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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전혀 다른 문화권의 두 도시에서 고루 살아 본 사람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그 사람이 건축가라면? 이 책의 저자 임우진은 프랑스 국립 건축가로 한국과 파리에서 생활하며 거주자, 이방인으로서 형성한 그 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익숙한 것에 의문을 품기 쉽지 않다. 따뜻한 냄비 속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개구리처럼 적응된 환경을 애써 바꾸려 들지 않는다. 이 책은 매 챕터 왜?로 시작하며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한국 사회의 도시와 공간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준다. 한국인이지만 유럽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온 저자는 유럽, 특히 파리와 한국의 도시 모습을 비교한다. 비교는 각각 비교 대상의 특질을 더 두드러지게 만드는 법이다. 비교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그저 상대적으로 서로의 다른 점들을 뚜렷하게 드러내 평소에 가려져 있던 사실을 인지하게 만들 뿐이다.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공간 속 이야기들을, 2부에서는 현대 도시건축 담론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이슈를 저자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우리가 흔히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 차량 운전자의 도덕성을 나무랄 때 파리는 시민을 믿지 않는 불신을 기반으로 도시 시스템을 정교하게 구축했다. 다민족 환경으로 도시 구성원의 개체가 다양한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는 애초에 인간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없다. 그러므로 대중에게 질서를 ‘지킬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선제적인 도시 전략을 수립해 왔다. 예로 차가 정지선을 넘어가면 신호등을 보지 못하도록 정지선 바로 위에 신호등을 설치한다.
이 밖에도,
서구와 다른 우리 국회 공간의 모습은 인간이 공간에 속박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비포선라이즈에서 셀린과 제시는 공동묘지에서 데이트한다. 우리나라였으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을 텐데 서구의 공동묘지는 이렇듯 낭만적 장소로 묘사되곤 한다. 공동묘지가 혐오시설이 아닐 수 있음을 파리의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도시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공동묘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우리도 언젠가 공동묘지에서 산책하는 날이 올까?
좌식문화에 익숙하게 만든 한국의 온돌 문화는(바닥 난방 포함) 장점만큼이나 비합리적인 건축적 문제도 갖고 있다. 세기가 바뀌어도 몸에 새겨진 익숙한 주거문화는 쉽게 변화하지 못한다.
한옥의 채 나눔은 가족 구성원, 신분과의 철저한 분리를 추구했고 현대 도시에서 부촌의 모습에서 데자뷰를 본다. 아파트 브랜드는 점점 더 세분화 되어 상위 브랜드를 쪼개고 점점 더 그 위계를 나누고 있다. 신분제는 폐지된지 오래지만 급 나누기는 현대에서 계속 되어 오고 있다.
유럽의 광장을 가본 적 있는가? 광장을 이야기하기 전에 ‘가로(street)’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서구에서는 “건물이 가로의 종속 변수”이지만 한국에서는 “길은 건물들을 이어주는 연결로”가 아니라 “건물이 가로를 구성하는 부속물”이다. 도시 주체에 대한 ‘관점 차이’는 주변 건물들의 입면과 호응하지 못하는 한국의 광장을 야기한다.
“광장은 바닥을 포함한 나머지 사면의 수직면 즉, 주위를 둘러싼 건물의 개입과 참여가 없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p.154
사방이 가로막힌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속출은 “끼리끼리만의 공동체를 잉태한” 현대의 모습이다. 울타리 밖은 등한시하거나 적대시하던 속성은 파편적 공동체를 양산한다.
마지막 장 “누구를 위해 꽃을 심는가”에서 도시의 주도권에 관한 이야기가 확장된다. 도시의 구성원이 객이 아닌 각자 공간의 주인으로서 애착을 가지고 주도권을 행사할수록 도시는 생기를 띤다. 거주자를 능동적 주인으로 만들어주는 건축은 위대하다. 코를 찡긋하게 만든 수녀회 기숙사 ‘수국마을’의 탄생 사례처럼 말이다.
언뜻 이 책은 유럽의 도시들과의 비교를 통해 우리 도시의 부족한 면을 들춰내는 비평서 같지만 그보다 서로 다른 것을 봄으로써 우리 도시의 절대가치라 여겼던 인식을 상대적 영감을 통해 전환하고 문제점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안하는 책에 가깝다. 그 중심에는 ‘사람이 먼저인 도시’라는 저자의 가치관이 자리한다.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아무도 대화하지 않는 대합실의 ‘인파’처럼 사람이 느껴지지 않는 외로운 도시가 아니라 발코니에 나와 화초를 가꾸는 ‘사람’이 보이는 도시에서 살게 되길 이 책을 통해 꿈꿔 본다.
벤치 하나 없는 보도는 오직 빨리 지나가라고 강제할 뿐, 잠시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쉬어 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모든 사람이 걷고 있는 길은 원심적이다. 구심력은 멈추고 머무를 때 생겨난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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