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 20세기를 뒤흔든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6개월 마이클 돕스의 냉전 3부작
마이클 돕스 지음, 홍희범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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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내가 뭐랬어!"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병원 병상에 누워 있던 하이에크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한 말이다. 하이에크의 말처럼 냉전의 종말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된 1945년은 모든 것이 안개 속에 뒤덮여있었다.


<1945>의 저자 마이클 돕스는 독자와 함께 모든 것이 불확실했던 1945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한 편의 소설 같은 유려한 서술을 읽다 보면 저자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28년간 외신 기자로 근무했던 경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 특유의 내러티브 서술은 큼지막하게 배우는 역사의 장면 뒷 편에 위치한 사실을 잘 포섭해낸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역사 배경 지식이 있는 이들에게도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가 '감사의 말'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야기체 역사 연구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연구 대상이 되는 인물을 곁에서 지켜보는 상상을 하면서 인물의 발자취를 따라 갈 기회를 갖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서술이 지닐 수 있는 단점인 과도한 상상력의 동원은 비교적 충실한 레퍼런스 표기를 통해 보완했다.


저자가 집필한 냉전 3부작의 마지막 무대로 1945년을 선택한 것은 냉전을 촉발하고 20세기 중후반의 세계 지도를 그린 많은 결정이 이루어진 해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건 중 저자는 얄타 회담을 기점으로 책을 시작한다. 독일의 항복 전 마지막으로 이루어진 연합군 주요 정상 간 회담이자 애매모호함으로 가득찬 미국과 영국, 소련 간의 합의문이 각 국가들의 이해 관계가 얼마나 일치하지 않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유일한 국가 수반, 쇠락해가는 제국을 어떻게든 붙잡고자 하는 여왕의 관리, 강철을 상징하는 위대한 영도자의 기묘한 동거는 종전이 다가올수록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저자는 그 균열의 3단계를 크게 얄타 회담, 독일 항복, 원폭의 일본 투하로 나눈다. 그 과정은 이익 관계의 변화로 전후 시작되는 정치이기도 하지만 원자 폭탄이 상징하듯 인류에 전례 없던 세계의 탄생이기도 했다.


루즈벨트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서술은 국제 정치의 냉혹한 현실 주의가 어떻게 부상했는지에 대한 답변을 넌지시 건네준다. 스탈린을 설득 가능한 협상자로 상정하고 합의문의 단어에 신뢰를 보냈던 루즈벨트와 크렘린이 주지하는 힘의 논리를 깨달으며 소련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하는 트루먼의 대비는 국제 외교가 국가 이익에 근거한다는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가 마지막 문장에서 지적 하는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력한 지도자도 알렉시 드 토크빌이 "하늘의 뜻"이라고 부른 것을 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0여 년 가까이 된 해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서술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많은 질문을 던진다. 기존 패권국과 정치 체제가 다른 신흥 패권국의 부상과 그들의 노골적인 충돌, 이로 인한 지역 블록화 등 많은 점이 닮았기 때문이다. 저자가 후반부에 직접 언급하듯 한반도는 의도치않게 아시아판 베를린 장벽이 되었다. 여전히 그 역사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은 되짚어 볼 해가 바로 1945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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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 -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
찰스 만 지음, 최희숙 옮김 / 황소자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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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이 조금 넘게 흘렀다. 일을 그만 두고 여기저기를 떠돌다 멕시코에 반 년 정도 체류한 지 말이다. 당초 계획은 그 반 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주요 지역을 모두 둘러 볼 예정이었으나, '백팩커들의 늪'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필자도 멕시코 남부 지역에서 그 반 년을 물 새 듯 모두 흘러버렸다.


 멕시코라는 나라는 그 거대한 크기 만큼이나 하나의 단어로 묶어 말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대표적인 예가 인종이다. 멕시코와 벨리즈, 과테말라의 국경이 만나는 체투말에서 나에게 숙소를 제공해줬던 프레디라는 친구는 한국인이 흔히 구분하는 인종과 민족의 범주로는 그 경계가 명확하게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그의 조부는 아내와 함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탈리아 남부에서 멕시코로 이주했으며, 그의 아버지는 칸쿤 부근에서 또 다른 이태리 출신 이민자와 현지인 혼혈 딸을 만나 결혼해 그를 낳았다. 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배운 마얀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캘리포니아 롤을 스시로 부르며 자신의 번쩍이는 금발을 다듬기를 좋아했던 프레디는, 나에게 복잡다산한 멕시코의 근현대사를 함축적으로 말해주는 듯 했다.


