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보인다 - 삶의 한가운데서 마주한 중년의 성장통과 깨달음
임채성 지음 / 홍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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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내가 보인다.

 

세계적으로 카톨릭의 사제서품을 받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추세인데 유독 대한민국만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과연 종교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문에서 사제서품을 받는 모습이 담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서품을 받는 예비 신부들이 바닥에 온 몸을 붙힌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었다. 신부라면 카톨릭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추들인데 그들이 온 몸을 바닥에 붙힌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가장 아래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가장 아래에서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는 그들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서는 그 아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내가 보인다] 비단 신부님뿐이겠는가? 가장 낮은 곳에 서 본 사람만이 고통받는 존재들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고 그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런 약자의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이것이 사회에만 해당되는 일일까? 개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창 성장할 때는 진실한 나를 만나기 힘들다. 나보다 더 높은 존재를 보며 앞만 보고 달려갈 뿐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오르막길만 존재하는가? 결국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중년, 노년의 삶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초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년의 삶이 힘들어 지기 시작했음을 말하고 있다.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다면 중년 이후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삶을 찬찬히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를 욕심내기 보다는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중년의 삶을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내가 보인다] 문득 요양원에 자원봉사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한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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