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역사 (양장) - 문명을 꽃피운 5천 년의 기술
윌리엄 N. 괴츠만 지음, 위대선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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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이에크는 말년의 저작인 <치명적 자만>에서 시장을 가르켜 카탈락시라 불렀다. 카탈락시는 시장을 고대 그리스어로, 하이에크가 시장의 자생적 발전, 질서를 강조하기 위해 차용한 용어였다. 그러한 면에서 <금융의 역사>는 인류 이래로 자생적 발전을 거듭했던 금융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게 해주는 훌륭한 입문서다.


저자인 윌리엄 N. 괴츠만은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로 동대학 국제금융연구센터장을 겸하고 있다. 미술사학과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은 책의 초반부부터 빛을 발한다. 빈약한 기록의 틈을 발견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메꾸어야 하는 고대사 서술의 특성상 저자의 임의적인 묘사가 많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을 저자가 자신의 전공을 살려 훌륭히 메꿔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쐐기 문자에서 시작한 서술을 읽다 보면 그 때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작가의 유려한 서술은 책의 몰입과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이 때문에 대중 교양서 치곤 상당한 두께의 책임에도 부담 없이 빠른 속도로 읽어나갈 수 있었다.


3차원 공간에 시간을 더 한 상대성 이론이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저자가 보여주는 금융은 미래의 소득, 자원을 현재 가치로 가용하게 해주는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식은 시계열에 기반한 높은 추상적 사고를 바탕으로 이를 나타낼 수 있는 문자, 숫자 체계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더불어 이러한 금융 기술, 제도의 발전은 국가의 관리 능력을 확대하고 각 경제 주체의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촉진함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촉진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성을 저자는 책 곳곳에서 풍부한 삽화 등 1차 사료를 통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중국에 국한된 서술이긴 하지만 저자가 아시아에도 분량을 어느 정도 할애하며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도 눈에 띄었다. 비록 송나라 이후 금융 시장의 발전이 정체돼 이후의 서술은 나오지 않지만, 그 이전까지의 시대에 대한 서술은 적지 않은 분량에 꽤나 충실한 편이었다. 중국의 금융 시장 발전이 정체된 것에 대한 저자의 원인 분석이 기존 제도경제학자들이 분석한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한 점은 아쉬웠다. 하지만 대중 교양서임을 감안한다면 분량에 걸맞는 적당한 깊이의 분석임은 분명했다.


전반적으로 책의 제목처럼 금융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는 입문서를 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의 서술이 사례와 사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배경 지식이 부족한 이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배경 설명이 친절하고 풍부하게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시기상으로 근대에 해당하는 파트부터는 초심자에게는 다소 내용이 복잡해지는 편이긴하다. 이 때부터 채권, 주식을 비롯해 현대 금융의 주축을 이루는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등장,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회계나 증권, 각종 금융 자산을 유동화시키는 과정에 관련된 생소한 단어가 나오나 이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나 각주가 없는 점은 입문서라고 보기엔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검색을 통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어들이므로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책 구성에 대해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단권치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꼽고 싶다. 총 페이지 수가 7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데다 하드 커버 양장본이라 책의 휴대성이 썩 좋지 않은 편이다. 필자는 주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는 편인데 크기와 무게 때문에 독서하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집에서 읽을 때에도 독서대의 도움이 없었다면 독서에 상당한 애로 사항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분권이 됐더라면 독자 입장에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겠으나, 그럼에도 이러한 불편함은 소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양질의 도서라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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