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꽃이나 새나 사람만아름다움을 뽐내는 게 아니야.눈 결정, 구름, 하늘이 잠깐씩 보여주는무기질의 아름다움도 있어.누군가 봐주기조차 바라지 않고그저 그 자리에 있는 아름다움.떳떳하고 덧없는 아름다움.나도 알고 있었잖아.‘가늠하기조차 어려운 138억 년이란 시간 동안 우주는 이어져 왔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 티끌에도 못 미치는 인간이 이 세상에 머무는 시간은 찰나의 순간일 뿐.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소용돌이와 같은 희로애락의 늪에서 인생의 기쁨과 슬픔, 좌절과 희망을 고루 맛보며 예고편 없는 단 한 번의 인생을 살다 간다.이요하라 신의 단편소설집 <달까지 3킬로미터>는 과학도의 눈 비친 다양한 삶의 면면들을 무심한 듯하면서도 따사로운 시선으로 풀어낸다. 크고 작은 시련과 좌절 속에서 허우적대는 주인공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기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일곱 가지 단편소설 속 인물들은 평범하면서도 다채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마주치는 시련에 좌절하고 때론 인생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각각의 인물들을 위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달과 눈의 결정, 화석과 바닷속 퇴적층과 같은 자연이었다.<달까지 3킬로미터><하늘에서 보낸 편지><암모나이트를 찾는 법><덴노지 하이에이터스><외계인의 식당><산을 잘게 쪼개다><새내기 후지산>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품들 가운데 <달까지 3킬로미터>와 <하늘에서 보낸 편지> 두 단편이 특히 좋았다.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택시에서 만난 자칭 '달 전문가'인 박식하고도 수다스러운 운전사에게 배우는 삶에 대한 태도, 눈 결정 연구를 하는 '기상 덕후'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여인을 통해 미(美) 그리고 욕망에 대한 인간의 관점을 기존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실제로 지구과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이요하라 신은 연구의 진척이 없어 방황하던 시기 우연히 떠오른 트릭을 소재로 집필한 소설이 에도가와 란포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걸 계기로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다.감성이 아닌 팩트로 전하는 위로. 인간의 희로애락과는 무관하게 고요하게 움직이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따스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늘 함께 하지만 미처 몰랐던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는 동시에 자연과 교감하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하는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