 <1493>의 저자 찰스 만은 라틴 아메리카가 보여주는 이러한 혼합에 주목한다. 인종부터 시작해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대표되는 동식물, 포토시의 은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1493년 시작된 콜론(저자는 콜롬버스가 생전에 스스로 개명해 불렸던 크리스토발 콜론으로 콜럼버스를 부른다)의 여정이 단순한 지리적 발견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창조였음을 강조한다. 그 이전까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진화하고 양태된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이 광범위하게 교류되고 토착화를 시도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부제처럼 이를 콜럼버스가 문을 연 '호모제노센' 세상이라 부른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전 지구가 글로벌 교역망으로 연결됨으로써 촉발된 변화를 광범위하게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생태학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참신한 주장 몇 가지를 전개한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 후반에 절정기를 맞았던 소빙하기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유럽 문명의 아메리카 대륙 진출이 본격화 된 후 소빙하기가 절정을 맞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주장한다. 화전으로 경작지를 일구던 북미 대륙 토착인들의 개간 방식이 유럽인들의 진출로 불가능해짐에 따라, 수목이 개걸스럽게 북미 초원 지대를 뒤덮었고 이에 따라 북미 산림 지대의 이산화탄소 흡수가 과도해짐으로써 빙하기가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북부가 임금 노동, 남부가 노예 노동에 의존하게 된 것이 말라리아로 대표되는 열대 지방의 질병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점도 흥미롭다. 남북 전쟁 시기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인공적인 경계선이 공교롭게도 말라리아의 북방 한계선과 거의 일치하며, 북부에서 자리 잡았던 유럽의 하층민을 대상으로 한 계약 이민 제도가 남부에선 유럽인들이 내성을 가지지 못 했던 질병들로 인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표면적으로 계약 이민자이자 임금 노동자였던 유럽인들에 비해 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각종 열대병에 내성을 가졌던 아프리카 노예들의 노동에 의존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저자가 생태학의 관점에서 지적하는 역사의 이면은 많은 통찰력을 가져다준다. 필자는 저자가 다루는 시대와 무대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대변되는 제도 경제학 책들을 통해 많이 받아들였다. 앵글로 색슨과 라틴 문화권으로 양분된 아메리카 대륙이 후에 보여줬던 극명한 발전의 차이는 남북한 만큼이나 그들이 다루기에 흥미로운 소재기 때문이다. 그들의 저술은 대게 각 문화권과 국가가 가지고 있던 시스템과 소유권으로 대표되는 제도로 천착되기 때문에, <1493>이 보여주는 생태학적 서술은 그러한 제도 경제학자들의 서술이 어떤 환경 기반 위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알려주는 훌륭한 보완재가 된다.


 더불어 저자는 기존의 저작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했던 대서양 문화권의 상호 교류를 강조한다. 지배/피지배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이분법, 하향식 역사 서술이 아니라 소수의 유럽인들이 다수의 인디언, 아프리카 노예 심지어 태평양을 건너 온 아시아인들이 함께 창조해낸 세계를 서술하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바라보는 프레젠티즘(Presentism)에 대한 경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과거를 일면화하고 도식적인 논리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단호히 반대를 표한다. 노예 노동과 무역에 대한 당시의 관점부터 남미의 식민지 경영이 무수히 많은 문화권과 집단의 이해 관계, 수많은 대리인을 낳은 것에 1차 사료와 자신의 취재를 덧붙여 꽤나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전문 학자가 서술한 책이 아님에도 이 책의 참고 문헌만 66페이지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숀 역으로 분한 로빈 윌리엄스는 모든 책을 기억하고 있는 듯한 천재인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내가 너에게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댈껄? 미켈란 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그에 대해 잘 알거야. 그의 걸작품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본능까지도 알거야. 그치?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껄?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본적이 없을테니까."

 역사 서술이 텍스트 위에서만 이루어질 때 가질 수 있는 함정은 역사의 실존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현장감을 망각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저술을 위한 작가의 발품 팔이가 책 곳곳에서 디테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이들이 역사상 최초로 한 데 모였던 필리핀의 마하우하우를 직접 보기 위해 반군 게릴라들이 점령한 땅을 보트 하나에 의지한 채 탐험하는가 하면, 농장주와 노예들이 끝없는 벌였던 반목과 전투의 현장들을 답사하기 위해 남미의 진창을 여기저기 내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자신의 서술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콜론을 시작으로 인류가 창조해 낸 현재에 대한 질문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남미에서 전래된 구황작물들이 아일랜드에서 푸른 잎을 피우고 아프리카와 동남아에서 전파된 커피와 고무가 브라질에서 익어가는 동안, 400여년 전 아프리카 출신 탈출 노예들이 건설한 퀼롬보는 여전히 살바도르의 빈민촌으로 남아 도시와 융합되지 못 하고 필리핀 북부 사람들은 여전히 레가스피가 살던 시대와 다를 바 없는 생활 수준을 수상 가옥에서 영위하고 있다.


 역사의 굴레를 여전히 짐으로 짊어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서술로 마무리되는 <1493>은 이 책이 과거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질문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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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역사 (양장) - 문명을 꽃피운 5천 년의 기술
윌리엄 N. 괴츠만 지음, 위대선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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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크는 말년의 저작인 <치명적 자만>에서 시장을 가르켜 카탈락시라 불렀다. 카탈락시는 시장을 고대 그리스어로, 하이에크가 시장의 자생적 발전, 질서를 강조하기 위해 차용한 용어였다. 그러한 면에서 <금융의 역사>는 인류 이래로 자생적 발전을 거듭했던 금융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게 해주는 훌륭한 입문서다.


