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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 - 어느 내향인의 집 나간 외향성을 찾아서
제시카 팬 지음, 조경실 옮김 / 부키 / 2022년 4월
평점 :
절판

'순수하게 외향적인 사람이나
순수하게 내향적인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정신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칼 융(Karl Jung)
복잡하고도 심오한 존재인 인간을 단순화하여 설명한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구분 지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령 대세로 떠오른 MBTI 검사에서는 사람은 E(외향)와 I(내향)으로 나누고 거기에 맞추어 난 원래 그랬구나 하며 스스로를 한계에 가두기도 한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런 도구에 의존한다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여하튼 세상에서는 인간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사회에서는 외향인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을 노출하는 일이 좀 더 많기에 그들이 내향인에 비해 좀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식당에서는 꼭 구석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 어느 모임에 가면 누가 말을 걸까 봐 눈을 굴리며 딴청 피우기, 여러 사람이 쳐다보면 말을 하다가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 어쩔 수 없이 약속했지만 시간이 약속 날짜가 다가오면 갖은 핑계를 대며 약속 취소하기 등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표적인 내향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제시카는 여기에 더해 스물두 번째 생일날 대학 친구들이 몰래 깜짝파티를 열어주었을 때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감동받아 우는 줄 알았지만 제시카에겐 이 상황이 공포로 다가왔고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 얼른 모인 사람들이 흩어지고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이토록 극심하게 내향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관계에서 늘 수동적이었던 자신의 삶에 후회만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외향인의 생활이 지옥처럼 느껴졌음에도 딱 1년간 '외향인으로 살기'에 도전한다.

스스로에게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그걸 핑계로 세상을 외면하며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며 제시카는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정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던 경력, 새롭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 만나면 웃음이 떠나지 않는 친구, 일일이 작은 것까지 계획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셀 수 없는 다양한 경험들까지
현재 상황에서 무엇을 시도하든 밑져야 본전이었기에 그녀는 외향인이 되기 위해 자문을 구한다. 심리치료사, 언어치료사, 심리학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실행하기로 하는데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방법 같기도 했지만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따라 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그중 제시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일명 노출 치료. 이는 관계 불안을 겪는 사람들에게 거절당할 게 분명한 최악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는 심리 치료방법이다. 교수의 지침에 따라 영국 런던 한복판에서 아무나 붙잡고 "영국에 여왕이 있나요? 있다면 이름이 뭐죠?"를 묻는다.
황당한 질문 같지만 사람들은 제시카가 겁먹었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붙잡고 영국 여왕이 누구냐 물어도, 지하철에서 불쑥 재킷 어디서 샀냐고 말을 걸어도 아무도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한 이는 없었다. (현 영국 여왕이 빅토리아라고 대답하는 상식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많았다 ㅎㅎ)
일련의 경험들을 통해 제시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인과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다만 '누구도 먼저 손을 흔들진 않아요. 하지만 상대방이 손을 흔들면 모두가 손을 흔들어요.' 즉 내가 먼저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것을 시작으로 앱을 통해 알게 된 이와 오프라인 만남 갖기, 사교 모임에 적극적으로 나가기, 몰랐던 집 주변 이웃들과 사귀기, 무계획으로 여행 떠나기를 비롯해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기도 하고 심지어 스탠딩 코미디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제시카는 의미 있는 관계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건지 진지한 대화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건지 그리고 그를 통해 진정한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경험하고 느낀 점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이다. 그저 살면서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것들이었고 그렇지만 이런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질문하지 않고, 횡설수설하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도중에 끼어들고 혹은 질문만 해대며 자기 얘기는 하지 않는 사람..
나 역시 이럴 때도 있었고 이런 상대를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마음으로 느껴졌지만 시답잖은 농담 일색에 질색하게 된 최근의 경험을 통해 의미 있는 관계는 적절한 타이밍에 진심을 다해 소통해야만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칼 융이 말했듯 하나의 잣대로 사람을 내향인과 외향인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다. 난 오래도록 스스로가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고 최근 들어 자꾸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서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통해 내 안에도 외향과 내향의 성향이 골고루 자리 잡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기에 어떤 성향이 더 많이 발현된 사람 일지어도 결국은 상호보완이 필요하다는 것과 성격은 행동의 결과이기에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는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었다.
스스로 느끼기에 달라지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불쑥 떠오른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