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입니다, 고객님 -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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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입니다고객님

“불쾌감과 모욕감이라는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그 같은 상황에 노출되면서 얻게 된 낙담, 실망, 절망, 그리고 숙명주의 등으로 인해 위축된 몸 말이다. 몸펴기가 극복하고자 했던 ‘불판 위의 마른오징어’와 같은 몸이 그것이다.”

구로디지털단지의 소위 ‘공순이’로부터 그 맥이 이어진다는 서사, 가정의학과를 전공한 저자가 콜센터 노동자의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바로 ‘높은 흡연률’ 때문이었다는 고백. 프롤로그만 읽어도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콜센터’ 라는 신조어 때문에 최근 새로이 발생된 문제라 인식되나, 이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시작부터 지리멸렬 대를 이어 이어지고 있는 값 후려치인 여성 노동자들의 인권과 존엄의 문제의 또다른 버전이었던 것이다. 세월은 기술의 진보로만 이어졌을 뿐, 노동환경과 인간 존엄을 지킬 업무 환경과 문화로는 결코 이어지지 못했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류를 착취 강탈하는 방법만 디지털화 되었을 뿐. 사어로 치부되는 ‘공순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변이 바이러스처럼 진화한 양상도 보인다. ‘인간이지만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했던 것이 개도기의 공순이들이었다면, 지금의 콜센터 상담사들은 ‘기계처럼 일하기를 강요당하면서도 인간이기를 강요받’는다. 팬데믹 직후 집단 감염으로 세간에 ‘콜센터’ 단어가 오르내릴 때, 정부의 방역 지침이 ‘중소 콜센터 전문업체’ 즉 하청 체제로 전환되면서 ‘간접 고용’으로 확장되는 과정은 우리 사회의 노동법과 규제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했다. 2021년에 사무실 붉은 진드기가 왠말이란 말인가.

책을 읽어가며 잔인하리만치 디테일한 팩트 체크에 여러 번 절망했다. 작가는 처음에 분명 언급했다. 지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머리 검은 짐승 취급을 받아도, 신경 안정제를 먹어가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콜센터 상담사의 업무를 계속 해 나가고 싶어 하는 이들의 소박하고 안쓰러운 꿈을, 그들의 삶이 조금 더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구를 하고, 글을 썼다고. 읽어 나가며 절망과 분노로만 치닫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써야 했다. 책은 지리멸렬한 이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진짜 목소리도 함께 담았는데, 이 목소리들이 내내 나를 웃고 울렸다. 현실직시는 단순히 정보의 누수나 매체의 불완전함 때문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용기와 노력이 충분치 않아 발생하는 것임을 자각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잊지 말자. 이들을 응원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자.

그들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의 서사다.

*창비스위치 책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창비 #창비스위치 #김관욱 #K가사랑한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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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 어느 장례지도사가 말해주는 죽음과 삶에 관한 모든 것
강봉희 지음 / 사이드웨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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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죽음을돌보는사람입니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이의 환골탈태의 결심이라 할지언정,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읽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가족조차도 목도하기 힘든 방치되어 부패된 시신이나 무연고자, 외국인 노동자, 심지어 코로나 사망자의 죽음을 자발적으로, 그것도 무료로 처리해준다니.

사회면 기사 단신 정도로 다뤄지는 고독사, 기사에서는 그 죽음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신문지면이 아닌, 악취가 나는 죽음의 현장에 저자가 있다. 몸을 닦이고, 입히고, 머리를 빗겨주며, 사느라 애 많이 썼다 다독인다. 그렇게 살면서 혼자였던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읽으며 내내 마음이 울렁거리고 고개가 숙여졌던 건, 나 하나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게 최선이다 타협하고 사는 게 다가 아니구나 싶어서.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까지 외면당한 죽음을 수습하면서 저자가 보여주는 예와 선의는 그저 반들반들한 말로 전하는 그것이 아니었다. 태도로, 실천으로 행하는 것이었다.

한 명의 선인만 있어도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내 삶이 그 한 명의 처진 어깨에 얹힌 무임승차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올곧은 어른의 글을 읽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지나치게 건조한 날들 속 비뚤어진 마음이, 오랜만에 아주 잘 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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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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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비탈에 복숭아 나무를 심는 아빠를 보며 가족 모두가 극렬히 반대했었다. 반평생 직장인이었던 사람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사서 고생 그만하고 편하게 살자 했었다. 아빠는 들은 체도 없이 바득바득 나무를 심고 키웠고, 그러길 다섯 해가 지난 즈음부터 내 주먹보다 훨씬 큰 복숭아가 아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박스에 가지런히 담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야 본전 혹은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 같으니 여전히 농사꾼은 아니고 농사 ‘꿈나무’ 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이지만, 피부가 흙색이 되도록 아빠는 참 고집스럽고 부지런하게 매년 복숭아를 키워낸다.

그런 농사꿈나무 아빠의 고생이 마음 아파 그만하라 노래를 부르지만, 그 수혜를 가장 톡톡이 보고 있는 게 바로 나다. 아빠의 농장서 가장 크고 실한 복숭아는 공판장이 아니라 딸이 사는 거제로 향한다. 이리저리 치이면 쉽게 상처받고 무르는 과일이라 포장을 얼마나 야무지게 해서 보내는지, 몇 년 동안 거제로 내려온 복숭아들은 상처 하나 없이 갓 딴 듯 토실토실 탐스럽고 깨끗하다.