저자인 윌리엄 N. 괴츠만은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동대학 국제금융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미술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은 책의 초반부부터 빛을 발한다. 빈약한 기록의 틈을 발견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메꾸어야 하는 고대사 서술의 특성상 저자의 임의적인 묘사가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을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훌륭히 메꿔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쐐기 문자에서 시작한 서술을 읽다 보면 그 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유려한 서술은 책의 몰입과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 때문에 대중 교양서 치곤 상당한 두께의 책임에도 부담 없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 한 상대성 이론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저자가 보여주는 금융은 미래의 소득, 자원을 현재 가치로 가용하게 해주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식은 시계열에 기반한 높은 추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를 나타낼 수 있는 문자, 숫자 체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더불어 이러한 금융 기술, 제도의 발전은 국가의 관리 능력을 확대하고 각 경제 주체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촉진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성을 저자는 책 곳곳에서 풍부한 삽화 등 1차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중국에 국한된 서술이긴 하지만 저자가 아시아에도 분량을 어느 정도 할애하며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비록 송나라 이후 금융 시장의 발전이 정체돼 이후의 서술은 나오지 않지만, 그 이전까지의 시대에 대한 서술은 적지 않은 분량에 꽤나 충실한 편이었다. 중국의 금융 시장 발전이 정체된 것에 대한 저자의 원인 분석이 기존 제도경제학자들이 분석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한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대중 교양서임을 감안한다면 분량에 걸맞는 적당한 깊이의 분석임은 분명했다.


전반적으로 책의 제목처럼 금융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는 입문서를 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의 서술이 사례와 사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배경 지식이 부족한 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배경 설명이 친절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 근대에 해당하는 파트부터는 초심자에게는 다소 내용이 복잡해지는 편이긴하다. 이 때부터 채권, 주식을 비롯해 현대 금융의 주축을 이루는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회계나 증권, 각종 금융 자산을 유동화시키는 과정에 관련된 생소한 단어가 나오나 이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나 각주가 없는 점은 입문서라고 보기엔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므로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책 구성에 대해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권치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꼽고 싶다. 총 페이지 수가 7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데다 하드 커버 양장본이라 책의 휴대성이 썩 좋지 않은 편이다. 필자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편인데 크기와 무게 때문에 독서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집에서 읽을 때에도 독서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서에 상당한 애로 사항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분권이 됐더라면 독자 입장에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겠으나, 그럼에도 이러한 불편함은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양질의 도서라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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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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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독서토론을 하자며 우연히 읽게 된 책이다.
일본인이 쓴 역사책을 읽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책의 구성 또한 흥미로워 많은 기대를 안고 책장을 펼쳐나갔다. 

책의 구성은 '흐름을 꿰뚫는'다는 제목처럼 현재 세계를 구성하고 많은 이슈를 발생시키는 사안에 대해 역사적인 배경을 풀어내는 식으로 되어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 '아날로지'에 대한 개념을 매우 강조한다. 예컨대 핵개발을 중심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미국과 이란이 이라크 수니파 정권을 지키기위해 협력하는 이유, 우크라이나 동부는 왜 그렇게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하는지에 대한 원인 등을 역사적인 원류로 거슬러올라가 종교, 민족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은 맥락은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압축된 구성이다. 
다극화, 내셔널리즘부터 종교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은 불과 200여 페이지에 불과하다. 더불어 책의 크기도 일반적인 판형에 비해 다소 작은 편이다. 우선 압축된 지면에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니 다양한 사안에 대한 지식을 쉽고 빠르게 부담 없이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각각의 주제가 두꺼운 책 한 권으로 풀어내도 충분하지 못 할 만큼 무거운 것들이 많기에 깊이가 다소 떨어지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이 둘의 장단점 중 개인적으로 단점에 더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좁은 지면에 저자의 주장을 더 한 이야기를 풀어내려니 역사적 사실과 해석들에 대한 취사적인 선택이 극적으로 강화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논리의 비약과 잘못된 결론으로 쉽사리 이어진다. 예를 들어 저자는 1장에서 신제국주의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마르크스 경제학 관점에서 자본주의 탄생과 발전을 논한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사에 관한 수많은 관점 중 마르크스 경제학을 선택한 이유를 가장 설득력 있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것이 왜 가장 설득력 있는 지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에서 수많은 공격을 받아왔고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기에 이에 대한 설명이 더욱 필요했음에도 이것이 생략된 것은 독자로서 유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노동가치설 등 마르크스 경제학 중에서 논리적 타당성을 상당히 상실한 전제를 그대로 사용해 자본주의를 설명해 잘못된 전제와 결론이 과잉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책은 아니나 세계사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으며 특히 현재 세계에서 지정학적, 종교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슈들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입문서 정도로 충분히 볼 만한 책이다. 앞 서 말했듯이 책의 두께가 얇고 판형도 작으며 구성 또한 짧은 단락이 반복되기에, 간식을 먹는 느낌으로 부담 없이 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몸에 좋은 간식이라곤 장담할 순 없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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