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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평점 :

매일 같은 풍경을 보며 생활하다 보면 익숙해져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려고만 하지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보기란 좀처럼 어렵다. 때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무슨 이유로 잘못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어렵다.
크게 해가 되지 않는 이상 익숙한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익숙한 것과 잘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며 이 둘을 구분 지을 줄 아는 능력은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서 30여 년, 파리에서 20여 년 생활하며 두 문화권의 거주민이자 이방인으로 살아온 저자는 보다 자연스레 두 도시의 차이점에 주목하게 된다. 각기 다른 발생 원인으로 현재의 모습이 된 도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차이점에 주목해 독특한 시선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평소 자주 접하지는 않았던 건축학도의 인문학적 시선이 담긴 책이라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첫 문장부터 호기심을 자극해 300여 페이지를 읽는 동안 그의 남다른 통찰력에 시선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내가 매일 거니는 이 도시를 좀 더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는 시민을 믿지 않는다
오래도록 단일 민족·단일 언어로 살아온 도시와 다민족·다문화 환경으로 수백 년을 지내온 도시의 환경의 차이점이 인상 깊었다. 후자의 경우인 파리는 다양한 사고방식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해 상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 거란 기대는 애초에 품지 않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야 하고 문서로 명기되어야 하며 물리적으로 구분되어야 했다. 이 태도는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가령 무단 주차에 대한 해결책도 부가적인 관리 없이 경제적으로 지속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조치되어 있었다.
반면 우리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양심 같은 정신문화에 아직도 의지하는 면이 많다. 곳곳에 많은 후면도로에서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임의로 주차나 정차가 가능하다. 이런 모호한 시스템 덕에 감시 카메라와 행정 인력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관점의 차이가 도시 계획을 비롯한 제도의 차이로 나타난 걸 보며 개인의 양심에 기대기 힘든 문제는 이런 식으로 미리 환경을 조성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를 수 있는 권리
이 사실을 인지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공간에 대한 '주도권'을 갈구한다고 한다. 내 방, 우리 집, 단골집, 우리 동네, 우리나라 등 이런 소유 형용사를 붙일 정도로 익숙하고 애정이 깃든 장소라면 그곳에 대한 자신의 주도권이 이미 어느 정도 행사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가족끼리 모여 사는 집을 떠올려보면 엄마들은 아이들 혹은 남편이 어질러 놓은 걸 참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잔소리를 하게 되고 계속되는 잔소리에도 상대는 자신이 어질러 놓은 걸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간 주도권 싸움이 집 안에만 국한된 문제라면 그저 흔한 일상의 문제일 뿐이지만, 사안의 범위를 키워보면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도시 모습 자체가 바뀌는 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주도권자의 결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좀 더 편리해질 수도 혹은 엄청난 불편을 겪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해외에 나가면 우리나라도 이랬으면 좋겠다고 부러워 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분명 발견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단면에 주목해서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엔 보이는 것 너머 이면이 존재하고 그렇기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다는 걸 10가지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익숙한 이 도시를 조금만 다른 각도로 바라본다면 그동안 몰랐던 가치를 새로이 발견할 수도 있고, 불편했던 점들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 유현준 교수님의 저서를 재미있게 읽은 분이라면 이 책 역시 흥미롭게 다가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