단점 혹은 상처란 역시 쉬이 무르는 부분이니, 이를 ‘복숭아’라 칭한 제목이 기발하고 절묘하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남궁인 작가의 음치 고백도 좋았고, 씩씩하고 치열한 투사 같은 김신회, 임진아, 이두루 작가의 글에서는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 무른 속내가 보인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뭐든 잘해 보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에 한껏 부풀리고만 사는 몸에 스르르 힘이 빠진다. 무너지거나, 어설프거나, 뭘 좀 못해서 더 아름다운 이들의 이야기. 이들의 문장은 무른 복숭아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복숭아 박스에 고운 종이와 테이프를 감는 아빠의 손길과 닮았다. 어설프고 투박하나, 조심조심 정성스런 마음으로 전해진, 반갑고 귀한 아빠의 복숭아같은 이야기였다.

“인간은 책 속에 사는 캐릭터가 아니다. 방금 내뱉은 말과 전혀 다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내가 있다. 그를 굳이 세울 필요도 없고, 어깨를 잡고 이쪽으로 데려올 필요도 없다.” (임진아)

“말이라는 추상은 기술과 자본 없이도 무한하기 짝이 없다. 무형의 무한을 존재 가능하도록 만드는 언어라는 도구는 단말기도 충전기도 필요 없는 필승의 오락이다.” (이두루)

“나무가 되지 못한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며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러지지 않았다. 대쪽 같은 믿음이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고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번민하다 살아남고 강해진 사람. 그런 내가 이제는 조금 마음에 들었다.” (김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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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락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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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단편의 공통점은 결국 인간의 생이 환멸과 고통, 연민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끝으로 향하는 어떤 결정적 순간들은 방향과 모양이 각기 다르다. 미혹되었으나 그 길로 가지않은 이도 있고, 그 길로 가다기 소중한 것을 잃은 이도있다. 또한 이미 끝인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도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삶의 찬란한 어느 순간, 인생을 뒤흔드는 이와의 만남은, 도덕 등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다. 변덕스럽고, 부조리하고, 충동적이다. 싸구려 큐빅같다. 그리고 인간은 어김없이 그 반짝이는 순간을 부여잡고 일생을 불나방처럼 살면서 제 젊음과 나머지 시간을 태워 없앤다. 설령 그 순간을 부여잡지 않고 돌아선 이 역시 미련 혹은 후회로 비슷하게 매듭지어진다. 어떤 방향을 향하든 ‘보아라, 파국’이다.

그런데, 이 파국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불완전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는 세상의 확장이랄까, 긴장하며 아등바등하게 하는 어떤 쇠사슬이 스르르 툭 끊어진다.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반짝인 만큼 불안하게 살았을 피츠제럴드의 삶, 이를 고스란히 담은 그의 문장들은, 어쩌면 ‘엉망진창이어도 눈부신’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책 표지에 검은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여성의 그림이 붙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의 내용을 이만큼 잘 표현한 그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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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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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3년에 그것도 그 시대 남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아 몇 번이고 작품과 작가 정보를 확인했다. 시점으로 보면 조지 기싱이 버지니아 울프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고, 이 소설의 등장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유년기 즈음이 여성 인권과 관련된 혁혁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조지 기싱의 Odd Women(원제) - 메리 바풋, 로더 널과 같은 이들- 이 페미니즘의 초창기 저변이 되는 셈일 것이다. 물론 이들은 허구이나, 조지 기상이 사실주의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이들은 부정할 수 없는 실존 인물이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런 무명의 삶이 켜켜이 모여, 비로소 버지니아 울프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풀뿌리같은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

매든 가 유약한 자매들의 안타까운 몰락, 메리와 로더, 그리고 에버라드의 대화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페미니스트 1세대의 활동과 고민들, 매든 가 막내 모니카의 가부장적 남편 위도우선의 폭력과 집착, 인물 하나 하나의 성격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미행과 폭력까지 일삼는 위도우선, 그의 경제력을 보고 도피성 결혼을 한 모니카는 결국 아이를 낳다 죽고, 그 아이 마저도 핏줄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다. 더욱이 그 불행한 결혼은 주변의 이들에게도 불필요한 오해를 낳아, 어렵사리 마음을 열고 사랑을 시작해보려 한 젊은 남녀(로더와 에버라드)를 영원한 이별로 이끌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피부양자로만 살아온 모니카의 언니들은 제법 많은 돈을 상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념의 무지와 소극적 태도로 남의 가정집에서 혹사당하거나, 가난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알콜 중독자가 된다. 이는 그 시절 전형적인 여성상이었을 것이고, 메리와 로더는 이러한 여성들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직업학교를 열고 강의를 하는데, 메리의 사촌동생인 에버라드는 그러한 사촌누나를 지지하면서, 그녀와 함께 일하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성품의 로더에게 호감을 느낀다.

에버라드와 로더는 결국 맺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끝내 그를 얻진 못했지만, 용감하게 사랑을 해 보고자 마음을 열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스스로의 열등감을 치유하는 경험으로 삼고, 더욱 유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로더. 심지어 에버라드와의 불화의 씨앗이 된 모니카 마저도 용서하고, 되려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를 응원한다. 메리가 로더에게 보여준 큰언니의 포용력과 신의 역시 뭉클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줄 알고, 끈끈하게 연대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밌었다. 빅토리아 시대 남성 작가가, 심지어 Odd 하다 표현될 정도로 희귀한 여성들의 감정을 어쩜 이토록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조지 오웰이 사랑했던 작가라고도 하는데, 왜 이런 작품이 여태 유명해지지 않았는 지 그게 이상할 따름이고. 의심할 수 없는 필독서이고, 고전이다. 밤새 몰아치듯 읽고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전격 쌍따봉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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