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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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란 책을 접했을 때 나 역시나 작가 또래의 대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가진 학벌후광과 넘치는 재능과 자신감 그리고 유창한 언변이 어쩐지 질투나고 얄미웠다. 그러나 분명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같아서 그런 관심마저도 금방 사그라졌던 것 같다.
이 후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런 저런 스스로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느새 나이가 훌쩍 많아져 버렸다. 그러는동안 손아람은 <소수의견>으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듯 했고 꽤 선호되는 논객으로도 종종 등장했다. 최근 내가 팟캐스트들을 찾아들으면서 손아람 작가가 게스트로 나오는 방송을 제법 많이 듣게돼서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생각보더 더 달변에 목소리도 좋고 물론 내가 관심있는 내용이기도 해서 인상적으로 들었다. 검색을 해보니 외모 역시나 내 취향으로는 훌륭해서 더더욱 맘에 들었다고 하면 너무 속보이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러면서 최근의 이야기 주제에서 많이 언급되던 <디마이너스>를 이제야 읽게 됐는데 잘 읽히는 소설이었고 내 대학시절의 고민들도 새록새록 생각났다. 사실은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선 현실적이지 않다곤 말 못하겠다. 내 기억속의 실제 인물들 중 몇 몇 비슷한 캐릭터를 소환해내기도 했으니. 그렇지만 그 배경이 대한민국 서울대여서인건지 뭔가 공감이 가지않고 매우 오글거린다고 할까.
나로선 미쥬같은 인물은 좀 재수없고 그런 여자애들 주변을 맴도는 태의같은 남자애도 참 재수없다. 아마 나는 일부러 `그런` 유형들을 상대하는걸 싫어했기 때문에 내 기억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잊혀지고 싶은 특징의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어린시절 어떤 남자애의 판타지 속 이상형의 여자애란 흔해빠진 남성적 시선의 구도가 싫었고(그 반대는 더 흔하다) 그 등장인물들 특유의 자신감과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 세계 속 그 나이 또래에 가졌을 치기와 순정에 더해서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자존감을 해치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손상되지 않은 자의식을 안정되게 갖출만한 배경을 타고 났고 또 그곳으로 진입했고 다른 경로를 거쳤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그랄테니 말이다. 한국사회에선 고작 대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칭찬과 경외가 따라다녔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장황하고 비약적으로도 보이는 생각은 대부분은 사실이고 약간은 의도치않게 따라다니는 개인적인 컴플렉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관심사나 대의는 나 역시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었지만 아마 이런 몇몇 지점들에서 이 소설과 나 사이의 어긋남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읽을만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뜨거웠던 열기가 식었고 이 흘러버린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과 저주들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거리두기를 실패한다면 분명히 못 읽어낼 소설이었을거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성장 환경과 전혀 다른 사회적 계급과 공간 전혀 다른 미래를 가지게 될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좀 많이 무겁고 꽤 짙은 고민과 그늘을 드리워주는 것 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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