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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미미여사라는 닉네임을 가진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SF 소설 <안녕의 의식>. 그녀의 작품을 내가 읽었던 적이 있나 곰곰 생각해 보니 오래전 보았던 국내 영화 <화차>의 원작 소설 저자가 미미여사였다는 소식.
주로 추리소설 장르를 다루던 미미여사는 로봇 청소기를 애정의 눈길로 대하던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동안 집필하던 장르와는 전혀 다른 SF 소설집을 출간했다고 한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을 위시해 점차 기계와 익숙해질 미래의 삶을 상상해 보고자 하는 시도였다.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은 표제작 <안녕의 의식>. 안녕의 의식은 가까운 미래의 일본을 보여준다. 인공 지능이 탑재된 로봇 수리 기사인 '나'는 오늘은 로봇 폐기 수속 창고에 접수원으로 근무하는 날이다. 기계에 지나지 않은 로봇에 애정을 느끼는 이들을 다뤄야 하는 자리라 그들끼리는 카운슬링 코너라 부르기도 한다.
접수 창고에 찾아온 한 소녀 역시 자기보다 더 오래 산 노후된 로봇 하먼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 '나'는 로봇들에게 감정을 주는 일을 인류의 고질병이라 여기면서도 슬퍼하는 소녀를 위해 매뉴얼에 없는 편의를 베푼다. 삐거덕 거리면서도 소녀에게 의사 표현을 하는 하먼을 보며 '나'는 양가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바깥은 짙은 농도의 산성비가 내리고 인간은 기계에 대체될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나'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고 오히려 로봇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 소녀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해도 인간은 로봇이 될 수 없고 그것이 답답해 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나'. 인간이길 거부하고 싶지만 실은 누구보다 인간적이 되고픈 '나'의 진짜 속마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에게도 조만간 이런 시대가 도래할 텐데 로봇과 다른 존재로서 애정을 주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고 싶은 마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들었다.

소설집 속에 담긴 여덟 편의 SF 단편 소설들은 빅브라더의 감시, 노인 문제, 묻지마 범죄, 아동학대 그리고 대안 가족처럼 우리 사회에 이미 도래한 문제들 혹은 예견되는 문제들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서정적인 제목과 달리 전개되는 이야기에 흠칫하기도 했지만 사회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30여 년간 활동한 베테랑 이야기꾼 미미여사의 색다른 SF 소설집 <안녕의 의식>.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지만 명확한 결론에 이르기보다는 생각거리를 던져 주기에 여운이 길게 남는다. 이런 류의 소설을 즐기는 분들이라면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