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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 LAW - 일생과 법, 일상과 법
권영태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7월
평점 :

대학 1학년 때가 생각난다. 법학과에 입학하면 법학개론과 함께 민법총론을 배우게 되는데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니 온통 한자투성이. 그야말로 '하얀 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로다'였다. 무슨 말인지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으니 너무 난감했었다.
중간고사를 치르려면 어떻게든 책부터 읽어야 했기에 법학 관련 필수 한자 1500자를 그제서야 부랴부랴 외웠었다. 그때 이런 책을 만났더라면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법은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으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법은 나의 권리를 지킨다."
"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 이 말은 여전히 칭찬으로 통하지만 사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법은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해있기에 누구나 법의 적용을 받으며 살아간다.
내가 권리 위에 잠자면 나쁜 X들이 법을 이용해 치고 들어올 것이며, 잘 활용하면 법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나의 권리를 지켜준다.


책에서는 Life의 의미를 일생과 일상 두 가지로 구분해 주었다. 일생과 법은 출생부터 사망까지 각 국면에서 법과의 연관성을 담아냈고, 일상과 법은 생활의 각 국면에서 겪게 되는 법과의 연관성을 풀어냈다.
민법 제3조 (권리능력의 존속기간)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짧은 문장의 조문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사람이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는 말은 살아있는 동안 권리능력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이때 '생존한 동안'의 의미에 대해 뇌사자의 경우와 태아의 경우로 나눠볼 수 있다.
법조문이 있고 판례도 무수히 많지만 인간 세상의 온갖 군상에 관해 미리 법으로 정해둘 수 없기에 학자들의 견해인 학설의 입김도 아직 많이 작용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포인트 : )
뇌사자의 경우 죽은 사람으로 봐야 하나, 산 사람으로 봐야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심장이 멎은 경우를 사망으로 봤기 때문에 뇌사자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속이 개시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뇌사를 사망으로 보자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뇌사자를 싣고 가던 앰뷸런스에 누가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뇌사를 사망으로 보지 않는 지금의 견해에 따르면 뇌사자에 대해서도 불법행위를 저지른 셈이 된다.
태어난 시점도 견해가 다양하다. 현재 우리 법은 전부 노출설을 가장 많은 학자들이 지지한다. 태아가 임부의 몸에서 완전히 나왔을 때 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임신 중의 여성을 친 교통사고의 경우에 임부만 피해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때 태아가 죽거나 크게 다쳤을 수도 있는데, 말이 안 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태아를 사람으로 보는 특별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이렇듯 출생에서부터 학교 입학, 졸업, 취업, 결혼, 부모 되기, 집 구입, 재테크 등 인생의 각 단계마다 법과 연관 지어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은 법에서 어떤 의미일까? 바로 상속의 문제로 연결된다. 조금 세속적인 잣대로 보이지만 죽음 = 상속의 개시이기 때문에 상속법으로 연결되어 유언, 유류분, 장기 이식에 관한 논의로 연결된다.
테마파크를 가거나 여행을 하면 계약이라는 법률행위를 하게 된다. 돈을 내지 않으면 법이 개입한다. 화투나 카드놀이를 하더라도 형법을 위반하는 정도에 이르면 국가가 나서게 된다. 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전취식의 사례가 나왔다.
무전취식도 경범죄에 해당되어 형법이 개입한다.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한다. 구류는 징역과 비슷하지만 30일 미만이라는 기간이 다르다. (30일 이상 징역. 30일 미만 구류)
액수는 얼마 되지 않아도 경범죄로 과료를 받으면 전과자가 된다. 물론 요즘에는 범죄자의 인권도 무척 중시하기에 신원 조회를 하지 않는 이상 알 수는 없다.
그리고 흔히 있을법한 음식에 이물질이 들어간 경우. 책에서는 머리카락이 빠진 오징어덮밥의 예시가 나왔다. 이는 민법상으로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수 있다.
오징어덮밥을 공급하는 채무는 이물질이 빠진 상태는 아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때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90조)
또한 통상적으로 걸리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징어덮밥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이행지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채무자가 채무의 이행을 지체한 경우에는 수령을 거절하고 이행에 갈음한 손배해상을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395조)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 경우 안 먹겠다고 하고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데 현실에서는 기다릴 여유가 없을 경우 음식값은 지불하지 않더라도 손해배상까지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민법은 독일법을 차용한 일본법을 다시 우리나라에서 차용했다. 즉 완역이 아닌 의역의 형식이어서 말이 길고 이상한 느낌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례로 풀어보니 전혀 낯설지 않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오징어덮밥을 예로 드셨을까? 작가님이 오징어덮밥을 좋아하시나? 책을 덮고는 오징어덮밥만 계속 떠올랐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면 참 좋겠지만 내가 아무리 잘하더라도 살다가 한 번쯤은 송사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럴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있지만 알아두면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진부하지만 진리인 그 말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알아두면 유용하게 쓰일 교양지식이 가득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