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ㅣ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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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된 과학이 지배하는 미래, 호모 사피엔스의 길을 찾다.






포털사이트를 이용하다 보면 신기하리만치 내 취향과 잘 맞는 컨텐츠들이 메인 화면에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심 있는 분야의 기사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고, 쇼핑란에는 사고 싶었던 물건이 추천 상품으로 등장한다. 일찍이 네이버를 비롯한 각 포털사이트들은 이용자들의 활동 및 검색 내역을 수집한 후 내부의 알고리즘을 통해 패턴을 분석하여 개별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편리성과 만족도를 제고하려는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때때로 '나'를 간파당한 것 같아 묘하게 불쾌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빅데이터와 통계가 많은 이들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그 중요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를 반영한듯 대형 서점에 가면 빅데이터에 대한 기초적 내용과 활용범위 등에 대한 책이 코너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흐름 속에 <사피엔스>로 유명세를 탄 유발 하라리가 가세했다. 기술의 유망성을 조명한 여타의 책들과 달리, <호모데우스>는 기술 발전의 미래를 철학적 내지 인류적 관점에서 주목하였다.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하며 진화를 거듭한 인간이 스스로를 속박할 기술 발전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인지 깊은 통찰에 특유의 위트를 가미하여 풀어낸다. 그저 '인류세'에 안주하다가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지배 받는 부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일종의 디스토피아가 <호모데우스>를 통해 펼쳐진다.




지난 세기 과학자들은 사피엔스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에 영혼, 자유의지, '자아'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호모데우스> 387쪽





오랜 시간 인류는 스스로를 타 생물종과 다른 존재로 인식해왔다. 과거 농업혁명 당시에는 유신론적 종교가 그 근거를 제시했고, 과학혁명이 도래하자 인본주의 종교가 인류의 우월성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발견들은 이러한 믿음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시사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독립적 주체로 여겨졌던 인간이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 객체에 불과하다는 것,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인류는 건강과 영생이라는 목표를 위해 생명공학 연구에 매진해왔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오랜 목표를 달성하는 듯 보였지만 새로운 발견들은 예상치 못한 흐름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이 영혼이나 자아를 가진 존재가 아니라, 뉴런의 반응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알고리즘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대 사회의 제도들과 평등한 개인이라는 기본 이념이 자유의지를 전제하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자유의지의 부정은 곧 개인의 몰락이자 사회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과학의 발전, 특히 생명공학의 발전은 존재론적 고민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공학'을 넘어선 '철학'의 영역으로 논의를 끌고 와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저자는 위와 같은 현실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데이터'라 이야기한다. 페이스북 등의 SNS는 각 개인의 이용 패턴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 행동 양상을 예측하고, 구글은 검색엔진을 통해 정부 기관보다 더 빨리 미래를 예견한다. 데이터의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그 기술이 보다 고도화될 경우 개인의 모든 행동은 예측 가능한 범위 내로 들어오게 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단순한 양적 존재로 치환되며 개인의 선택은 '의미'를 상실한다. 또한 알고리즘이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그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소수의 기술자들만이 독점적이고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게 되고, 그에 따라 불평등이 고착화될 것이다.







<호모데우스>는 단순히 기술 발전으로 도래할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다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저 직업이 몇 백 개 사라지고 일자리 몇 만 개가 줄어든다는 등의 경제 논리만으로 거대한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잃을 게 너무나도 많다. 당장 '평등한 개인'이라는 전제가 무의미해지면서 계층이 공고해지고, 이너서클에 들어가지 못하는 개인은 그저 머릿수를 채우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남을 지 모른다. 그보다 심각한 건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야기할 혼란이다. 인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또 무력화된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지배 당하는 인류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최근 사회적 맥락에서 나타나는 해체주의적 흐름과 그 반동을 살펴보면 저자가 제시하는 미래상이 그리 허황되지 않게 느껴진다. 당장 미투운동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회가 고수해 온 관성이 위협 받는 상황에서 구성원 간의 대립은 극렬해지고 인류의 전유물인 '상호주관적 연결망'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전향적 태도로 '유연한 협력'을 추진할 때 해체의 작업이 이상적인 방향성을 지닐 수 있을 테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내부적 충격만으로도 분열이 상당한 수준인데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유연한 협력이 가능하다고 보는 건 지나친 낙관이다.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이 이런 가능성들 가운데 어떤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런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된다. - <호모데우스> 542쪽





저자의 디스토피아는 반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든 알고리즘의 작동 때문이든 욕망을 가진 인간이 과연 오랜 시간 향유해 온 권리와 생활 기반이 박탈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것인가?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 운동이 대세를 바꾸지 못했던 건 수단이 강렬했음에도 그 세가 미약하여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교훈 삼아 데이터에 의한 지배가 가시화되는 상황에서 모든 인류가 결집을 이루어 강력한 반작용을 유발한다면 하라리식 디스토피아는 공상과학의 영역으로 남을 여지가 있다. 저자 역시 이를 의식한 듯 책의 말미에 자신의 논의가 '선언'이 아님을 언급한다.



물론 인류의 결집이라는 발상 역시 한계가 있다. 당장 같은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도 의견 일치를 이루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들과 연대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이야기다. 그렇지만 지구 종말이나 외계 세력과의 전쟁을 그린 영화들이 협력을 통한 해결을 도모하는 건 그것이 적어도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립과 반목을 이어가던 사람들도 최후의 순간에는 힘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인류세의 종결을 목도하며 알고리즘에게 주도권을 내줄 것인가, 아니면 호모데우스로의 진화를 이룰 것인가. 혹자가 '특이점'이라 표현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인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에 몸을 맡겨야 할 현대인들에게 <호모데우스>는 유의미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전작 <사피엔스>로부터 이어지는 탄탄한 이론과 명쾌한 논증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소제목을 통해 논의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이해하기도 쉽다. 열린 결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인류학과 생명공학, 철학과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아우르는 엄청난 통찰을 엿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수확이다. 시간을 여유롭게 두고 긴 호흡으로 읽는다면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사회를 살아갈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의 모든 대규모 협력은 결국 상상의 질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기반한다. - <호모데우스> 203쪽


18세기에 인본주의는 신 중심적 세계관에서 인간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신을 밀어냈다. 21세기에 데이터교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서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으로 이동함으로써 인간을 밀어낼 것이다. - <호모데우스> 5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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