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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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정원은 또 하나의 세계.
재독 철학자 한병철 씨가 전하는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

<땅의 예찬>을 만나다.









어릴 적 베란다에서 강낭콩을 키웠다. 작은 우유팩을 화분 삼아 씨앗을 심은 게 시작이었다. 오래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어린 날의 비관을 뚫고 강낭콩은 계속 자랐다. 자라난 강낭콩을 옮기기 위해 화분을 구입했고 멀리서 흙을 구해왔다. 옮긴 자리가 좋았는지 강낭콩은 그 후로도 끝없이 자라서 그저 호기심만이 가득했던 철부지 주인에게 꽤 많은 열매를 남겨주었다.



강낭콩이 수명을 다할 무렵, 고추와 토마토가 우리집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씨앗이 아닌 모종이었다. 강낭콩을 위해 크고 긴 화분을 마련해두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씨앗이 떡잎이 되고, 떡잎이 줄기를 뻗어내는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금세 자라나는 모종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또 다른 기쁨이었다. 이들 역시 쑥쑥 자라, 계절을 지나 겨울이 올 때까지 여러 번의 수확을 경험했더랬다. 이렇듯 식물을 통해 정적인 순간의 가치를 어렴풋이 배웠기에 한병철 씨의 정원 찬가를 읽는 내내 그가 전달하는 감정이 생경하지 않게 다가왔던 듯하다.

 

 

시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꽃의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작가의 모습에서 김춘수 시인의 시를 읽을 때의 따스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각각의 꽃이 지닌 작은 차이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하나하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애정을 가진 대상에게 이름을 붙여주곤 했다. 어릴 적 키웠던 강낭콩과 토마토, 고추에게는 물론이요, 지금도 침대에서 함께 잠을 청하는 몇몇 인형들에게 귀여운 이름들을 지어주었다. 니체는 이름 붙이기를 일종의 권력행사로 이해했다지만, 내게 그것은 특별한 관심을 상징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로 다가온다.


"누구든 정원에서 일하면 정원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내게는 존재와 시간을 준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 - <땅의 예찬> 24쪽




시간이 상대적이라고들 한다. 가령 10분이라는 시간이 아침 등교 시간에는 너무나도 짧게 느껴지지만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순간에는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정원에서의 10분은 어떨까. 느린 성장, 불확실한 기다림, 정원이라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참을성. 그 가운데 시간은 정원 밖의 그것과 다른 모습을 지니게 된다는 게 저자의 이야기다.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식물들에게 획일적 시간 관념은 무의미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간에 쫓기듯 살아 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원을 통한 가르침은 또 한 번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렇지만 정원의 시간을 상상하다보면 다른 한 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풍년화의 시간과 버들강아지의 시간을 알게 되면 '특별한 시간 감각'을 배울 수 있을까. 저자는 <피로사회>를 통해 휴식의 가치를 역설한 바 있다. 정원의 시간과도 상통하는 그 가치를 보며 얄팍한 생각이 떠오른다. '과잉'을 야기한 책임을 비단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기에 여유를 찾으려는 개인의 노력이 저자의 문제의식에 대한 답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위와 사색이 가능한 일일까.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개인이 도태되지는 않을까. 가야할 방향은 너무나도 명확하지만, 쉬이 그 방향을 좇을 수 없다는 건 아이러니다. 한병철 씨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도 나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내 시간은 여전히 노동시간에 국한되는 건 이 때문인 것도 같다.



"오늘날 우리가 꼭 더 행복해진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점점 더 행복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땅에서 멀어지고 있으니." - <땅의 예찬> 127쪽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글 잘쓰기로 손꼽히는 분에게 '글 잘쓰는 법'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었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좋은 책을 골라 필사를 하라는 조언도 기억한다. 만약 한병철 씨에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묻는다면, 그는 어떤 대답을 줄지 궁금하다. 땅과 가까워지라고 할까, 아니면 식물을 키워보라고 할까. 지금 생각하기론 전자일 듯하다. 땅과 멀어진 인간은 식물과 달리 유한한 삶을 살고, 행복과 멀어진다고 그가 이야기했기에.



<땅의 예찬>을 읽어나가며 문득 저자가 부러워졌다. 애정 어린 어투로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을 펴내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긴 시간동안 행복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행복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을 던졌지만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행복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명확히 찾지 못했다. 도달할 수 없기에 아름다운 유토피아처럼, 행복도 늘 갈구하기에 아름다운 것인지. 그렇다고 하기엔 저자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달콤해 또다시 행복에 관한 고민에 천착하게 된다.



 




사실 <땅의 예찬>은 즐겨 읽는 류의 책이 아니다. 고전소설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찾는 편이기에, 처음 이 책을 펼쳐 들었을 때 얕은 호흡으로 길고 잔잔히 이어가는 전개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넘긴 후에도 얼마간 난감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여러 번 다시 보고, 인상적인 구절을 기록하면서 차츰 '비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생경하던 여러 꽃 이름들은 나름대로 정겹게 느껴졌고, 단호한 저자의 문투도 친근한 잔소리로 다가왔다. 이 책을 접하는 사람 중 적어도 몇 명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거듭 곱씹다보면 그 안에 녹아 있는 저자의 감상과 철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정원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며 그곳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면 더더욱 좋다.



180쪽 정도 되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기에 앉은 자리에서 스르륵 읽어 내릴 수 있다. 정원에서 보고 느낀 것을 덤덤하게 풀어내어 무겁지도 않다. 그렇기에 야단스러운 일상에서 피로를 느끼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금은 땅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쁜 삶을 살지만, 이 책을 통해 먼 훗날 적당한 크기의 정원을 꾸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일상의 애로를 녹여주는 책이자,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정신 없고 복잡한 어느 날 다시금 찾고 싶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 한다. 보호하는 태도로 대하고, 잔인하게 착취하는 대신 찬양해야 한다.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보호하라는 의무를 지운다. 나는 그것을 배웠고 경험했다." - <땅의 예찬>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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