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실험실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 두 개 있다면, 바로 다이아몬드와 진주입니다. 미키모토 씨가 진주를 양식한 것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_ 토마스 에디슨(Thomos Edison)
250년 넘게 자발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나라 일본. 그동안 일본은 무적함대의 나라 에스파냐의 몰락, 계몽주의, 프랑스혁명, 영국 상업 제국의 세계화, 미국 건국, 산업 혁명 등 여러 역사적인 사건을 놓쳤다.(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1853년 7월 8일, 페리 제독의 함대가 일본 앞바다로 다가와 공포심을 조장해 함포 외교를 시도하려 한다. 당시 에도 시대 막부 체제였던 일본은 저자세를 취하며 일단은 상호 무역을 강제하는 여러 조약을 체결한다. 이미 수치스러운 조약을 맺긴 했지만, 일본 정부는 훗날 서양이 또 왔을 때에 대비하기로 다짐하며 대규모 개혁을 단행한다.
당시 천황의 이름을 따 메이지 유신이라 불린 1868년부터 1912년까지의 국가 혁신은 일본이 문화와 기술면에서 명실상부한 20세기 현대 국가로 떠오르는 기반이 됐다. 이때 일본인들은 외국을 따라잡고 앞서 나가기 위해 자신들의 뿌리 깊은 전통문화를 삽시간에 과감히 버린다.
단숨에 봉건체제가 붕괴되면서 더 이상 신분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사무라이는 강제로 해체되며 머리를 잘라야 했고, 게이샤는 타자를 배웠다. 이런 메이지 시대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평민으로서 사무라이의 딸과 결혼해 진주 양식 기술을 발명해 완성하고 상업화해 과학자와 상업가로 이름을 날린 미키모토다.
속삭이듯 고급스러움을 발산하는 진주의 가장 큰 매력은 완벽성의 추구에 있다. 오랫동안 진주 산업을 손에 넣기 불가능할 정도로 찾기 어렵고 희귀한 완벽한 진주 한 점에 대한 환상에 의해 지탱돼왔다. 자연에서 진주는 살아 있는 생물 속에서 생화학적으로 만들어지기에 판매를 할 수 없었고 왕족들을 위해서만 쓰일 수 있었다.
이런 진주를 양식하는 법을 개발해 전 세계로 다양한 크기, 품질, 가격대의 진주를 보급한 미키모토. 물론 최초 개발자는 아니지만 최초로 대중화에 성공한 사람은 그였다. 또한 미키모토는 최초의 진주 보석 브랜드 미키모토를 설립하는데 그전까지는 가게 하나를 채울 만큼 많은 진주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단순히 진주를 많이 팔기 위한 매장이 아닌 진주의 이미지를 팔 매장을 원했다.
승승장구하던 시기가 지나고 대공황이 찾아오면서 진주 시장은 붕괴된다. 이때 천연진주를 가진 사람들은 미키모토의 양식 진주 때문에 시장이 무너졌다며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미키모토는 뛰어난 쇼맨십을 발휘해 이에 대응한다. 결국 양식진주는 현대 경제와 산업을 향한 메이지 시대 일본의 질주에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역량이 됐고 미키모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진주의 가격은 공급이 늘어나면서 떨어졌지만 아직도 진주는 귀중한 보석으로 여겨진다. 일본은 진주로 벌어들인 돈과 상업적 지위는 물론 진주가 떠올리게 하는 감정적인 가치에 힘입어 세계의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