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에서 배우는 인권 - 소통의 공간에서 바라보는 인권 현실 철수와 영희를 위한 사회 읽기 시리즈 15
정석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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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골목에서 길을 묻다』는, 도시공학·정치·종교·역사·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다섯 명이 ‘골목’이라는 공통 주제로 풀어낸 사유의 기록이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결국 모두 인간다운 삶, 존중받는 권리,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1. 길을 바꾸면 소통이 달라진다 – 정석 교수


첫 장은 도시공학자인 정석 교수의 글이었다. 도시공학이 인권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아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자동차 중심의 도시 개발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보행자와 사회적 약자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 위험성이 더 뚜렷하다.


특히 네덜란드의 ‘어반 95 이니셔티브’사례가 깊이 와 닿았다. 평균 신장 95cm, 즉 세 살 아이의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보자는 운동이다. 만 3살인 내 아들의 키가 정확히 95cm라서 더욱 공감되었다. 아이와 함께 길을 걸을 때 느끼는 불안, 인도가 끊겨 유모차를 밀고 차도로 내려섰던 경험은 도시가 여전히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노인을 위해 시간을 연장해 주는 일본의 사례 역시 인상 깊었다. 단순히 아이와 노인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것을 넘어, 애초에 위험하지 않도록 신호 체계를 설계하는 것이 진정한 ‘인권 친화적 도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 독일의 골목에서 만나는 말들 – 정범구 전 대사


정범구 전 대사가 쓴 두 번째 글에서는 ‘언어 속에 내재된 유럽 중심주의’가 화두였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극동’, ‘중동’이라는 말이 사실은 유럽을 기준으로 한 표현이라는 점은 크게 부끄럽게 다가왔다. 스스로를 주변부로 규정하는 사고를 자연스레 받아들여왔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또한 저자가 현재 이끄는 ‘장발장 은행’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다. 벌금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은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3. 터키 골목에서 만난 이슬람 – 이희수 소장


세 번째 챕터에서는 터키와 이슬람 문화가 다뤄졌다. 수도가 이스탄불이 아니라 앙카라라는 사실, 그리고 국가 명칭이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바뀐 이유는 새로운 배움이었다. 단순히 지명과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와 정체성, 자존심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대목도 기억에 남는다. 여성 복장을 율법으로 강제하는 국가는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소수(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프가니스탄)에 불과했고, 다수의 이슬람 국가는 이미 자율화를 이루었다. 라마단의 의미 역시 단순한 금식이 아니라, 배고픔을 함께 경험하며 나눔과 절제를 실천하는 신앙의 행위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1990년대 ‘터키탕’ 명칭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해프닝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였다. 그러나 언어와 명칭이 얼마나 중요한 상징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4. 거리의 외국인과 골목의 한국인 – 김희교 교수


네 번째 글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끊임없이 강요되는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이 차별과 혐오를 낳는다는 분석은 우리 사회의 자화상처럼 다가왔다.


김희교 교수는 “각자의 골목에서 경쟁하지 말고 광장으로 나와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주의와 불신 속에서 고립된 사회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시민이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한국 사회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메시지라고 느꼈다.


 5. 아이들에게 골목을 – 강대중 교수


마지막 글은 교육학자 강대중 교수의 글로, 아이들의 ‘골목’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대상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그들만의 공간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은 부모로서 크게 공감되었다.


실제로 아이들은 안전한 골목, 스스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아이들은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와 학원가 속에서 자라며, 삶의 중요한 경험을 빼앗기고 있다. 이 책은 그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게 한다.




『골목에서 길을 묻다』는 단순한 골목 이야기가 아니라, 도시와 권리, 언어와 인식, 문화와 종교, 민주주의와 교육을 아우르는 책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골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회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시작점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았다.


특히 부모로서, 교사로서,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아이와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책이었다. ‘길을 바꾸면 소통이 달라진다’는 말처럼, 작은 변화가 큰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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