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언어
김겨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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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재다능하고 따뜻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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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아가씨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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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하고 가난하게 살아온 크리스티네. 그는 시간이 멈춘 듯한 우체국에서 일을 한다. 하루종일 고되게 일을 하고 퇴근 후 침대 외에는 앉을 자리조차 없는 집에서 해진 옷을 기우는 삶이다. 그런 그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망명해 부자가 된 수상쩍은 이모의 갑작스런 초대를 받고, 잠시 호화로운 휴가를 보내게 된다. 처음엔 차림새에 주눅이 들어 호텔 직원 앞에서 고개도 못 들었던 그는 이모의 도움으로 차려입은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다만, 반짝이는 순간에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나들더니 결국 과거가 들통날까봐 겁이 난 이모까지 합세하여 그를 현실로 서둘러 돌려보내고. 크리스티네의 절망감은 문제의 그 휴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보다 훨씬 짙어진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무력감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분노까지 가세한, 숨겨지지 않는 절망감이다.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환한 빛을 보고 눈이 먼 사람같다.

전후 유럽의 빈부격차, 차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그 간극을 오고가는 크리스티네는 절대적 빈곤이 어떻게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지, 상대적 박탈감이 인간을 어떻게 불행하게 만드는 지 두 가지를 모두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나치를 피해 망명한 남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유고 더미에서 나온 소설이라고 한다. 글을 빠르게 쓰기로 유명한 그가 가장 오랜 기간 쓴 작품이라는데, 읽어보니 이 작품은 미완의 상태인 것이 분명해보인다. 작가와 마찬가지로 죽기로 결심했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일생일대의 위험한 도전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크리스티네는 결국 성공해서 이모처럼 살게 되었을까. 그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이 소설을 해피앤딩으로 끝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을 덮고 나서도 두 가지의 아쉬움 때문에 한참 마음이 저릿했다.

“여자가 막연하게 느끼던 것들을 남자는 아주 명료하게 설명했다.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고 싶지는 않다고, 단지 내 권리를 찾고 내 인생을 살고 싶을 뿐이라고. 다른 이들이 따뜻한 방 안에 있는 동안 추운 바깥에서 눈 속에 발을 파묻고 서 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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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 - 왜 지금 중국이 문제인가?
한청훤 지음 / 사이드웨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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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인연 탓에 중국 관련 기사나 책은 제법 읽는 편인데, 과장 좀 보태서 (책 읽고 약간 흥분 상태) 중국의 현대 경제, 정치, 사회 문제가 이토록 광범위하게, 총체적으로, 촘촘하게 잘 서술된 책은 처음이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으로 이어지는 중국 현대사부터 시진핑이라는 자의 성장과 그가 꿈꾸는 중국몽, 대만 점령의 상관관계, 반도체 등 중국 산업의 굴기까지. 저자 의견에 대한 동의 여하를 떠나서, 이 책은 중국에 관심 좀 가져봐야겠다 싶은 사람, 혹은 (나처럼) 파편된 지식으로 정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입문서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저자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의 양도 놀랍고,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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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술
윤혜정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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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예술

예술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개인적이고 내밀하다. 실제 발생하는 상황과 사건을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순간적이고 비가시적인 찰나. 예술품 앞에서 감정 자체를 그토록 풍부하게 느끼는 것도 놀라운데, 그 찰나와 감정을 그는 놀랍도록 적확하고, 다채로운 문장으로 빚어낸다. 2년 전 <나의 사적인 예술가들> 을 읽으며, 윤혜정 디렉터의 문장에 몇 번이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노트를 따로 만들어 표현들을 정리하고 필사했던 적이 있다. 그의 문장을 읽어 나가다 문득 윤혜정이라는 사람이 몹시 궁금했었다. 문장이란 사유로부터 탄생하고, 사유는, 그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그렇게 오매불망 기다린 윤혜정 디렉터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그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인터뷰집인 전작 특성상 예술가들을 필두로 한 문장이었다면, 이번 책은 예술을 지근거리에 두고 살아 온 윤혜정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예술이 배경처럼 스며들어 있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의 삶과 예술을 각각의 독립적인 개체로 두고 설명할 수는 없겠다는 것, 어떤 하나의 풍경에서 줌인/줌아웃을 수시로 해 상대적으로 특정 부분이 세세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을지언정, 그의 삶과 예술은 하나가 된 존재라는 것. 윤혜정이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글을 빚어내고, 그의 삶 곳곳에 녹진하게 스며든 예술이 그의 인생을 빚어내고 있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했던 건 무엇보다 윤혜정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오며 한국 미술시장은 전례없는 호황을 맞았고, 미술품을 재테크의 도구로 인식하는 이들을 주변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분명 누구보다도 자신이 걸어온 길과 경험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예술로 바라보고, 사유하고, 이런 자신의 태도를 나누고 알리려 노력한다. 그의 태도에서 예술을 대하는 그의 품격이 느껴진다. 사랑은 사랑을 알아보는 법이니, 예술 역시도 그의 시선과 사유 안에서 더할나위 없이 활짝 만개한다.
 
