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F 하면 흔히 떠오르는 소재는 미래의 우주 어느 공간에 이주해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과학적인 장치를 기반으로 하기에 평소 익숙하지 않던 단어의 등장에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기존의 SF에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의 역사와 마인드가 등장해 신선하고도 재미있었다.
배명훈 작가는 기존 등장인물의 이름을 다음 작품에 다시 출연시키는 걸로 유명하다고 한다. 배명훈 작품세계의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은경이가 혹시 여기서도 등장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쉽게도 이번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대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 때때로 팝콘처럼 빵 터지는 지점이 등장한다. 코미디언인가 싶은 배명훈 작가의 북토크를 보게 되었는데 수줍은 말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작가와 소설의 분위기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하면서도 다정한 위로가 담겨 있어 흐뭇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던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

좀처럼 실현하기는 어렵지만 여전히 꿈을 믿는 사람과 꿈을 믿지 않는 사람. 김구름과 이초록은 서로 친구 사이였다.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는 구름을 보며 평소 꿈이 없던 초록은 그 꿈을 자신이 대신 이뤄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고 결국 꿈도둑이 된다.
초록이 향한 곳은 화성 근처에 떠있는 스페이스 콜로니 사비. 2년에 한 번씩 화성과 지구의 궤도가 가까워지는 때에 사비로 가는 우주선이 운행되고 있다. 그 틈에 맞춰 지구에서 건너간 초록은 오래전 먼저 건너가 자리 잡은 고모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낙하산으로 시청 주소국에서 국장으로 일하게 된다.
사비는 거대한 원통형 모양의 우주선 도시였고, 사람들이 땅에 발을 붙이고 지낼 수 있도록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인공 중력이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총을 발사하면 지구에서와 달리 이상한 궤도로 날아가게 된다. 마치 영화 인셉션에서처럼 땅과 하늘이 뒤바뀌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부패가 만연한 도시 사비에서는 모두들 자신의 이익 채우기에만 관심 있었고 초록 역시 그곳 환경에 적응해 탐관오리가 꿈이 되어버렸다. 또한 초록은 뛰어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미리 고객이 겪은 사건을 파악해 운세를 점쳐주는 고모 이강녕의 정보원으로도 일한다.
사리사욕을 위한 알력 다툼뿐인 이곳 사비에서 마치 군계일학처럼 빛나며 모두를 위해 애쓰는 한 사람 장고요. 우주로 이주해도 사람들이 모인 곳은 비슷한 것 같다. 선을 위해 노력하는 장고요를 질시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를 막기 위해 암살 명령이 떨어진다.
킬러인 엄마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임무를 물려받은 한먼지를 중심으로 초록과 초록의 부서에서 유일하게 일하는 직원 수미야,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정과 결정이 서로 도우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인물들은 한 단계 성장하게 된다.
한국인의 전통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K 우주의 배경 아래 점쟁이와 탐관오리, 킬러와 인공지능 로봇의 조합을 보며 묘하게 우리 사회의 씁쓸한 한 단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하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한 분위기를 시종일관 유지하는 풍자소설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빛과 어둠은 늘 존재하고 때로 어둠이 시야를 가리기도 하지만 결국 빛의 힘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면모를 보며, 실제 우리 삶 역시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희망을 품게 되었다.
과거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일이 실현되고 있는 요즘의 과학기술을 보며 인간이 우주 어딘가로 이주할 날도 조만간 올 것 같다. 탐관오리 문자 그대로는 나쁜 의미지만, 결국 귀엽고 선한 탐관오리가 된 초록이처럼 내가 살아있는 동안 우주로 갈 수 있다면 나도 그런 부류의 탐관오리가 되어보고 싶다.

한 편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다 보면
중요한 기로에서 나 또한 자주
그런 고민과 마주친다.
무겁게 풀어낼까, 경쾌하게 풀어갈까?
같은 갈림길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동종 업계 종사자들이 묵직한 발걸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다.
발자국이 수없이 찍혀 있으니까.
그래도 나는 자주, 그리고 점점 더 많이,
신나는 스텝을 선택하고 만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