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 간절히 살리고 싶었던 어느 의사의 고백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1
김현지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생 시절 방학 때 집에 내려가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낯선 음성이 000씨 가족 맞는지? 물어본다. 아빠 이름이었다. 맞다고 했더니 지금 병원으로 빨리 오셔야겠다고 한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엄마에게 연락하고 어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는 아빠를 본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중환자실을 들락날락하며,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며 엄마와 번갈아가며 아빠 곁을 지켰었는데 한 달여 기간 동안 여러 죽음을 목격하며 느꼈던 감정들이 이 책을 보며 다시금 떠올랐다.



종합병원의 응급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피 철철 흘리며 들어오는 사람, 통증에 아우성치며 병원 떠나가라 소리치는 사람, 의사나 간호사에게 따지며 행패 부리는 사람, 너무 놀랐다가 맥이 풀려버린 상태라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들을 지켜봤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아파도 병실이 나기까지 응급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아빠는 중환자실로 가기까지 11시간가량 응급실에 있었는데 그곳을 보며 지옥은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책에서는 의사의 눈을 통해 다양한 모습의 죽음을 목격할 수 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를 거절하고, 힘들게 살려 무사히 퇴원 시켜놨더니 자살 시도로 차디찬 주검으로 돌아온 사람, 또 어떤 이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으니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한 달 동안 기침으로 불편을 겪다가 출근 전 잠시 들른 응급실에서 몇 시간 만에 사망한 20대 환자(결핵환자였는데 결핵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치료법이 없어 죽는 게 아니라 사회와 제도 안의 부조리로 막을 수 있는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되는 걸 목격한 저자는 병원에서 나와 국회로 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일수록 보수적이고 폐쇄적이 된다. 저자는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다름없는 작은 몸짓을 시작한다. 진보성(progressiveness)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실망하는 일이 많지만 10개를 바꾸려고 노력하면 단 하나라도 바뀐다고 믿고 많은 정책을 입안하고, 아직 갈 일이 멀지만 꾸준히 나아가며 소기의 성과를 낸다.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보건 의료 관련 정책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을 통해 누구든지 의료 현장과 보건 의료정책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그 필요에 조금 더 공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한다.


언제나,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을 위하여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열심히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상 밖으로 나와 발언권을 얻고 정책과 제도를 바로잡는 것이 사회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믿는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좀 더 건강해지면 좋겠다. 누구든 더 쉽게 건강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을 듣고 나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전부터 가끔씩 생각만 해보던 장기기증에 대해 알아봤다.


장기 기증은 크게 3가지로 뇌사 기증, 사후 기증, 살아있는 자 기증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기기증은 뇌사 기증과 사후 기증이다.


* 뇌사 기증- 뇌혈관질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 (심장, 신장, 간 등)

* 사후 기증 : 사망한 후 안구(각막) 기증

* 살아있는 자 간 기증 : 부부-직계존비속 / 형제자매/ 4촌 이내의 친족 간 / 살아있는 자간 장기기증

장기이식관리 센터


장기들은 살아있을 때만 추출이 가능하고, 안구의 각막은 죽어서도 이식이 가능한가 보다. 살아있는 자간의 기증은 주로 간이나 신장인데 가족 간에 흔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미리 신청해놓으면 타인에게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뇌사자가 됐다면 모르겠지만 살아있을 땐 가족이 아플 경우를 대비해야 하니깐 이건 조금 어렵겠다 싶다.

그래서 뇌사 기증과 사후 기증을 하기로 했다.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죽으면 신체는 어차피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간절한 사람에게 이식해 주어 효용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 두렵지는 않은 것 같다.

저자의 이런 노력이 나에게도 울림이 되어 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행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사는 사회가 되길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조금은 나와 거리가 먼 소수의 관심있는 그들만의 학문이라 여겨져 다소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게 되고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때부터 이미 시작된, 우리 삶 그 자체를 다루는 학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1990년대 부터 최근까지 칼럼의 형식으로 각종 신문과 매체에 기고한 인문학적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조각의 모음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기에 책장을 넘길수록 그 깊이에 감탄하며 그의 30여년간의 통찰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삶은 이야기처럼 짜여지고,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삶이 이야기처럼 짜여지는 것은 인생살이가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학은 문학에 대한 담론이지만, 삶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야기의 구조로 짜여지고 진행되는 한 그 삶은 동시에 시학의 대상이다.

시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무엇보다도 첫째, 자기 삶의 작가이고 창조자다.
둘째, 인생살이는 예외없이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하고자 하는 이야기, 곧 추구서사이다.
셋째, 이야기를 쓰듯 인생을 살기로 한 사람은 자기 삶을 함부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앞서 말한 세가지 소득이 결국은 기쁨이라는 하나의 큰 보상에 연결된다. 즉 '존재의 확장이 주는 기쁨'이다.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근원적 질문을 잊어버린 개인과 사회는 근원적으로 불행하다.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철학적 반성의 순간을 놓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인간성의 조건이자 동시에 인간의 한계이며 행복의 조건이기도 한 3가지가 있다. 유한성, 유약성, 오류가능성이 바로 그 것이다.

우리 사회 그리고 언론매체들이 이런저런 범법 양상들을 놓고 걸핏하면 반인륜 범죄니 인면수심이니 도덕 불감증이니 하는 용어들을 남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발생해 있는 더 깊은 사회사적 변동의 현실을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는 지적 게으름과 관계있다. 이 게으름에는 사회적 성찰이 없고, 분석적-비판적 시각이 들어 있지 않다. 필요한 것은 문제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함께 보는 시각이다. 그 시각이 있을 때만 문제적 사회를 보는 눈이 생기고, 그 사회를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가능해진다.

텍스트를 가진 사회는 없는 사회보다 안정되어 있고, 변화 앞에서 경박하게 들뜨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관리할 정신적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사회는 개인이라는 말로 바꿔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꼭 필요하다.

우리의 행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뜻밖에도 부, 권력, 명예 같은 것이 아니라 '의미'이다. 내가 나를 가다듬고, 친구를 만들고, 우정을 다지고, 사랑을 하고, 돌봄과 배려의 방식으로 이웃을 보살피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내 삶에, 우리의 삶에 누구도 앗아갈 수 없고 변하지 않고 시류 변동에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의미의 공급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문학은 그 '의미 공급'의 지혜와 기술과 방법들을 저장한 보물창고이다.

이분법이 불변 구조가 아니라 정신관습이 만들어낸 장치이자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분법은 모든 경우에 악랄하고 무용한 것은 아니다.


개인과 집단은 어떤 문화질서 속에 태어나는가에 따라 상이한 삶의 자서전을 남긴다.

의식이 자기를 의식하고, 정신이 자기를 향해 회기하는 것이 성찰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는가? 복잡한 언어 구사능력이다. 현대 생물학의 이 인간발견이 교육과 문화에 던지는 함의는 크다. 우선 그것은 인간에게 정교한 언어교육이 왜 중요하며, 정확한 언어구사력 훈련이 왜 필요한가를 새삼 깨우치게 하고, 문화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무언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그것은 지금의 영상문화적 '단순 문장의 시대'가 문화적으로 인간 퇴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출렁이는 물결이 꼭 우리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락 내리락 찰랑이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울 때도 힘이 들때도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요즘에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삶이 힘들 때는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힘과 더불어 그 방법까지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면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하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자기계발서 위주로 독서 편식을 하던 중 오랜만에 소설을 읽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흡입력이 좋아 앉은 자리에서 순식간에 읽어버린 집행관들!
법치국가인데 공정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 그들이 나섰다. 대리만족과 동시에 우리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