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지옥 들판문고 1
이은재 지음, 신민재 그림 / 온서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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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심장에 화살을 맞은 것처럼 온몸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혹'이라는 말이 귓가에 쟁쟁 울렸다.

할매 눈에 나는 열두 살의 잠 많고 꿈도 많은 '구호랑'이 아니라

흉측스러운 '혹'인 모양이었다.

- 말의 지옥 중에서

 

 

 

"버러지 같은 놈"이라는 첫 문장이 굉장히 충격적인 책이었습니다. 말의 지옥이라는 제목이 세게 느껴져서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첫 문장부터 정말 살벌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돈할매의 저주 같은 말로 또 하루가 열렸다는 주인공의 말이 굉장히 가슴을 먹먹하게 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자비한 분노를 주인공에게 쏟아내는 할머니가 너무 야속했고, 주인공에게 퍼붓는 정말 해서는 안되는 말들 또한 너무 많아서 조금 충격을 받았습니다. 십여 년 만에 고향으로 찾아온 이웃집 딸 모자에게 이럴 수는 없다는 책 속 주인공의 말처럼 도대체 어떤 사정으로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정도로 사람 취급도 못 받는지 정말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이를 보고도 저놈은 없었으면 좋을 뻔했다는 돈할매의 말에 반격조차 하지 못하는 무능한 엄마의 모습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책 속의 종이인형 같은 엄마라는 표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무능력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 담담하게 설명한 글이 왠지 더 짠한 느낌을 줍니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이 좌절되고, 재미없는 아빠를 만나 시들고, 예쁜 딸을 기르고 싶었지만 두꺼비 닮은 아들을 낳자마자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고, 아들은 별 볼일 없는 아이고, 외할버지는 갑작스레 주무시다 돌아가시고, 주인공의 아빠는 실직하고 정말 엄마의 인생 또한 굉장히 되는 것이 없는 불행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있으면 나까지 괜스레 서글퍼진다는 주인공의 말이 참 먹먹하게 만듭니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너무나 다양한 감정이 들게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아빠가 외딴 시골로 친구 공장 일을 한다고 떠나자 어쩔수없이 엄마와 주인공 구호랑은 외할버지댁에 머무르게 됩니다. 돈할매 같은 사람이 있는 이 곳보다는 아빠가 계신 학교도 없는 외딴 시골로 가고 싶어하던 구호랑에게 엄마는 진짜 힘든 건 내일이 없는 거라고 말합니다. 깜짝 놀라 누가 내일이 없냐고 묻자 우리 모두라고 엄마는 대답합니다. 내일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주인공이지만 눈물이 핑 돌고 가슴이 저릿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습니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섬세한 주인공의 감정 표현이 정말 와닿는 책입니다. 구호랑의 감정과 현재 처한 상황들이 마치 한편의 단편 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만큼 굉장히 세세하게 묘사되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아빠가 돌아왔다.

바로 그날 엄마는 사라졌다.

운명의 신은 내게 친절을 베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할 수가 있는가.

- 말의 지옥 중에서

 

아빠가 돌아와 기쁜 것도 잠시 엄마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면서 나한테도 내일이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는 짧은 쪽지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정말 구호랑의 불행이 너무 물밀듯 계속 되서 왠지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너무 불쌍하기도 해서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엄마의 쪽지를 보고도 엄마는 결국 파랑새를 찾아서 떠났다는 아빠의 말에 주인공은 너무 화가 납니다. 당장이라도 엄마를 찾아 나서야 하는게 당연한데, 오히려 아빠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찾으러 가는게 아니라 그냥 기다린다는 아빠의 말에 도대체 우리 가족은 왜 이모양인지라고 호랑이는 생각합니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동과 말에 상처받는 구호랑의 모습이 연상되어서 점점 책에 더 빠져들었습니다. 엄마가 정말로 파랑새를 찾아서 행복한 얼굴로 돌아올지 모른다면서 가볍게 대꾸하는 아빠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아챕니다. 아빠 눈빛이 그렇게 떨리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괜찮다고 하면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피하려는 것처럼 보여 호랑이는 너무나 실망합니다. 주인공의 감정선을 정말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린이용 책인데도 마치 성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어른들의 행동,표정,말을 어떻게 아이가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런 반응을 보고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는지 정말 많이 알게해준 책입니다.

아빠를 본 돈할매는 여지없이 독설을 쏟아냅니다. 아이의 인상이 영 아니었다면서 근거없는 말로 아이를 공격해도 아빠는 보호해주기는 커녕 본인이 넋이 나가서 아이를 더욱 더 절망에 빠지게 만듭니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할매를 경찰에 신고하고 싶다는 주인공의 말이 정말 공감이 되었습니다. 방어막이 되어야 할 엄마 아빠가 아이를 지켜주지도 못 할 뿐더러, 독설을 듣게 만드는게 같은 부모로써 너무나 이해도 안되고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를 바득바득 갈며넛 어떻게든 복수하고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주인공의 말, 이를 악물면서 돈할매를 응징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주인공, 손을 내밀 곳이 없다면 내 힘으로 맞서야만 한다는 주인공의 대사가 정말 마음에 하나하나 푹 파고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평소에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이 어쩌면 이렇게 하나하나 써있는지 읽으면서 내내 감탄했습니다. 아직은 주인공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아이지만, 점점 자라면서 정말 주인공만큼 강단이 있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 되기를 바래 봅니다.

 

 

 

 

천사들은 저희끼리 판결을 내리고 내게 형벌을 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형벌은 바로 '침묵'이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사소한 시비조차도 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나는 그야말로 투명인간이었다.

- 말의 지옥 중에서

 

 여러가지 사건 후에 더욱 단단해지는 호랑이의 모습이 정말 롤러코스터를 탄듯 안타까운 감정, 안쓰러운 감정, 다행인 감정 등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어서 완독 후에는 작은 안도감마저 든 책이었습니다. 아이 책을 같이 읽으면서 항상 새로운 감동을 느끼고는 했지만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아이와 같이 읽고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데 제법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처음에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의 상황이 낯설고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를 책으로라도 처음 만나게 되서 조금 어려워했지만, 점점 책을 읽을수록 호랑이의 감정 변화나 변화하는 상황들에 어느새 동화되어 가는 듯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책이어서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것같습니다. 초등학교 중학년이상부터는 정말 읽으면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하는 마법같은 책이어서 추천합니다.^^

 

 

이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솔직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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