이 책을 읽는 시기가 마침 장-미셀 오토니엘의 덕수궁 전시 마지막 주와 겹쳤다. 윤혜정의 문장과 SNS 피드를 도배한 전시 작품 사진들을 함께 보며, 문장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가득 참’을 느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기쁨. 동시에 그냥 ‘좋다’, ‘예쁘다’ 생각하고 지나칠 어떤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는 것, 그렇게 머무른 시간 동안 작품과 작가와 윤혜정의 문장과, 무엇보다 내 삶의 어떤 것들을 떠올렸다는 것. 그 순간은 마치 흑백 영화만 보던 이가 사실 세상은 총천연색 컬러로 가득찬 세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과 비견되는 경험이었다. 작가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독자와 관람객의 손에 들린 작은 손전등’이 되고 싶다 했는데, 그가 망설이면서도 용기를 내 세상에 내보인 그의 책은 그 목적을 넘치게 달성할 것 같다.
 
“기본보다는 기교가 주목받고, 겸양보다는 당당한 자기 홍보 능력이 박수를 받고, 자신감과 자만심, 자존감과 자의식의 흐린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순수함이나 순진함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작금의 세상에서 나도 문득문득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그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배우인 그에게 본질은 ‘연기하다’일 것이다. 나는 어느 경지에 오른 진짜 고수들의 공통점, 그저 군더더기 없이 본질에 충실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흉내 낼 수 없는 산뜻한 ‘가벼움’을 다시금 목격한다.”
 
“삶이란 높은 탑을 쌓는 게 아니라 미완성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특정 세대가 아니라 바로 나로 구성된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삶은 별로 중대하지 않거나, 지겹도록 반복되거나, 너무 우연해서 기억조차 못할 정도로 전형적인 일상의 순간들로 직조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 소소한 면면에 힘입어 앞으로 나아간다. 명분과 이론이 제아무리 웅장하고 원대해도 일상의 루틴을 견뎌내지 못하면 빛을 잃기 마련이고, 혁명을 위한 혁명은 실패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스스로를 신화로 격상시키지 않은 채 일상과 접속하고, 크고 작은 가능성과 저항, 변화의 경로를 탐색하는 것, 바로 나직한 자기 목소리로 ‘작은 이야기’를 해 온 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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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 당신 - 오랫동안 자기답게 살아온 사람들
김종철 지음 / 사이드웨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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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별한당신

34년 차 기자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달 한겨레를 정년퇴임한 김종철 기자, 그가 매 주 토요일 ‘김종철의 여기’ 에서 인터뷰한 이들 중 울림이 큰 스무 명의 이야기를 골라 엮은 책. 고(故) 변희수의 인터뷰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에는, 유명세나 사회적 지위와는 전혀 관계 없이 ‘오로지 그들의 길’ 을 걸어낸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오랫동안 자기답게 살아온’ 사람들. 이 스무명의 삶은 우리가 의례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과 사뭇 다르다. 삶이 제각각 다른 빛과 결이다. 그리고 이 다름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세상 구석구석 채우고, 바로잡으며, 또 다른 삶을 갈망하는 이들의 용기를 이끌어낸다. 다만 예상했듯 이들의 ‘다른’ 삶은 그리 평탄하거나 녹록치 않다. 문장만 읽고 쉬이 멋지다 하기에는 그 삶이 제법 고됐을 것 같아 속상했고, 한편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그 ‘길 만드는 길’ 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해하는 모습. 그저 귀하디 귀하다 생각했다. 읽는동안 자주 눈물이 났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책을 부여안고 한참을 벅벅 울기도 했다.

읽으며 오랜만에 힘이 났다. 정말 무너질 것 같아서 힘들다는 말도 쉬이 내뱉을 수 없는 요즘, 어려운 상황이지만 잘 살아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참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돌아보면 이 길은 오로지 내 길이었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걸음걸음이기를. 다른 용기 말고, 그런 삶에 대한 갈망을 잊지 않을 용기를 바라는 스스로이기를. 책을 오래 아껴 읽었다. 은인같은 책을 만나서, 일면식도 없는 귀한 이들에게 또 큰 빚을 졌다.

🔖 “생각 없이 세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칫 ‘한때는 괜찮았던 사람’ 으로 전락하기 쉽거든요.” - 강수돌 (‘대안적 삶’ 실천 교수)

🔖 “제일 중요한 건 나부터 달라지는 거예요. 모든 개혁은 나부터 시작해야 하거든요. 자꾸 남한테 전가하지 말고, 내가 먼저 달라지고 변하는 그런 운동.” - 김정남 (민주화 운동의 막후)

🔖 “손해 보는 걸 알고 하는 거예요. 나한테 지금 당장의 손해이지만, 인생이라는 거는 그런 계산적인 것, 플러스 마이너스 득실의 합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생각이 저한테는 좀 있어요.” - 정재민 (소설 쓰는 공무원)

🔖 “평화는 격전지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픔과 고통 속에서 평화를 찾아 내야지요. 저는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또, 평화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 홍순관 (삶의 노래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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