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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평점 :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면 조금은 나와 거리가 먼 소수의 관심있는 그들만의 학문이라 여겨져 다소 따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오래 전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게 되고 돌도끼를 들고 사냥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때부터 이미 시작된, 우리 삶 그 자체를 다루는 학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저자가 1990년대 부터 최근까지 칼럼의 형식으로 각종 신문과 매체에 기고한 인문학적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이다. 조각의 모음이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기에 책장을 넘길수록 그 깊이에 감탄하며 그의 30여년간의 통찰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삶은 이야기처럼 짜여지고,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삶이 이야기처럼 짜여지는 것은 인생살이가 이야기의 구조를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학은 문학에 대한 담론이지만, 삶이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이야기의 구조로 짜여지고 진행되는 한 그 삶은 동시에 시학의 대상이다.
시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무엇보다도 첫째, 자기 삶의 작가이고 창조자다.
둘째, 인생살이는 예외없이 무언가를 얻거나 성취하고자 하는 이야기, 곧 추구서사이다.
셋째, 이야기를 쓰듯 인생을 살기로 한 사람은 자기 삶을 함부로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 앞서 말한 세가지 소득이 결국은 기쁨이라는 하나의 큰 보상에 연결된다. 즉 '존재의 확장이 주는 기쁨'이다.
memento mori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근원적 질문을 잊어버린 개인과 사회는 근원적으로 불행하다. 우리 모두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철학적 반성의 순간을 놓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인간성의 조건이자 동시에 인간의 한계이며 행복의 조건이기도 한 3가지가 있다. 유한성, 유약성, 오류가능성이 바로 그 것이다.
우리 사회 그리고 언론매체들이 이런저런 범법 양상들을 놓고 걸핏하면 반인륜 범죄니 인면수심이니 도덕 불감증이니 하는 용어들을 남발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발생해 있는 더 깊은 사회사적 변동의 현실을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는 지적 게으름과 관계있다. 이 게으름에는 사회적 성찰이 없고, 분석적-비판적 시각이 들어 있지 않다. 필요한 것은 문제의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함께 보는 시각이다. 그 시각이 있을 때만 문제적 사회를 보는 눈이 생기고, 그 사회를 교정하기 위한 노력이 가능해진다.
텍스트를 가진 사회는 없는 사회보다 안정되어 있고, 변화 앞에서 경박하게 들뜨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관리할 정신적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사회는 개인이라는 말로 바꿔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꼭 필요하다.
우리의 행복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뜻밖에도 부, 권력, 명예 같은 것이 아니라 '의미'이다. 내가 나를 가다듬고, 친구를 만들고, 우정을 다지고, 사랑을 하고, 돌봄과 배려의 방식으로 이웃을 보살피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내 삶에, 우리의 삶에 누구도 앗아갈 수 없고 변하지 않고 시류 변동에 흔들리지 않을 튼튼한 '의미의 공급원'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문학은 그 '의미 공급'의 지혜와 기술과 방법들을 저장한 보물창고이다.
이분법이 불변 구조가 아니라 정신관습이 만들어낸 장치이자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분법은 모든 경우에 악랄하고 무용한 것은 아니다.
개인과 집단은 어떤 문화질서 속에 태어나는가에 따라 상이한 삶의 자서전을 남긴다.
의식이 자기를 의식하고, 정신이 자기를 향해 회기하는 것이 성찰이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했는가? 복잡한 언어 구사능력이다. 현대 생물학의 이 인간발견이 교육과 문화에 던지는 함의는 크다. 우선 그것은 인간에게 정교한 언어교육이 왜 중요하며, 정확한 언어구사력 훈련이 왜 필요한가를 새삼 깨우치게 하고, 문화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무언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 그것은 지금의 영상문화적 '단순 문장의 시대'가 문화적으로 인간 퇴보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한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출렁이는 물결이 꼭 우리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르락 내리락 찰랑이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즐거울 때도 힘이 들때도 흔들리면서 앞으로 나아가지만 요즘에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참 많은 것 같다. 삶이 힘들 때는 책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힘과 더불어 그 방법까지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살면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하는지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