다른 면으로는 여전히 중세시대와 같이
어둡고 제한적이고 불량한 이미지로 활용되기도 한다.
지은이는 마지막으로 줄무늬에 대한 명과 암을
말하면서 책을 마친다.
'줄무늬를 만든 것은 사람이지만 그 성패는 결국 줄무늬에 달렸다.
이 말은 줄무늬의 성격과 기능이 전적으로 사회가 의도하는 바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줄무늬에는 체제의 확립에 저항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중략......
줄무늬도 지나치면 광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잊지 말기를'
219~224p
결국 줄무늬는 인간의 시선에 따라서 의미가 확립되고
그 의미는 계속 변화한다.
악한 의미에서 경멸•소외의 의미, 강조의 의미,
현대에 들어서는 패션의 일부로서 다양한 상징으로
소비되고 있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줄무늬에서 지금까지도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의미로서의 줄무늬가 어느 날 나타날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쓰임새는 앞으로 어떠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